우리나라 전체 주거유형의 큰 부분은 공동주택이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최근 층간소음 문제가 폭력, 살인 등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면서 민원과 사건·사고가 매년 증가 추세다. 한국환경공단의 ‘2022년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운영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 실내생활 증가로 2019년 2만6천257건에서 2021년에는 4만6천596건으로 소음피해가 2배 가까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층간소음에 대한 규제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직접 충격과 공기 전달에 의한 소음의 기준을 정하고 있고 각 지자체 조례로 관리 중이다. 또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을 받기도 한다. 층간소음은 제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 방법이 없다. 위층 소리가 아예 안 들리는 건 건축학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층 사람이 상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상반된 입장이 지속해 부딪치면서 서로의 입장만 과열될 뿐이다. 심리학이론 중 ‘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이 있다. 각자의 현상이나 대상에 대한 거리감에 따라 해석 수준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행동 반응과 선택이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상위 수준으로 해석하고, 가까울수록 하위 수준으로 해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 수준으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 이론에 층간소음 문제를 담으면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시끄러운 위층 집이라는 상위 수준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해석돼 ‘윗집은 우리에게 층간소음으로 큰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항의하고 이의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나의 권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반면 친한 이웃사촌 관계에서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개념으로 바뀌어 층간소음이 들려도 ‘애들이 뛰어다니네, 뭐 신나는 일이라도 생겼나 보다’라는 관점으로 해석이 바뀌게 된다. 갈등의 크기에 비하면 해결 방안은 비교적 단순하다. 해석 수준의 전환이다. 층간소음 관련 통계에서도 새로 지은 공동주택보다 오히려 오래된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적게 나타났다. 이는 층간소음의 해결책은 공동주택을 사용하는 주민들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지혜로운 대처가 답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결국 층간소음의 해법은 먼저 기본적으로 시공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 살 만한 수준으로 건물 짓는 것이 최선이고 그다음은 서로 간의 안 좋아진 감정을 풀고 윗집은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아랫집은 윗집의 사정을 이해하는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허준(1539~1615)은 1539년(중종 34년) 양천 허씨인 아버지 허론과 영광 김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허준의 젊은 시절은 호남지역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호남지역의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 허준과 관련된 호남 사림 가운데 유희춘은 허준의 5촌 당숙이던 김안국의 제자로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한 특별한 사이다.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에 내의원에 출사해 1596년 선조의 어지를 받들어 편서국을 설치해 의서의 편찬을 시작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결국 편찬은 중단되고 말았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어의였던 허준은 의주로 유배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욱 의서 편찬에 혼신의 힘을 다해 1610년 8월 초, 마침내 완성된 원고를 광해군에게 바쳤다. 1613년 11월 조선 내의원에서 교지를 받들어 ‘동의보감’이 간행, 15년간의 숭고한 허준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 허준은 동의보감이라는 의서를 통해 고래의 도가적 전통을 의서 편찬의 기본 철학으로 삼아 금원대사가 의학의 정리 및 이후의 명대 의학을 조선 향약론의 전통으로 흡수 완성하는 업적을 이뤘다. 허준의 이러한 자연철학은 16세기 중·후반 서경덕(1489~1546)을 조종으로 해 한강 이북과 임진강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성시산림’ 학파들의 이른바 유·불·선 삼교회통 사상과의 교류 덕분이다. 개경 출신의 화담은 도가적 학풍에 상공업을 중시하고 절충과 개방 의식이 뚜렷했으며 조선 후기 남인 실학의 저류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유학과 도가 및 불교를 넘나드는 회통의 사상, 특히 선가적 분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실생활에 필요하다면 정학이나 이단을 가리지 않고 절충·보합하려는 학문적 개방성도 가지고 있었다. 허준이 서울과 개경을 잇는 임진강 주변 이북 학자들과의 삼교회통 전신의 교우를 통한 자연철학의 완성에서 동의보감이 완성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허준의 고향에 대한 진실게임이 일어나고 있다. 산청에서 유의태에게 의술을 사사했다는 웃지 못할 억측도 나온다. 허준의 본관이 양천현(강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양천 허씨들의 세거지, 특히 허준의 할아버지 허곤, 아버지 허론, 허준 자신과 그의 동생 허징과 허준의 후손들 모두가 경기도 장단(파주)에 거주했으며, 이들의 사후 묘소가 장단에 있다. 허준의 묘소는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1991년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다시 말해 파주는 동의보감을 허준이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학문적 토대와 정신적 철학을 숙성시킨 곳이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닿아 있는 곳이 허준의 고향이다. 파주시민들에게 허준에 대한 긍지를 지키게 해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치 키즈, 헬리콥터 맘, 극성 엄마라는 프레임으로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려는 엄마의 간절함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다. 엄마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입시제도는 당황스럽고 엄마가 입시제도를 모르면 아이와의 소통 역시 불가능하다. 중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고등학교가 결정되고 특목고, 자사고 등 상위권 고등학교의 서열화에 아이와 엄마 모두 인생 첫 좌절을 맛보게 된다. 물론 인생 첫 입시에서 실패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오히려 특목·자사고의 최대 약점인 내신의 불리함을 커버하면서 내실 있게 준비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 엄마, 부모는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전략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 입시제도를 원망하고 아이에게만 맡기기에는 입시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중학생쯤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안 그래도 입을 꾹 닫거나 부모의 모든 말을 잔소리로 듣게 되는데 입시를 모르는 엄마,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더욱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근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진로 탐색을 마치고 자신의 진로를 정해야 고등학교 입학 후 과목 선택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방향을 잡을 텐데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직 어린아이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엄마나 아빠가 극성맞게 따라다니면서 챙기고 간섭하라가 절대 아니다. ‘혼자서는 못한다’가 아니라 ‘부모가 도와주면 더 잘하게 된다’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길러주며 ‘우리 딸, 아들 엄마는 널 믿어’라며 믿어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적극적으로 부모가 도와주길 바란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 자녀와 가장 가까운 부모가 아이의 조력자가 돼 진로 고민, 선택과목, 동아리 선택, 공부에 대한 고민, 학원은 어디로 갈지, 온라인 수업이 좋은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아지고 깊어지는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부모는 부지런히 입시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 공부는 단순히 학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자료를 받아오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무엇이 내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인지 공부하고 그것을 아이에게 맞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힘든 아이의 포근한 안식처가 돼 주면 그야말로 최고의 부모다. 넘쳐나는 입시정보를 합리적이고 영리하게 골라 내 아이에게 맞게 재창조하고 자녀와 소통하면서 입시를 도와주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2023년의 시작을 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쯤 단체 메일로 글 하나가 도착했다. 가까운 미래에 선생님을 준비하는 한 교원대학교(교대) 학보사(대학신문)에서 온 메일이었다. 인권활동을 하면서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는 일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학보사는 조금 다르다. 지성의 탑을 쌓는다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점점 더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 가면서 학보사의 역할 또한 퇴색돼 버렸다. 그러니 학보사에서 요청된 메일 내용을 확인도 하기 전에 제목만 보고도 반가웠다. 온다에 요청한 것은 지난 2월7일, 인천의 한 초등생이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학대 부모는 아이를 때린 것이 “훈육 목적이었고 학대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의 원인 중 하나로 체벌과 학대를 분리해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알아보고 이것이 정말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인지 짚어본다. 또 아동학대 예방과 대책 마련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5일은 101번째 어린이날이었다. 1923년 5월1일 어린이날 선언 중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어다 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100년이 지난 2023년 여전히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라는 청소년 인권단체의 캠페인 문구가 사회적 메시지로 다가오고 있다. 체벌이 제도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제도의 변화만큼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의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는 ‘사랑의 매’를 치면 체벌도구를 아무렇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내 아이니까 내 맘대로 하면 어때?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하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아동학대 또한 이러한 인식들이 한 겹 한 겹 겹치고 쌓여 끔찍한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에서 끔찍한 일이 많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교사나 부모를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한 교육 사상가의 말이 떠오른다.
최근까지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용어에 취해 있었다. 마약 청정국이라는 개념은 ‘마약류 범죄계수 20’, 즉 인구 10만명당 단속된 마약류 사범이 20명 이하로, 우리나라 5천만 인구 기준으로 마약류 사범이 1만명 이하인 상대적으로 마약에서 안전한 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한 ‘바람’ 같은 개념이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마약류 사범의 수는 매년 1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최근 3년간은 2020년 1만8천50명, 2021년 1만6천153명, 2022년 1만8천395명으로 이제 마약류 범죄계수 36을 넘어서고 있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며 마약류 범죄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 4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진행한 2차 하수역학 기반 불법 마약류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서도 조사 대상 전국 대규모 하수처리장 27곳 모두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 검출되기도 했다. 정부는 마약류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류 관련 범죄에 대해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강조했다. 하지만 마약류 범죄자의 절반 이상은 마약류 단순 사용자, 즉 치료를 받아야 할 중독 환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약류 중독자는 법을 위반한 범죄자이기에 정의 실현의 관점에서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적 개입 없이 지금처럼 사법적 처벌과 지역사회로부터의 격리만 강조한다면 이들은 치료받지 않았기에 중독의 병이 재발하고 결국 다시 마약류 사범으로 단속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마약류 중독의 회전문이라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마약류 범죄자에 대한 단속과 체포가 중독자 치료의 시작이 돼야 한다. 마약류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검찰-법원-교정기관-보호관찰 시스템의 연속선상에서 사법과 보건복지 서비스가 연계돼야 한다. 사법적 처우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중독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마약류 중독을 질병의 관점에서 개입하는 중독재활 전문가가 단계별로 개입해야 한다. 더 나아가 마약류 사범이 사법적 죗값을 받은 후에도 만성질환의 지역사회 관리와 유사한 형태로 마약류 중독 회복의 안전망을 구축해 중독재활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의료 및 사회적 재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변리사다. 공대를 나왔고 시험을 거쳐 변리사가 됐다. 현장의 발명가들을 만나고 산업현장의 최전방을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그들이 만든 모든 게 혁신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챗GPT 같은 인공지능, 반도체, 자율주행차 기술 같은 혁신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공을 꿈꾸는 발명가들과 함께하는 나의 삶은 매우 신나며 그들이 기업을 만들고, 투자를 받고,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변리사는 희열을 느낀다. 특허를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진보성’이며 이는 특허제도를 보유하고 있는 200여개국의 공통 심사 요소다. 변리사는 기업과 자본, 그리고 자유로운 창의와 함께하기 때문에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로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는 드라마틱한 부의 분배 과정에 있으며 언제나 기술의 발전과 함께하기 때문에 ‘진보적’이기도 하다. 변리사들의 수준이 국가의 경제수준의 지표다. 하지만 40대에 진입한 내 가슴속에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음을 느꼈고 철학, 언론, 정치, 마케팅, 종교, 영업, 사회운동 등 ‘공돌이’인 내가 알지 못하던 영역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배우면서 ‘내가 아는 기술, 경제, 특허의 세계는 세상의 6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편 정치에 전념하는 친구들을 관찰해 보니 그들은 언제나 ‘진보’에 대한 열띤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카카오 등 플랫폼은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부를 독식하고, 삼성전자는 근로자들을 오염에 노출시킨다고 말한다. 네이버 때문에 언론이 망가졌다고 하며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들이 부의 분배에는 뒷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공대생 출신의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이제 우리는 건국세대(시스템), 산업화세대(보수적), 민주화세대(진보적)를 거쳐 새로운 세대임을 자각해야 한다. 선진세대여야 한다. 나는 그간 우리 선배들이 이룩한 ‘사회적 진보’를 존경하지만 기존의 ‘진보’는 진정한 진보로 가는 여정의 절반쯤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를 자칭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이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분들은 기사를 보고 챗GPT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지만 실제로 챗GPT를 써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치 ‘증기기관’이 모든 일자리를 말살할 것이라는 19세기 말의 ‘러다이트 운동’을 21세기에 보는 느낌이다.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진보의 균형과 선진을 위해 ‘기술적 진보’를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말이다. 기술에 의해 사회가 바뀌고 있다. 이는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보자. ‘사회적 진보’로 내디딘 발자국 다음에 ‘기술적 진보’의 다음 발을 내디뎌 보자. 미래를 향해 걷자.
더 많은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으로 집중한다.성장세가 빠른 기업들이 수도권에서 성장함에 따라 수도권 집중이 심화된다. 기술혁명이 주도하는 반도체, 정보기술(IT), 바이오, 배터리산업의 성장으로 이러한 경향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수도권에서도 격차가 커지는 양상이다.경기 북부 접경지역은 인구가 감소하거나 정체하고 경기도 남북 간의 격차는 더 커지는 추세다. 신성장 산업들이 용인, 화성, 평택 등 경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되고 교통기반시설도 경기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어진다. 지방에서는 서울역이나 청량리역보다 수서역으로의 철도 연결을 희망하고 있어 고속교통, 광역교통 접근성에서도 차이가 커진다. 대북관계, 대중관계가 소원해지니 북부지역은 조금 더 멀어지는 듯하다. 수도권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광대한 경기 동부 자연보전권역에는 팔당수계 보전을 위해 택지개발, 산업단지의 규모를 제한하고 대학의 신·증설과 이전을 규제한다. 상수원 수질보전을 위해 규모 이하의 개발사업만을 허용한 결과 환경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규모 산업단지, 광역교통기능과 자족기능을 갖지 못한 소규모 주택단지 위주로 공급된다. 수질 보전을 목표로 하는 입지규제가 환경 보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충남의 천안·아산·당진, 충북의 진천·음성·증평, 강원도의 원주 등 수도권에 접한 지역은 인구도 증가하고 기업 입지도 활발하다. 이들 지역의 산업경쟁력은 수도권 북부와 동부지역을 뛰어넘는다. 최근 들어 광주, 이천 등지에서는 소규모 난개발로 인한 개별 입지 공장, 소규모 주택단지 개발로 인한 상시적 교통체증, 수계 관리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점점 더 커져 가는 남북 간 격차로 인해 경기 북부를 특별자치도로 독립시키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50년 전에 만들어진 수도권정비법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기술혁명의 진전이 가져오는 신성장산업의 등장과 모빌리티의 비약적 발달로 전과 다른 균형발전대책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메가시티 시대를 맞이해 수도권의 지리적 경계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모빌리티 허브를 중심으로 혁신성장 거점을 조성하는 ‘거점연계형 국토관리’의 시대다. 지리적 균형을 추구해 개발사업과 시설을 여기저기 분산 배치하던 것에서 고속광역철도의 환승역세권을 중심으로 혁신 기업을 집중시키고 이의 편익을 대중교통망 등으로 주변에 파급, 확산하게 하는 방식이다. 경기 북부와 자연보전권역 내의 GTX, 경강선 환승역세권을 중심으로 혁신지구를 조성하는 ‘거점연계형 정비발전지구’를 조성해 수도권 내 쇠퇴 지역의 균형발전을 촉진해가는 새로운 ‘수도권 내 균형발전’ 정책이 요구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처럼 처음 발사 때의 위기감도 계속되면 무덤덤해지듯이 보통 같은 일을 거듭해 겪게 되면 그 일이 아무리 엄중한 위험을 수반해도 어쩔 수 없이 위기감은 무뎌지는 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온갖 것이 국민의 그러한 내성을 기르는 데 공헌(?)하는 듯이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실이어야 할 보통 ‘여의도’로 통칭되는 의회가 종종 국민적 내성 강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여의도는 원래의 목적이었던 화합과 타협의 산실에서 멀어져 오히려 갈등과 대립의 진원지로 탈바꿈한 느낌이다. 모름지기 정당정치란 각 당이 당리당략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국리국략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 당에 각각 고유의 당리당략이 있어야 하는 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러한 측면은 널리 권장될 필요가 있고, 수권을 목표로 한 각 당의 당리당략 경쟁이야말로 모든 국민의 바라는 바일 터다. 국민은 각 당의 당리당략 중 어느 것이 국리국략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당은 국리국략은 물론 변변한 당리당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정당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의 작금의 추세는 각 당의 치열한 ‘잘하기 경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상대 정당의 실책에 따른 결과라는 특성이 강하다. 나의 득점이 아닌 남의 실점으로 내가 돋보이는 이상 현상이 꽤 오래전부터 일상화되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반복되는 볼썽사나운 정당의 실태(失態)는 남 탓하기, 발뺌하기, 상대와 나의 원초적 차별 언행(내로남불) 등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질릴 정도로 내 과실의 원인은 남 탓으로 돌리고 내 책임은 발뺌하며 남의 작은 허물은 크게 보이는 눈도 내 큰 허물은 보이지 않는 듯한 내로남불의 언행이 횡행하는 사례가 축적된 결과, 국민은 웬만한 남 탓이나 발뺌에 너무 익숙해 있다. 남 탓 정치와 발뺌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남 탓 정치와 발뺌 정치에 국리국략을 다투는 정당 간의 정당한 당리당략 경쟁이 설 자리는 없다. 남 탓하고 발뺌하는 것이 여의도의 전매특허는 아니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남 탓이나 발뺌도 한두 번이지 일상적으로 무한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의도에서는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엄두도 내지 못할 남 탓과 발뺌에 내로남불의 언행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아마 세상 상식과 여의도 상식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의 상식이 여의도에서는 비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여의도의 상식은 세상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의도가 민의의 전당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의도 상식을 세상 상식에 맞추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국가가 직접 또는 국고를 보조해 시행하는 사업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다양한 지침과 매뉴얼을 작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침이나 매뉴얼은 사전적 의미로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지도적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해주는 준칙’을 말한다. 일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업의 실패를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말 그대로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과 매뉴얼이 조금이라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강우 시 인근 하천으로 유입되는 비점오염물질의 저감과 관련된 지침이나 매뉴얼을 예로 든다면 대표적으로 ‘비점오염저감시설 성능검사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과 ‘비점오염저감시설의 설치 및 관리·운영 매뉴얼’이 있다. 규격화된 형태로 제조되는 비점오염저감시설을 개발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이 규정과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형식 및 종류 범위에 포함된 제품을 정해진 규격의 시제품으로 만들어 부유물질(SS) 제거효율 80% 이상을 만족하는지에 대한 제품의 저감효율과 기술적 타당성 및 유지관리 적절성 등을 평가하는 환경부 성능검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조잡하고 성능이 낮은 제품들이 국민 세금으로 시행하는 국책사업에 무분별하게 적용 및 난립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일정한 자격기준을 두는 셈이다. 반드시 필요한 절차와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규정과 매뉴얼에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제품의 성능 외에도 형식과 그에 따른 규격 등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과형의 경우 일정한 규격의 전처리조를 반드시 구비하고 일정한 두께의 여과재를 충진해야 하며 반드시 역세척을 실시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중 단 한 가지만 부족해도 성능검사 통과가 매우 어려워 사업은 아예 불가능하다. 역세척하지 않고도 목표 효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다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0개의 기술을 접목해야 하는 것을 단 하나의 기술로 성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혁신 생태계는 요원한 시스템이다. 자칫 지침과 매뉴얼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 돌이킬 수 없는 규제가 될 수도 있다. 지침과 매뉴얼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특히 저감효율 같은 본래의 핵심적인 제정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지에 방점을 둬야 하고 끊임없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개발 및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칫 이러한 지침과 매뉴얼, 심지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틀에 박힌 기존의 정형화된 기술의 답습과 반복에 가둬 신기술의 개발을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난 3일 영화진흥위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한국 영화 10대 뉴스 설문조사 결과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4관왕을 수상한 일을 최고의 뉴스로 선정했다.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냄새 사회학을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반지하에서 피자 상자를 접는 일 따위로 먹고살기 위해 분투하다가 우연히 상류층 집에 들어가게 된다. 기택의 아들과 딸이 박 사장 아이들의 과외교사로, 기택 부부가 그 집의 가정부와 기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반지하에서 살아온 그들은 몸에 밴 퀴퀴한 냄새로 늘 불안해한다. 박 사장의 가족이 기택 가족의 냄새를 역겨워한다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쫓겨난 가사도우미가 갑자기 찾아와 기택 가족과 일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관객들은 살인 현장의 피 냄새를 맡으며 기택의 가족을 대표하는 하층민과 박 사장의 가족을 대표하는 상류층 간의 신분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한다. 안락하고 풍요로운 저택에서 살아가는 상류층과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하층민 간에는 본질적인 계급 차이가 있는데 ‘기생충’은 그것을 냄새로 예리하게 포착했다. 하층민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상류층과의 동화를 추구하지만 밑바닥 인생에서 밴 냄새를 쉽게 바꿀 수 없다. 냄새는 시각적인 이미지보다 선명하지는 않아도 은근하고 은밀하고 지독해 훨씬 정체성의 본질을 드러낸다. 어느덧 한국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들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점점 심화하고 있다. 재정 형편이 여유로운 사람일수록 큰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상류층의 냄새와 하층민의 냄새를 연결하는 사다리가 부족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기에 ‘기생충’ 같은 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냄새 사회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시장 가치에 의해 조종받는 실정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가난한 언어를 쓰고 가난한 음식을 먹고 가난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것이다.
봄꽃이 만발한 이맘때면 생각나는 직원이 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미국에서 석사까지 한 재원이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그 직원이 결혼한 때가 이때쯤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퇴직한 그 여직원은 출산과 육아로 다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전체 기업 중 여성 기업 수가 40.5%를 차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여성 법인기업 기준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 종업원 1인당 평균 매출액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정성과 활동성은 위축됐다. 여성 법인기업이 불리한 점으로 가장 높게 뽑은 ‘일·가정 양립 부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수년 전에 이미 예견됐다. 초유의 경제, 인구 위기 시대를 해결할 열쇠로 여성의 역할이 재조명된 것도 오래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여성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함을 논하기 전에 여성에 대한 시각, 여성에 대한 대우 등 외부적인 변화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고 출산하고 싶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지금 위기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출산 친화적 사회 분위기 조성의 중요성은 세종시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세종시의 2018년 출산율은 1.57명으로 서울 출산율(0.76명)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로 전국 출산율 1위를 차지했다. 공무원이 밀집한 도시인 세종시는 남녀 모두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휴직 후 복직도 보장돼 있다. 또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문제로 유치원 개학 연기 사태가 벌어져도 세종시는 국공립 유치원 비율이 95%에 가까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세종시 사례가 보여주듯 공무원 수준의 출산 친화적 근무 환경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면 저출산 문제의 큰 부분이 해결되리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성장은 멈췄다고 말한 직원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가까운 곳에 도와줄 가족이 없으면 여성의 사회 재진출은 힘들다는 것을 나 자신과 그녀를 통해 여실히 보고 있다. 여성들이 꽃을 피울 때 아이들이 춤추고 국가의 미래도 번성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봄의 향연에 춤추며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본다. 엄마이자, 아내이자, 경제동력으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 여성들이 꽃피는 대한민국의 봄을 기대하면서.
소방학교 훈련탑 기둥에 ‘First in, last out’이라고 쓰여 있다. 직역하면 ‘먼저 들어가서 나중에 나온다’라는 뜻이다. 화재나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소방공무원의 숭고한 정신을 의미한다. 지난 3월6일 김제소방서 소방공무원이 화재 진압 중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할아버지가 집 안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불길에 휩싸인 집으로 들어갔다가 끝내 가족과 동료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임용된 지 10개월 만에 삶을 마감한 소방공무원의 가족과 동료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2022년 소방청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10년간 순직 소방공무원은 모두 44명으로 1년마다 4명 이상의 소방공무원이 목숨을 잃고 있다. 같은 기간 현장 활동 중 부상을 입은 소방공무원도 모두 6천155명이나 된다. 각종 사고 현장에서 위급 상황에 대처하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이다. 소방공무원은 화재의 예방·경계·진압,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구급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대민 활동 등 소방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졌고 현장활동 수행 중 건물 붕괴, 추락, 낙하하는 물체와의 충돌, 열, 소음 등의 물리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유독가스, 연기 등 화학적 위험 등으로 매년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관련 대책을 내놓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져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소방공무원 현장 소방활동 안전관리에 관한 규정’ 등 다양한 제도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방공무원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장 인력을 충분히 보강하고, 노후 장비 교체와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고성능 보호장비 개발 및 보급 방안 마련, 실제 위험 상황에서 본인의 안전을 지키는 반복 숙달된 훈련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소방공무원들의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전 세계 소방관들의 복무 신조처럼 쓰이고 있는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의 일부분을 인용해본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 사건 사고 속으로 출동하는 소방공무원들을 지키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며 그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지난해 보육원을 나와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자립 준비 청년 A군(18)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메모 글이다. 자립 준비 청년(보호 종료 아동)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 서기에 나서는 청년으로 1년에 약 2천400명이 자립을 시작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자립 준비 청년 중 절반가량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심리적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문가, 자립 준비 청년들의 의견을 담아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확대 지원하고 있다. 22세까지 5년간 받을 수 있는 월 35만원의 자립수당을 월 40만원으로 상향하고 자립정착지원금도 800만원을 1천만원으로 확대토록 지자체에 권고했다. 의료급여 2종 혜택, 디딤씨앗통장은 24세가 되면 자동으로 본인 계좌 입금, 일자리, 주거지원, 온라인 플랫폼, 전용 콜센터, 법률, 금융교육, 민간기업의 지원 연결 등 개선대책이 시행되고 있다. 홀로 서기에는 심리적 홀로 서기와 경제적 홀로 서기가 함께 돼야 한다. 새로 상향 지원되는 자립지원정착금 1천만~1천500만원(지자체별 다른 지원)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월 40만원의 지원금으로 교통비, 식비, 책값, 기숙사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시·도 자립 지원 전담 기관의 전담 인력은 한 사람당 자립 준비 청년 70명을 담당해야 한다. 다른 비슷한 프로그램들처럼 한 사람이 20명 이내로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생이 되는 자립 준비 청년에게는 대학생 선배 멘토를, 직장생활을 하는 자립 준비 청년에게는 직장 선배가 멘토가 돼 주는 시스템, 무엇보다 자립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 주는 제도가 필요하고 기존 제도에서도 사각지대가 없는지 확인하고 보완해야 한다. 자립 준비 청년 출신 김성민 대표가 이끄는 브라더스키퍼는 자립 준비 청년을 후원하고 정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김 대표는 자립 준비 청년을 위해 한 가정과 한 아이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립 준비 청년은 초·중·고교 시절 사회적 편견에 상처 받아 사회 적응이 더 어렵고 사기나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자기 삶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그럴 때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할 수 있는 어른이 생기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굉장한 용기와 희망을 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오산시가 서울대병원 유치에 실패하면서 100억~150억원의 혈세를 낭비할 것으로 언론에서 예견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왜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대학병원’ 유치를 공약으로 내거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1977년 건강보험제도 도입 이후에도 지방의료체계와 관련한 법률체계가 45년 전의 낡은 패러다임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체계’는 제도를 통해 의료인력 및 의료장비 등 의료자원을 동원해 최종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체계로 정의된다. 따라서 지방의료체계는 법률체계에 따라 짜여지는데 현행 법률체계에 따른 지방의료체계는 1977년 건강보험제도 도입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의료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은 건강보험제도 도입 전과 후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전에는 의료비 지출이 국민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나가기 때문에 국가나 지자체가 의료자원을 특별히 통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후에는 의료비 지출이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공적 재정에서 나가기 때문에 의료자원의 낭비가 없도록 절약해야 한다. 또 의료자원 이용은 의료 자원 분포 격차 등 지역 간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독도에 사는 사람에게도 서울 사람에게 제공되는 것과 비슷한 질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같은 수준의 건강보험료를 내면 비슷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건강보험제도의 공정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에도 지방의료체계를 관장하는 자치단체의 역할은 전과 마찬가지로 주로 병원급의 민간의료기관 설립을 허가하거나 공공의료기관을 설립·운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다 보니 지역 간에 의료자원 분포가 불평등한 결과로 이어져 선거철만 되면 ‘대학병원’ 유치가 단골 메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단골 메뉴를 끊어내는 방법은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지방의료체계를 포함한 전국적인 의료체계를 새롭게 짜는 법률체계 정비 작업이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 새 판짜기는 일부 법령이나 자치법규를 개정하는 단순 혁신보다는 기존의 법률체계를 완전히 해체해 보건소의 진료기능을 전면 폐지하는 등 제로에서 시작해 새롭게 판을 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지방의료체계에서 자치단체가 공공병원이나 설립하고 운영하는 단순 역할에서 벗어나 지역의료자원이 골고루 분포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밥은 특별하다.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임금은 백성이 하늘이고, 백성은 밥이 하늘”이란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다. 인사도 밥으로 한다. “밥 먹었니?” 인사하고, “밥은 먹고 다니느냐?” 안부를 묻는다. 힘든 일은 밥심으로 견딘다.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밥조차 먹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경제위기는 항상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청년층을 먼저 노리기 때문이다. ‘생활비가 부족해 끼니를 챙기지 못한 적이 있다’, ‘취업난 청년들 아낄 건 식비뿐... 값싼 식당 찾고, 하루 두끼만’.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굶는 청년들의 실상은 안쓰럽다 못해 처연하다. 이러다 보니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시작됐다. 대학생들이 천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아침밥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대학교 측에 비용을 보조한다. 아침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늘어나다 보니 윤석열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예산을 늘리고 식수 인원도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침밥을 굶는 청년이 비단 대학생뿐이겠는가? 취업준비생도, 청년 노동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도 곤궁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아침밥을 건너뛰고 고픈 배를 부여 안고 힘든 노동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밥에서 만큼은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일하는 청년들과 고3 학생들까지 확대시키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실태 조사와 벤처 산업단지 및 공단 등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국민의힘, 경기도, 경기도 교육청의 적극적인 동참과 논의를 기대한다.
4월7일 오전 10시 ‘동두천 구 성병관리소 건물 보존 촉구 여성·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있었다. 동두천 구 성병관리소 건물은 정부가 1970년대부터 미군 기지촌 여성을 강제로 격리해 수용했던 장소다. 여성들은 매주 두 번씩 있던 성병 검진에서 낙검(성병보균자 진단)되거나 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미군을 상대하다가 적발되면 ‘낙검자 수용소’로 불리는 이곳에 끌려왔다. 최근 동두천시는 이 건물을 매입해 이곳 일대와 소요산 주변을 개발하는 ‘소요산 확대개발사업 발전방안’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경기도 기지촌여성 생활실태 및 지원정책연구(2020년)’를 진행한 바 있다. 그 연구를 통해 국가가 성매매 여성을 단속·처벌·수용하는 과정에서 신체의 자유를 억압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 성병검진 의무를 부과하는 등 ‘묵인하고 관리하는’ 형태로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그 여성인권 침해의 현장 중 하나가 바로 ‘동두천 구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다. 2022년 9월 대법원도 관리소를 운영한 국가의 책임을 최종 인정했다. 이 결정에도 불구하고 기지촌 여성을 대하는 국민의 편견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리고 여성인권 침해의 사실들을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동두천시가 수년간 방치된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애려고 하는 것도 그런 역사 지우기일 것이다. 동두천구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의 어린 누이가 ‘외화벌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인신매매, 성병, 성폭력, 임신과 유산, 아이와의 강제 결별, 약물 중독, 주변 여성의 자살과 타살, 국가와 사회의 배신을 경험했던 곳이다. 그들의 경험은 지워야 할 역사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역사이며 그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은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은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필 때 기지촌 여성의 역사를 빼놓는 것은 반쪽짜리 역사다. 그런 점에서 동두천구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를 ‘경기도 여성인권평화박물관’으로 조성해 활용하는 것은 온전한 역사에 다가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긴 세월 동안 기지촌 여성의 역사를 ‘망각’하려고 노력했고 그 역사의 진실에 침묵했다. 그렇게 동두천 구 성병관리소의 진실은 사라질 뻔했다. 이제라도 동두천구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를 경기도 여성인권평화박물관으로 조성해 기지촌 여성과 기지촌의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인권과 평화의 장을 만들어보자.
2022년 국민생활체육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생활체육 참여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에서도 일상에서 스포츠 활동 활성화를 위해 ‘운동하는 국민 인센티브제’ 같은 지원책을 준비하고 있다. 생활체육 활성화는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긍정적인 소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포츠와 관련된 정책을 보고, 만드는 데 참여하는 입장에서 지도자와 프로그램에 고민이 치중된 점은 안타깝다. 1960년대 독일은 스포츠진흥정책 ‘골든플랜’을 내놓으며 ‘체육시설 없이 스포츠는 없다’라는 말을 했다. 시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포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최근 테니스를 처음 시작하는 ‘테린이’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테니스를 칠 곳이 많지 않아 불만이 많다. 시설이 부족함에도 특정 단체가 시설을 부당하게 점유하거나 관리 부재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의 공공 체육시설이 특정 단체, 동호인들의 장기간, 독점해 사용하면서 주민들의 이용이 제한되고 시설관리도 소홀해지고 있다며 실태조사와 개선안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의 공공체육시설은 공공재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못 하고 있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의해 공공체육시설에서는 수익 행위가 금지됨에도 불법적인 레슨이 자행되고, 특정 단체들의 전유물처럼 사용되면서 일반 주민들은 이용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시민 세금으로 지어졌음에도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예약 시스템에 있다. 예약 현황이 대부분 비공개다 보니 특혜를 준다는 의혹이 수없이 제기된다. 일반 주민들은 이용이 제한되니 화가 나고 민원이 빗발친다. 공공체육시설은 국민 모두의 건전한 체육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건설, 운영, 관리되는 공공재다. 체육시설 예약과 사용에 대한 투명성이 높아져야 시민의 생활체육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다. 공공체육시설의 공공성 회복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체육계의 입장에서는 시설이 있어야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고 지도자에 대한 수요가 발생해 고용도 창출된다. 몇몇만 시설에 대한 고민을 외쳐 봐야 한계가 있다. 어떤 영역이든 비슷하겠지만 체육 분야는 특히 배타성이 강하다. 내 집 근처에서 테니스를 즐기고 싶은데 테니스장이 왜 부족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모두 같이 고민해야 한다.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공론화해 집단지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기대와 달리 코로나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더더욱 우리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그 결과 올해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2월의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46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연속 13개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지만 구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전체 국민총생산(GNP)에서 수출의 비중이 45%에 이르는 자유무역국가다. 결국 경제의 어려움은 수출로 풀어야 한다. 최근 창업은 일자리와 경제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 어젠다가 되고 있다. 경제가 어렵지만 개인의 기업가정신과 정부의 지원 정책이 조화롭게 만나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마법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창업 활성화를 위해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창업지원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면서 고도화돼 있어 기술, 문화예술 등의 기능적 영역과 청년, 시니어, 여성, 지역 등으로 세분화해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멘토링과 자금 지원을 중심으로 창업 그 자체에 몰입하다 보니 초기 시장 선점과 진입은 창업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내수 지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내수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경쟁 강도가 치열해 창업기업은 시장 진입도 확장도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창업지원의 정책적 목표인 일자리 창출도 성장도 못하고 사라지거나 좀비 기업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반면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틈새시장을 겨냥해 신속 출시하는 글로벌 창업기업들은 빠른 수출 증가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뛰어나다. 산업연구원 자료(2017년)에 의하면 글로벌 창업기업들은 제품 개발 초기부터 내수보다는 글로벌을 지향한 그 결과 수출과 고용 측면에서 비글로벌 기업 대비 50% 정도 더 높은 성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고려해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은 대기업, 기술기업, 전문기업 영역 등의 세그먼트 중심에서 탈피해 전방위적으로 글로벌이 상수가 되는 시장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히든챔피언의 DNA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정책 지원을 기대한다.
바람은 홀로 불지 않는다. 바람은 타자와의 관계가 지워질 때 그 존재를 드러낸다. 흔들리는 깃발에서, 춤추는 나뭇가지에서 우리는 바람을 본다. 몸을 휘감는 라일락 향기도 바람 없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색도, 향도, 형체도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을 통해 움직이는 힘을 가진 것이 바람이다. 장자 내편(內篇) ‘제물론’에 나오는 ‘바람 이야기’도 바람이 ‘소통과 마주침의 미학’이라고 말해준다. 결국 바람이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선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바람이 벽과 마주할 땐 그저 정체된 공기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의 기운이 잦아들면서 마치 긴 겨울잠을 자고 기지개를 켜 듯 예술문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변화의 바람이 문화도시와 연계해 더 큰 새로운 바람으로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문화예술로써 지역주민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지역의 활력뿐 아니라 지역의 공동체라는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문제는 그 바람을 성공적인 바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것을 진행하는 조직이 바람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 없으면 바람 소리도, 냄새도 없는 것처럼 바람이 있어도 그것을 담아낼 마주침이 없다면 소용없다. 마주침을 통해 그 바람이 다시 시민들의 삶 속에 들어와 지역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활용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해 즐길 때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자리 잡는다. 바람은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선과 방향을 만든다. 성공적인 문화도시를 위해서는 이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야 한다. 예술과 문화는 바람을 타고 움직여야 한다. 정지돼 있는 공기라면 죽은 도시와 같다. 문화예술의 미래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은 매개체를 통해 이 바람을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람이 정체되지 않도록 유기적 연계를 통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스치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문화도시의 바람도 주민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리라 믿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됐던 공연시장이 공연장 거리 두기를 해제한 2022년에는 회복세를 넘어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매출이 회복돼 신기록을 기록했다. 해외여행 수요를 주도하던 20, 30대 여성들의 문화 욕구는 국내 공연 중에서도 뮤지컬에 집중됐고 거리 두기로 가장 힘든 3년을 보냈던 뮤지컬 극장들은 올해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클래식과 어린이 공연시장도 2022년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다양한 공연이 코로나 이전을 넘어 최대 실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불안한 금융시장은 최근 공연시장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급증한 이자비용으로 생활비 부담이 늘어난 30, 40대 가장들은 문화비를 가장 먼저 줄이기 시작한 듯하다. 특히 어린이 공연이 민감하게 반응해 객석점유율이 떨어지더니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외여행으로 눈을 돌린 20, 30대가 주고객인 뮤지컬 공연과 함께 팬덤을 이끌던 K-크로스오버 공연들도 주춤하고 있다. 높은 이자로 여유로워진 장년층이 주로 찾는 고가의 클래식과 트로트 가수 공연들만 겨우 공연장에 관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국내의 많은 공공 극장들은 수익보다는 공공성을 앞세운 공연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취소되거나 축소됐던 야외 행사나 축제 또한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다채롭게 준비돼 가고 있다. 대기업 자본이 투자될 정도로 시장성을 갖게 된 공연시장이지만 최근처럼 경제위기에는 가장 취약한 곳이 공연시장이다. 이러한 시기의 공공 극장들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에 맞춰 기존에 낮게 책정된 가격이라 하더라도 문턱을 더 낮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의 마음이 위로 받고 재충전되도록 공익적 역할을 적극 해야 할 때다. 문화예술이 융성한 문화강국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로 받고 치유될 수 있는 예술작품이 멀지 않고 낮은 곳에 있어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