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세상의 모든 소리, 문자로 담아내다

지난 10월9일로 한글날이 576돌을 맞이했다. 온종일 가을비가 내리는 와중에 국립한글박물관 잔디마당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 물론 이날의 행사가 너무 조촐했다는 언론의 지적도 있긴 했지만, 세계를 휩쓰는 K-문화 열풍과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한글의 기상 상황은 ‘매우 맑음’이다. 한글은 한국인의 자부심이다. 자국의 글자를 만든 사람과 만든 과정이 알려진 세계 유일의 나라며, 자국의 문자를 제정한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기도 하다. 역사상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행사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28년이다.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와 신민사가 공동으로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첫 기념행사를 했다. 이어 한글학회와 우리 국민의 염원을 담아 광복 이후 한글날이 제정됐고, 2005년 국경일 지정을 거쳐 2013년에는 공휴일로도 지정됐다. 그런데 요즘은 한글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언문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말 사전에 언문(諺文)의 뜻을 찾아보면, ‘예전에 한글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과연 우리 선조들이 언문을 속되게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한자에 대칭해 우리 글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실학자 유희(柳僖·1773∼1837)다. 유희는 ‘언문지(諺文志)’라는 이름의 우리 글 연구서를 써 언문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1824년 언문지에서 유희는 한글의 뛰어난 점은 글자의 상호 연동성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자는 모양이 복잡하고 글자마다 연관성이 없어 모두 외워야 하지만 언문은 중성으로 초성을 이어받고 중성으로 중성을 이어받아 각각 차례가 있고 가로세로가 가지런해 쉽게 글자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희는 언문으로 뜻을 전하면 한자와 달리 틀릴 수가 없으니 부녀자나 할 학문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유희의 연구에 따르면 언문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음은 무려 1만250개에 달한다. 유희는 이 1만250개는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성음(成音)의 총수라고 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자라는 의미다. 유희는 표음문자로서 언문을 국제적인 발음기호로 인식했다. 이미 한글을 세계화될 수 있는 문자로 본 것이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천자춘추] 공교육 걱정 없는 세상...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유튜브에 ‘자퇴 브이로그’를 검색해 보셨나요? 최근 한 일간지가 소개한 10대들의 ‘자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부적응, 학습부진, 왕따 등 부정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상당수 아이들은 자퇴를 스스로 선택한다. 더러 부모들은 자녀의 자퇴를 응원한다. 친구들도 축하 파티를 하면서 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1년 전국 초·중·고교생 중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4만2천755명으로 전년(3만2천27명)보다 33.5% 증가했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생이 전년 대비 32.5% 늘어난 1만5천389명을 기록했다. 중학생은 7천235명으로 전년 대비 21.1%(1천259명) 증가했다. 고등학생은 39.4%(5천692명) 늘어난 2만131명이나 된다. 자퇴 사유가 어찌됐건 학교는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 교육공간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들에겐 사회가 교육공간으로 대체됐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공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한다. 공교육 정상화에는 필연적으로 사교육 억제가 샴쌍둥이처럼 따라붙는다. 역설적이게도 사교육비 총액은 2021년 23조4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사교육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공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좀 지나간 이야기지만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돼 워싱턴에 입성했을 때 워싱턴 백악관 지역 공립학교의 한 학부모 대표는 ‘Public School For the Obama Girls, Please?"(공립학교에 두 딸을 보내주세요?)’라는 제목의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당연히 민주당 대통령인 오바마가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당위성과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한 방송에서 오바마는 ‘워싱턴 공립학교는 딸들에게 충분치 않다(DCPS not good enough for my daughters)’라고 답한다. 그리고 명문 사립학교에 두 딸을 보낸다. 자녀 문제와 자신의 가치관 사이 윤리적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그렇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 마치 미국 시민권이 있는 자녀를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선택임에 틀림없다. 천부권리인 인간 존엄성을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학자들은 교육 역시 인간 위주의 과정적 가치에 방점을 둔다. 교육은 자유와 평등을 통해 인간 존엄성을 실천해 가는 과정이며 시장은 자유와 평등을 유지하는 사회적 보호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학자들은 교육에 있어서 평등보다는 자율과 책무를 강조한다. 이러한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교조주의적 해석이 우리 교육을 꼬일 대로 꼬이게 만들었다. 교육적 가치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자유학년제, 고교학점제, 입학사정관제, 자사고·특목고 문제가 공교육에 등장했다. 교육 정책의 방향과 각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는 여러 군데서 상충된다. 자사고 신설은 김대중 정부에서, 입학사정관제와 특목고 확대는 노무현 정부에서, 자유학년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고교학점제와 주요 대학 수능 40% 룰은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 또는 확대됐다. 이 현상을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로 대비해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목소리를 높이든지 아니면 침묵이 정답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공교육 이해관계자에 인간이 아닌 또 다른 교육 주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철 맞는 메뚜기처럼, 비 온 후 자라나는 대나무 순처럼 말이다. 논쟁 대신 침묵하고 있는 합리주의자들의 참여를 위해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를 다시 한번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 떠나기 전까지 말이다.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과 교수·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국제협력실장

[천자춘추]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문답-5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삼성그룹 고(故) 이병철 회장의 다섯 번째 질문이다. 아마 인간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자녀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향해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일을 했을까’ 자책하고 고민한다. 세상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악인으로 만들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악인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무엇이 유익한 길인지 알려주기는 하지만 악한 결정과 선택을 막지는 않으신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미리 프로그램된 로봇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뿐만 아니라 양심도 주셨고 도덕과 윤리의식도 넣어 주셨다. 즉, 인간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사람이 내는 소리, 즉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 끌려 유혹당함으로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고 욕망이 자라면 죄를 낳고 죄가 이루어지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 1:14,15) 지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고 이병철 회장의 다섯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 많은 부모가 자녀를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처럼 신은 악인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인간 스스로의 선택인 것이다. 그렇다면 악한 길을 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느님은 악인들에 대한 완전한 해결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성서 시편 37:10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악한 자들이 더는 없으리니 그들이 있던 곳을 살펴보아도 없을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은 있어도 악한 자들이 없어질 것이라고 공약한 통치자는 아무도 없다. 완전한 평화와 안전이 깃든 아름다운 세상은 하느님의 공약이다. 조금만 더 시기를 기다리며 있어 보자. 최진열 대한노인회 중앙회 정책위원

[천자춘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건축물관리법 시행규칙’의 일부 개정안이 지난 8월4일자로 발효됐다. 이번 개정안을 놓고 6월 8일 여의도 국회회관에서 송석준 국회의원의 주선으로 대한건축사협회 17개 시·도 건축사회 회장들과 국토부 정책관, 국토부 관계자들과 2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을 했지만 서로 의견 편차가 커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후 국토부에서는 일선 시·도에 이에 대한 의견 조회가 있었고 경기도청에서는 31개 시·군의 의견을 받아 반대 의견을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시·도에서도 분명하게 반대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경기도건축사회 소속 건축사 1천여명의 반대 서명서를 제출했고 부산에서도 650여명의 반대 서명서를 국토부에 제출했음에도 편법으로 건축물 관리법이 아닌 시행규칙으로 개정됐다. 이번 사례를 통해 국토부의 권세가 실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국민의 안전,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건축사회의 의견은 간단명료하다. 해체감리 사건, 사고를 분석해 보면 건축주와 시공자의 지휘를 받고 있는 해체 감리자는 나약할 수밖에 없기에 해체 감리자를 모집 공고한 후 감리자 명부에 등록하고 허가권자가 지정해 먹이사슬을 끊자는 것이다. 더 투명하고 안전한 해체공사가 될 수 있도록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와 협의를 통해 고쳐 나가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한 해체 감리금액에 따른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감리자를 교체할 수 있다는 항목은 우리나라 현실이 발주자 아래에 있는 시공사의 저가 도급을 해소하지 못한 채 감리부분에 시공단가 대비 감리 금액을 책정한 부분이나 금액에 대한 권리를 가진 발주자의 저가 덤핑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가자는 제안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광주 해체 공사 사고 이후 해체공사 관계자, 건축사, 국토부, 언론인 등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해체 공사비가 책정된 이후 해체 계획서가 작성되고 이에 따른 저가 감리비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보면 발주자가 제시한 금액이 아니면 해체감리를 일방적으로 몇 번이고 바꿀 수 있는 졸속 법안을 만들어 공포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는 옛말을 기억하고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하루빨리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건축법 제25조 건축감리 규정에서는 이러한 부조리와 병폐를 방지하고자 건축 설계자는 당해 건축물에 대해 건축 감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물론 외국의 경우에는 건축설계자가 감리를 하고 해체공사까지 겸하는 사례들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건축물이 생성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시기상조가 아닌가 한다. 먼저 발주자와 시공자, 설계자와 감리자의 영역이 엄격히 분리되어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도록 정책과 제도를 선행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국토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고 힘없는 일선에서 일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 회장

[천자춘추] 초고령사회 고용전략∙정년제도 개선방안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2년 현재 약 901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인구는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65세 고령인구가 천만 명인 초고령사회(Super Aged Society)로 진입하게 된다. 고령사회(14%)에서 초고령사회(20%) 도달 소요 연수는 영국의 50년, 미국의 15년, 그리고 일본의 10년에 비해 우리나라는 7년에 불과해서 초고령사회를 대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이로 인하여 노인들의 빈곤 문제는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2020년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소득 분배지표는 상대적 빈곤율이 무려 40.4%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소득분배 정도가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으나, 그러나 아직도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은퇴 연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인의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적연금의 발전이 미 성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1988년에 시작되어서 연금수급자의 수가 적고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도 용돈 수준(약 57만 2천 원)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공적연금 수급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2021년에는 전체 고령자의 55.1%가 공적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성 노인의 공적연금 수급률은 40.6%로 남성 노인의 74.1%의 절반 수준으로 여성 노인의 노후 빈곤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 빈곤 문제와 미흡한 공적연금 제도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정책의 활성화와 정년퇴직 연령의 상향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첫째, 고령자의 고용률을 상향할 수 있도록 고령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여 고령 친화적 고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고령자의 고용률은 2015년 34.9%로 15세 이상 인구 전체 고용률(60.5%)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둘째, 고령 근로자의 취업 분야를 본인들의 직업기술과 능력을 고려하여 다양화하여야 한다. 실제로 고령 근로자는 단순 노무 종사자와 농림어업 숙련종사자의 비중이 매우 높으나, 그러나 관리자·전문가, 그리고 사무 종사자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셋째,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2021년 경제활동 중의 고령 근로자의 44.9%는 고용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3.7%가 증가하였다. 넷째, 노동시장에서 여성 고령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여성노인이 남성노인보다 근무환경, 노동조건 및 급여 부분 등에서 차등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 다섯째, 정년 연령제도를 현재의 60세에서 점차적으로 65세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년연령이 60세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정년 나이를 점진적으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처럼 연령에 의한 정년제도는 폐지하여 노년기에도 지속해서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령차별금지법을 보다 제도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하여 초고령사회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고용 활성화를 통하여 빈곤 문제를 개선하고 노년기의 노후 소득보장의 안정화를 추구할 수 있는 고령 친화적 환경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천자춘추] 균형성 원칙을 적용한 ESG 보고

투자의사결정에 비재무 성과를 반영하는 자본시장의 변화, 주요국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 및 비재무 정보공시 의무화, 소비자의 친환경 및 지속가능성 소비 증대,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ESG 경영 요구 증대 등으로 최근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기업 운영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ESG 평가 기준과 기관의 난립,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의 문제, 점수 따기식 ESG 컨설팅과 자문, ESG 워싱(ESG Washing) 등 여러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지만,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제고를 위해 환경, 사회, 거버넌스 이슈를 잘 관리해 비재무적인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고해진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 ESG 경영에 대한 관심과 주목은 ESG 평가와 ESG 성과 보고(Reporting)에 대한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200여개의 기업과 조직의 비재무보고서는 지속가능성보고서, CSR보고서, ESG보고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발간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비재무보고서의 발간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보고 목적에 충실한 수준 높은 보고서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비재무보고서를 살펴보면 자사의 성과를 홍보하는 자기 자랑 일색의 홍보 브로슈어와 같은 보고서가 대부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인 GRI 표준에 따르면 보고의 목적은 경제, 환경, 사람에 대한 중대한 영향(Significant impacts)과 영향을 관리하는 방법을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은 과연 이런 보고 목적에 충실한 비재무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조직은 조직의 활동을 통해 예외 없이 경제, 환경,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사회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작용(Contributions)하고 있다. 긍정적인 영향은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은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노력이 바로 비재무 성과를 창출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며, ESG 경영의 요체다. 따라서 조직이 사회에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GRI 표준도 보고의 균형성(Balance) 원칙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조직은 편견 없이 부정적 영향과 긍정적 영향을 공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정보를 생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균형성 원칙을 잘 적용한 수준 높은 ESG보고서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 신한대 글로벌통상경영학과 교수·신한대 ESG혁신단장

[천자춘추] 조선시대의 부동산과 투기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인간 행동은 비슷하다. 조선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부동산 문제가 존재했다. 속설에 조선 중종 이후 부동산 가격이 500년간 잡히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유는 있다. 조선 개국년인 1392년 조선의 인구는 554만9천명 정도였다. 42년 뒤 세종 22년(1440년)에도 672만4천명으로 크게 인구가 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 큰 전쟁이 없고 농업생산이 증가해 80여년 뒤인 중종 14년(1519년)에는 1천46만9천명까지 늘어났다. 인구가 급증하니 한양 집값이 폭등한다. 관리가 한양에 있다가 지방 발령이 나면 가족들은 남겨두고 본인만 발령지로 가서 조정에서 제공하는 관가 혹은 친척집에 기거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녹봉 상승률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집을 팔고 사대문을 벗어나면 다시 사대문 안에 집을 사기가 어려웠다. 임대료도 올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이 집세(가대세)를 감하는 정책을 썼던 기록이 꽤 많다. 영조 17년(1741년) 실록에는 ‘어의동 본궁 담장 밖에 사는 군병들이 집단으로 비변사에 집세를 감해줄 것을 요청하는 소지를 바쳤다’는 문구가 나온다. 한양으로 돌아온 관리 혹은 발령받은 관리들이 세를 들었는데 그 집세가 비싸 조정에 하소연했다는 기록이다. 현재의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의무기간과 유사하다. 조선 중기에는 정부의 신도시 건설과 매입 임대정책이 있었다. 정부가 땅을 사들여 집이 필요한 이에게 분양(임대)을 했다. 빈집을 적극적으로 활용, 큰 집은 3∼5가구 몫으로 분할해 임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나는 정부의 노력에도 주택가격과 투기는 잡히지 않았다. '주택가격이 폭등해왔다’는 말은 ‘조선시대 중종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500년간 실패해 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 있는 사대부들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하급관리와 중인의 집을 여러 채 사들여 무주택자들의 주거난을 부추겼다. 주택 구매를 막으려 양반은 양반끼리, 중인은 중인끼리만 주택 거래를 허용했다. 1가구 1주택 정책을 시행했다. 양반들은 다수의 구입한 집을 중인들에게 임대했다는 임대차계약서 위조까지 해서 규제의 칼날을 피했다. 정부가 세입자 현황을 전수조사하자, 양반들은 집의 노비를 중인의 신분으로 면천하여 계약서 위조까지 했다. 대규모 공급 촉진을 위해 산 아래 토지를 개간해서 분할 분양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도성 인근 집값의 양극화가 나타났다. 최고의 거주지인 인사동의 집값은 정9품 관료 녹봉의 50년 치였으나 새로 개발 지역 집값은 녹봉 2년 치밖에 안되었다. 집 위치로 출신을 가늠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남산골 선비’라는 명칭으로 비아냥거리는 사회 풍조까지 발생한다. 가장 부촌인 청진동과 공평동, 인사동은 한양 다른 지역보다 3~4배 비쌌다. 정부가 규제를 해도 잡히지 않는 부동산가격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지금도 부동산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는 것보다 크고 느리지만 선제적인 거시적 금리, 성장률, 지역균형발전 등으로 조절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천자춘추] 마음이 아닌 욕구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날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마음이 뭐예요?” 지금도 내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만 고르라면 ‘마음’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면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수학이나 물리처럼 정형화됐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책 속의 선사처럼 냅다 상대방 뺨을 때리거나,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른다거나, 똥친 막대기다, 따위로 상대를 멍 때리게 할 배짱도 없다. 나는 그 학생에게 되물었다. “마음?” “네, 선생님. 마음이 뭔지 알고 싶어서요.” 내가 말했다. “방금 네가 마음을 보여주더구나.” 학생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저는 아무것도 보여 드린 게 없는데요?” “마음이 뭔지 알고 싶다고 했잖아?” “네, 그건 제 질문인데요.” “그 질문 속에 네 욕구가 있어, 없어?” “네, 뭔지 알고 싶은 욕구가 있죠.” “그 욕구를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한번 바꿔볼래?” 학생이 혼잣말을 했다. “알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마음...” 내가 물었다. “어때? 말이 돼?” 학생이 배시시 웃었다. “네, 말이 되네요.” “이제 마음이 보여?” “그러고 보니 제 욕구가 마음이군요.” “지금은 그렇지.” ‘마음’을 어찌 ‘욕구’라는 어휘 하나로 냉큼 대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네 마음을 보라’는 식의 가르침은 어린애한테 운전 면허증 안겨주는 격이다. ‘마음’이라는 표현만큼 대상의 구체성이 없고, 형상화가 안 되고, 눈·귀·코·혀·피부·생각이라는 감각기관에도 걸려들지 않는 언어는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기반에는 ‘욕구’가 있다. 욕구의 다른 말이 희망, 소망, 열망, 의지, 의도, 욕심, 욕망, 탐욕들이다. 소위 ‘싶다’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욕구로 인해 탄생했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말하자면, 당신이 ‘그건 내 마음이야!’라고 표현하는 그 속사정에는 대체로 ‘욕구’가 있다. ‘그건 내 욕구야’가 더 정직하다. 사실 마음이 그냥 ‘마음’으로 있을 때에는 바위가 그냥 바위로 있는 것과 유사하다. ‘바위’라는 단어 하나로는 어디에 있는 무슨 바위인지 알 수 없다. 어떤 개 이름 ‘루이’가 ‘루이’로만 있을 때는 뭔가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인 것과 같다. 그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움직일 때 멍멍 짖는 ‘개’가 된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마음’이 가만히 있는 건 추상적인 그 무엇이다. 움직여야 마음이다. ‘마음을 보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마음 공부’는 안개를 손에 쥐라는 말처럼 막연해진다. 일단 내면의 ‘싶다’를 보라고 하는 게 좋다. 그러면 마음을 바로 보고 알 것이다. 저 학생처럼. 김성수 한국글쓰기명상협회장

[천자춘추] 크리에이티브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랜 세월 광고 기획사에 재직하면서 마지막까지 그 해법을 찾으려고 고심했던 것은 ‘크리에이티브의 정체’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잘나가는 100대 기업들의 디자인과 프로모션을 디렉션하는 대행사의 크리에이터였던 나는 늘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 핵심 업무였다. 나의 디자인 철학은 장착돼 있어야 할 무기이자 대응 논리였고 궁극적으로 프레젠테이션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나의 철학은 계속 변화했는데 초기에는 ‘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지남철’이었다가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김소월의 꽃이 디자인’이라고 정리했다가 최종적으로 ‘디자인은 배려다’로 마무리했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정리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화두로 삼고 있는 ‘크리에이티브는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정의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현재 내가 정의 내리는 크리에이티브란 ‘이종교배’다. 정확히는 크리에이티브의 원리가 ‘이종교배’라 생각하는 것이다. 즉,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은 누구나 생각하는 편한 교배에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교배시켰는데 그 기발함에 대중이 공감했을 때 전율적인 감동을 주는 것이다. 1986년 광고대행사에 입사할 때 논술형 시험문제가 ‘마이클 잭슨과 종이컵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논하라’였는데, 크리에이터에게 ‘이종교배’의 발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가장 낯선 발상으로 수많은 대중을 설득시키는 아이디어가 있는 광고가 좋은 광고고 감동적인 크리에이티브라 평가된다.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은 대부분 물리적인 조합보다는 화학적인 조합이 절묘할 때 멋진 결과가 나온다. 화학적인 결합을 잘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 살기 위한 삶의 방법론을 찾자면 그 첫 순위는 여행이다.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은 ‘낯설게 하기’이고 여행은 자신을 낯선 곳으로 인도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을 들여다볼 때 인생의 또 다른 기발한 길을 발견할 수 있다. 한곳에 머무르고 침잠할 때 인간은 나태해지고 고루해진다. 수많은 고민과 여러 나태함이 온몸을 휘감고 있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늘 낯선 여행지로 삼아 보자. 그곳에서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남상민 아티스트·사단법인 한국문화재디지털보존협회장

[천자춘추] 농업의 또 다른 길 ‘치유농업’

21세기 현대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이 지속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나와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잘 먹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도시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도시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농부가 돼 흙으로 돌아오고 있는 곳, 바로 도심 속 치유농장으로 말이다. 치유농장을 경험한 사람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키우고 적당한 노동을 통해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이렇듯 농업을 치유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치유농업’이다. 그렇다면 치유농업은 정확히 무엇일까? 치유농업이란 농업·농촌 자원이나 또는 이와 관련된 활동을 통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과 산업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채소와 꽃 등의 식물뿐만 아니라 가축 기르기 등 산림과 농촌문화 자원을 폭넓게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농사와는 다르게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농업을 활용한다는 점이 치유농업의 특징이다. 치유농업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국립원예특작과학원(2014~2016년)의 연구에 따르면 식물 기르기를 통해 공격성이 13% 감소하고 정서 지능은 4% 향상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텃밭을 가꾸는 노인은 우울증이 24% 감소했고 성인 암환자는 원예치료 8번 만에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40%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현재 치유농업은 2020년 3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치유 농업 연구 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통과해 시행됐고, 3월25일을 이를 기념하는 치유농업의 날로 제정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아직은 치유농업이 낯선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치유농업은 농업·농촌의 미래 산업으로,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증진하는 새로운 영역의 농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경기도농업기술원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2025년까지 치유농장을 100개소로 확대 육성하고, 치유농업시설 운영자 교육(매년 25명)과 치유농업사 양성기관 관리 등 맞춤형 사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2023년까지 경기치유농업센터 구축을 완료하고, 시군과 협업해 경증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해 경기도 치유농업의 거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치유농업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과거 농업은 농업인 소득 향상을 위해 농산물 생산량 증가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농업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국민 건강 관리에까지 이르렀다. 농업의 새로운 변신은 작은 농업에서 더 큰 농업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 중요하다. 앞으로 농업의 변화가 기대된다. 김석철 경기도농업기술원장

[천자춘추] 인권맛집 다산 30주년

2019년 10월31일. 다산인권센터(이하 ‘다산’)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고통받는 존재에 막연한 물음을 가질 즈음이었다. 다산에서 ‘인권이 내게로 왔다’를 주제로 강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여섯 번의 강의와 후속 모임은 세상에 품었던 의심을 ‘시대와의 불화’로 이어 줬다. 삶의 실천이라는 불편한 과제는 무거웠으나 나쁘지 않았다. 이후 다산 활동가의 소개로 인권교육온다(이하 ‘온다’)를 만났다. 온다와 다산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한다. 방 두 개를 합쳐 놓은 공간 가운데 드르륵 열리는 미닫이문으로 경계를 가르지만 각각의 회의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열려 있다. 따로 또 같이 서로의 활동과 삶을 공유하는 이곳은 사랑방이자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치열한 활동의 장이다. 활동가들의 삶을 공유하기 가장 적당한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매월 각자 가능한 날짜를 달력 위에 표기하고 자신의 순서가 되면 점심을 준비한다. 별다른 외부 일정이 없다면 온다와 다산 활동가 여덟 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활동가 초반 사무실 생활에 적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8인분의 식사 준비였다. 동료 활동가들은 준비하는 동안 익숙한 듯 곁에서 도와줬다.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긴밀한 배려는 오랜 시간 그들이 쌓아온 활동가로서의 면면이었다. 누군가는 냉장고를 털어 생전 보지 못한 요리를 탄생시키고, 어떤 이는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이곳에선 아무도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진 이유는 사람이라는 환경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다산이 30주년을 맞았다. ‘30년 전통 인권맛집’은 다산의 안성맞춤 슬로건이다. 인권은 종종 밥을 짓는 과정에 비유된다. 당연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정성은 인간의 존엄과 맞닿아 있다.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권이라는 밥을 짓는 사람들이 수원 화성행궁에 있는 오래된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과 불화하는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는 다산은 인권계의 홍반장이다. 쌍용차 사태, 세월호 참사에 이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까지 사회 전반의 인권 현안 속 고통받는 사람들 곁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그런 다산의 첫인상은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을 가로막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인권의 현주소를 떠올리기도 했다. 다산의 숙원인 공간 이전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첫인상의 막막함이 누군가에겐 오르지 못할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연대의 손길이 필요하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천자춘추] 우리는 무엇을 ‘짓고’ 있습니까

제주대안교육협의회가 주최하는 진로특강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고 제주에 있는 대안학교 7개 중 한 곳인 볍씨학교에 방문해 1박2일을 보냈다. 볍씨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초등대안학교인데 광명에 본교가 있어 초1부터 중2까지 본교에서 수업을 듣고, 마지막 중3과정을 제주학사에서 보내게 된다. 일본에서 나름대로 매우 ‘빡세다’고 소문이 자자한 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그 학교보다 훨씬 더 빡빡한 학교의 존재를 처음 만나보았기에 1박2일 동안의 경험은 너무나 놀라웠고 신비로웠다. 그날의 일과는 이러했다. 매일 아침 그날의 밥짓기 당번은 새벽 5시에 일어나 가마솥에 밥을 짓고 직접 재배한 작물들로 반찬을 만들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요가와 명상을 한 뒤 돌아와서 고전을 읽으며 책 명상을 하고, 그날의 일정을 함께 확인하며 역할 분담을 한다.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나서 아침식사가 끝나면 그날의 일과 공부를 시작한다. 제주 전통식 돌집을 짓는 것과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자 공부이고, 수업도 역사·영어·중국무술·합창·천연염색·글쓰기 등 매우 다채롭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30분 동안 대여섯개 노래를 함께 소리 높여 부른다. 합창이 끝나면 잠깐의 명상을 한 뒤 하루에 있었던 일들 중 깨달았던 점을 기록하고, 그것을 모두와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한다. 1년간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감각을 깨우는 생활을 한다.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하는데, 그 변화와 성장에 대한 의미를 반드시 아이에게 알려줘야 그 순간이 아이에게 중요한 역사가 된다고 했다. 친구들과 1박2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진로 특강에서 강연을 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졌고, 강연 내용도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내가 볍씨학교 친구들을 따라다니면서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필요한 만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해결하거나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집·농사·밥을 짓는 것, 글을 짓고 시를 짓는 것.... 짓는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들과 이어진 일이고 창조적인 작업이며,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영위하는 소중한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짓는’ 일을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으며, 얼마나 배워 왔으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교육의 역할과 학교의 존재를 다시금 되묻게 된다. 김보람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조교수

[천자춘추] 韓·美·中 3각 관계 속 대응 전략

현재 국제사회는 정치 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 정부는 가파른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그 영향으로 한국 등 이머징 국가들은 환율이 급전직하하고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도 수출주도형 산업형태로 외부의 충격을 그대로 받아 더 힘든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돼 한국의 입장이 점점 더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됐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조에서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제시했고,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 구도가 재정립되며 미중 강대국 간에 전략적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자신의 편에 설 것을 강요 당하고 있다. 한국이 대중 외교정책을 수립할 때 미국 요인에 의해 가장 큰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의 대중 관계를 보면 한미중 3국 관계 속에서 양자적 관계라는 다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 외교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을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 그 구조가 지속되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 진입했다. 안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외교 안보 문제에 대응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상은 이전 정부가 유지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및 미중 간 균형 외교 기조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동맹 강화 및 재건 차원에서의 사드 추가배치, 쿼드 가입,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등을 구체화할 경우 한중 관계의 악화와 역내 정세가 신냉전 안보 환경의 대립 구도가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무역 의존도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3대 무역국은 중국, 미국, 베트남으로 2010년도를 기준으로 한국의 국가별 대외 무역 의존도는 중국이 25%, 미국이 10%, 베트남은 2%를 차지했다. 반면 2020년에는 중국이 25%, 미국이 15%, 베트남이 10%를 차지하게 됐다. 중국의 의존도는 정체된 반면, 미국의 비중은 1.5배로 증가했고 베트남은 약 5배가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대중 무역의 비중은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수출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무역의 대상을 다른 국가로 분산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중국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한미중 3각 관계에서 전략적 견제와 전술적 협력을 통해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의 국력을 키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폭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기철 평택대 국제물류대학 중국학과 교수

[천자춘추] 삶의 질을 바꾸는 주소정보

요즘 공원이나 해수욕장에서도 음식 배달을 해주는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배달 라이더에게 내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형물이나 광장 입구로 주문하더라도 위치를 설명하느라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야 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배달 라이더의 호출 거부로 대기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한편 미국 등 일부 도시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드론과 로봇을 활용한 배달 서비스가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는 실내외 어디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있는 곳까지 배송될 것이라지만, 그러기 위해선 배달 지점의 정확한 위치정보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까지의 주소는 집과 회사 등의 소재지를 의미했으나 로봇,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디지털트윈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기술과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주소가 필요해지고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하고 사람과 로봇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는 다양한 주소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LX한국국토정보공사(LX공사)를 주소정보활용지원센터로 지정해 우리 국토에 촘촘한 주소정보 기반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선 누구나 어디든 해당 위치를 주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건물, 사물, 공간의 모든 접점에 주소정보를 부여하고 있다. 노상·노외 주차장, 버스정류장, 육교 같은 공용 시설물의 ‘사물주소’ 부여를 확대하고 있으며 산악지역에서 재난과 사고로 인한 긴급 구조 시 위치 파악을 위한 ‘국가지점번호’도 설치해 관리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는 일정 시간 사용하고 소멸하는 ‘시간주소’를 도입해 야식을 파는 푸드트럭, 겨울철 붕어빵 파는 곳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부각되고 있는 로봇 방문 배송이나 휠체어 이동권 보장이 가능하도록 입체도로와 내부도로의 ‘이동경로’도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는 다양한 주소정보체계 구축을 추진하면서 2030년 기준 1조원대의 주소정보산업 창출을 목표하고 있다. 주소정보가 촘촘하게 연결된다면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일상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국민 생활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LX공사도 주소정보 활용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주소정보산업을 육성해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권경현 한국국토정보공사 경기북부지역본부장

[천자춘추] 지원금 사업, 민간협치 양날의 검

지역화폐 삭감 논쟁이 시끄럽다. 코로나 극복의 재난지원금, 특별재난지역 지원금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국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들이다. 공적자금으로 사업을 지원하는 종류로 취약계층 지원사업, 시민단체의 공익사업이나 심지어 창업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까지 지원하는 사업들로 매우 다양하다. 2021년 재보선으로 바뀐 서울시장은 민간위탁사업을 필두로 지원금 사업에 여러 가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시민단체의 ATM”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달 말부터 지역화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국비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가 지방분권으로 가는 길목에 ‘민간협치’는 중요한 과정이자 수단이다. 국가가 경제력을 기반으로 필수적인 민생안정과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위한 민간협치의 한 형태로 ‘지원금 사업’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건 복지국가를 국정목표로 삼건 국민이 선택한 정부 당국자들에게 지원금 사업은 민간협치의 당위적 실천과제이다. 위 사례들은 일부 공감되는 측면도 있지만 개선을 위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용 등의 경제적 측면을 유독 강조하며 도덕∙윤리의 관점으로 해석을 확대하려는 것은 정책을 다루는 측면에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심지어 주요 선거의 결과에 따라 이러한 정책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을 보면, 당혹을 넘어 불쾌하기도 하다. 국민보다는 유권자, 게다가 지지자와 반대자로 양분하는 정치 논리나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민간협치를 중개하거나 지원하는 지원금 사업은 본연의 취지와 역할이 발휘되도록 진솔하게 과오를 평가해야 한다. 의도나 왜곡된 시각의 비난과 정책 개폐들이 수시로 발생하면 국민에게 상처가 되고, 정부에게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정부가 “국가 운영의 모든 일을 할 수 없음”을 앞선 나라들에서 많이 보고 있다. 지역과 시민사회, 분권과 협치 등이 정치지형의 용어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일상 삶에서 회자되기를 소망한다. 박태원 디앤아이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천자춘추] 문화예술과 정치?

문화예술인에게 있어 정치는 과연 어느 만큼의 영향을 미칠까. 본업이 사회자인 내게 얼마 전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지방정권이 바뀔 때마다 활동하던 사회자가 바뀌던데, 김포시는 예외인 것 같아 보기 좋다.” 과연 그럴까. 그리 보였다면, 참 다행이다. 한때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리고 5년여가 지난 얼마 전,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인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하고, 공모 사업 등에서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행위 등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이 한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등은 정치권력 기호에 따라 지원금 지급을 차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헌법 등이 보장하는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어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건 이후 5년여가 지난 지금, ‘편 가르기’ 혹은 ‘갈라치기’를 뜻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과연 모두 사라졌을까. 2022년 지방선거를 치르고 전국의 기초의회 구성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김포시의회는 경기도의회처럼 여야 동수다. 혹여, 기초의회에서조차 정치논리에 의한 지원금 지급을 차별화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정치인이 어떤 마인드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로 인한 장단점이나 폐해는 무엇인지에 대해 시민의 눈과 귀는 매우 밝다. 비록 당장 어떤 사안에 대처하지 않고 침묵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시민은 자신의 귀중한 ‘한 표’로 ‘분명히’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시민의 침묵에 특히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문화예술인에게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정치인들이여! 사안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편 가르기’라는 단순 정치논리로 문화예술계와 예술인에게 차별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를. 이재영 ㈔한국예총 김포지회 부회장

[천자춘추] 때를 알고 떠날 수 있는 용기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주위의 공기와 볕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계절이다. 봄과 여름의 비바람, 햇빛, 해충들을 다 견디고 대추, 감들도 익어가고 있다. 조만간 가로수와 숲속의 생명들도 잎과 열매를 떨구며 고운 이별을 맞을 것이다. 자연도 머물 때와 떠나야 할 때를 알듯이 우리들 삶도 머무름과 헤어짐이 이어진다. 2500년 전 중국에서도 ‘떠날 때’와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나온 부자들의 이야기인 화식열전(貨殖列傳) 중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역시 범려(范蠡)이다. 춘추전국시대 오와 월이 치열한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범려는 월왕 구천의 책사로 숙적인 오나라를 무너뜨린 일등공신이었으나 논공행상에서 높은 자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오랜 동료인 문종(文種)의 만류에 토사구팽을 경계하며 주의를 당부하고 타국으로 가서 사업에 도전해 엄청난 재산을 모으게 된다. 89세까지 살면서 재산을 세 번 모으고 세 번 나누는 삼취삼산을 실행해 중국 역사상 첫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평가받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의 사업가들, 즉 화상(華商)들이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로 범려가 손꼽히고 있다. 정치와 군사, 그리고 사업가라는 분야에 걸쳐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리며 인생 3모작을 모두 성공시킨 완벽한 남자이면서 바로 인생의 최정점에서 물러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불굴의 의지와 처세술로 중국 최초의 대부호가 된 것이다. 범려가 재물의 신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다양하고 치열한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경험과 식객삼천이라고 할 정도로 주위에 후덕하게 베풀어 얻어진 고급 정보들도 한몫했다. 또 새롭게 도전할 만큼의 확고한 자기 철학이 더해져 사람과 사물, 시대의 흐름을 읽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즈니스도 때를 아는 것이 성공의 핵심 요소다. 시세 변동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면서 돈과 물건을 회전시키는 것처럼 권력의 자리에 오르고 물러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업에서의 타이밍은 손실과 이익에 직결되는 것이고 권력에서 때를 알고 물러나는 것은 화를 방지하고 명예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의 한 구절이 더욱 와 닿는 것이 아니겠는가. 베이비붐세대와 파이어(FIRE)족까지 다양하게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면서 자연인, 또는 자유인을 꿈꾼다. 좀 더 미련을 갖고 뭉그적거리다 어쩔 수 없이 밀려 떠날 수도 있고 자유 의지로 계획을 세워 떠날 수도 있다. 움켜쥔 것을 내려놓는 용기는 어려운 일이고 타이밍을 잃고서 내려놓는 것은 진정한 비움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 심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다가 자유 의지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내려놓고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용기가 아닐까. 때를 알고 용기 있게 떠난 범려와 그냥 남아 있다가 토사구팽 당한 문종, 이 두 사람의 ‘같은 시대 다른 삶’을 보니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 한다는 노자의 도덕경 9장이 와 닿는다. “가득 채우면 흘러 넘친다. 재물이 과하면 지키기 어렵고 자리가 높고 교만하면 비난 받을 일이 생긴다. 일을 이룬 뒤에는 뒤로 물러서라, 그것이 하늘의 길이다.” 오형민 부천대 비서사무행정학과 교수

[천자춘추] 거목(巨木)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작고 맑아 보이는 인상을 가진 그분이 근 1 세기를 살아오면서 제국의 1인자라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편안하지 못했을,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인생 여정임을 짐작할 수 있다. TV를 통해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기 위해 거리를 메운 사람들을 보며 그녀가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 삶의 공과를 상세히 알지 못하면서도 절로 추모의 마음을 갖게 되는 건 동서(東西)를 관통하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얼마 전 파주 파산서원(坡山書院) 앞에 있던 고목(古木)이 쓰러졌다. 폭우와 돌풍이 300여년은 족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큰 나무를 눕혔다. 파산서원은 학문(學文)으로 세상을 빛낸 동국 18현의 한 분이자 율곡의 도우(道友)로도 널리 알려진 우계(牛溪) 성혼(成渾)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위대한 인물을 모신 사당의 수호목처럼 남아 있던 나무는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고목이었고 그 후 30여년을 잎새 없는 나무로, 하지만 고고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는데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됐다. 문화재 당국은 서원과 함께 역사를 같이했던 이 고목을 과거의 이야기에 새로움을 더하는 문화상징(象徵)으로 남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대학자 율곡(栗谷) 이이 선생을 추모하는 ‘율곡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본가와 화석정이 위치한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서 살았고, 묘와 서원이 있는 사적 525호 ‘파주이이 유적’이 있기 때문으로 파주시에서 32회째 개최하는 유서 깊은 행사다. 지난달에는 명재상 방촌 황희 정승과 대학자 우계 성혼 선생을 기리는 문화행사를 연이어 개최한 바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그간 접어뒀던 지역의 선현들에 대한 추모행사와 문화사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선현들을 기억하고 그 정신(精神)을 기억하기 위한 사업들이 다시 이어짐을 보며, 형식의 변화와 상황의 다름은 있지만 훌륭한 삶을 살아낸 분들을 기억하고 존경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인류의 역사에 있어 보편적 미덕(美德)임을 생각한다. 선현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교훈을 간직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계속돼야만 한다. 지구상 저편에서 일어난 여왕의 서거와 애도를 보면서, 오래된 것의 가치(價値), 훌륭한 삶을 살다 간 이들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공유, 시대를 이끌어 온 거목(巨木)처럼 남은 지역의 선현들을 떠올리는 가을 날이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천자춘추] 멀어지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식량과 인프라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과 북미관계 정상화와 재래식 무기체계 군축 논의 등 정치·군사적 상응 조치까지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북측에 정식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윤 대통령이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난하며 매우 거칠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김 부부장은 ‘비핵화’의제는 남북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다른 한 편 한국은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일 까지 11일 간 대규모 공격훈련을 포함한 한미 연합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훈련의 대장정을 끝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번 훈련은 제대·기능별로 전술적 수준의 실전 연합기동 공격훈련(FTX)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북한은 UFS는 ‘북침전쟁연습’이라고 주장하며 비난을 쏟아 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인민회의 및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9절) 담화를 통해 핵포기 불가, 전술핵 확대 운용, 핵무기 실제 사용 가능성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8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갑작스럽게 남북당국 간 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자고 북한에 공식 제안했다. 북은 통신문 받는 것조차 거부하고 ‘무시’로 일관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한반도 정세와 북의 의중을 모를 리 없는 정부지만 대내용으로 추석민심을 겨냥해 요란한 선전을 펼친 셈이다. 대북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없는 한,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남북관계의 개선은 물론 당국자 간 남북 화해와 협력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질서와 경제 블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대서양 동맹에 한국, 일본, 호주 등이 가담하고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동맹에 이란, 사우디,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이 가담하는 형국이다. 이와는 별도로 중, 러, 이란의 반패권 유라시아 동맹의 출현이 가시화 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의 전략경쟁 심화는 대만을 둘러 싼 영토분쟁으로, 반도체와 중간제 공급을 둘러 싼 경제전쟁으로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사실상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보복에 보복을 거듭하고 있는 유럽과 러시아는 힘들어지고 미국의 패권은 약화되고 한국은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가 되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단층선(Fault Line)인 한반도와 조어도를 둘러 싼 동중국해, 중국-대만 양안인 대만해협, 그리고 남중국해가 서로 연동하며 위험한 안보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반도 군사위기는 점점 더 다가오고 반대로 평화번영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지혜롭고 현명한 대처를 주문한다. 윤기종 前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정치학 박사

[천자춘추] 지구 살릴 뉴딜 운동 시급

피조물로서의 인간과 자연과의 공생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격찬했던 그 인간들이 조장하는 지구의 오늘과 미래는 암울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인재가 지구를 극심하게 병들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도 역시 병들어 죽거나 인재의 결과물로 인해서 불치병을 앓고 있다. 지구가 병들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럴지라도 그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한 것 역시 인간이다. 이유는 문명의 발달이란 미명 아래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는 기계적, 자원적 재생의 의존성이 낮거나 생태계의 복원을 두고 한 계획과 활동이 전무한 것이 그 원인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망각 증세에 몰입돼 현재의 지구 상태를 진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시문학을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상태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정적 상관물로서의 소재와 주제를 설정해 문학행위를 하는 사람이고, 피조물로서의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위한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 한 사람으로서 갖게 되는 안타까움이다. 이 아픔을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민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주지하고 있다.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우리는 지금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 혼란이 세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경제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21세기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의 현상을 향해 치닫고 있는 때에 자본주의 형태를 어떻게 바꿔 그 재앙을 면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지라도 절제와 변형의 해법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경제에 몸담고 있거나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의 세기적 공동체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함이 맞는 것이다. 이충재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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