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공부의 본뜻

온 나라가 교육제도의 문제점으로 시끄럽다. 근대 교육제도가 도입된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관심은 자녀의 학교 교육 문제였다. 한국에 근대적인 공교육제도가 도입된 것은 갑오개혁을 전후한 시기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근대적인 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한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동양 고전을 가르치는 전통적 교육체계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서양의 제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의 손으로 교육제도를 정비하게 된 것은 광복 이후의 일이다. 거기다 발달한 서양의 물질문명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권력과 돈이 연관되는 학문이 빛을 발하고 너도나도 성공하기 위해 서로 이기려고 경쟁하는 문화가 지금의 교육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자식 사랑의 교육이 인성 교육보다는 권력자가 되는 길과 돈 잘 버는 기술자 만들기에 혈안이 되다 보니, 아이들의 인성과는 관계없이 부모들은 막연히 자식 대학 보내기에만 목숨을 걸고 살았다. 특히 청소년기의 교육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유럽 선진국에서는 초중고 교육과정을 인간 성숙에 두고 있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나오면 누구나 원하면 대학을 가는 제도를 운용한다. 기술을 배우고자 하면 대학을 안 가도 되는 교육문화가 제도화돼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이상한 공부에 놀아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들이 괴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공부라는 말의 본뜻을 알아야 한다. 공부는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주공부(做工夫)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공부란 ‘불도를 열심히 닦는다’라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부란 참선에 진력해 마음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국어로 工夫(공부)는 발음이 ‘쿵후’다. 무술을 뜻하는 쿵후다. 하지만 원래 의미는 기술과 지식을 쌓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의미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라는 단어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마음을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매진하는 내면 수양의 의미로 사용됐다. 반면 일본에는 工夫(공부)를 우리가 아는 의미보다는 ‘궁리한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고, 현 공부와 의미가 같은 표현은 勉强(벤쿄)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부는 책상 앞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우리가 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내면을 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놀이가 공부다. 직장인에게는 업무에 대한 열중, 이 모든 것이 곧 공부다. 그래야 노벨 수상자도 나올 수 있다. 이제 공교육의 대대적인 개혁만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지식인들은 알고 있다. 그것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국민과 지성인들이 할 때다 더 이상 늦춰지면 안 되는 시기가 왔다.

[인천의 아침] 아버지가 허물어지고 낯설어진다

언제부턴가 경찰청 안전 안내 문자로, “○○에서 실종된(배회하는) ○○○를 찾는다”는 문구가 자주 오르고 있다. 이 중 70대 이상의 대상자는 주로 치매환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치매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이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0년 전국 65세 이상 치매추정환자는 약 84만명으로 10명당 1명꼴이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치매환자가 136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치매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이웃, 우리 가족,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아버지’는 운명적인 이름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에게서 나서 아버지(어머니)가 되고 아버지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한때는 가장 강력했고 가장 친근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차츰 허물어지고 점차 낯설어진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 ‘더 파더’는 그런 아버지를 그린다. 2012년에 초연된 이 연극(Le Pere·아버지)은 프랑스 몰리에르상,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등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작가가 직접 감독으로 나선 동명 영화 ‘더 파더’(2020년)는 배우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 속에 오스카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으며 더욱 명성을 얻게 됐다. 작품 속 아버지는 자신이 치매환자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츰 자신의 집도, 딸도, 자신조차도 낯설어진다. 사람은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기대하기에 오늘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추억할 과거가 사라지고, 기대할 미래가 없어져 가는 아버지. 망연자실이요 비참함이다. 그러나 질 수밖에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무너져 내리는 기억 끝을 붙잡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아버지로서의 위신을 잃지 않고자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는 다시금 강력해지고 또한 따뜻해진다. 때맞춰 한국에서도 연극 ‘더 파더’가 공연(19일~10월1일·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된다고 한다. 특별히 거장의 경지에 이른 전무송과 만만찮은 관록을 지닌 전현아, 닮은 듯 다른 듯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실제 부녀가 같은 무대에서 가슴 먹먹해지는 부녀의 스토리를 선보인다고 한다. ‘더 파더’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극이 진행되기에 서글프고 외로워 보이는 한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시대 아버지의 비애까지 오롯이 전하고 있다. 이 가을에 희곡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치매 노인 아버지’를 만나 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새롭게 치매 노인과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타인과 자신에게도 더욱 너그러운 마음과 시선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인천의 아침] 세계일화

평화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인도 베다 성전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평화가 항상 모든 곳에 퍼지게 하소서. 제 마음속에서 그 평안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슬람교는 평화를 의미하는 살람으로 인사를 한다. 유대교는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샬롬으로 인사한다. 이것은 평화 기호다. 고안자는 영국의 제럴드 홀텀이다. 1958년 4월4일 핵무기 폐지 운동에 사용됐다. 그 아이디어는 두 개의 깃발을 이용해 신호를 보내는 수기 신호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즉, 핵을 의미하는 알파벳 N(nuclear)과 군비축소를 의미하는 알파벳 D(disarmament)를 결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를 소리쳐 보지만 세상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게 끝없는 전쟁의 연속이다. 서로 갈등을 종식하기 위해서 평화라는 명목으로 강자가 약자를 침공하는 것이 일반적 평화다. 서양 그리스도교 문명권에서는 평화가 정의의 실현(평화를 위한 전쟁)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질서유지라는 정치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띠었다. 그러나 동양의 힌두교 영향권에 있던 인도에서는 마음의 편안함을 목표로 하는 내향적·비정치적인 태도로 평화를 추구했다. 중국의 예기에는 평화를 “권력을 독점하는 자가 없고 평등하며, 재화가 공유되고 생활이 보장되며, 각자가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범죄가 없는 사회”라고 했다. 그러나 평화를 상대적인 대립으로 풀면 영원히 말뿐인 평화일 수밖에 없다. 세상의 평화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말은 세계일화(世界一花) 즉 세상은 한송이 꽃이라는 표현이다. 너무 아름다운 말이다. 남과 북도 한송이 꽃이며, 너와 나도 한송이 꽃이며, 남편과 아내도 한송이 꽃이요, 부모와 자식도 한송이 꽃. 이 세상 모든 것은 한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 한 가지를 바로 지니게 되면 세상은 낙원일 것이다. 세상은 한송이 꽃이라는 인식을 그릇되게 생각하면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아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세계일화의 참뜻을 펴려면, 모든 상대적인 존재를 하나의 이름다운 공존의 존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천지가 모두 한 뿌리이고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한 몸이다. 민족도 국경도 피부색도 각각의 문화도 왕성한 생명의 나무 모습이라 할 것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불신과 아집으로 대립한다면 이 하나밖에 없는 세계의 나무는 쇠약하고 고사하며 그 속의 모든 중생은 도탄의 구렁에 빠질 것이다. 실로 어떤 나라도 홀로 있는 것은 아니며, 세계는 강자의 독무대도 아니다. 강자도 약자도 하나라는 세계의 나무 위에 존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영광과 치욕, 흥망성쇠도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천의 아침] 세계 잼버리, 왜 굳이 새만금이었나

대회를 마친 지 한참 됐지만, 여전히 시끄럽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열악한 환경과 조직위원회의 운영 미숙으로 크게 지탄받았다. 새만금 현장에서 폭염과 벌레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참가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어 태풍까지 다가오자, 새만금 잼버리는 지난 8일부터 새만금에서 철수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결국 새만금 잼버리는 국제적 지탄과 망신 속에 ’한국 각 지역 잼버리‘가 되고 말았다. 대회 장소가 왜 굳이 새만금이었을까? 한국 여름은 덥고 습하다. 잼버리 대회가 진행된 전북 새만금의 저녁부터 아침까지의 습도는 평균 85% 안팎이다. 이 수준의 습기가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잼버리 대회에 온 세계 각국의 청소년(14∼17세가 대상) 중 대다수가 이렇게 더우면서 습한 날씨를 난생 처음 겪었을 것이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간척지 천막 안에서 열대야를 견디며 잠을 자라고 하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더욱이 한국의 8월에는 집중호우나 태풍이 발생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때맞춰 태풍 ‘카눈’이 통과했다. 아무리 스카우트 정신으로 무장한다 한들 새만금 허허벌판에서 과연 그 집중호우와 태풍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잼버리 대회 준비 임무를 맡은 이들도 모르지 않았다. 조직위 문서에 폭염·폭우·태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문장과 나름의 대책이 적혀 있었다. 잼버리 주관 기관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와 만든 일부 출장 보고서에, 4년 전 일본 간척지에서 열린 잼버리의 제반 문제가 새만금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또 화장실 시설 확장과 위생적 관리 방안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서에만 그쳤다. 허허벌판 간척지에서 열린 새만금 잼버리는 폭염 무방비에 비위생적 화장실로 세계적 망신을 샀다. 사실, 금번 잼버리는 새만금 개발에 도움을 줬다. 정부 예산에서 매립비용이 지출되고, 간척지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건설됐다. 새 공항 건설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오는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야영생활을 하며 유익한 경험들을 하도록 하는, 본질적 고민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틈에 별별 이권이 끼어들고 관리들은 눈치 빠르게 잇속을 챙겼다. 1000억원이 넘는 준비 예산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새만금 ‘알박기’에 세계 청소년의 기대와 국민 세금이 공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잼버리 피날레로 성대한 K팝 공연이 펼쳐졌다. 그나마 이것으로 청소년들이 즐거운 추억을 하나 더 안고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힘든 환경에서도 도전과 개척으로 희망을 키우는 스카우트 정신이 금번 잼버리에 참여한 청소년들, 그리고 우리 한국인들이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함께하는 인천] 경제 논리에 짓눌린 문화

3일간 15만명 넘게 찾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의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한여름의 최강 불볕더위보다 더 강력한 열기를 뿜어냈다. 눈길 끄는 축제가 빈약한 인천에서 전국적으로 명함을 내놓을 만한 문화행사로 자리 잡고 있어 다행스럽다. 충남 보령 머드축제, 경남 진주 유등축제, 전남 함평 나비축제, 강원 강릉단오제와 비견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백제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입출항했던 국내 최초의 무역항 ‘능허대’가 있는 연수구의 자랑거리가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연수구의 최근 문화 풍토를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며 ‘연수문화예술회관’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는가 하면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국고 지원을 이끌어낸 연수구 기초거점 ‘꿈꾸는 예술터’의 국비 20억원을 반납해 버렸다. 문화도시로 지정받기 위해 여러 예술가, 시민들의 참여로 기획·추진한 다양한 문화예술사업들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문화도시 예비사업 추진을 위해 2년간 혈세 20억원가량 쏟아부은 만큼 최소한의 결실이라도 거둬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또 연수문화재단 대표가 임기 절반만 채운 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표를 낸 데 이어 재단 직원들의 이직이 줄을 잇고 있어 가관이다. 문화예술진흥과 시민문화증진에 진력해야 할 문화재단이 한순간에 방향타를 잃어버렸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전국에서 파행을 겪는 기초문화재단이 꽤 생겨났는데, 이 중 연수구의 정도는 심각 수준이라는 평이다. 문화예술계에선 “새로운 지역 수장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시민 요구에 맞춰 준비됐던 사업들이 무시되고 문화재단 운영도 파행을 겪기 일쑤”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몇 재단 활동의 면면을 비교해봤다. 연수문화재단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은 올해 1~8월 사이 총 15건에 불과했다. 문화정책포럼과 송도해변축제 개최, 꿈의 댄스팀 모집 등 월 2, 3건으로 빈약했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춘천문화재단은 8월에만 예술교육, 전시, 공연 등 50여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밀양, 완주문화재단에도 부러운 프로그램이 수두룩했다. 인구 4만~5만명의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지역 특색을 살리려는 참신한 문화프로그램이 많다. 2014년 지방선거 직후 인천아트플랫폼이 어렵사리 확보한 백령도 평화미술프로젝트의 국고 지원금 10억원을 반납해 원성을 산 바 있다. 연수구가 문화예술교육의 촉매제 역할을 할 꿈꾸는 예술터를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지속가능하고 장기적 관점이 아닌 대중적 기호나 경제적 타당성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문화 행정을 펼치는 한심한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인천의 아침] 중증환자 이송에 닥터카 활용 늘려야

건설현장이 무너지며 작업자의 팔이 깔리며 거의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 구급대가 출동해 유압기를 사용했지만 누르고 있는 구조물을 들어올릴 수 없었다. 환자는 움직이지 못한 채 상태가 악화되던 중 인천권역외상센터에 닥터카를 호출했고, 의사와 간호사가 구급차를 타고 도착했다. 외상팀은 현장에서 마취 후 팔을 절단하고 환자를 구조한 뒤 외상센터로 이송해 응급수술을 시행했다. 119 구급대는 응급환자 발생 시 신속한 출동과 이송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고, 병원 간 이송은 사설 구급대가 담당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가 위독하거나 처치가 필요한 경우 의사가 함께 탑승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의사가 구급차에 탑승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산이나 바다, 섬 등 구급차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은 헬기 이송이 필요한데 소방헬기, 해경헬기,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의사가 탑승하는 닥터헬기 등이 활용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동형 중환자실(SMICU)을 통해 중증환자의 병원 간 이송에 의사와 간호사가 탑승하고 있다. 울산과 인천에서는 중증외상환자의 현장과 병원 간 이송을 위해 닥터카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전국적으로 확대하기엔 장애 요인들이 있다. 무엇보다 탑승할 의사를 구하기가 어렵다. 중증환자의 이송에 투입되는 의사는 중환자나 외상환자의 처치가 가능한 전문가여야 하는데 지방은 절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 예산도 문제다. 닥터헬기의 경우 주간에만 운영하는데 센터당 매년 30억 ~ 40억원이 필요하고, 1회 출동하는 데 약 9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서울시의 SMICU도 운영비가 센터당 12억원으로 전체 예산이 매년 48억원이 넘는다. 반면 인천시의 경우 권역외상센터에 2억3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전용 구급차가 없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고 장비도 열악하지만, 국가에서 지원받는 외상전담전문의를 활용해 치료가 급한 중증외상환자들의 이송을 담당하고 있다. 사설 구급차에 건당 이송비용을 지불하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당직비를 일부 지원한다. 중증환자의 이송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전담 의사를 따로 구하기엔 지원자도 적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현재 응급실, 외상센터나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인력들에게 당직비를 지원하며 참여를 유도한다. 이송 수단과 보조인력은 119구급대를 비롯한 기존의 이송시스템을 활용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닥터헬기나 닥터카를 운영하며 이송 건수로 실적을 평가하는 것도 배제돼야 한다. 자칫 실적 때문에 불필요한 출동을 해 의료자원이 낭비될 수 있다. 꼭 필요한 환자에게 적절히 활용되려면 중증환자 이송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복지부, 소방청 등이 참여해 지난 6월에 발족한 중앙 응급의료 정책추진단에서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상황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인천의 아침] 낯선 곳에서 자신을 보기 ‘백령도 탐방’

낯선 곳을 여행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새로이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고운 모래로 다져진 사곶해변을 비행기가 착륙하듯 사뿐히 걸었고, 콩돌 해안을 다듬었던 숱한 파도와 바람을 맨발로 느꼈다. 하늬해변을 거닐며, 마그마가 맨틀과 지각을 뚫어 만든 ‘현무암에 포획된 원시 지구의 황록색 감람암 파편’을 봤다. 진촌리 현무암에서 지하 맨틀에서 올라온 원시 지구를 봤듯, 우린 어쩌면 낯선 곳에서 자신의 분신을 본다. 백령도의 국가 자연유산인 국가 지질공원과 문화유산을 알리는 프로젝트(태고의 지구, 백령도에서 우주를 보다)에 참여했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백령도의 자연·문화유산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며, 섬을 모티브로 도안한 관광상품(에코백, 손수건 지도, 드로잉북)도 결과물로 내놓았다. 탐사대원들은 명승 두무진의 기암괴석 사이를 오르내렸고, 주민과 함께 예술의 향기를 맡으려 마을 풍광들을 도화지에 그려 봤고, 별 내리는 심청각 아래에선 파도 소리와 함께 색소폰을 불고 시를 낭송했다. 관광상품으로서의 백령도와 주민 생활공간으로서의 백령도. 고립된 섬으로서의 백령도와 육지 관광객에게 열린 백령도. 풍랑과 안개에 따라 섬과 육지는 단번에 폐쇄도, 연결도 된다. 우린 어느 날은 주관적인 개인 심사에 갇혔다가 언제 흐렸냐며 활짝 갠 날씨처럼 문득 이웃에게 열린다. 사전답사와 학생 대상 국가유산 교육에도 아랑곳없이, 수십 명 탐사대원의 발이 해무로 출항 직전 묶이기도 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는 한, 섬은 우리에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작년 말, 국토부는 백령공항 건설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시켰다. 백령도는 평화로운 섬이지만 남북이 대치하는 최북단의 섬이기도 해 국가의 지원도 풍부하다. 우린 학생들에게 섬이 지닌 천혜의 보물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려 했고, 도시를 꿈꾸는 아이들과 문화에 대한 갈증을 달래며 앞날을 그려보기도 했다. 땅을 지키는 건 주민이고, 땅이 빛나는 보배임을 다시 보는 건 여행객이다. 새롭게 바라보는 자연이 관광객의 삶을 생경하게 만들어 주듯, 매일 전망대에서 바다를 똑같이 바라보더라도 찰랑거리는 파도의 운율을 새삼 느낀다면 주민의 삶도 늘 새로워질 것이다. 뱃고동 소리가 아련히 사라질 즈음, 섬에 있던 우리는 어느새 뭍에 닿을 것이다. 우린 섬과 육지를 오가며 항상 흙에 산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지구 속 용암이 분출해 원시 지구를 들춰내듯 꿈과 현실을 오가며 자신을 다시 보는 것이다.

[인천의 아침] 인류가 자연을 정복할 수 있을까

기후 위기는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그것은 자연 파괴로 이어지고 지구 온난화 현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즉,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수록 세상을 파괴하고 자연과 인간 모두를 병들게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은 같은 원소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다. 자연에서 자란 우리는 자연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는 자연의 흐름에 역행해 살아가는 것이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끝없이 자연을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몸을 망치는 나쁜 행동과 습관을 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다가 나중에 죽을병에 걸려 후회하듯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과 생각들이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류의 욕망은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저지르고 끝없는 욕망이라는 오감에 취해 죽음의 질주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창조는 인과법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공간적 상의성)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시간적 상의성)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 이 말은 일체의 모든 것은 항상 서로 원인과 결과로써 일어나며,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법칙은 우주 창조 원리의 핵심적인 키워드다. 세상은 함께 의존하고, 그리고 함께 변해가고 사라지는 것이다. 인연이 흩어지면 모든 것이 공으로 돌아간다. 그 공은 없다거나 있다거나 라는 해석이 아닌 세계다. 생명은 자연과 똑같은 인연의 연결 고리로 이어가고 있다가 물질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어디론가 가는 곳이 있다고 해 많은 종교가 존재하며 철학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의식으로는 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고 기도하는 선지자들은 알고 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천부경을 만들고 자연과 순리적으로 살며 풍류도로서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왔다. 세상은 인과응보의 인연에 의해 고통을 받거나 복락을 누린다. 그리고 대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자연의 큰 변화에 나약한 것이 인간이다.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거대한 지진과 지각변동이 오면 세상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과거의 잘못을 버리고 위대한 정신문명을 지닌 민족만이 남아 샹그릴라의 세상에서 사는 날이 올 것이다.

[인천의 아침]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요즘 친부모에 의한 ‘영아 살해 사건’이 숨어 있던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어찌 친부모가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인륜을 도외시하는 말세의 징조라고까지 얘기된다. 그 사정은 어찌 됐든, 이 모든 것은 결국 ‘부정적인 자기개념’에서 출발한다. 부정적인 자기개념은 ‘가짜 나’를 만든다. 부정적인 자기개념으로 생성된 ‘가짜 나’의 얼굴은 다양하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나, 다른 사람의 요구에만 맞추려고 하는 나, 매사에 불안한 나,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나. 이러한 ‘가짜 나’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자아가 왜곡될 뿐 아니라 그 삶도 왜곡되고 만다. 이제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영아 살해 사건’에서 보듯, 가족과 타인의 삶까지 왜곡시키고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건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긍정적 자기개념 형성’에 힘써야 한다. 부정적이고 편협한 자아에서 벗어나 내면의 근원적 존재인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쌓인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이 곧 ‘자기 존중감’(Self-Esteem)이며, ‘긍정적 자기개념’의 토대가 된다. 자기 존중감은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다.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수많은 역할이 주어지고, 이 역할들에 대한 개개의 평가가 긍정적으로 합산된 전체적인 평가가 곧 ‘자기 존중감’이며, 이를 다른 말로 ‘긍정적 자기개념’이라고도 한다. 또한 자기 존중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뤄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기 존중감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주관적인 느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 자기 존중감을 갖는 첫 단추다. 자기 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고,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된 사람은 자기 존중감을 가질 수 있다. 끔찍한 영아 살해 사건 등 각종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불식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해답은 당연히 ‘긍정적 자기개념 형성’에 있다. 부정적이고 편협한 자아에서 벗어나 내면의 근원적 존재인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신뢰하며 자신의 감정과 이성, 태도와 행동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사랑 받기에 충분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향상시켜가야 할 것이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인천의 아침] ‘응급실 뺑뺑이’는 예견된 일

올해 들어 대구에서 발생한 추락 환자와 용인에서의 교통사고 환자가 응급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으로 환자를 수용하지 않은 의료 기관들을 조사해 벌금을 부과하고, 정부는 대책으로 응급 환자는 무조건 수용하라는 원칙을 내세운다. 하지만 다른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이미 여력이 없는 의료기관이 규정 때문에 환자를 받았다가 치료가 늦어져 사망하게 되면 누구의 책임일까?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며 다양한 대책들이 시도됐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 의료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절반 정도의 응급 환자들은 골든타임 내에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응급’이라는 범주 안에 진짜 중증 응급 환자와 비응급 환자가 혼재돼 있는 것이 문제다. 비응급 환자라도 기본적인 혈액검사나 영상검사를 하다 보면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응급실 병상과 의료진은 한정돼 있어 중증 응급 환자의 치료에 차질이 생긴다. 또한 전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느라 소중한 시간이 소모된다. 정부는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해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중증응급의료센터’, 일반 응급환자와 중증 환자의 1차치료를 담당하는 ‘응급의료센터’,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24시간 진료센터’로 나누려고 한다. 야간이나 주말에 의사의 진료를 원하는 비응급 환자와 중증 응급 환자를 구분한 것은 적절한 방향이다. 단, 여기에 종사하는 의료진들과 의료기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 생체 리듬에 맞지 않고 모두가 싫어하는 시간에 일하며, 중증 환자부터 주취자까지 다양한 부담에 대한 경제적, 시간적 보상이 필수적이다. 응급센터 평가의 결과에 따라 응급의료 수가가 달라지며, 이는 병원들의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전문의들보다 급여를 높여 촉탁의를 채용하고 있다. 심혈관이나 외상과 같이 빠른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응급실 인력 외에 다른 의료진도 평가 인력에 포함돼야 하며, 밤이나 주말 근무에 대한 보상도 현실화돼야 한다. 중증 응급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중환자실과 수술실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환자실이나 수술실을 비워 두는 것은 병원이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와 같이 중증 응급 환자를 위해 비워둔 병상이나 수술실 및 대기인력들에 대한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 한정된 보험 재정 안에서 특정 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높이면 다른 어느 곳에서는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만 늘리면 결국 필수의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젊은 의사나 미래의 의사들은 현재 의사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저 분야를 선택하면 결혼하고 부모가 돼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밤이나 주말 상관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누가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겠는가?

[인천의 아침] 국회의원은 대리그룹인가, 지배그룹인가

국회는 작년 12월 총 638조7천억 원의 올해 예산을 의결했다. 행안부 통계로 작년 말 우리 인구는 5천143만9천38명이니 국민 1인당 1천241만원 정도의 예산이 쓰이고, 의원 300인이 이를 결정한다. 2020년 4·15 총선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는 무소속 124명을 포함해 1천117명이다. 여기에 비례대표 후보로 35개 정당에 305명이 등록했으니, 1천422명의 후보가 의원을 하고자 해서 1명당 국민 3만6천173명을 대신하겠다고 자청한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대리 봉사가 아니라 사욕만 챙긴다면, 내년 총선은 5천100여만명의 피지배 그룹이 300명의 지배 그룹을 뽑는 셈이다. 국민 대다수는 대리 그룹이나 지배 그룹을 할 생각은 별로 없는 터이니, 어느 당을 선출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우리로선 모든 의원이 진정한 대리 그룹을 하도록 그들의 과도한 권한은 줄이고 책임은 지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의원 특권을 줄이기는커녕, 국회에서 특히 민주당은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5건의 의원 체포 동의안 중 4건을 부결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네 편, 내 편으로 국민을 갈라치는 정치꾼의 선동에 속아 왔다. 막상 눈을 뜨면 지배 그룹과 피지배 그룹만 있는데, 바보처럼 이쪽과 저쪽 한편에 서도록 강요받던 것은 아닌가. 굳이 2개 편으로 나누자면 300명과 나머지 5천100여만명의 국민이 있을 뿐인데, 오히려 정치인들 입맛에 맞춰 이리저리 갈렸던 것은 아닌가. 노인이 동네 골목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1줌의 쌀을 비둘기에게 뿌려주고 있다. 참새 2마리도 날아와 바닥의 모이를 쪼고 있다. 일례로 인천시 동구의 경우, 올 1~3월 생계비, 의료비, 주거비로 긴급복지지원금이 1달 70여만원에서 170여만원, 60여명에게 지출됐다. 초심의 정치인이었다면 비둘기 모이 주는 노인의 심정을 헤아렸을 것이다. 진정 대리인이라면, 본인 것도 아니면서 가난한 이에게 주자고 사람을 현혹하고 권력이든, 돈이든, 모이든 제가 먼저 챙기려 했을까? 차마 받는 것보다 모이를 주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노인의 마음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모이를 준다면서 정작 제 모이만 쪼고 있는 비루함을 스스로 알까? 북한 해킹으로 선거 조작을 우려해 국가정보원과 행안부가 보안 점검을 요청해도 선관위는 이를 거부하고 이래도 의원들이 비겁하게 바라만 본다면, 차라리 방조인 300명과 나라 지킬 국민 나머지로 가르라. 역사에서 나라를 지킨 것은 지배층이 아니라 백성이었다.

[인천의 아침] 한국 평화와 중립의 길

며칠 전 6·25전쟁 당시 1951년 11월 백석산 전투에서 천진하게 웃으며 전쟁터에서 식사하는 젊은 군인들의 영상 유튜브를 봤다. 그러나 잠시 후 전장에서 죽어간 244명, 1천165명 부상, 14명 실종된 군인들의 자막 글을 보며, 방금 천진한 모습으로 부끄럽게 서로 웃고 밥을 먹던 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을 느꼈다. 저 착한 영혼들이 누구를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조국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조국보다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강대국 간의 이권과 이념이라는 허상의 적을 향해 목숨을 던진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것도 같은 민족끼리 서로 총을 쏘고 있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상대방을 죽이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과거 외침을 한 적은 없으며,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930여회의 침략을 받았다. 그중 70~80% 정도는 대부분 일본의 침략이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일본 중국 유럽 소련 미국 순으로 외침의 역사가 있다. 현재도 대한민국은 전쟁의 위험성이 극도로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부터 우리는 외침으로 인한 엄청난 전쟁의 피해가 수천년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제일 큰 마지막 전쟁은 6·25전쟁으로 127만명의 사망자를 낸 전쟁이다. 이것으로 전쟁이라는 슬픔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강대국끼리의 각종 패권 싸움 사이에서 전쟁의 회오리는 피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있다. 그것은 중립화라는 정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스위스는 지정학적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 왔다. 그러나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하는 빈 회의에서 연합국들이 스위스를 영세중립국으로 인정하기로 합의했고, 그해 11월 주변의 8개국이 스위스의 영세중립을 승인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최초의 영세중립국이 됐다. 중립국을 선언했기 때문에 스위스는 200여년간 전쟁이 없었다. 한국도 고종황제가 1904년 1월 중립국을 선언해 전쟁을 피하려고 했으나 강대국인 영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가쓰라태프트 조약 등으로 한국을 일본에 팔아넘겨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세계 정세도 바뀌었고 한국도 강대국이 됐다.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지닌 지금 한국의 올바른 판단이 세계 평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이나 북한도 양국이 중립국을 선언하면 한반도가 영원한 평화를 유지하는 국가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중립화만이 복잡한 세계 각국의 경제 패권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인천의 아침] 부부라도 차이 인정하고 소통하라

부부(夫婦)란 하늘이 내려준 인연으로 맺어진다고 한다. 피를 나눈 혈연이 아님에도 운명적으로 만나 결혼에 이르러 남편과 아내로 자리매김한다. 그렇지만, 사실 30년 전후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랐던, 이전엔 생판 몰랐던, 전혀 혈연도 아닌 두 남녀가 결혼해 ‘부부’라는 이름 아래 가족이 된 것이다. 연애 시절의 애정이 잘 지속되기도 하겠지만, 결혼을 통한 가족의 구성은 각기 다른 환경과 생활양식으로 자라온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며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부부간이라도 서로의 삶의 방식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가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런 차이가, 또 그런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쌓이게 되면서, 곧 부부 관계에 오해와 갈등과 불신이 자라게 된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 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 부부 관계의 유지는 사랑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더욱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바람직한 부부 관계 유지를 위한 지침을 드린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라. 생각과 삶의 방식 차이로 서로를 힘들게 할 바에는, 순수하게 그런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하자. 그래야 서로가 편하다. 상대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라. 서로의 단점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찾고, 감사하며 칭찬을 많이 하라.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칭찬 역시 쌓일 것이다. 소통과 대화를 많이 하라. 부부간 문제는 당연히 소통과 대화 부족에서 나온다. 일부러라도 기회와 시간을 만들어 소통과 대화를 자주 하라. 지속적인 소통과 대화를 통해 부부로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라. 문제는 줄어들고 다시금 사랑이 싹틀 것이다. 함께하는 취미나 활동을 만들라. 부부라도 신혼의 애정을 계속 견지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일상생활 중에 취미나 활동을 함께하는 친구요 동호인이 되는 것이 건강한 부부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훨씬 도움 될 것이다.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하라. 가정생활의 역할과 책임을 어느 일방이 많이 짊어진다면, 필연적으로 갈등과 다툼이 따르게 마련이다. 서로가 좋아하고 잘하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민주적으로 공평하게 그 역할과 책임을 나누라. 가정에 평화가 오고 활기가 생길 것이다.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배려하라.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애써 공감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자. 싸움하더라도 절대 욕하거나 폄하하는 등의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도 필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결국 내 남편이요 내 아내가 아닌가. 내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배려하도록 하자.

[인천의 아침] 왕자의 깨달음과 중도

부처는 무엇을 깨닫고 왜 이 세상에 왔는가 하는 답을 알아보자. 싯다르타 왕자는 탄생계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온 세상이 모두 괴로움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이렇게 선언했다. 즉, 탄생계는 모든 생명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이며 이것이 세상에 오신 뜻이다. 다음으로 무엇을 깨쳤는가 하는 문제다. 그 답은 세상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 연기법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고통은 중도의 원리를 알고 실천해야 없어지고 행복의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의 말씀 중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는 혜안과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으로 나아가며, 바른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고, 이내 그대들이 그토록 찾던 대자유로 인도한다. 이 중도 가르침이 불교의 근본 사상이다. 중도는 모순이 융합되는 것을 말한다. 모순들이 융합된 진리 자체를 중도의 세계라고 한다. 즉,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도가 중도다. 지금 세상은 갈등으로 분쟁의 정점에서 3차 대전의 직전까지 가려고 한다. 또한 모두 자국 이기주의로 대립이 커져만 가며, 개개인의 사람들도 욕망에 눈이 가려 자기만을 보는 불안한 시대에서 환경과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난제들의 치료는 모든 대립과 욕망을 융합하는 중도 사상에 있다. 20세기 초, 원자, 분자, 소립자 등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 발달하면서 자연 현상의 예측에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있음이 알려졌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혼돈 이론에서는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양자물리학에서도 현대 물리학계가 찾아낸 물질과 에너지의 근본 모습의 결과도 중도의 공사상과 일치한다. 결국 공이면서도 존재하며 일체이면서도 극미의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으로는 아직 알 수 없는 4차원 이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중도의 깨달음에서 미래 물리학의 연구 과제인 양자물리학을 뛰어넘는 이론들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물질의 창조 원리도 나오고, 인류의 영원한 행복도 중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중도의 융합철학을 모든 곳에 적용하면 그 해답이 나온다. 이 시대의 염원인 남북통일과 세계통일의 과제도 중도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국가가 영구적인 중립화의 세계가 될 때 인류의 평화와 행복이 온다. 더 이상 군대를 만들지 않는 서로 중립이 될 때 세계 평화가 온다. 과학자도 정치인들도 종교인들도 경제인들도 교육자들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중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즉 인간 마음의 평화도 중도에서 오며, 극락 천당도 중도에서 오는 것을 금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고 실천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인천의 아침]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쉽게 답할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에 대한 또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일찍이 철학자, 심리학자를 위시해 유전학자, 인류학자 등 많은 학자들이 개념화해 오긴 했지만 여전히 명료한 해답은 없다. 세계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장발장이 주인공인 소설 ‘레미제라블’을 통해 인간이 치러야 할 싸움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즉, 자연과의 싸움, 인간 간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중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라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이미 2천500년 전부터 “너 자신을 알라!”고 경고한 이래 철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인생의 세월이 깊어질수록 내가 누구인지를 더 분명히 알고,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린 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기초로 형성된 개념이 바로 ‘자기(자아)개념’(self-concept)이다. 이 자기개념은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자기인식이다. 즉, 인식 대상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그 총체가 자기개념인 것이다. 이 자기개념은 그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서 한 인간의 정체성과 그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 자기개념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더 나아가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갖추게 한다. 문제는 부정적인 자기개념이다. 이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다. 이런 습관은 곧 자신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낳고, 그 선입견은 또다시 자신에 대한 거짓평가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자포자기에 이르게까지 한다. 사실, 자기개념은 자기 한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막강한 전파력으로 자기를 둘러싼 사람, 상황, 사회,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히 긍정적 자기개념은 주위마저 긍정적으로 만들 것이다. 다른 한편 부정적 자기개념은 주위마저 부정적으로 만들 것이다. 긍정적 부모가 긍정적 아이를, 부정적 부모가 부정적 아이를 키운다. 긍정적 리더가 긍정적 조직을, 부정적 리더가 부정적 조직을 만든다. 여러분의 자기개념은 어떠한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인류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경고한다. “너 자신을 알라!”고.

[인천의 아침] 비영리 민간문화단체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하늘 아래 땅 위에 살고 있다. 각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며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산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민간문화단체는 ‘지역사랑·문화사랑·인간사랑’을 추구한다. 부산이든 광주든 인천이든 자신이 사는 지역에 애정을 갖고 거기서 피어나는 문화예술을 함께 누리며 서로 사랑하자는 뜻으로 모여, 삼십 년을 지내왔다. 활동이 왕성하던 때는 지역의 중요한 문화 현안에 대한 포럼을 통해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도서관 살리기 운동, 문화의 거리 만들기, 근대문화유산 보존 운동, 지역답사 등 수 백회의 전시나 공연, 교육 활동을 해왔다. 단체의 초창기엔 인천의 문화인프라도 부족하고 시민의 문화적 갈증도 크던 터라, 무엇보다 문화가 중요하다는 외침은 주목받았고 NGO로서의 긍지도 뒤따랐다. 비영리단체의 소명을 다소 행한 후 나뭇잎 지는 소리도 있었지만, 정치 중립적인 자세를 지키는 탓에 규모가 크진 않아도 활동이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 몇십 년의 시대 흐름을 보면, 교육·문화·노동·의료 등의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사회·문화복지에 대한 결핍이 점진적으로 채워졌다. 병행해서 정치, 경제, 문화, 환경 등 제 분야의 NGO 역할도 활성화되며, 더불어 국가 지원금과 보조금도 채워졌다. 메마른 땅이 축여지자 일부 기금에만 몰입해 타성적으로 되는 단체도 생겨났고, 일부 정치세력에 편승하고 휘둘려 민관 협력의 조화를 스스로 깨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 한국은 BTS나 오징어 게임 등 한류를 수출하는 역량을 지니게 됐다. 인프라도 증진되고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됐으니, 지원금까지 받는 문화단체원에는 여가 선용 및 자아실현은 물론 진일보한 사회적 봉사도 요청된다. 최근 필자가 참여한 단체에선 정규교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인천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에 대한 학생·시민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학교 특별활동 시간의 문화유산교육은 활동가에겐 놀이터이며 일터이기도 하다. 민관의 적절한 협력은 사회적 기여를 높이고 참여자의 자기 성취도 만들 수 있다. 행사 때마다 기꺼이 현수막을 걸고 안내를 자처하는 은퇴한 봉사자와 뒤따르는 젊은이가 아직 있는 한, 움직임은 어디서든 이어질 것이다. 낙엽이든 새싹이든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대로 가지 않겠는가. 한때 지역을 외쳤으니 찬찬히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소명이다. 우리가 주변을 닮는 것은 숙명이며, 그래서 우리는 지역의, 지구의, 우주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다.

[인천의 아침] 저출산 대응의 핵심, 일·생활균형지원 정책

2022년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하며 초저출산 경향이 가속화되자 지난 3월28일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방향이 발표됐다. 그간 30세 이전 자녀를 3명 이상 낳으면 남성의 병역을 면제해 주자는 안이나,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 월 100만원 이하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해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자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 등 현실성도 없고 인권적 감수성도 낮은 저출산 대책들이 거론되면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의 기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저출산 정책 추진계획은 부처 간 협업을 강조하고 돌봄지원과 노동환경 개선, 주거정책 등을 포괄하고 있어 비교적 문제의 진단과 추진 방향이 합리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번 저출산 정책에서는 일·육아 병행 지원 제도(일·생활균형지원제도) 활용을 위한 실질적 사용 여건 조성을 5대 핵심 분야 및 과제 중의 하나로 선정하고 저출산 대책의 핵심으로 남성과 여성이 모두 참여하는 맞돌봄 문화 확산을 강조하고 있다. 모부성 제도 활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에 대한 컨설팅과 인력지원을 통한 적극적인 일생활균형문화조성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약자’를 고려해 육아휴직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예술인까지 육아휴직 급여 지급 대상으로 확대 검토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모 맞돌봄 문화 확산과 여성 경력단절 예방을 위해 현행 일·육아 병행 지원제도 활용 상 걸림돌 해소 집중 추진 및 육아기 근로환경 조성’이라는 장황한 말로 에둘러 표현하면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성평등한 노동환경 조성의 과제가 매우 중요한 저출산 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정책 추진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생활균형지원은 일하는 부모만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이 자기돌봄을 포함한 돌봄의 주체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출산율 쇼크가 환기시키는 우리 사회 재생산의 위기는 인구 위기로 진단될 것이 아니라 재생산권의 위기, 즉 아이를 낳고 키울 개인들의 권리, 스스로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재충전의 권리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사회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인천시에서는 올해 일·생활균형지원센터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일·생활균형과 평등한 돌봄을 위한 지원 사업은 우리 사회 재생산권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의 저출산 정책 과제이면서 동시에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실현하는 성평등 노동정책의 과제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천의 아침] 줄어드는 소아과... 대한민국 미래는 어디로

권역외상센터에는 생명이 위독하거나 사망할 만큼 많이 다친 이들이 온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모두를 살릴 수는 없고,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면 더욱 안쓰럽다. 한밤중에 배달하다 사고로 실려오는 청년을 보면 낮에 일하고 쉬어야 할 시간인데 밤 늦게까지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올해 초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발표한 ‘2050년 대한민국 미래전망과 대응 전략’에 따르면 한국의 미래는 높은 자살률, 고령화로 인한 노인 빈곤율 증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를 비롯한 많은 요인들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대응 전략은 소수와 약자를 돌보는 사회, 자율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 지역사회가 강화되는 사회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런 대전환이 가능할까? 며칠 전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단체에서 폐과를 선언했다. 그만큼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이 심각하고 앞으로 더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소아청소년과는 내과의 분과들이 많은 것처럼 세부 분야별로 진료할 의사가 필요한 필수과에 속한다. 미숙아와 같은 신생아를 진료하거나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환자 수가 적더라도 꼭 필요한 전문가들이다. 게다가 어린아이를 진료하는 건 어른보다 더욱 힘들고 시간이 들기 때문에 그에 맞는 수가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규 의사들이 전공 과목을 선택할 때는 본인의 성향과 함께 앞으로의 전망을 고려한다. 결국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개원의들은 저수가에 대해 많은 진료로 버텨오다 환자군도 줄고 코로나19를 겪으며 버틸 수 없게 됐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고 돈을 벌기 위해 일도 하지만, 돈이 사람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면 방향은 정해져 있다. 열심히 일을 해 월급을 모으는 것보다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해 버는 수익이 훨씬 더 큰 세상이라면 누가 힘들게 일하고 싶겠는가? 해당 전문의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고 시간을 지체하면 사망할 수 있는 중증 응급환자가 하루에 한 번 정도 발생하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치자. 24시간 진료가 가능하려면 해당 과의 전문의는 몇 명이 필요할까? 이 전문의의 하루 근무에 대한 급여는 얼마가 적당할까?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남들이 쉬는 주말에 나와 24시간을 근무한 ‘필요한’ 의사가 아니라 하루 동안 한 명만 진료한 ‘무능한’ 의사가 돼 버린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를 지불할 의지가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다면 대한민국의 대전환은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인천의 아침] 필수과와 지방에 부족한 의사들, 그 해결은?

최근 의사 수 부족과 의대 신설에 관한 기사가 늘어나고 있다. 소아과, 외과 등 병원에서 꼭 필요하지만 밤에도 진료가 필요한 과들의 지원자는 갈수록 적어지고, 이미 근무하던 의사들도 급여는 많고 당직은 없는 병원으로 옮기거나 개원하는 경우가 늘었다. 수도권과 지역의 차이는 더욱 심해져 서울과 먼 지방의 경우 높은 급여를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일까? 국가별로 의료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인구 수 대비 의사 수를 비교하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감기 증상으로 의원을 찾는 경우라면 어느 나라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문제는 생명과 관련되거나 응급한 질환의 경우 서울의 큰 병원에서도 의사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지방 공공의대를 만들고 일정 기간 지역에서 진료하게 하더라도 의무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서울로 옮기거나 전공과를 버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의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저수가 정책을 지속해온 정부와 힘든 일은 싫고 돈은 더 벌고 싶어 비보험 의료시장으로 몰린 의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부족한 의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의사들을 돌아오게 하거나 신규 의사를 늘려야 하는데, 이미 질려서 떠난 이들을 돌아오게 하기는 어려우니 새로운 의사를 늘려 필요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단, 의대를 신설하기보다는 기존의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 의대 교육은 다른 전공과 다르게 교수 몇 명 채용해 강의만 한다고 가능한 분야가 아니다. 여러 기초의학부터 더 많은 임상과 교수들이 필요하고, 다양한 환자의 치료 과정을 경험하는 실습 과정이 갖춰져야 한다. 무작정 의대를 신설하면 환자 경험 없이 국가고시 시험만 준비하는 학원이 돼버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의 전문의는 1000명이 넘는데 울산대 의대 정원은 40명이다. 정원을 두세 배 늘리더라도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비슷한 여러 대형 병원과 기존의 전통 있는 의대의 정원을 일부 늘리면 훨씬 효율적으로 신규 의사를 증원할 수 있다.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문제는 많은 급여와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주면 가능하다. 병원별로 과별 필수 인원 수를 정하고 이를 충족하는 병원에 평가와 수가에서 혜택을 많이 주면 된다. 필수과 의사들이 다른 의사들보다 수입도 많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충분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실력 있는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된다.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보람을 느끼는 후배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인천의 아침] 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 전담기구 설치 필수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성평등성적표가 최하위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돌봄의 의무가 없는 남성을 표준적 노동자의 상으로 삼고 있는 기업문화 속에서 여성이 갖는 성적 차이는 차별대우와 경력단절의 사유가 됐고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의 피해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왔다. 조직 내 위계에 취약한 ‘사회초년생’과 고용불안을 겪는 비정규직과 재취업 중년여성들도 직장 내 성희롱 피해경험률이 높다. 청년여성들의 이직 사유 중 직장 내 성희롱 피해로 높다는 점은 여성의 경력단절예방을 위한 정책에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사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직장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폭력과 안전의 이슈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노동권보호와 경력단절예방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기에 성평등 노동정책의 과제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 2022년 5월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해 사업주의 조치의무가 강화됐다. 사업주는 가해자를 징계하고 근무장소 변경 등의 조처를 바로 시행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제3자인 신고자 포함)에게 해고, 승진 제한 등 불리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 처분이나 형사처벌을 받는다. 기업 차원에서 고용상 성차별 및 직장 내 성희롱 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인 경영관리의 요소가 됐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사업주의 정보 부족과 인식 미비로 이러한 제도가 잘 안착되지 못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 피해자를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사건 예방을 위해 사업주의 인식개선과 기업의 조직문화 자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 기업을 변화시키려는 정책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2020년 설립된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위드유센터)에서는 소규모사업장을 대상으로 무료로 성평등 조직문화 컨설팅 지원과 성희롱 사건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는 2019년 성희롱·성폭력 피해 전담 인권보호관(성평등옴부즈만)을 신설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처리지원과 피해자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2022년 출범한 부산시 여성폭력방지종합지원센터는 범죄예방사업실을 운영하면서 민간 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 대응 전담 창구를 만들었다. 늦었지만 인천에서도 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사업을 전담하는 사업단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 인천은 여성경제활동지원센터 내 인천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사업단 신설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여성일자리 확대사업 추진을 통해 형성한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성평등직장문화 조성과 일생활균형문화 조성 사업으로 확대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예방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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