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나드는 바람은 심산유곡을 나보다도 더 깊이 알아요. 꽃님의 길목에 서서 해마다 나름 봐 봤거든요. 칼보다도 더 나보다도 더 무섭더라고요. 익어가는 것들을 나보다도 더 좋아라 해요. 바람의 아랫배는 강물의 바다 같아서 뾰쪽 가시도 삼킨다고요. 한인철전북 김제 출생. 현대시선으로 등단. 시집 비익조의 꿈 달콤한 인연. 우리시, 한국경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돌아오는 것은 다 아름답다 제 모습 지니고 오는 것은 다 예쁘다 잊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기도드리고 싶다 윤수천
[시가 있는 아침] 입을 닦다들일 하다 쉬는 참 옥수수그늘에 누워 챙이 큰 모자로 태양을 가리고 주먹만 한 참외 한 개를 달게 먹었다 청명한 하늘엔 구름 몇 조각 떠가고 서그럭서그럭 몸 부비는 이파리소리 들으며 낭만에 빠져든다 한데 윙윙 말벌 한 마리 날아와 하늘 향한 잎새 층간을 낱낱이 조사한다 걸려들기만 하면 본때를 보일 참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쓱 닦았다 자칫 냄새 풍겨 덜미 잡히는 날엔 큰 낭패다 과즙이 도는 여분의 침까지 꼴깍 삼킨다 따끔한 침 맛을 피하려면 입을 잘 닦아야 한다 낮아질 대로 낮아져 시침 뚝 떼는 것이 장땡이다 나, 아무것도 안 먹었소 안 먹었소 안 안 먹었소 먹었소…… 벌 소리 시들해지고 내 몸짓을 알아챈 뭉게구름이 희멀건 웃음을 보내며 지나간다
시는 세파를 헤쳐 가는 아버지의 가슴앓이 독백이다 시는 가슴 태워 어둠 밝히는 어머니의 찡한 넋두리이다 시는 희로애락이 시시콜콜 용해된 삶의 애증이다 시는 가슴 따듯이 스미는 꽃과 새들의 노래, 우주의 교향곡이다 박영원1941년 경기 평택 출생. 위해대광화국제학교 부교장 및 산동대학 초빙교수, ‘우리어문학회’ 회장, ‘한중인문학회’ 부회장 역임. 1965년 전우신문 주최 ‘全軍 문예작품 현상모집’ 시 당선.1992년 시집 , 1997년 , 2003년 신인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자유문인협회, 한국민조시협회 회원. 시집 등 다수.
불꽃처럼 타오르는 熱情 담장이 넝쿨처럼 부둥켜안고 戰慄하는 넋. 밝은 빛을 밀어내고 어두운 밤을 맞아 승천을 꿈꾸는 영혼. 한쪽 살을 에어내어 불사르면 꽃이 피고 열매 맺어 싹 틔울 줄 알았는데…………. 아니 아니 그것도 아니 그래서 언제나 타인이여. 안개에서 비가 걸러지는 거리 구름의 넓이를 알 수 없는 하늘 바다의 등을 넘어 땅 끝을 방황하며 손바닥에 빛을 채우고자 하는 몸짓.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바람 부는 언덕에서 茫然히 한낱 입김으로 서 있을 뿐 !정성채
빛살 사이사이 숨어 어둠 몰아내는 여리고 강한 힘, 지구 저편에 내려놓고 온 눈물 자락은 막 태어나는 아기 울음에 밀려 생각의 방이 하루로 퍼진다 누구도 주인이라 고개 들지 않는 겸손의 시간, 쇠비름 자라는 속도에 매듭 풀 서너 발짝 거침없이 걷고, 닭의 덩굴 제 기량껏 감아올리는 아침 일으켜 살게 하는 힘이다 여리고 순수한 눈뜸 어디에 생명의 문을 여는 따스한 사랑 숨어 있을까 부드러운 위로의 손길, 풀꽃 키우고 있다. 김태실
一家를 이루려고 천둥 비 넘어 뿌리를 내린다 맑고 밝은 솔눈으로 목마른 사람 위해 천연약수를 길어 올린다 푸른 그늘 넉넉해라 도마치고개 넘어 진달래 산새와 쉬어가고 사시사철 푸른 웃음소리 형제봉 넘어 퍼져라 광교산 정기 통일의 그날까지 성서천 휘돌아서 솔향은 마을마다 인사한다 넓고 깊은 정다운 한가족 아픈 사람 위해 먼지를 닦는다 얼룩도 말끔하게 산마루에 걸린 눈물도 데려와 새악씨 꽃볼인양 물들인다 퍼져라 광교산 정기 통일의 그날까지
一家를 이루려고 천둥 비 넘어 뿌리를 내린다 맑고 밝은 솔눈으로 목마른 사람 위해 천연약수를 길어 올린다 푸른 그늘 넉넉해라 도마치고개 넘어 진달래 산새와 쉬어가고 사시사철 푸른 웃음소리 형제봉 넘어 퍼져라 광교산 정기 통일의 그날까지 성서천 휘돌아서 솔향은 마을마다 인사한다 넓고 깊은 정다운 한가족 아픈 사람 위해 먼지를 닦는다 얼룩도 말끔하게 산마루에 걸린 눈물도 데려와 새악씨 꽃볼인양 물들인다 퍼져라 광교산 정기 통일의 그날까지 오현정
여명을 머금고 조잘거리는 시냇물소리에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해맑은 마음이라 가랑비가 지적지적 내리는 우중충한 날에도 그리움은 호젓하고 흰 생각위의 황량한 산야에 눈부시게 빛 뿌리는 시인의 사념思念은 천千 날을 울어서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해맑은 마음이라
무심하게 공원을 거닐던 내 시야에, 얼굴에 빗방울이 엇갈리며 떨어진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움찔거리는 벚나무들 어느 새 한쪽 어깨가 젖어 있는 나 어디에도 처마는 보이지 않는다 빗방울은 나무의 뿌리까지 적시며 거세지고 호수의 나머지 어깨도 비에 젖고 있다 빈 의자 위에 있던 과자 봉지 안, 달콤함을 탐하느라 정신없는 개미떼들 때론 달콤함이 처마가 되어주기도 하지 빗방울에 놀란 비둘기는 똥을 내지르고 오리는 풀섶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알을 낳고 비를 피하느라 사람들이 정신없이 흘리고 간 발자국들이 제가 끌고 온 길을 어쩔 줄 몰라 젖는다 비오는 공원에서 뜻밖의 풍경들을 보고 있다
아우성이 아니다 하소연도 아니다 삶의 자연수일 뿐이다 아파도 참아야하는 굴레라면 차마 부끄러워 손등으로 훔칠지언정 연약한 순정만은 감출거야 아우성이다 하소연이다 북받치는 감동의 심장소리다 살아 있어서 강한 가장 강한 무기다 여려서 맑은 보석이다 정태호
미완성의 퍼즐 남겨 둔 채로 꿈처럼 다가 온 새해 세월은 가고 또 오지만 다시 또 새로운 마음 찾으려고 산에 오른다 늘 오르던 산, 같지만 다른 느낌은 새해가 주는 선물 겨울 숲 나무 가지마다 차오르는 수액, 푸른 봄 준비하는 낙엽 속 새싹들이여 그래! 새 봄 맞이하는 저들처럼 다시 퍼즐을 맞추며 걸어 가보자, 새로운 날들을 찾아가보자, 다짐하며 기도하며 청산을 오르었다.
어릴 때 집 앞 공터에 큰 구덩이가 파여 있고 거기에 거꾸로 박힌 기억이 난다. 어떤 아이가 구덩이에 들어가면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짧은 다리를 밀어 넣는 순간 몸이 거꾸로 뒤집혔다. 고요함 속에서 이상하게 두렵지 않고 공터 앞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하늘을 걷는 쉬운 방법을 알았지만 잊혀져갔다. 어른이 되어서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거꾸로 서기를 해 보아야겠다. 한 번쯤 거꾸로 서기를 해보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던 기억을 해보려고 한다. 거꾸로 보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 김미현 경북 안동 출생. 한국경기시인협회, 안동작가회 회원. 글밭동인. 2008년 올해의 안동작가. 2016년 한국 시학 신인상 수상.
중학교 때 물감으로 그린 축 성탄, 근하신년 그림카드 네온 불빛처럼 원색으로 그렸다 군대 간 둘째오빠한테 연하편지로 보냈고 어릴 적 짝꿍 종주 책상 위에 슬며시 올려 두었는데 아, 종주는 지금 오래 전부터 뇌경색으로 세월이 지워져버렸단다. 그래도 혹 고향의 눈길 함께 걷던 추억은 남아 있지 않을까 바닷가 어느 요양원에 있다는 그 친구에게 청솔 박차고 비상하는 백학 그림카드를 그려 보내주고 싶다.
백수해안도로 서녘 하늘에 걸린 낙조 한 점 칠산바다를 배경으로 원형의 선을 간직한 해가 붉은 속 다 게워 노을을 깔았다 흩뿌려 놓은 유채의 질감 강렬한 색채들 엉기어 정사를 하는가 찰나의 순간을 훔쳐보며 순간 나도 저렇게 붉게 뜨거워지고 싶은 것인데. 박경숙전남 영광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집 비금도의 하루 야생을 말리다.
고운 단풍 낙엽으로 뒹구는 만추, 햇살 찾아 나선 아침 저 만치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가 누가 남기고 간 까치밥 홍시 하나, 눈에 시린데 가을 끝 꽃들 바람에 흔들리면 초승달 떠오른다 과수원 울타리 사이로 소슬바람 불어 고즈넉한 밤 달 그림자 나뭇가지에 내리고 思惟가 깊어 간다.
바람은 홀로 서쪽 하늘로 날아가고 바다냄새 짙어가는 갈매기 해변에 서면, 나는 황금빛 노을이 되고 섬 하나 돌아온 바다가 된다. 노을 방황하는 먼 하늘 하얀 별 금빛 노을 언덕에서 흔들리는 정 하나로 어둠의 별 받아내는 깊은 바다, 번지 없는 하늘에 안부를 전하며 밤을 준비하는 너를 위하여 그리움 두고 가는 나를 위하여 허물어진 발자국 세면서 간다. 조유자
해풍을 등에 업고 파도를 기다리는 모래사장에 갈매기 떼가 겨울 햇살을 잡고 한 뜸 한 뜸 음표를 그린다. 하얀 물거품의 파도가 지나간 흔적에는 한 편의 시가 탄생하고 겨울 바다는 등대의 지휘로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 낸다. 배수자
늑대는 달의 젖을 빌어먹고 산다. 보름달은 초승달로 여위어가고 늑대 눈엔 밤마다 초승달이 뜨고 진다. 퇴화한 달빛들 땅속에 묻혀 있다가 푸른 싹으로, 나비로 태어난다. 어린떡잎 들썩임과 아기나비 날갯짓엔 우주를 들어 올리는 힘이 있다. 둥근 열매가 익는다, 혹은 영근다는 말이나 하늘, 하늘하늘 날아다닌다는 말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땅으로 추락한다는 젖은 말이다. 발 달린 것들 허공 딛는 시간이 더 많고, 날개달린 것들도 알고 보면 땅 밟는 시간 더 많다. 초원은 바람을 낳아 기르고, 햇빛은 그늘을 낳아 기른다. 싱싱한 빗줄기는 샛강을 낳아 기르고 있다. 파도지느러미,애간장 다 녹이며 쉬지 않고 시를 짓지만, 壯元은 文魚의 가문에 뼈대와 같은 취급이다. 다만 머릿속 가득 저장된 먹물로 괴발 네발 문어발로 구불링구불링 쓴 획들은 모두 달필이다. 조팝꽃그늘을 밀어내며 하얗게 웃는 저녁은 또 어떤 계절의 물거품 되는 풍경인가. 연두빛 더듬이의 서툰 몸치로 둥둥 물살을 저어간다 ? 에 줄줄이 걸려드는 ! 물음표와 느낌표는 아무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의 부호다. 날개 굳은 나비 한 마리가 개미떼를 까맣게 몰고 하얀 우주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서빈
참사랑은, 말로 하지 못하고 눈빛으로 하는 거야. 참사랑을 눈빛에 담아 한번 깜박하면 광속(光速)으로 달려가 그의 마음에 전해지고 참사랑을 받은 그도 눈빛으로 답하는 거야. 참사랑의 눈빛은 평소의 눈빛과 달라 말로는 구별 할 수 없고 눈빛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참사랑은 눈빛사랑이야. 송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