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예술이라는 전율

호매실동에 수원문화원 빛누리아트홀이 신축돼 개관 축하 겸 민족예술제가 열렸다. 울타리 장미가 붉게 흐드러진 5월 마지막 주 일요일, 기억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 시간은 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저녁 무렵임에도 2, 3층 450여 객석이 거의 찰 정도로 관객이 들었다. 주민들의 참여도도 높았고 수원에서 활동하는 프로 예술가들의 끼를 발산하는 양질의 공연이어서 혼자 보기 아까운 성공적인 예술제였다고 평가한다. 민족예술제는 해마다 열리는 수원민예총의 정기공연인데 군더더기 없는 이번 공연을 관람하면서 몇 번의 전율이 다녀갔다. 긴박한 전쟁터 북소리에 병사들이 벌벌 떠는 것이 전율이다. 병사들은 적군이 몰려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압도적 공포감에 머리칼이 쭈뼛 설 것이다. 그러나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본능적으로 안다. 잠이 확 달아나고 집중력은 최대가 된다. 물리적으로 반응하는 몸이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모아 목표에 몰입하는 것이다. 창의하는 사업도, 창작하는 예술 장르도 전쟁에 버금가는, 두뇌가 풀가동되고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일이다. 어떤 사건을 앞질러 대비할 판단 능력이 발휘될 때, 의미를 추구하고 예상한 결과가 기대만큼의 결과와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전율한다. 우리는 몸의 감각으로 정신적, 물질적 질료를 받아들여 해석하고 분석하고 흡수하고 배출한다. 입력 출력을 반복하면서 지식이 축적되고 나름대로의 철학과 지혜를 터득한다. 그런 과정에 긴장과 이완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정보나 에너지의 입력으로 몸은 긴장한다. 입력이 출력보다 많다면 스트레스 요인이 될 것이나 행동하게 하는 그 입력이 진짜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이 무엇을 받아들이느냐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 경우를 만나는 것이다. 예술은 긴장하고 집중하고 몰입하게 한다. 마음이 설레고 들뜬다. 그 과정이 지나면 즐거움이나 사랑, 행복, 쾌락 등 이완의 감정이 나타난다. 창작자의 열정 강도에 따라 관람자는 그 결과물에 감정이 이입되기도 한다. 예술의 기능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글로써 전율하는 것이다.

[천자춘추] 콤팩트시티 전환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시·도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인구는 2022년 5천167만명에서 올해 5천175만명 수준으로 증가한 후 감소하기 시작해 2052년에는 4천627만명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경기도 인구는 2022년 대비 30년 후 12만명(0.9%) 증가한다고 하지만 수도권 전체 인구는 138만명(-5.3%) 감소한다고 한다. 특히 서울은 2022년 942만명 대비 149만명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는 저출생 기조와 함께 높은 집값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현재 정부는 서울에 집중된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2018년부터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3기 신도시 다섯 곳을 포함해 수도권에 주택 30만가구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부족한 주택 공급과 높은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신규 택지를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후 인구 구조 변화와 함께 3기 신도시 등 건설 후 주택 공급 상황 등을 내다보면서 빈집이 증가하고 기반시설이 노후한 원도심에 대해 도시계획적, 관리적 측면에서 재정비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권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공공 재개발사업 등 다수의 공공주도 정비사업 도입과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는데 사업 활성화의 주요 수단은 용적률 상향을 통한 규제 완화와 사업 절차 간소화가 대부분이다. 당분간 입지 여건 등 사업성이 높은 지역은 사업 추진이 가능하겠지만 앞으로 인구 감소, 저성장 시대를 고려하면 현행 제도적 지원체계로는 정비사업 추진이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인구감소, 고령화 문제 등에 대응해 콤팩트시티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정비사업인 시가지재개발사업을 살펴보면 사업비 구성 중 수입 항목에서 평균적으로 일반회계 보조금 20.6%, 공공시설 관리자부담금 4.4%로 공공의 지원 비율이 25.0%로 매우 높다. 지역 특성별로 살펴보면 도심부 10.7%, 대도시 근교 32.8%, 지방도시가 37.9%로 사업성이 낮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공공의 지원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인구감소, 고령화시대, 기후변화에 대응한 콤팩트시티 형성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도시관리 비용 측면에서도 도시 외곽의 신규 개발보다는 원도심의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토지의 재활용이 바람직하다. 미래사회을 내다보면서 현 시점에서 정부와 지자체는 원도심 재정비에 대해 보다 선제적 지원책과 적극적인 실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천자춘추] 도시에 감성을 입히자

파주 곳곳에 감성적인 멋진 카페와 맛집,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예전보다 파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도시 가치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자유로를 시원하게 달리면 출판도시와 헤이리를 만난다. 고풍스러운 향교, 서원은 물론이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들어 내는 멋진 경관도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를 지식 정보화 시대라고 하면 21세기는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 욕심(欲)이 표출된 것이 감성이다. “맛있다”거나 “멋지다”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감성 마케팅’은 맛이나 향기, 음악, 디자인 등 사람의 기분과 정서에 호소해 브랜드 만족도를 높이는데 이렇게 형성된 브랜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자산 가치로 계속 남는다. 도시 마케팅도 다르지 않다. 도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통해 지역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그 도시를 방문하게 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도시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다. 도시에 감성을 입히면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소비 성향이 늘어난다. 마치 백화점에 가면 분위기에 이끌려 시장보다 돈을 더 쓰게 되는 것과 같다. 감성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물, 가로 시설물, 공원, 공연장이나 갤러리 등 공공시설에 감성을 입히고 그 주변에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 도시에 감성을 입히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감성 도시는 문화와 산업이 융합한 스마트 도시, 시민사회가 지역 이슈에 대해 소통하고 공감하는 도시,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도시, 삶의 주변이 쾌적하고 정돈된 도시로 변모한다. 감성 도시는 한마디로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편안한 도시다. 도시에 감성을 입히기 시작하면 시민들이 ‘살고 싶은 곳’이라는 자부심과 긍지가 높아진다. 앞다퉈 자기가 사는 곳을 자랑하고 동네를 더 잘 가꾸기 위해 솔선수범하게 된다. 파주는 많은 문화유산과 이야기와 멋진 경관을 지닌 곳이다. 즉, 감성을 자극해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풍부하다는 말이다. 어느 분야보다도 문화와 예술, 관광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자춘추] 차라리 ‘최저체력제’가 더 낫다

코파일럿(copilot)에게 물었다. MS가 보증하는 제법 똑똑한 아이(AI)다. “학생선수 최저학력제에 대한 생각은?” “주요 과목 성적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다음 학기 출전을 제한하는 제도로, 체육인들의 교육과 성장을 위한 기회를 제한하는 부분이 있다”고 답한다. 이른바 「학교체육진흥법」은 국가기관인 교육부장관이 모든 학생선수에 대해 최저학력의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고, 그 일정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무려 6개월 동안 ‘모든 대회’ 출전을 전면 금지한다. 악마는 늘 디테일에 숨었다. ‘교육부령’의 신박한 재주로 학생선수에 대한 학교장의 재량은 제로가 되고, 학교체육에 관한 한 ‘교육자치’는 죽었다. 전문체육선수를 꿈꾸는 성장기 학생선수에게 6개월 출전정지는 사실상의 퇴출선고다. 더욱이 출전정지는 체육계 규정에 따른 징계의 한 종류다. 징계는 불법·비위 등 징계사유가 있을 때 징계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학생선수가 국·영·수 최저학력을 채우지 못하는 게 징계사유는 아니지 않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게다. 뚝딱 만들어진 제도도 아니었다. 2004년 이후 20여년의 숙의와 공론을 거쳤단다, ‘학생선수의 학업활동 실태조사 및 최저학력제 도입 타당성 연구’라는 두툼한 연구보고(2008)도 있다. 학생선수의 학업과 운동의 병행을 돕기 위해 필요하단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늘 선의로 포장된다고, 장고 끝 악수도 이런 뻘수가 없다. 다시 물었다. 이번엔 제미나이(Gemini)다. 구글이 키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민한 아이(AI)다. “한국의 학생선수 최저학력제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있니?”“미국은 대학스포츠를 관장하는 민간기구인 NCAA가 일정 GPA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PE(Physical Education)를 필수 과목으로 하고, 방과후 스포츠활동이 활발하며, EU는 유아기부터 체육활동을 장려하고 생활 속에서 운동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교육한다. 한국은 학업과 운동의 병행정책이 최소한의 운동량 확보보다는 학업성취 우선의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어 비판받기도 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령이 헌법적 보호를 받으려면 과잉금지원칙을 지켜야 한다. 학생선수 최저학력제는 “학생의 체육활동 강화 및 학교운동부 육성 등 학교체육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법 제1조의 입법목적에 반한다, 모든 대회 6개월 출전정지라는 수단은 방법의 적정성,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고, 법익침해가 너무 커 법익의 균형성원칙에도 어긋난다. 위헌이다. 이미 챗GPT에 익숙한 AI사피에스에겐 시대착오요, ‘라떼는’일뿐이다, 학생선수 최저학력제를 폐지하라. “꿈은 이뤄진다”고 믿는 많은 학생선수를 학교 밖으로 내몰려 하지 않으려면. AI시대, 차라리 모든 학생의 ‘최저체력제’를 도입하는 게 더 낫다. 골방 속 ‘국·영·수’보다 스포츠를 통해 경쟁과 협동을 익히는 게 아이의 미래에도 훨 낫다.

[천자춘추] ‘지구당 부활’ 논의에 대한 단상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지구당 부활’이다. 2004년 지구당이 폐지된 이후 지구당 부활은 꾸준히 제기되는 의제였다.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지구당 부활 논의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의도로 제기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현재 논의 방향은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지구당 부활이 현역 정치인에게 유리한가 아닌가, 어느 지역이 더 유리한가 등의 지엽적인 논의만 있다. 이것이 무의미하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흔히 ‘시민의 직접 참여가 보장되는 체제’로 이해하는데 정확히는 ‘정당의 지역 하부 기반’을 말한다. 즉, 지구당은 정당이 지역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조직해 대표하는 활동의 가장 기초적인 지역 기반이다. 2004년 ‘돈 안 드는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며 여야 합의로 추진한 개혁 의제 중 하나가 지구당 폐지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돈 안 드는 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실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길을 없애 버렸다. 변호사, 의사, 임대업자, 사업가 등 중·상층 계층의 시민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신(新)금권정치’가 확대됐다. 현재 여야 정당 가릴 것 없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 법조인이라는 사실만큼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정당이 시민들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가 무너졌다. 정당은 선거 때만 요란하게 등장해 표를 구걸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정치 떴다방’으로 전락했다. 힘겨운 서민들의 삶의 문제가 정치라는 공론의 장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여야 모두 입으로는 서민을 말하지만 누구도 책임 있게 실천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지구당 부활은 이런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시민들의 삶에 뿌리 내리는 정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도 정당을 조직해 그들의 대표를 의회로 보낼 수 있는 정치체계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그간 우리 정치가 외면해 왔던 이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향후 한국 정치를 주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천자춘추] 스포츠 선수와 직업인성

지난 2월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갈등을 빚었다. 이와 함께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학교폭력 등 국내 스포츠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운동선수 출신인 필자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시대와 문화, 환경 등이 많이 바뀌었지만 필자가 학생 선수이던 시절에는 부모님의 엄한 밥상머리 교육도 받았고 부모님은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스포츠를 그만두라고 하실 정도였다. 스포츠 선수라고 자만하거나 겸손하지 못할 때는 혼쭐이 날 정도로 스포츠 선수라고 해서 예외가 없었다. 프로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도 감독, 코치, 선배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배려, 대인관계, 인내, 그리고 소통의 방법을 몸으로 익히며 동료애와 애사심을 참으로 끈끈하게 다졌다. 동료, 선후배와 서로 경쟁하면서도 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성장했고 지도자(코치, 감독)를 참 끔찍이도 존경했다. 우리는 하나의 팀이자 가족이었다. 특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러운 대면 인성교육이 이뤄졌다. 그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고 있고 수많은 매체를 접하며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개인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커녕 팀 지도자와 식사조차도 꺼리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이랬다’는 말만 해도 ‘꼰대’ 소리를 먼저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스포츠 선수의 인성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런 교육은 얼마나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대면 인성교육이 시들해진 현 시점에서 보면 스포츠 스타 선수가 되기 위해 그 많은 공과 노력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잘못으로 기업구단으로부터 퇴출 당하거나 해외 진출이 좌절되는 등 스포츠 선수의 성장 발전에 크나큰 장애가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래가 촉망되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별도의 예의범절과 인성교육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에 젊은 숨은 스포츠 인재들이 곳곳에 있다. 이들에게 자율 통제 측면의 직업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직업인성개발원은 직업인성을 ‘모든 직종, 업종에서 직무수행 및 직장생활 적응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역량’이라 정의하고 있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젊은 인재들을 이끌어 주고 기술과 실력 향상만큼이나 사회 진출에 필요한 직업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젊은이들 탓만 할 게 아니라 대한체육회, 시·도체육회, 더 나아가 국가 정책 차원에서 스포츠 선수 대상 직업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훌륭한 스포츠 인재들이 건강한 스포츠 선수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생태∙평화∙넥서스를 통한 협력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식량, 환경안보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불안감이 커지고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위기에 대한 예측과 대응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활동과 역할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환경 현안을 해결할 방안으로 자연기반해법(Nature based Solution)이 대두되면서 생태환경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기후변화를 포함해 다양한 환경·생태 위협에 대비 또는 대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를 통한 공조, 즉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협력은 전 지구적인 차원이 될 수도 있고, 지역(regional) 차원이 될 수도 있으며, 국가, 지역(local), 또는 개인 간의 협력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통의 현안에 대응하고자 노력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 위기 상황에서 협력해 생태환경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고, 관련 연구와 활동도 같이하면서 해결 방향을 찾아가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 지구적 차원도 있지만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차원에서도 협력이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기후변화 공동 대응에 한 나라가 빠진다면 인류 전체의 위험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북한이 우리의 노력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는 전체 기후변화 감시체계에 구멍이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북한의 참여가 없다면 한반도, 동아시아 더 나아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변화 공동 대응을 위해 생태계 보전과 함께 한반도 화해 정착을 위한 활동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때 유기적인 관계인 넥서스(Nexus) 접근을 바탕으로 생태·평화 협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협력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장기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자로서 우리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경기도 내 생태자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은 비무장지대(DMZ) 일원에 대한 보전과 관리 방안도 중요하지만 DMZ 일원의 단절된 자연과 인간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완충지대는 어디인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천자춘추] 유령아이는 이제 없다

신문은 지면으로 보는 것이 제 맛이라며 지면 넘기기를 좋아하던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저출산 시대의 낮은 수치를 접하는 것이 두려워 신문 넘기기가 꺼려지곤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다양한 저출산 정책을 앞다퉈 개발·추진하고 있다. 한편 태어났지만 세상에 없는 유령아이가 2010~2023년 1만1천870명이라고 알려졌고 정부와 국회는 출생 미신고 아동의 발생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제도와 법령을 만들어 7월1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새롭게 도입되는 두 가지 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출생통보제’는 산부인과 병·의원이 태어난 아이의 출생 사실을 보호자 주소지의 시·읍·면장에게 통보해 출생신고가 됐는지 확인토록 하고 만약 신고 기간 1개월 이내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올해 7월19일부터는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보호출산제’다. 이는 신분 노출을 꺼리는 위기임산부를 위한 제도다.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출생신고서에 친생부모의 성명 주소 등 인적사항이 기재되기 때문에 위기임산부는 오히려 의료기관 출산을 꺼려 산모와 태아가 동시에 위험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위기임산부가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은 후 원하는 경우 익명으로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이 두 가지 제도의 운영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심평원은 일선 의료기관과 가장 접점에 있는 공기관으로 의료기관이 제출한 진료비를 심사하고 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병·의원과 전산정보시스템 연계가 용이하며 정보를 수집하기에 최적화된 기관이다. 심평원은 병·의원이 제출한 출생정보를 수집·검증해 행정안전부 행정정보 공동이용센터를 통해 대법원에 통보하며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시스템을 통해 지자체에 전송한다. 심평원이 출생정보의 관문과 중개 역할을 담당해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을 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일익을 담당한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의료기관 내에서 안전하게 아이를 출산하고 임산부와 아이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천자춘추] 등하굣길 보행교통사고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전국에서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는 4만8천560건이 발생해 121명이 사망하고 6만1천97명이 부상을 입었다. 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에서 최근 5년간 어린이 교통사고 특성을 시간대별로 분석한 결과 보행수요가 집중되는 등하교 시간에 어린이 교통사고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등교로 인해 보행 교통량이 많은 오전 8~10시의 사고건수가 4천437건(9.1%), 하교 및 등·하원 등 어린이 이동이 잦은 시간대인 정오에서 오후 6시에 발생하는 사고건수는 2만6천213건(54.0%)으로 전체 어린이 교통사고의 63.1%가 등하교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또 전체 어린이 교통사고 중 2천753건(5.3%)이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16명(13.2%)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안전운전의무 위반은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과 함께 교통사고 12대 중과실에 포함된다. 어린이의 보행특성상 한 방향만 응시하거나 뛰쳐나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반드시 제한속도 시속 30㎞ 이하의 저속으로 주행해야 한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전자는 오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통안전 관리가 미흡한 오후 시간대에 어린이 보행안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교차로와 횡단보도 주변을 신중히 살피는 등 어린이 교통안전 확보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어린이에 대해서는 안전하고 올바른 보행을 위한 철저한 교육과 지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합의에서 행동으로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인 푸르른 5, 6월엔 환경 관련 기념일이 적지 않다. 바다 식목일의 날, 세계 철새의 날, 세계 벌의 날, 국제 생물 다양성의 날, 세계 거북이의 날, 세계 물고기 이동의 날, 세계 수달의 날, 바다의 날, 환경의 날 등. 기념하는 대상과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 기념일을 아우르는 개념은 ‘생물다양성’이다. 모든 생물은 연결돼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올해 세계 철새의 날 주제도 새와 곤충의 관계를 강조한 ‘Protect insects, Protect birds’다. 우리 인류도 생태계의 일원으로 생물다양성에 문제가 생기면 도미노 효과로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지난 2022년 12월, 제15차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30% 이상 보호지역 지정 등을 담은 구체적인 실천 목표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작년 말 육상 및 해양 보호지역 지정 30% 달성 등 전략 목표를 담은 제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했다. 숲, 하천, 갯벌, 바다와 섬 등 다양한 생태환경을 지닌 인천에서도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양서류 서식 모니터링, 백령도 점박이물범 보호활동, 갯벌과 하천 등 저서생물과 조류 모니터링, 야생조류 투명방음벽 충돌 현장 기록 등 이미 시민들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인천시 차원에서도 서식지 관리와 복원, 보호지역 지정 등 실질적인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늘 개발·경제 논리에 밀려 실질적인 보호 정책을 수립하기보다 교육과 홍보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올해 세계 생물 다양성의 날 주제는 ‘From agreement to action: Build back biodiversity’, 즉 ‘합의에서 행동으로: 생물다양성 재건’이다.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합의를 넘어 행동에 나설 것을 강조한다. 생물다양성의 위기,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천자춘추] 노년의 인지 기능 유지

대부분의 노인성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매 역시 단기간의 치료를 통해 젊은 시절의 인지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인지 기능이 아직 건강할 때 치매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을 키우면 치매를 약 4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교육을 통해 두뇌를 계발해야 하고 성인 이후 중년까지는 고혈압과 비만을 관리하고 청력 저하와 머리에 큰 충격을 받는 외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65세 이상 노년기에는 당뇨병 관리와 금연이 중요하고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의 방지, 신체활동 유지가 중요한 요소다. 즉, 신체 활동을 유지하고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노년기의 취미 활동이 치매 예방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활동이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되고 치매를 예방할 수 있을까? 다음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신체를 움직이고 땀을 흘려 신진대사를 올릴 수 있는 유산소운동이다. 두 번째는 두뇌활동을 촉진하는 새로운 내용에 대한 학습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고 서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다. 진료실에서 이러한 부분을 설명할 때 환자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몸운동, 머리운동, 마음운동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추천되는 것이 여러 사람이 모여 하는 그룹운동 혹은 새로운 학습이 필요한 악기 연주, 노래 교실, 외국어 학습,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보드게임 등이 해당한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활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앞서 이야기한 몇 가지 취미 활동을 억지로 선택하기보다 본인의 성격과 취향에 맞춰 재미를 느끼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취미를 선택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인지 기능에 도움을 주는 몸운동, 머리운동, 마음운동의 요소를 함께 고민해야 하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경우 신체적인 활동을 유지시켜 주는 몸운동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세 가지 운동 중에서 몸운동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뇌 이외의 심장, 폐 같은 다른 장기의 건강을 고려할 때 더욱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 같지 않은 신체 움직임과 인지 기능 때문에 위축되기 쉽다. 특히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정기적인 활동이 없을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곤 한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 다양한 취미 활동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우리 사회도 어르신들의 취미 활동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AI시대,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전국에 10개의 경기장이 건립됐다. 당시 월드컵 유치에 대한 기쁨과 설렘의 분위기가 한창일 때 수원월드컵경기장이 완공돼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치렀고 이후 사후관리 방안 모색을 통해 (재)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이 창립돼 12만4천평 부지에 대한 관리 운영에 들어갔다. 2004년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경기도수원월드컵스포츠센터가 건립돼 직영하게 됐으며 2006년부터 자립경영이 가능한 환경이 돼 출연기관인 경기도와 수원시(6 대 4 지분)의 예산 지원 없이 도 산하 28개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첫 물꼬를 트며 체질 개선을 했다. 최근 들어 경기도와 경기도의회의 기류가 지방공공기관의 역할 강화 및 재정 건전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방시대 공공기관의 역할 강화에 따른 ‘재무건전성 제고 방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도 열리며 전해지는 메시지는 공공기관의 자체적인 경영효율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고 있다. 또 기관별 비즈니스모델과 전략체계 발굴을 통한 경영전략 다변화가 강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수원월드컵재단은 2006년부터 축구진흥사업을 기반으로 수익과 공익사업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한쪽으로 매몰되지 않도록 공공기관으로서의 임무뿐만 아니라 다각적인 사업을 발굴해 매년 흑자경영을 달성하고 있으며 시설 노후에 대비, 중장기 시설수선충당금 또한 매년 적립해 나가고 있다. 재단 시설 중 규모 있는 경기도수원월드컵스포츠센터의 경우 민간경영 방식을 도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듯이 2007년 공공성과 효율성을 기반으로 정책사업의 효율성을 동시에 강구하고자 재단 운영 전반에 대해 재무건전성 확보와 세부 종목별 전문가 도입 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 민간위탁 운영체제로 전환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축구전용경기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K리그 경기만 하는 공간적 제약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자 그간 다양한 사업모델을 만들어 왔고 특히 금년에는 신규 비즈니스모델로 발굴한 사업이 ‘수원 2024아시아컵 3차 국제양궁대회’다.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양궁대회를 여는 건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사례로 복합구장으로 활용되는 창의적 접근으로 그 의미가 있으며 전국 9개 월드컵경기장도 본연의 목적 사업 외에 발상을 전환해 타 스포츠 종목과의 연계로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이번 사례를 통해 서울상암과 수원월드컵경기장 외에 적자 운영되는 경기장에도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돼 앞으로 공공기관도 지자체로부터 위임받는 사업에만 몰두하지 말고 민간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의 좋은 사례들을 학습하고 탐구해 창발적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야 할 때다. 급변하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사는 지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은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AI라는 기술적 확장도 결국 인간의 도전적,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됐으며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도 ‘창의성’이다. 그렇기에 공공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기관별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며 체질 개선과 생각 근육을 키워 AI 시대에 걸맞은 공공기관의 역할과 책무를 다하면서 도시민들에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자춘추] 우리 안의 이주

올해 인천시에 사는 이주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사할린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한 고령의 동포 여섯 분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연구 주제를 한참 벗어나곤 한다. 먹고살기 위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던 할머니.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대륙횡단 화물열차에서 견뎌야 했던 추위와 공포. 중앙아시아 땅에 버려지듯 옮겨진 아버지가 맨손으로 땅을 파고 심었던 볍씨.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속절 없이 죽어 나가던 형제자매들. 이방인으로 살지 않기 위해 돌아온 할아버지의 고향 한국에서 다시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아픔. 한국어를 할 수 없어 벙어리가 된 것 같은 답답함.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저쪽 고향’에 사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조선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다시 연해주와 유라시아 대륙을 돌아 함박마을에 다다른 길고 멀고 험난했던 이주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풀려나온다. 연구의 주제보다 더 절실한 이야기들을 차마 끊어낼 수 없다. 낯선 땅에서 온몸이 부서질 듯한 노동을 견디며 피땀 묻은 돈을 가족에게 보내곤 하던 우리의 디아스포라가 ‘고려인’과 ‘사할린동포’만은 아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노예처럼 살았던 하와이 이민자, 그들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송출된’ 이른바 ‘사진신부’, 칼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지녔다는 애니깽 농장에서 일하던 멕시코 한인. 척박하기만 한 만주의 황무지를 개간했다는 중국 동포.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임을 당한 식민지 조선의 국민,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줄타기와 같았던 파독 광부,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고 자기 몸집의 두 배는 되는 서양인을 돌보던 파독 간호사.... ‘이주’라는 말은 이렇게 우리 안에 가득하다. 두어 다리만 건너면 이주해 간 피붙이가 있고 두어 집만 지나치면 이주해 온 이웃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주해 온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이런 마음을 바꿔볼 요량이라면 지난 20일 기념한 세계인의 날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자. 올해로 12회를 맞은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알아보자. 이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민사박물관을 둘러보자. 그렇게 한다면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깻잎을 따는 캄보디아 젊은이를, 냉동생선을 손질하느라 온몸이 꽁꽁 언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를, 이삿짐을 날라주는 몽골 청년을, 아이에게 타갈로어 한마디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필리핀 엄마를, 하루 열두 시간을 단식하며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중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천자춘추] 가정의 달 5월

가족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집단이다. 개인은 가족 안에서 가장 먼저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가족에서의 관계를 확장해 나가며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 단위로서의 가족이 여타 사회집단과 다른 가장 중요한 특성은 애정에 기초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애정을 기반으로 형성된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경제 기능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애정을 기초로 가족을 형성하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가족관계에 만족하고 있을까?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2018, 2022년 경기도민이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70.5%로 대체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전국의 경우 만족 응답은 2018년 69.5%에서 2022년 72.1%로 높아졌다. 몇년 새 ‘부부관계에 대해 만족한다’는 경기도민의 응답률이 전국보다 낮아진 것이다. 한편 ‘자녀와의 관계에 만족한다’에 대한 도민 응답률은 전국 78.6%에 비해 9%포인트 높았으며 도민의 부모와의 관계 만족도 또한 전국 75.4% 대비 0.2%포인트 높은 75.6%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도민은 가족관계 내에서 배우자보다는 자녀나 부모에 대해 더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족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 가족관계에 대해 배우려고 하거나 관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가족 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가족관계를 돌아보는 경우는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그다지 깊게 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데 비해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개선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나 자문해본다. 우리나라는 가족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에 가족의 역량을 강화해 가족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2005년부터 ‘건강가정기본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가족 문제 예방, 상담 및 치료, 가족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건강가정지원센터를 명시하고 있으며 2014년 이후 다양한 가족에 대한 보편적,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통합된 가족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 31개 시·군에는 26개의 가족센터와 5개의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가족관계를 위한 노력의 첫걸음으로 우리 동네에 있는 가족센터를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천자춘추] 자율주행차 시대

미래 모빌리티 시대는 지금의 내연기관차 시대를 넘어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같은 무공해 차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기능을 극대화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뜻한다. 여기에 도심형 항공모빌리티(UAM)와 험로나 특수 지형 등에서 움직이는 로봇의 시대까지 아우른다. 로봇은 모빌리티와 합성어가 되면서 로보빌리티(Robobility)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 모든 미래형 모빌리티에는 자율주행 기능이 포함되면서 운전자 없이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시켜 주는 기능이 극대화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각종 비용 투자 대비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최근 애플은 애플카를 포기하기도 했고 글로벌 기업들은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율주행차의 구현은 각종 비즈니스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질적인 자율주행차 적용은 물론 아파트나 관광지 등에서 운행하는 시속 30~40㎞의 마이크로버스, 완전한 주차기능의 풀 파킹 시스템, 고령자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능동식 안전장치 등에도 응용이 가능할 정도로 사업모델은 무궁무진하다. 애플카의 경우도 포기가 아닌 연기로 봐야 하고 최근 오는 8월 테슬라의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도 레벨4 수준의 로보택시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현대차그룹도 미국 자율주행 기업인 모셔널의 경영권을 가져올 정도로 투자 비용을 늘리기도 했다. 작년 말부터 전기차의 판매가 주춤해 가성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른바 ‘반값 전기차’ 구현을 위해 3~4년은 숨 고르기 시간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 자율주행 기술 확보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앞으로는 완벽한 미래 모빌리티로 재탄생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분명한 것은 자율주행차는 꿈이 아니라 조만간 구현이 가능한 미래의 운행 모습이고 미래 모빌리티를 진정한 ‘움직이는 생활공간’, ‘움직이는 가전제품’으로 변모시키는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 시대를 기대해보기 바란다.

[천자춘추] 10년 공부

필자가 경기도로 집을 옮겨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 됐다. 2014년 3월 중순, 경기도 교육 관계 활동을 하던 분들과 시민사회 활동을 하던 분들로부터 느닷없이 경기도교육감선거에 나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인 데다 경기도에 살아 본 적도 없고 경기도 학교와 교육계에 아는 분이 전혀 없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교육감선거는 정당이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정책이나 공약으로부터 선거조직, 선거자금, 선거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후보가 책임지는 것이어서 당연히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경기도 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현직 경기도교육감이 당연히 계속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별안간 교육감직을 사임하고 선거에도 나서지 않는다고 하니 믿고 있던 분들은 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를 대안으로 논의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필자가 선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민주 혁신’ 후보라는 이름으로 단일화 후보로 경기도교육감 선거를 통해 2014년 7월1일부터 2022년 6월 말까지 8년간의 소임을 마쳤다. 그런데 재임 중 세월호 참사에 따르는 과제는 가장 슬프고 안타깝고 힘들고 때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수학여행 길에서 희생 당한 단원고 250명의 학생과 열한 분의 선생님들을 생각만 해도 슬프고 아프고 안타깝기만 하고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하다. 교육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무슨 말로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져야 하며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할 말을 잃어버리곤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추모관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으니 비록 교육감직은 떠났어도 여전히 가슴에는 큰 돌멩이가 얹혀 있는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필자는 누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참으로 많은 공부를 했다. 그리고 많은 분으로부터 갚을 수 없는 큰 빚도 지게 됐다. 특히 올해 세월호 참사 10주년을 지내면서 여전히 무거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비극의 책임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 더해 학생들을 사회적 인격체로 대하면서 올바른 교육을 지켜가야 한다는 학생인권조례를 이미 서울시의회를 비롯한 광역시도의회에서 폐기하고 경기도에서도 그 길로 간다고 하니 보고 있는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교육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10년 공부에서 남은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천자춘추] 애도의 면역학

‘정신면역학’은 인간의 뇌와 면역체계 사이에 상호관계가 있다고 전제한다. 실제로 말초면역계는 뇌의 순환물질로부터 영향을 받고 뇌는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면역활성물질에 반응한다. 5월부터 자살유가족을 만나 집단상담을 시작했다. 매해 진행해온 상담이지만 자살유가족 앞에 서는 일에는 항상 자신이 없다. 초심자처럼 잔뜩 긴장하고 두려움 마음을 안고 참석한다. 자살유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자살 이후 이전과는 다른 낯선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공기, 다른 중력,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다. 늘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허망하다. 그래도 무언가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에 끝내 찾을 수 없고 마주할 수 없는 것들을 또다시 찾는다. 자살유가족은 원래 자신이 가졌던 모습을 세상을 향해 이미지화시켜 보여주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의 모습도 더는 찾을 수 없다. 자살유가족의 상실은 궁극적으로 자기 상실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린다. 자살유가족 앞에서 구원, 승화, 극복, 회복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말들이 뿜어내는 환상을 단념하는 게 위로가 된다. 구원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 상처가 치유될 거라는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때로는 도움이 된다. 자살에 대해서도 무조건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살에 저항하며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이 바로 자살사망자 고인이었음을 알린다. 유가족들이 내가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고, 사전에 대처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환기한다. 상담이 중반으로 접어들면 상담자는 자신이 어느새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영매(靈媒)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고인의 고유한 삶과 죽음을 해석하는 동시에 가족들이 그동안 어디서도 표출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안전하게 쏟아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 수밖에 없음을 알린다. 다만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생각이 엄습할 때 거기에만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애도(哀悼)가 시작된다. 애도는 앞서 언급한 정신면역학적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면역기능이다. 애도하면서 면역기능이 다시 제 역할을 하고 정신적으로도 버틸 수 있게 만든다. 자신을 지키면서 슬퍼할 수 있는 진지(陣地)를 구축한다. 애도는 새로운 삶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운송수단 같은 역할을 한다. 이는 생명이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고통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에 관해 묻고, 나름의 답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천자춘추] GTX와 빨대효과, 그리고 지역문화

‘빨대효과(straw effect)’라는 말이 있다. 196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용어인데 컵에 담긴 음료를 빨대로 마실 때처럼 고속도로, 고속철도의 개통 등 다양한 교통수단의 연결로 인해 대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나 경제력을 흡수하면서 생긴 대도시 집중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2004년 KTX 개통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 시간이 종전의 4시간대에서 2시간30분대로 단축되면서 부각됐다. 사람들은 고속철도가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를 지방 도시로 분산시킬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 상당 규모의 소비와 도시 기능이 서울로 집중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지방 환자들의 서울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급속히 늘어나 지역 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외침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의 일부 구간(수서~동탄)이 개통됐다. B구간(송도~용산~마석)도 2030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 접근성이 더욱 좋아지면서 집값이 저렴한 경기도나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주분리(職住分離) 현상이 강화되고 역외(域外) 소비율도 급속히 증가할 위험성이 제기된다. 최근 인천시에서는 GTX역에 계획했던 복합환승센터가 경제성 문제로 건립이 불투명해지자 지역 상권의 쇠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역 내 불균형을 해소하고 도시 간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방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쏟아진다. 편리한 교통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기도민들은 다양한 문화를 누리기 위해 서울로 달려간다. 물론 서울의 문화 인프라와 콘텐츠가 경기지역을 압도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사실 GTX 같은 교통의 발달은 사회·경제발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해서 이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교통발달이 가져다주는 좋은 효과를 이용하려는 노력, 즉 상호간의 동반이익을 추구하는 자세를 끊임없이 견지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시장 논리를 따르거나 주민들의 현재적 이해 요구만 수렴해서는 서울과 경기도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결코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지방분권시대 지방정부는 지역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내다보는 고도의 전략과 다각적인 정책을 펴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경기도에는 수준 높은 문화시설과 오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문화유산 등 돋보이는 문화자원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서울에서 느끼지 못하는 문화 체험이 가능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서울과의 문화적 비대칭이 어느 정도는 해소돼야 경기지역의 가치와 매력이 배가될 것이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 당국의 관심과 지원, 경기도 문화 관계자들의 열의과 노력을 기대해본다.

[천자춘추]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를 촉구한다

지난 3월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공개프로젝트(CDP)는 ‘2023년 RE100 연간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실적에 낙제점을 부여했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165개사(2022년 기준) 가운데 66개사(40%)는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국을 재생에너지 조달 장벽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은 것이다. 부족한 재생에너지가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재생에너지는 투자유치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12%에 불과한 반면, 세계 평균은 50%에 달한다. 애플이나 BMW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RE100 목표를 거의 달성한 상태이다. 국내 기업들이 이 목표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요 수출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패널의 수출액이 각각 31%, 15%, 40%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향후 재생에너지가 국내 주력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공급망 기업들에게도 RE100 달성을 요구하고 있으나,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는 계약 취소와 같은 불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목표는 하향(30.2%→21.6%)됐고, 정부의 예산은 40% 이상 삭감됐다.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각종 제도는 폐지·축소 되고, 발전 공기업과 공적 금융의 투자는 소홀해졌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9.2%에 머무르는 동안 독일, 영국, 미국, 중국은 89%, 88%, 77%, 50%를 달성했다. 반대로 경기도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경기도가 기후위기 대응, 재생에너지 분야 대한민국 망명정부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 RE100 선언을 통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30% 목표를 제시하고, 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 도민이 함께 참여하는 4개 분야 13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단지 RE100, 공공기관 RE100, 에너지 기회소득 마을, RE100 플랫폼 등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동체 방향을 제시하고, 예산지원을 대폭 확대(전년 대비 536% 증가)해 재생에너지 시장에 확고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대규모 투자유치는 물론 기업의 재생에너지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환경 문제가 아닌 국가 경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정치, 이념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이익 개선에 힘쓰길 기대한다. 경기도의 발자국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길이 되길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먹고사니즘’과 책 읽기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이 43.0%에 그쳤다. 연령별로 나눠 보면 60세 이상 노년층의 종합독서율이 15.7%로 2021년(23.8%) 대비 크게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20대(19∼29세)는 74.5%로 조사 연령 가운데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지만 역시 같은 기간 3.6%포인트 감소했다. 30대와 40대의 종합독서율은 각각 68.0%, 47.9%였다. 2017년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을 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에 이어 독일과 영국 등이 상위에 랭크됐고 우리나라는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으로 나타났다. 이상하다. 한국은 2023년 1인당 국민소득 3만4천635달러로 세계 순위 14위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경제 선진국이라니 이런 불균형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인의 독서 장애요인으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먹고살기 너무 바빠 책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23.4%),‘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11.3%)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국민 독서량이 줄어든 이유는 유튜브 같은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은 개인 경쟁 체제의 심화다. 극한 경쟁으로 인해 개인적 여유가 없어지고, 필수 노동이나 공부 등을 제외한 독서 활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21세기를 정보화 사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21세기에는 창의력 있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니 주어진 일만 해서는 금방 도태될 것이며, 그에 따라 자신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강조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낡고 답답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의 탄생은 특정한 지식과 재주를 주입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려면 가족, 학교, 회사, 국가 등에 개성과 창의력이 생겨나고 발전될 수 있는 정신세계의 밑바탕이 형성돼야 한다.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력을 길러주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의 독서량 감소는 사회의 원활한 지식 생산과 유통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생각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이 갈수록 조악해지고 있는 이유는 생각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긴밀히 관련돼 있다.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한국인에게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성숙한 사회를 떠나 한국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책은 야만과 싸워 이룬 문명의 기념비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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