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친절한 의료서비스 접근 시스템

최근 병원 예약 앱의 유료화와 관련한 논란이 한창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긴 시간을 기다리는 대신 예약 앱을 이용하면 환자가 병원을 찾거나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유용하다. 문제는 누구나 병원 예약 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이주민은 동네 병원을 찾아도 진료를 받을 수 없거나 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앱을 이용한 예약만 받고 전화로는 예약이 불가능한 병원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의료서비스 접근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예약 앱을 사용하지 않는 2차, 3차 병원을 이용하는데도 어려움은 산재해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대형 병원에서 해당 진료과를 찾아가는 일은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젊은이에게도 쉽지 않다. 환자는 키오스크를 사용해 도착을 등록하고 전광판을 통해 진료 차례를 확인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이름의 일부분은 가려져 있고 환자 번호만 게시되는 경우도 많다. 진료 전, 검사라도 받아야 한다면 병원 곳곳을 누비며 진땀을 빼고 여러 대의 키오스크와 씨름을 해야 한다. 3분쯤 되는 진료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증상을 확인하는 의사에게 적절한 답변을 하는 것은 대단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수납과 처방전 발급에도 번호표와 키오스크 수납 등 온통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환자를 위한 도우미가 있지만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모니터를 꾹꾹 대신 눌러주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에 가면 수십 명이 앉아 있는 대기실에서 약사가 부르는 내 이름을 알아듣기도 어렵다. 함께 가 줄 자식이라도 있으면 일이 조금은 수월할지 모르지만 여기저기 쑤시는 노구를 움직여 혼자서 큰 병원에 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이렇게 동네 병원도, 대형 병원도 의료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인이나 한국어에 서툰 이주민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못한 접근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누구나 편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우수한 접근 시스템도 함께 발전하기를 희망할 뿐이다.

[천자춘추] 안정·지속적인 문화유산돌봄사업 필요

대규모의 재난이 인간에게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도 지진이나 산불이 발생하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지난 2016년 9월 경북 경주와 그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문화재 복구를 위해 전국 문화재돌봄 전문인력 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5주에 걸쳐 부서진 한옥 기와와 담장 등을 긴급 보수했다. 올 초 강릉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문화재돌봄센터 직원들은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밤새 화마와 사투를 벌였다. 미래세대를 위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전승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동시대인들의 의무이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제도 장치의 바탕 위에서 보존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2010년 5개 광역시·도 문화재 상시관리활동지원으로 시작한 문화재돌봄은 문화재 훼손을 사전에 방지하는 예방 개념의 사업으로 ①모니터링을 통해 문화재의 보존상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모니터링) ②경미한 훼손에 대한 신속한 보수 및 응급조치를 실시하며(경미 수리) ③문화재의 쾌적한 관람 환경 및 안정적 보존 환경 조성을 위한 일(일상관리)을 하고 있다. 2023년 현재 경기도를 비롯한 17개 시·도에 23개의 센터가 문화재 9천47건을 관리 대상으로 활발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돌봄센터는 2013년 134개소의 문화재 관리를 시작으로 올해는 31개 시·군 지역 총 807개의 관리 대상 문화재를 선정, 돌봄을 추진 중이다. 경기센터는 수리기술자, 기능자 등 총 48명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돌봄의 인식 강화 및 사업 확대에도 불구하고 인력에 대한 저임금 등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향후 지속가능성에 적잖은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장차 1만4천여건의 지정문화재 대부분을 돌봄사업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예산구조로는 사업의 핵심인 인력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내년 예산도 삭감돼 인원 구조조정이나 관리 대상 문화재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화재보수정비의 100분의 1 예산으로 문화재를 보존하는 돌봄사업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저임금 문제 해결과 청년층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2024년부터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각종 법령이 개편돼 새로운 문화유산 보존·관리 시스템이 요구되는 중차대한 시기에 문화유산돌봄사업의 혁신적 개편도 함께 이뤄지기를 바란다.

[천자춘추] 서울 편입을 부추기는 까치들

장자 산목편에 나오는 ‘견리망의(見利忘義)’의 고사는 사소한 이익을 탐해 자신을 잃어버린 아둔한 새를 ‘익은불서 목대부도(翼殷不逝 目大不覩)’하다고 했다. 나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서너 시간을 지옥행 열차에 시달리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탁트인 하늘과 상쾌한 강바람이 있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는다. 그런데 추석쯤부터 “경기북도? 나빠요, 서울특별시? 좋아요”라는 플래카드가 붙으면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꾼들의 이해관계에서 시작된 서울 편입과 메가시티의 환상은 한탕주의식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시인구가 1천만을 넘어서는 곳을 메가시티라고 부른다. 2022년 10대 메가시티 가운데 8곳이 델리와 뭄바이(인도), 베이징과 상하이(중국), 다카(방글라데시), 멕시코시티, 상파울루(브라질), 카이로(이집트) 등이다. 매년 48개 도시를 대상으로 글로벌 파워를 발표하는 일본의 도시전략연구소(IUS)에 따르면 서울은 런던, 뉴욕, 도쿄, 파리, 싱가포르, 암스테르담에 이어 7위다. 그런데 서울은 ‘근무방식의 유연성’(14.4), ‘재생에너지 비율’(3.2), ‘출퇴근 시간’(26.4), ‘자동차 이동속도’(15.4) 면에서 상하이(15위) 베이징(17위)보다 훨씬 취약했다. 사람들은 미래도시의 이미지로 ‘메가시티’와 더불어 ‘스마트시티’를 언급한다. 전후 맥락을 싹둑 잘라내고 ‘메가시티’, ‘스마트시티’를 언급하는 것은 견강부회한 꼼수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부분이 그렇듯 교통 문제는 김포살이의 가장 절실한 사회적 이슈다. 그렇다고 인구절벽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지하철 노선 연장과 GTX 신설이 수도권 주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까? 지도자는 국민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해 이슈화하고, 파당과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의로운 관점에서 미래의 대안을 구성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성장 신화와 함께 견고한 팬덤을 형성해온 ‘서울공화국’은 부자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 왔다. 문제의 본질은 교통수단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건 서로 가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자랑하지만 수도권 사람들은 매일같이 서울로 수원으로 새벽길을 재촉하고, 밤이슬을 벗 삼아 집으로 돌아간다. 요즘 일상적인 업무 처리는 대부분 메일과 카톡으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출퇴근 지옥으로부터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잠깐의 눈속임과 착각으로 고통을 완화시켜 보겠다는 것이 전부다. 서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집 근처에 일할 수 있도록 기업과 업무공간을 재배치하려는 변화와 혁신적 시도가 필요한 때다. 성장의 시대를 겪으면서 메가시티를 지향했던 도시들은 모두가 ‘콤팩트한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찾고 있다. 잘못된 신화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30년이 지난 후 내가 사는 곳은 40년도 넘은 낡은 빈집과 넘쳐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과거 욕망의 흔적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천자춘추]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서울~양평 道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2008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종점은 양평군 양서면 증동리로 계획됐고 2017년 1월 국토부 ‘고속도로 건설 계획’에 포함됐다. 이어 2021년 4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그러나 올해 5월8일 개정안에서는 고속도로의 종점이 양평군 강상면으로 바뀌면서 의혹이 제기됐다. 시간이 갈수록 의혹만 증폭되고 도로 개통을 기대했던 해당 지역 주민들의 허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필자는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난 30여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실습을 시행해온 교통사업평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점에 접근하려고 한다. 교통사업의 경제성 평가의 핵심은 사업의 비용과 편익의 예측에 있다. 여기서 핵심은 ‘예측’이라는 단어에 있다. 예측의 원칙은 첫째, 예측은 항상 틀린다는 점이다. 둘째, 예측 기간이 길면 더 많이 틀린다는 점이다. 셋째, 전체 도로의 예측보다 각 구간의 도로 예측이 더 많이 틀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교적 많은 자료와 단기간(고속도로의 경우 3~5년)의 공사비 예측은 비교적 정확하다고 본다. 물론 수많은 내·외부 요인 등으로 자재비와 인건비의 예측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집행부서의 사업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운영으로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속도로 사업의 사업비용 오차는 10~30%로 비교적 정확하다. 이번 쟁점에서도 핵심은 20~30년 후에 발생하는 교통량에 대한 예측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하는 것이며 교통량의 예측이 얼마나 어렵고 변수가 많은 것인가를 입증한다. 통상적으로 이용되는 교통 분석의 과학적인 방법도 얼마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어 현재의 여건이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전혀 반영할 수 없다. 또 지금까지의 교통량에 대한 고속도로 사업의 예측 결과는 정확도에 있어 참담한 수준이지만 예측의 세 가지 원칙에서 보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미래에 발생하는 교통량을 각 도로 구간별로 10년, 20년 30년 후로 나눠 추정한다는 것은 교통사업의 장래 교통량에 대한 추정을 통해 예비타당성 제도의 운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사하기도 한다. 또 다른 교통사업 분석의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고려는 ‘할인율’이라는 복병이다. 즉, 비용의 발생은 비교적 불확실성이 적은 단기간에 일어나고 초기에 발생했지만 교통량의 증가에 따른 편익은 고속도로 완공 후 10~30년에 걸쳐 불확실성이 많은 먼 미래에 발생하기 때문에 미래의 편익을 할인율로 현재가치화해 비교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비용·편익 분석에 관한 교과서에서는 전문가가 분석 절차와 지침에 따라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정책 결정자에게 추천하는 것으로 마지막 임무를 하라고 한다. 전문가가 모여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노선을 결정하는 것은 자료의 분석에 대한 검증에 그쳐야 하며 자료의 검증도 분석가의 노선에 대한 수백 번의 정산에 다양한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으므로 전문가 집단의 검증 절차와 교통량 예측에 대한 다른 결과도 충분히 예상된다. 결론은 단순하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른 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하면 정책입안자들이 책임지고 결정해야 한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에서 국내 최고 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이 장기간의 분석 끝에 결정했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외국의 최고 전문기관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의뢰했던 분석 결과를 뒤집었던 전례가 있는 논쟁을 보면 이번 문제의 해결 방안도 보인다. 또 예비타당성 제도의 한계점을 이용해 선거철마다 지역 숙원 교통사업의 예비타당성을 통과시켜준다고 설쳐대는 교통전문가들이 많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교통량 예측의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인구 증감에 있어 수도권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갈수록 감소세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을 고려하면 이번 기회에 교통 관련 예비타당성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자춘추] 헌혈 천사들

헌혈은 생명을 나누는 고귀한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다. 그런데 헌혈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혈액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 특히 10대 헌혈은 2018년 85만명에서 2022년 46만명으로 거의 절반이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혈액 수급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난해 264만여명이 헌혈에 참여했다. 10~20대 헌혈이 143만명으로 54%를 차지한다. 혈액은 아직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고 대체할 물질도 없다. 그렇다고 장기간 보관도 불가능하다. 혈소판은 5일, 적혈구는 35일간 보관이 가능하다. 따라서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분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헌혈이 유일한 방법이다. 혈액은 어느 나라나 부족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인구 감소가 주원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하면 초중고교 학생 수가 지난해 538만명에서 2040년 268만명으로 무려 50.3%나 급감할 것으로 관측됐다. 혈액 부족이 심각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예비군 훈련 때 헌혈하면 하루 훈련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심지어 법적으로 금지된 매혈(賣血) 사례도 있었다. 교육부가 2024학년도 대입부터 학교 교육에 반영된 학내 헌혈봉사활동은 대학입시에 반영되지만 ‘헌혈의 집’에서 한 헌혈은 봉사활동에 반영되지 않아 개인 헌혈이 많이 줄었다. ‘헌혈증서’는 객관적인 증빙이 가능하고 다른 봉사활동보다 값진 일이지만 갈수록 외면받고 있는 헌혈, 헌혈 습관이 중요한 나눔의 가치를 이어가기 힘든 슬픈 사회다. 반면 헌혈을 무려 700회 이상 한 사람도 6명이나 있다. 헌혈 왕은 임모씨가 869회로 한 달에 최대 두 번 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36년간 매달 두 번씩 헌혈한 셈이다. 600회 이상 28명, 500회 이상도 88명이나 된다. ‘헌혈 천사들’이다. 대한적십자사도 이를 기리기 위해 포상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헌혈 유공패’ 제도다. 헌혈 횟수에 따라 30회는 ‘은장’, 50회는 ‘금장’, 100회는 ‘명예장’, 200회는 ‘명예대장’, 300회는 ‘최고명예장’이 수여된다. 현재 7천2명이 명예의 전당에 등록돼 예우를 하고 있다. 특별한 보상을 바라고 헌혈하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수혈을 받을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일상 속 따뜻한 나눔, 헌혈은 생명 존중이라는 숭고한 의미도 있다. 연말 ‘헌혈의 집’을 찾는 천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천자춘추] 성탄의 계절, 성탄 문화를 생각하다

성탄의 계절이다. 지역마다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열린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 문화는 19세기 후반 선교사들과 함께 국내에 들어왔다. 초기 선교사들이 근대 학교와 교회를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성탄 문화가 한국에 스며들었다. 선물을 교환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풍습을 이었다.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는 아이들을 모아 성탄절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양말에 선물을 담아 학생들에게 나눠줬는데,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준 선물로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서재필 박사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 1886년 12월24일자에 ‘내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이라’는 최초 기사로 성탄절을 소개했다. 1897년 ‘독립신문’과 ‘대한그리스도인회보’에도 배재학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행사가 소개되는데, 주로 성탄극을 공연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성탄 문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새벽송과 크리스마스 씰이다. 첫 크리스마스 씰은 카나다 의료선교사로 온 셔우드 홀 박사가 결핵의 예방과 계몽을 위해 도입했다. 1932년 발행된 씰에 조선인의 자랑 거북선을 그려 넣었다. 거북선의 포를 결핵마크에 조준해 결핵을 무찌른다는 의도로 디자인했으나 일제치하에 저항정신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남대문으로 교체되는 수난을 겪으며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성탄 문화는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상업성을 띠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한국에서는 서구와는 달리,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의 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45년 해방 후, 미 군정은 평소 야간통행 금지를 실시했으나 성탄절과 12월31일에 예외를 적용했다.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성탄절을 휴일로 법제화하고 6·25 전쟁 기간중에도 미군들로부터 그 의미가 새롭게 전파됐다. 전쟁의 영향은 성탄절을 일제강점기의 소비와 여흥의 문화에서, 폐허 속에서 새로 태어난 어린이들을 위한 기쁨과 축복의 날로 자리잡았다. 전쟁 이후 경제발전과 유신정권이 들어서며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기에도 새벽송은 자유와 기쁨의 상징이 됐으나 1982년 1월,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면서 그 의미도 크게 퇴색됐다. 그 후 성탄의 의미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연말연시엔 춥고 배고픈 이웃에게 ‘나눔’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어져 왔다. 다시 성탄절이 다가온다. 이 시대에 성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탄은 전 세계인의 축제다. 상업용 이벤트나 교회 내부용으로 가두려 해선 안된다. 처음 예수그리스도가 오신 곳은 가장 낮은 절망의 자리 누울 곳 없는 ‘마굿간’이었다. 성탄의 의미나 문화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나, 흥청망청이 아닌 자신을 비우며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함이 아닐까. 성탄에 가장 아름다운 공연은 홀로 된 이들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이라는 사랑의 실천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나눔과 기부 문화로 사랑의 온도계가 점점 더 올라가기를 소망하며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임하기를…

[천자춘추] 인터넷 리뷰 명예훼손에 대해

인터넷 명예훼손이란? 정보통신망법 제70조 벌칙에 의하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거짓인 경우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명예훼손의 대상이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판례에 의하면 명예를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 이해한다면 법인도 사회적 평가의 대상이고 명예훼손의 보호법익을 향유해 당연히 명예의 주체가 되고 ‘타인’과 ‘사람’으로 달리 표현하는 경우 문언의 의미,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 보호법익 등을 고려해 ‘타인’에는 자연인과 법인이 모두 포함되고 ‘사람’에는 자연인 외에 법인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나눌 수 없는 등의 이유를 판시한 사례가 있다. 그러면 인터넷 후기(리뷰)는 명예훼손이 될까? 사례를 보면 산후조리원의 장단점을 기재하면서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직접 겪은 불편한 일을 공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①주관적인 평가를 담은 후기인 점 ②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불만에 대응하는 산후조리원의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터넷 게시글에 적시된 내용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했으며 ③산후조리원에 관한 정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④피고인이 같은 내용의 글을 반복 게시했지만 산후조리원의 요청에 의해 삭제되거나 게시가 중단한 것에 기인하고 ⑤카페 회원이나 산후조리원 정보를 검색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한정되고 그렇지 않은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⑥산후조리원을 이용한 모든 고객이 만족할 수 없으므로 영리 목적으로 산후조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후조리원은 불만이 있는 산모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명을 어느 정도 수인해야 하는 점 ⑦불편을 겪었다는 내용의 글은 사회적 평가가 저하한 정도와 공공의 이익을 비교했을 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 기존 유죄를 파기했다.

[천자춘추] 단하, 목불을 태우다

‘단하(丹霞)’ 스님은 추운 겨울날 만행(萬行) 중에 낯선 절에서 하룻밤 묵게 됐다. 객실에는 온기가 전혀 없어 추워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땔감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단하는 궁리 끝에 ‘대웅전’의 목불을 모셔다가 도끼로 쪼개 불을 지폈다. 그때 지나가던 주지 스님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단하는 태연하게 “너무 추워서 군불을 지피는 중이오.” 주지 스님은 “당신 미쳤소? 부처님을 쪼개서 불을 때다니. 그러자 단하는 아궁이의 ‘재’를 헤치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단하의 행동이 이상해 “아니, 당신 지금 뭐를 찾고 있소?” 단하는 “부처님을 다비(화장)하였으니 ‘사리’를 찾는 중이오.” 주지 스님은 고함을 치며 “목불에서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그러자 단하는 태연하게 “그렇다면 나머지도 아궁이에 넣어야겠소?” 화가 난 스님은 단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단하는 스님의 손을 뿌리치며 “스님이 방금 ‘나무 토막’이라고 하지 않았소.” 주지 스님은 “... ...!” “목불(木佛)은 과연 부처인가, 나무 토막인가.” 우상숭배(偶像崇拜·idolatry)는 불교의 ‘근본정신’이 아니다. 석가는 “그 어떤 상(像)에도 현혹되지 말고, 오직 ‘자신’과 ‘법’(경전)을 등불 삼아 혼자서 정진하라”고 했다. 불상(佛像)에 빠져 본질(解脫·해탈)을 보지 못하는 일을 염려한 것이다. 불교는 “일체(一切)는 고통이라 하여, 바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한다. 깨달음을 통해 해탈하여 열반(涅槃)에 드는 것”이다. 고통의 근원을 ‘자아(自我)’에서 찾아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종교계는 우상화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종교는 이미 상업화됐고 기복신앙(祈福信仰)화한 지 오래다. 마치 나무 토막을 부처라고 우기는 형상이다. 이제는 ‘우상화 놀이’를 당장 그만두고 ‘종교의 근본정신’을 회복해 ‘인류 구원’에 나서야 할 때다.

[천자춘추] 아동 돌봄은 ‘언제나 On’

최근 정부 및 전국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돌봄’과 관련해 큰 관심과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이는 한국의 인구 구조와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지역민에 대한 애정 어린 시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갑다. 경기도에서도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360˚ 돌봄’이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필요한 돌봄이 발생했을 때 공적 돌봄이 보완 기능을 하게끔 정책을 실현하고자 다양한 제도를 준비 중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때부터 삶을 마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로 내용만 달라질 뿐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돌봄의 대상을 영유아, 아동, 장애인, 노인 등으로 구분해 일정 대상만을 선별적으로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온 것 같다. 돌봄의 집중도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일상 안에서 가족을, 동료를, 친구를, 지역사회 내 이웃을 서로 돌보며 살아간다. 즉, 돌봄은 일상 안에서 누구에게나 상시적으로 필요한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며 저출생과 고령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일-가정 양립 등의 사회 문제에 직면한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사적 돌봄의 영역만으로는 채우기 힘들게 됐다. 돌봄의 사회화와 공공성 강화를 통해 보편적으로 함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돌봄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실행해야 하는 돌봄은 ‘아동기 돌봄’이다. 왜냐하면 아동기 돌봄은 생존권과 연결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아동기 생존과 관련해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다양한 영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영유아 유기 및 방임, 아동학대, 전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 학교폭력, 왕따, 교통안전사고 등등. 자신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세상 밖을 향해 도와달라고 외칠 수 없는 약하고 작은 존재인 아동들의 돌봄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돌봄은 언제나 민감함을 갖고 스위치를 항상 켜 두며, 따뜻한 마음으로 실행되기를 바란다.

[천자춘추] 버려진 공간의 활용 적극 고민할 때

언제부턴가 빈집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과 한국국토정보공사의 빈집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은 151만1천306가구로 주택 재고의 8.2%에 이른다.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경기도에도 4만104가구에 이르고 있어 빈집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다. 빈집을 방치하면 주거환경 악화, 미관 저해, 우범지역화와 공동화, 주택가격 하락 등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는 빈집을 철거한 후 세액이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지방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빈집을 철거의 대상만이 아니라 재활용한다면 해당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자원도 될 수 있다. 몇 해 전 할리우드 배우 로레인 브라코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삼부카의 오래된 집을 1유로에 구입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바 있다. 1유로 프로젝트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인구 감소로 빈집이 증가하자 지역을 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지자체가 공공 재원을 투입해 빈집을 매입한 후 해당 주택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1유로라는 상징적 가격으로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제 우리도 더 이상 빈집을 철거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빈집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조건이 요구된다. 지방정부가 빈집을 저가에 매입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1유로와 같은 상징적인 가격으로 매각이나 임대해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 구매자에게 자부담으로 일정 기간 주택을 개·보수하도록 하고 의무거주 기간을 설정해 공간 이용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빈집을 주택으로 재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지역사회 통합과 고용 창출을 위한 지원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공공이나 민간으로부터 비어 있는 공간을 저렴하게 임차해 창업자나 예술가들이 이용하게 한다면 제2의 성수동, 문래동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버려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천자춘추] 경기도, 계란 흰자 아니다

“걔가 경기도를 뭐라고 하는지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화제가 됐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대사다.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의 가상도시 산포시에 사는 3남매의 일상을 다룬다. 드라마는 경기도를 서울의 변두리로 묘사하고, 주인공인 3남매도 노른자인 서울에서 태어나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그런데 정말 서울은 노른자고, 경기도는 흰자일까? 경기도는 흰자가 아니라 풍부한 맛과 영양을 자랑하는 영양란 그 자체다. 역사만 천 년이 넘어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고 인구는 1천400만명으로 전국 최대다. 산과 호수, 드넓은 평야가 어우러져 있고 심지어 바다도 끼고 있다. 서울에 직장을 둔 드라마 주인공들은 왕복 4시간 가까운 출퇴근 시간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실 경기도 곳곳에도 기업과 일자리가 풍부하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반도체, LG 디스플레이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본사와 공장이 있고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판교에는 최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불야성이다. 파주 출판단지와 헤이리마을처럼 문화와 예술 분야 종사자들의 성지 같은 곳도 있다. 이미 지역내총생산은 경기도(592조2천억원)가 서울(472조원)을 압도한 지 오래다. 더불어 경기도의 신도시들은 서울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풍부한 녹지공간, 넓은 공원, 잘 갖춰진 문화 및 보육시설 등이 잘 마련돼 누구나 살고 싶은 곳이 된 지 오래다. 무상급식, 고교 무상교육, 초등학교 치과 주치의 제도, 공공 산후조리원 등 경기도에서 시행했던 정책들은 대한민국을 선도했고, 결국 표준이 됐다. 정부와 여당에서 경기도 몇몇 도시들의 서울시 편입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막상 경기도민들은 서울시 편입에 대해 시큰둥하다. 경기도는 더 이상 80, 90년대 서울의 위성도시나 베드타운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지인이 아닌 발 딛고 사는 도민의 눈으로 삶의 터전을 바라봐야 한다.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을까?” 산포시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3남매가 내뱉은 대화다. 자신이 사는 곳에 정을 붙일 수 없다면 어딜 가든 똑같은 삶은 반복된다. 경기도 곳곳에는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역에 애정을 갖고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청년과 일꾼들이 있다.

[천자춘추] ‘보행신호시간’ 개선의 필요성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보행자 우선 교통체계로 개편’ 등의 보행자 보호정책이 효과를 나타내면서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수준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하위권에 있다. 특히 2021년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 사망자가 34.1%를 차지하고 있어 교통안전 선진국에 비해 보행자 안전 수준이 낮은 편이다. 보행자 우선 교통체계로 국가의 교통안전 정책이 개편됨에 따라 보행자 중심의 보행 신호시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2022년 경찰청에서는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교통약자 보행속도 기준을 초속 0.7m로 개정했다. 하지만 보행신호시간은 횡단보도 길이와 보호구역 유무에 따라 그 길이가 결정되며 24시간 동일하게 운영된다. 이처럼 보행자의 수요와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보행신호시간 계획으로 보행자의 수요가 증가하는 시간대에 적색신호 시 잔류하는 보행자가 발생한다. 이러한 잔류보행자는 교차로 내 차량과의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반면 차량신호시간의 경우 시간대별로 교통 수요에 대응하는 정교한 운영을 위해 시각제어방식(Time Of Day·TOD)을 이용하고 있으며 주기적인 조사를 통해 시간대별로 최적의 차량신호시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잔류보행자는 교차로 내 차량과의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횡단보도 내 보행자 보호 의무 강화를 위해 우회전 시 일시정지 등 ‘도로교통법’ 개정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내 녹색신호 시 우회전이 가능한 우회전 신호등 설치를 신설했다. 하지만 보행신호시간이 24시간 동일한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의 수요가 증가하는 시간대에 적색신호 시 잔류하는 보행자가 발생할 경우 우회전 신호등 설치는 오히려 보행자의 안전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우회전 신호등 설치 시 횡단보도 내 잔류하는 보행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잔류 보행자를 고려한 보행신호시간 계획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교차로 내 보행자 안전을 위한 개선은 바닥형 신호등, 대기쉼터, 중앙보행섬, 무단횡단 방지 펜스 등의 물리적 시설물 설치가 우선되고 보행신호시간에 대한 개선은 미미한 실정이다. 교차로 횡단보도를 대상으로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설 개선과 더불어 보행신호시간 계획에 대한 연구와 개선이 필요한 시기다.

[천자춘추] 한 명의 아이도 소외받지 않는 교육의 길

경기도의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받지 않는 교육’은 실현되고 있는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그리고 공교육이 포괄하지 못하는 대안교육 시스템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고 있는가? 2021년 대안교육기관법 제정 이후 2022년부터 대안교육기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이와 관련된 조례는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2021년 대전교육청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광주광역시 등에서 이미 제정됐고, 지난 24일 인천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도 인천광역시교육청 대안교육기관 지원 조례안이 통과돼 12월 본회의 최종 의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7월 ‘경기도교육청 대안교육기관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 개최 이후 경기도에도 조만간 대안교육기관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이 이뤄질 것을 기대했으나, 여전히 준비 중인 상황이다. 경기도에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대안교육기관이 분포하고 있는 여건과 예산 제약의 한계를 고려하면 조례 제정과 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고민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뒤늦게 조례 제정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경기도는 각 지역의 조례 시행의 사례를 토대로 경기도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선진화된 조례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안교육기관 지원 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내용적·절차적 합리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대안교육기관의 재정지원 대상과 범위인데, 조례에서는 인건비와 교육활동운영비, 급식비 등의 지원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재정지원 지침에 기관 특성을 고려하여 차등적 지원방식을 설계하여 적용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신청형과 공모형을 구분해 기관별 예산을 다르게 하는 서울시 사례처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이른바 상대적 평등의 원칙을 적용해 교육기관 운영과 관련된 기본 예산은 동등하게 지원하고, 공모방식을 통해 각 교육기관 및 재학생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차등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발달장애 등을 이유로 대안교육기관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불가피한 결정으로 대안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고기능 자폐성 장애, 경계선지능 및 정서·행동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 일반 학교의 경우 적응상 어려움이 있고, 특수학교는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학생들에 밀려 이 또한 입학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대안교육기관에서 학생들 수준과 수요에 부합하는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지만, 높은 학비 부담으로 입학 기회를 갖지 못하는 학생들이 교육의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학교 밖 장애아동·청소년의 특수교육대상자 지원에서도 배제되는 이중 차별을 겪고 있다. 초·중·고교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연간 1천만원 정도의 예산 지원이 일반학교에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대안교육기관에 다닌다는 이유로 학비 전액을 본인부담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특수교육에서조차 형평성 논란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장애 특성을 갖는 학생들이 재학중인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별도의 추가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대안교육기관법 제정의 의의는 공교육과 다른 교육기관이 엄연히 존재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보편적 교육복지를 구현하는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지원을 통해 교육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강화한다는 것에 있다. 대안교육기관 행정·재정적 지원은 각 대안교육기관의 교육방향과 특성을 존중하면서 대안교육기관의 안정적 운영과 아동·청소년의 교육활동 보장을 위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의 대안교육기관지원 조례 제정을 통해 더 좋은 대안교육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실질적 계기가 마련됐다는 소식을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자립의 진정한 의미

자립(自立)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 어떤 날도 혼자서 이뤄지는 날이 없다. 엄마가 된 딸의 옆에도 든든한 조력자인 친정 엄마가 있고 성인이 된 아들딸의 궤적에도 여전히 부모가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족, 친구, 동네, 학교, 직장, 국가 등 소속이 필요하다. 개인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안전장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10월27일 양주시 소재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장애인식생활체험관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발달장애인 자립형 식생활교육 초급반 수업을 마쳤다. 교육을 진행하기 전에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에 대한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무척 컸다. 특히 날카로운 칼과 불을 사용하는 과정에 안전사고 걱정은 더 컸다. 한 번도 칼을 사용해보지 않은 발달장애인도 있었다. 식칼을 들고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쩔쩔매는가 하면 기다란 대파를 들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장애인도 있었다. 다양한 행동을 보였지만 염려와는 다르게 서로 도우며 신체 움직임을 통한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한 자존감과 표현 증진에 긍정적이었다. 파주의 한 시설에서 근무하는 A씨는 소근육이 미약해 스티커를 붙이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의사를 확인한 후 대신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다.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에게 음식을 먹여 줄 때면 식판에 담긴 음식에 그 시선이 머무는데, 그것은 먼저 먹고 싶다는 뜻이다. 튀김을 유난히 좋아하는 발달장애인이 식사가 마무리됐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것은 더 먹고 싶다는 뜻이다.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로 충분히 의사를 전달한다. 우리 사회는 특히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이 장애인 거주 시설이 아닌 동네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크다. 발달장애인에게 자립이라는 건 꿈 같은 이야기라고,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냐고, 혼자서 요리는 할 수 있냐고, 혼자 살다가 화재를 내는 게 아니냐며 두려워한다. 이 모두 합리적이지 못하다. 자립이란 ‘온전한 나를 가지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자립의 진정한 의미’에 가까워진다. 자립은 한자어의 뜻풀이처럼 고정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자립의 개념은 열 가지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유일한 개인이 타인에 의존하고 관계에 의지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자립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거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당연히 관련법뿐 아니라 다양한 정책, 사회적 합의와 같은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거주 시설이든 아니든 자기 선택권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여러 방면으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통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을 바꿔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천자춘추] 신의 길, 노예의 길

외국 콘텐츠(영화,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 제작물의 영어 자막을 동시에 시청할 때 번역의 질에 따라 그 감동의 크기가 다른 경험이 모두들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은 대형 멀티플렉스용 콘텐츠보다는 다양한 모티브를 가진 OTT 서비스를 시청하는 빈도가 높아져 더욱 그렇다. 필자의 후배가 경영하는 글로벌 번역(70여개 언어)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설립돼 국내 유수의 투자자들이 미래 가치와 비전을 낙관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껏 누렸다.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같은 메가 플랫폼 전성시대에 콘텐츠 번역물의 물량도 증가하고 K-콘텐츠의 글로벌 유통이 폭증해 호황과 급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그러나 돌연 산업의 미래 방향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시장 상황 변수가 출현해 새로운 비즈니스 도약 모델의 구상이 절실한 단계에 접어들게 됐다고 한다. 바로 챗GPT를 시작으로 구글의 바드 등 실시간 번역과 자료 비교가 가능한 인공지능이 우리의 피부에 맞닥뜨리게 된 현실이다. 웬만한 전문서적도 초벌 번역의 완성도가 예전에 비해 엄청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에 흔히 정보기술(IT)업계에서 언급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넘어선 수준의 컨텍스트를 전문가가 감수만 잘하면 한 권의 책이 뚝딱 번역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참으로 상전벽해다. 그뿐인가! 비틀스의 미완성 발표곡이 인공지능(AI) 기술로 존 레넌의 목소리를 복원해 공개되고 AI CNN을 표방하며 2024년 개국을 준비 중인 채널1(Channel 1)이 파일럿 뉴스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세상이 됐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해 이와 유사한 격세지감적 변화는 이미 알파고와 이세돌, 커제의 바둑 대결에서 본격적인 서막이 올랐다고 본다. 인간의 뇌가 감당하기에 딥러닝에 의한 알고리즘 데이터 앞에서는 기술적인 수준으로만 보면 인간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또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판단 하나가 당사자의 생살여탈을 결정짓는 경우는 어떠한가. 내년부터 프로야구에서 재밌는 시도가 전 세계 최초로 한국 KBO리그에서 시행된다. 바로 경기의 구심이 맡는 볼과 스트라이크의 판정을 인공지능이 맡아 본다. 사실 야구는 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큰 운동이라 구심의 존재가 타자와 팀에 가하는 압박은 저승사자와 같을 것이다. 기계적인 볼 판정과 아울러 경기 전체의 운영을 관장하는 심판진의 경기 흐름에 대한 조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이런 판단, 판결, 판정이 중요한 영역이라면 아마 우리의 사법체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 능력의 유한성으로 인해 형평성과 법리의 해석 적용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간혹 갈등적 시비가 일어나는 판사의 결정이 보도될 때마다 하루빨리 인공지능 판사를 기용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로봇 판사가 법정을 지키고 있을 날이 선연하다. 잘못된 판결을 나와 똑같은 인간에게서 받는 것보다 뭔가 지능적 측면에서 월등하고 정실이나 이권 싸움에 엮여 있지 않은 로봇이 더 공정하다고 수긍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 스티븐 호킹 등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인공지능 고도화에 대한 인류의 암울한 전망 또한 유념해 보자. 머지않은 장래 SF영화의 단골 소재인 인류와 인공지능 간의 전쟁, 아이언맨의 자비스 같은 로봇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다. 인간의 인공지능 기술 의존은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완전성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대세의 트렌드가 될지라도 인간을 위한 기술은 무엇인지,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인문학적 성찰 노력이 인공지능 개발에 투여되는 정성 못지않게 광범위하게 숙고돼야 한다. 실로 인간 스스로 주체적인 신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노예가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천자춘추] 무형문화재 소멸 위기, 도·의회 나서야

케이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연일 뜨거운 가운데, 최근 BTS의 멤버 RM의 화보에 이색적인 소품이 등장했다. 세계인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소품은 궁중장식화 중 하나인 요지연도, 괴목평상, 전통한옥에 치는 발인 신렴 등 전통공예품으로, 놀라운 사실은 해당 공예품은 무형문화재 보유자 등 전승자가 직접 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 나아가 한류를 이끄는 K컬처의 저변에 든든히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무형문화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져 오는 문화유산을 일컫는다. ‘인간문화재’라는 용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무형문화재는 문화재 중에서도 특별하다. 고정된 형태를 가진 대부분의 문화재와 달리 무형문화재는 고정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사람이 향유하는 방식에 맞춰 변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예부터 우리의 삶과 함께 전승돼 온 무형문화재는 후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임에도 보유자 대부분이 이미 고령인 상황에서 생활 여건의 변화, 생계 문제, 사회적 관심 저하 등으로 전수자를 찾지 못하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붓털의 부드러움에 매료됐던 소년은, 하루 서너 시간 쪽잠을 자며 전통 붓 제조 방식을 고수해 어느덧 팔순이 넘은 붓 만드는 장인이 됐다. 그러나 기계로 찍어낸 저가 상품의 물량 공세에 장인의 작품은 설 곳을 잃었고 전수 후계자들도 하나둘 떠난 상황에서 머지않아 이 장인의 예술혼마저 끊길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간 경기도의 전통과 역사성을 이어왔을 뿐 아니라 유형문화재 보존에도 크게 기여해온 경기도무형문화재는 70개로 그중 옹기장, 양태장, 생칠장, 화각장 등 4개 종목은 보유자가 없고 전승자가 부재한 종목은 22개다. 경기도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와 전승교육사는 도에서 매월 각각 140만원, 60만원을 받지만 최저시급을 고려했을 땐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무형문화재는 세대교체가 시급한 상황에 더해 불규칙한 수익으로 젊은 전승자에게 외면받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무형문화재를 지킬 수 있는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보유자에 대한 지위 향상, 전승자에 대한 처우개선,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지원 정책만이 무형문화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제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생계 걱정 없이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또 전수자가 없어 명맥이 끊긴 종목들의 숨은 보유자를 찾아 복원에도 힘쓰고, 무형문화재 관련 홍보를 위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인지도를 높이고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이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다.

[천자춘추] 갈 길 먼 수원 관광도시

얼마 전 제주 출장길에 올랐다.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공항리무진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을 다시 검색하고 앱도 새로 깔아야 했다. 공항버스 티켓을 예약할 때는 불안정한 시스템 때문에 전날 저녁부터 문의 전화를 하는 등 불편함은 여전했다. 수원역 공항리무진버스 정류장. 밤새 술 파티를 한 듯한 노숙인과 상점들이 내놓은 쓰레기봉투, 광장을 그림 그리듯 흘러다니는 음식쓰레기 국물까지 수원역광장은 상쾌한 아침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문제는 양손에 캐리어를 든 외국인 모녀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중앙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모녀가 정류장으로 들어섰는데 한 손엔 신용카드를 들고 공항버스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주변 시민들이 정류장 주변에 붙은 안내문 등을 함께 찾아봤지만 한국인의 눈에도 딱히 어떻게 하라는 안내를 찾을 수 없었다. 답답했던 한 대학생이 고객문의처로 보이는 번호로 연락을 취해 봤지만 늘 그렇듯 연결이 되지 않았다. 비예약자는 아예 탈 수 없는 것인지, 현장에서 티켓을 살 수는 없는지 등 사람들은 외국인을 도우려 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뒤늦게 관계자가 와서 설명을 해줬는데 함께 듣던 한국인의 입장에서도 흔쾌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신용카드는 절대 쓸 수 없고 오로지 현금만 되고, 한국인이 쓰는 앱을 내려받아 능력껏 예약하라는 거였다. 혹시 빈자리가 있다면 탈 수는 있지만 빈자리 여부는 버스가 와 봐야 안다는 거였다. 요즘 같은 정보기술(IT) 시대에 빈자리 여부조차 알 수 없다고? 빈자리가 있어도 어쨌든 현금이 없는 사람은 탈 수 없었다. 다행히 이 상황을 함께 목격했던 한국인 승객들이 현금을 모아 모녀에게 전달했고 외국인 모녀가 다음 버스를 무사히 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무려 226만명에 이른다. 인구 대비 4.4%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중 60%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안산에 이어 수원은 무려 7만여명에 달하는 국내 제2의 다문화도시다. 거주민 환경 변화가 이토록 확연한데 아직도 공항버스 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과연 다문화, 스마트도시 운운할 수 있을까. 국제관광도시 수원.... 갈 길이 멀다.

[천자춘추]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두고 영국의 한 마을에서는 유물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쟁이라는 죽음의 불안감 앞에서 유물 발굴 작업에 열중하며 삶의 의미, 죽음,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디그(The Dig)의 내용이다. ‘천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극 중 인물의 질문에 나는 엉뚱하게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올랐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쓰레기 산에서 쓰레기를 먹고 죽는 스리랑카 코끼리의 모습을 담았다.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물을 찾다 비닐 및 플라스틱을 같이 흡입하기도 하고, 쓰레기의 자극적인 맛에 중독된 충격적인 모습에 결국 채널을 돌리고야 말았다.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까지 표현했던 플라스틱은 결국 독이 됐다. 이에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하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가 진행 중이다. 생산을 포함한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근본적으로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기 위함이다. 한국 정부는 마지막 회의인 제5차 회의 개최지를 한국으로 유치했다며 자화자찬하지만 실제 자원순환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며칠 앞두고 돌연 유예했고 세종, 제주에 한정한 시범사업으로 축소했다. 급기야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 판단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강화했고 1년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24일부터는 위반 사항 적발 시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 불과 보름 남짓 남겨둔 시점에 정부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지원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일회용품 저감 정책에 손을 놓은 것이다. 이처럼 일관되지 않은 정책으로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한국 정부는 현 인류와 미래세대를 위해 전 생애 주기에 걸친 플라스틱 감축 목표 설정, 구체적인 로드맵과 함께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먼 미래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남길 것인지, 인류의 지혜를 남길 것인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천자춘추] 농산물 소비 확대를 위한 전통주 활용법

가을은 농업에 있어 벼와 과일 등을 수확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다. 많은 농산물 중에서도 쌀이 가지는 의미는 조금 남다르다. 과거 쌀은 농업의 근간이었으며 ‘식(食)’에서는 주식이기에 다른 농산물보다 중요도와 상징성이 컸다. 먹을 게 부족하던 60년대 가장 큰 소원이 쌀밥을 배불리 먹어보는 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먹을 게 풍족해진 지금은 오히려 쌀 소비 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69.8㎏이었던 1인당 소비량은 10년 사이 13.1kg이 감소했다. 줄어드는 쌀 소비의 증가를 위해 정부나 지자체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쌀 소비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다양한 쌀 가공품을 만들지만 먹거리가 풍부한 지금은 쌀 소비 활성화가 쉽지 않다. 젊은 세대들의 입맛 변화 및 탄수화물 섭취 제한 등으로 인해 쌀 소비 증가 정책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쌀 가공품 중 최근 젊은 세대의 소비가 증가하는 가공품이 있다. 바로 ‘전통주’다. 일반적인 막걸리, 약주 등 전통주의 원료는 쌀이다. 전통주의 쌀 소비량은 어느 정도일까? 일례로 2017년 안동시의 조사에 따르면 안동지역 7개 양조 업체가 연간 소비하는 쌀의 양은 570t 정도다. 80kg짜리로 7천가마 양이다. 이 소비량은 안동지역에서 한 해 소비되는 쌀(1만540t)의 5.4%가량을 차지할 만큼 많은 양이다. 우리나라 소주시장의 10%를 국산 농산물로 만들면 매년 쌀 3만6천t을 더 소비할 수 있다고 한다. 막걸리도 쌀 소비량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견 막걸리 양조장의 경우 쌀 400kg 투입 탱크를 1일 약 4회 가동한다고 한다. 한 달(25일) 가동 시에는 약 40t의 쌀을 소비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연간 소비량으로 추정하면 약 48t의 쌀을 소비하는 것이다. 4인 가족 기준 1년에 약 2천가구가 먹는 양이다. 술은 농업과 많은 관련이 있는 산업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남유럽은 포도가 많아 자연스럽게 와인 및 브랜디(와인 증류주) 제조가 발달했다. 영국, 아일랜드, 독일 등 중부 유럽은 보리가 많이 생산되기에 맥주와 위스키가 발달했다. 우리나라 역시 전통주들은 지역의 쌀과 농산물을 소비한다. 많은 쌀 가공제품이 가격 문제로 수입 쌀로 만들어지는 데 비해 전통주는 법적으로 우리 쌀과 농산물만을 사용해야만 한다. 국산 쌀 소비 증가에 전통주 소비 확대만 한 게 없는 이유이다. 전통주 소비 증가는 직접적으로 농민들의 농산물 소비로 이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다른 어떠한 술보다도 전통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천자춘추] 장애인 고용과 다양성

고용부에서는 매년 12월 중 장애인고용률이 현저히 낮음에도 장애인 채용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기업 명단을 발표한다. 작년 436개 기업이 최종 공표됐는데 10년 연속 반복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이 74개소나 됐다. 기업체 장애인고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담금 납부로 고용 의무를 대신하는 기업 대부분은 장애인 미고용 이유를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지 못해서”(54%), “업무능력을 갖춘 장애인이 없어서”(13%)라고 답한다. 반면 기업들이 우려하는 장애인 근로자의 근무태도, 대인관계, 생산성 및 업무능력에 대한 만족도는 평균 이상의 결과를 보였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모든 질문에 장애인고용 경험이 있는 기업이 미고용기업에 비해 훨씬 긍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5월,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령에 사업주나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무 조항이 신설됐다. 장애인의무고용제,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지속적인 제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 취업 기회는 부족하고 고용차별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교육은 언뜻 장애인 능력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물론 이러한 편견이 장애인 고용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제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당신의 생각과 달리 장애인은 이렇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일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불편하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비장애인 기준의 관점이며 장애인을 또 다른 방식으로 일반화, 집단화하는 것일 뿐이다.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것은 다양성을 어떻게 존중하고 수용하는가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 근로자가 근로지원서비스 또는 보조공학기기를 활용하거나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것 등 직장 내에서 장애 특성상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조직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가치를 깨닫게 할 것이다. 장애인 고용의 출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당신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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