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호칭에 관한 오해와 진실

어느 점잖은 교장 선생님이 식당에서 중년의 종업원을 “언니~”라고 부르시기에 민망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물어 봤더니 그녀는 정작 ‘아주머니’보다 ‘언니’가 더 좋다는 것이었다. ‘언니’가 젊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너도 나도 ‘언니’를 편하게 애용하나 보다. 그 덕분에 ‘언니’는 요즘 가장 널리 쓰이는 호칭어가 됐다. 나이 지긋한 신사나 중년 여인, 젊은 여성이나 남성 할 것 없이 종업원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업원 또한 여자 손님을 ‘언니’라고 부르니 서로가 언니인 셈이다. 이처럼 ‘언니’는 어디서나 통하고 상대의 나이에 신경 쓸 필요도 없는 편리한 통칭 호칭어로 자리잡았다. 어찌 보면 상대의 기분을 배려한 호칭이지만(아주머니보다 언니가 좋다니까), 딸이나 동생 같은 사람을 ‘언니’로 부르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점포에서 손님을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자기 부모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텐데 예의 바르게도 꼭 그런 호칭을 쓰는 곳이 있다. 물론 제 또래 아들이나 딸이 있을법한 손님을 따뜻하게 높이려니 짐작은 간다. 그런 호칭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아기를 낳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불임부부나 미혼 독신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라고 살갑게 부르는가.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귀하같이 아들(딸)을 둔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호칭은 ‘사모님’만큼이나 어색하다. 이처럼 느닷없이 ‘언니’ 혹은 ‘어머님’이 될 때, 난 ‘손님’이란 말을 권해본다. ‘선생’이나 ‘형’에 ‘님’을 붙이듯, ‘손’에 ‘님’을 붙인 ‘손님’은 오래 전부터 써온 정겹고 품위 있는 우리말이다. 게다가 ‘손님’은 손을 맞는 곳이면 다 어울리고 남녀노소를 두루 포용하는 장점도 있다. 또 ‘손님’은 음절이 짧으면서 발음하기에도 편하고 부드럽다. 그러니 백화점 같은 곳에서도 딱딱한 ‘고객님’ 대신 ‘손님’을 쓰면 훨씬 좋을 것이다. 한자어 대신 우리말을 쓴다고 낮추는 게 아님은 다 알 터이니 말이다. 호칭은 사람 사이를 멀게도, 혹은 가깝게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직적 사회구조로 인해 친족 혹은 직함 호칭어가 많은데다 경칭에도 민감한 편이다. 요즘 주변에 넘치는 ‘○○님’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그래도 ‘기사님식당’이나 또래 끼리의 ‘학우님’ 등은 지나친 표현이다). 그래서 직업에 따른 호칭어는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예컨대 ‘기사님’과 달리 ‘미화원님’은 당사자를 언짢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적절한 호칭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이란 언중(言衆)이 쓰는 대로 변화하고 자리를 잡아간다. 호칭어 역시 필요에 따라 새로운 말이 태어나고 대체된다. ‘도우미’는 비록 우리말의 파괴를 통한 조어지만 성공적으로 자리를 굳힌 사례이고 ‘간호사’ 역시 ‘아가씨’로 불리다 바른 호칭어를 찾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손의 경우에는 ‘손님’을 정착시키되,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알맞은 호칭이 가능할 것이다. 호칭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그만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야말로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사회를 밝게 가꾸는 힘이 될 것이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아름다움의 힘

청개천 위를 달리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개천을 복원한 것은 최근 서울의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 서울은 그런대로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6·25전쟁이 일어나고 송두리째 파괴된 도시위에 서울은 병들어가는 아름다운 여인과 같았다. 그러한 한숨 속에서 4·19와 5·16을 거치면서 그래도 경제재건과 새마을운동으로 먹고살기 위한 경제제일주의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난다는 한국의 기적이 싹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기능을 중시하고 이윤을 중시하고 말하자면 잘살아보자는 몸부림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청개천고가도로도 그러한 사고와 몸부림의 산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로는 차량이 달리는데 편리하고 기능적이면 되는 것이지 아름다움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 청개천의 복원은 기능적인 면보다도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사고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서울의 도시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인 수원성을 건조할 당시의 임금 정조는 아름다움에 몹시 집착을 했다고 한다. 신하가 성은 견고하게 지어져서 적을 막아내는데 역할을 하면 되지 그렇게 아름다울 필요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정조는 아름다운 것이 가장 견고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성으로써 아름다운 것은 그냥 외관으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도 가장 효율적이며 견고하다고 정조는 주장하고 아름다움에 집착했다고 한다. 아름다움과 자연의 모습을 되찾은 청개천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서울의 도시의 기능을 회복시켜주고 병든 서울에 막힌 숨통을 터주었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이 힘이요. 아름다운 것이 강하고 기능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쾌거가 하나의 공약사업의 실현으로 끝나지 않고 서울의 아름다움의 발견에 시정목표가 더욱 맞춰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최근에 나와 친한 어떤 분이 남이섬에 다녀왔다. 경치가 아름답고 ‘욘사마’의 팬인 일본관광객들도 꽤 많이 와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분이 대단히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에 비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대단히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멀리 경치는 아름답고 산수는 수려해도 바로 서있는 언저리가 지저분하다면 무슨 뜻이 있겠는가? 아름답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나는 삼년 전에 희랍의 남쪽 섬을 몇 군데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의 해수욕장에 비해서너무나 깨끗하고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좀 지저분해도 되고 난잡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가난하니까 선진국수준으로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희랍은 우리와 GNP가 같으나 우리보다도 관광수입은 몇 배나 높다는 것이다. 희랍이 관광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경치가 아름답고 유적이 많아서가 아니다. 국민전체가 자기마을을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에 모든 집은 흰색과 코발트블루로 칠을 하고 해변에는 쓰레기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과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해치며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고 장사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쟁에 대비하는 성도 아름다워야 기능적이며 견고하다면 장사도 관광객의 유치도 아름다워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힘이요 최고의 상술이요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김 정 옥 연출가·예술원회원

문화카페/촘촘한 문화네트워크를 만들자

21세기는 정보혁명으로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인터넷의 확산으로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화, 세계화에 따라 이제 문화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근 정부는 중앙에 집중된 문화보다도 지방의 자율성과 다양한 특색을 최대한 보장하는 지방분권적 문화예술정책을 지역문화육성의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문화의 활성화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지역의 발전을 지향하고, 진정한 지역자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국가 전체의 역량을 배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활성화정책은 지역민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화전통을 계승하며 개성 있는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에는 인적, 물적 한계가 너무나 많다. 우선적으로 인적 한계다. 지역문화를 논하는데 있어 지역문화예술인을 빼고는 얘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역문화를 가꾸고 키우는데 지역문화예술인의 역할은 대단하다. 그러나 지역문화 중흥을 위해서는 문화예술 창작자, 무대기술자, 문화예술경영인, 문화예술기획가, 문화예술마케팅전문가 등 문화예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행정공무원 또한 순환보직으로 인하여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턱없이 부족한 기반시설, 즉 인프라의 부족이다. 문화예술 인프라의 구축에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며, 또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쉽게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문예진흥기금을 조성해 운용하고 있으나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문화활성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계는 소프트웨어 부족이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문화예술진흥정책에 힙입어 지역축제가 급증하고 있으나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고 전국의 각 문화원, 문화의 집,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각종 문화행사, 취미교실,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전문 인력의 부족, 프로그램의 개발 부족 등으로 기관간 중복된 프로그램이 많아 효율성이 떨어지고, 소비자의 다양한 향유 욕구를 충족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적으로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문화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문화예술 전문인, 지역주민, 공무원을 포함한 문화예술 정책가, 각 기관에서 배출된 문화예술동아리 등을 총망라해 네트워크를 형성해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등 다양한 문화를 다양하게 공급할 수 있을 뿐더러 연령별, 계층별 문화소외 계층이 생기지 않게 골고루 배려할 수 있으며, 또한 네트워크 구성원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냄으로써 완성도 높은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각 지역문화단체, 문화시설 등을 네트워킹해 활용 가능한 잠재적 문화 공간들을 파악해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부족한 문화예술공간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의 중복투자를 회피함으로써 지역문화정책의 효율성을 배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경기지역문예회관협의회는 경기, 인천의 문화예술회관 네트워크를 형성해 부천문화재단을 포함한 7개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이 참여해 공동 제작한 락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부족한 예산, 부족한 전문인력, 전문 문화예술 마케팅 부족 등을 극복한 지역문화네트워킹의 대표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화네트워크는 지역문화활성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회로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아무쪼록 최대한 촘촘한 문화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그 효과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투시원근법과 세계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술에서 투시원근법은 이태리 르네상스에서 시작되었으며 소실점을 향하여 모든 사물이 단축되는 이 원근법은 르네상스시대에 만들어진 독특한 보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알타미라동굴벽화로부터 현대의 회화들까지 미술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표현 방법들은 그 시대의 보는 법을 말해준다. 구석기시대의 알타미라동굴벽화에서는 들소들이 사실적으로 표현 돼 있다. 마치 들소를 사냥하는 현장에서 그대로 그린 듯하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들소들은 사냥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는 그 당시의 구석기인들의 주술적 세계관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고대 이집트 사회나 우리나라의 고구려 고분 벽화, 서양의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대부분의 표현들은 사물(특히 인물)의 크기를 계급과 신분의 중요성에 따라 차이 나게 그렸다. 이는 바로 신분이나 계급사회의 세계관을 나타낸 표현법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아동의 그림에서 엄마가 아빠 보다 크게 그려지는 이유는 아동들에게는 엄마가 더 중요하고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시대 그림들이나 동양의 산수화들에서는 그림들을 옆으로 옮겨 가면서 또는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책을 읽듯이 보아야했다. 표현하는 화가들도 산은 올려다 본 모습과 계곡은 내려다 본 모습을 합성해서 그렸다. 예컨대 정선의 ‘금강전도’는 곳곳을 다니며 여행하듯이 그린 그림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보는 방법도 두루두루 여행하듯이 살펴 보아야한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민화에서처럼 뒤에 있는 것 까지 잘 보여주기 위하여 앞에 있는 물건보다 크게 그리기 까지 했다. 이름하여 역원근법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보는 방법에 따른 표현들이 이태리 르네상스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격게 된다. 바로 투시원근법이다. 이 투시원근법은 알려진 대로 하나의 소실점을 향하여 그것에 시선이 집중 수렴되도록 하는 표현법이다. 일종의 공간의 수학화이며 과학적 눈의 시각원리를 따른 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한눈으로 전체의 화면을 파악할 수 있는 구도의 통일적 종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는 개개의 부분이 전체와 논리적으로 합치되고 비례의 통일적 기준이 만들어져 하나의 모티브에 집중된 묘사를 가능하게 해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처럼 모든 것이 작아지면서 가운데 앉은 예수의 머리에 시선이 모인다. 다른 인물들은 주인공 예수를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이런 구도에서는 보는 사람이 주인공의 맞은편에 앉아 있으며 그는 이런 구도를 통해 세상을 한눈에 파악하고 장악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투시원근법은 바로 자본주의의 탄생과 일치하고 있다. 그 당시 ‘인간과 세계의 발견’이라는 이태리 르네상스는 바로 이태리 르네상스의 자본주의적 경제, 사회제도의 발전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 이것을 연구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은행제도의 성립, 노동의 조직화, 교역기술, 신용제도, 복식부기, 노동가치와 시장논리 등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개념들이 정착되면서 합리적인 공리성, 합목적성, 계획성, 타산성의 자본주의의 정신이 확립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이며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통일성의 원리인 투시원근법이라는 새로운 보는 방법을 탄생시킨다.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하나의 절대 점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집중해야하는 투시원근법의 통일성의 원리는 자본의 논리를 세계로 확장시킨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미술가들은 질서정연한 투시원근법의 매력을 알고 있지만 투시원근법에 의해서만 세상을 보고, 사고하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국적)자본의 힘으로 세계를 통일 시키고 시장 논리에 의해서만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문화카페/곡선의 미학

인간을 위한 도시가 디자인계의 최신 주제라고 한다.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 즉 ‘평생 디자인’으로, 더 편하고 안전하고 풍요롭기를 원하는 욕구의 반영이다. 사람을 섬기는 도시라니,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동안 보아온 도시의 모습이 자동차나 건물 위주인 데다 속도 혹은 편의를 너무 앞세웠기 때문이다. 속도의 추구는 먼저 길을 모두 직선으로 바꿔 놓았다. 산을 뭉개고 집과 논밭을 헐면서 낸 직선도로들은 발전의 동력이자 상징이 되었다. 그 덕분에 주변의 건물들 역시 딱딱한 직선 일색이다. 이러한 직선에 비해 곡선은 효율성이나 편의성이 훨씬 떨어진다. 구부러진 길들이 어찌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의 쾌적한 빠름을 당하겠는가. 하지만 ‘직(直)’은 ‘곡(曲)’의 부드럽고 겸허한 포용을 당해낼 수 없다. 이는 그간 직강화한 하천을 다시 곡강의 자연하천으로 바꾸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의 구불구불한 샛길들이 걷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어쨌든 도시 곳곳에 곡선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곡선은 수직선과 직각 위주의 거리를 한층 부드럽게 한다. 이러한 곡선의 힘을 잘 보여주는 예가 가우디의 건축미학일 것이다. ‘곡선이 만드는 미로(迷路) 같은 구불구불한’ 가우디의 공간 이미지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상쾌하게 깨뜨리고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한다. 울퉁불퉁한 벽이나 바닥을 상상하면 발바닥뿐 아니라 마음바닥까지 즐거워진다. 돌아보면 곡선은 우리네 전통 미학의 한 근간이었다. 화성(華城)도 이런 곡선미가 두드러진다. 화성의 아름다움은 여럿 들 수 있지만, 나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으뜸으로 친다. 물론 성곽에 한해서만 화성의 미학을 말하는 것은 화성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화성이라는 신도시 안에서 꿈꾼 근대라든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열었던 진찬연, 신분제사회에서도 상하 교섭을 도모했다는 낙남헌의 낙성연 같은 화성의 진정한 내용을 이루는 정신문화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역시 이어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성을 따라 걸을 때 내 가슴에 무엇보다 먼저 굽이쳐 오는 것은 성곽의 유려한 곡선이다. 높은 곳 낮은 곳을 두루 아우르며 자연의 흐름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는 그 곡선의 아름다움이다. 굽이치듯 내리뻗고 끊어질 듯 휘어 도는 성곽은 완만하고 평화롭게 곡선을 그리며 자연스러운 격조와 아치를 한껏 펼쳐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둥그런 능선과 무덤, 조붓한 마을 안길이나 개울 혹은 다랑이 논의 구불구불한 곡선들을 닮았다. 그래서 성곽을 끼고 길을 걷다 보면 내 마음에도 어느덧 새로운 여유와 정취가 넘실거리곤 하는 것이다. 화성은 이러한 곡선의 조화로운 실현이다. 그 정신과 미학을 되살리고자 화성은 계속 해체 복원 중이다. 모든 걸 예스럽게 재현하는 건 우습지만, 곡선의 아름다움만큼은 좀 더 다양하게 담아내길 소망한다. 또한 골목이 사라진 시대에 이마 맞댄 처마들이 나날의 소리와 냄새를 주고받는 정겨운 동네를 꿈꾼다. 하여 박제된 도시가 아닌 이웃들의 온정이 넘나드는 저녁 한때를 느른히 걷고 싶다. 무릇 도시란 이렇게 주변 환경과 건물, 길들이 우리네 삶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어디서든 자리만 펴면 소풍이 되는 그런 도시에서 산다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하며 한결 너그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文化에는 국경이 없다

요즘 지자체마다 문화적 성격을 띤 축제니 잔치니 하는 행사가 많아졌다. 반가운 일이다. 다만 그러한 잔치니 축제니 하는 것이 행정단위와 행정의 경계선에 얽매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문화적 전통이 숨쉬고 있는 하나의 지역인데 행정적 단위에 얽매어 서로가 서로의 축제를 외면한다면 되겠는가? 광주시와 남양주시가 실학박물관의 유치를 둘러싸고 겨룬적이 있는데 정약용이나 실학사상(實學思想)은 지금의 행정구역과 관계가 없는 이 지역 전체의 문화적·학문적 유산인 것이다. 이를테면 남한산성과 도요지 분원은 조선왕조 500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데, 이 두 고장이 경기도 광주시의 행정구역에 속해있다고 해서 서울시가 무관심 할 수 없다.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이 똑같이 이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경기도와 서울은 하나의 문화적 지역이요, 벨트로써 어떠한 경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불가능하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봐서 결코 넓은 면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그 반쪽에서도 경상도니 전라도니 중부권이니 해서 지역주의가 여전하고 나아가서는 지자체를 내세워 소행정단위로 경계를 긋는 폐쇄적 사고가 득세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기야 우리의 초창기 역사에 삼국시대가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는 한반도와 연해주 남만주를 무대로 유동적인 국경을 긋고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시대의 문화적 공통분모를 가지면서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고구려가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백제는 우아함과 섬세한 균형을 자랑했고 신라는 우아하면서도 밝은 너그러움을 문화전반에 남기고 있다. 이러한 삼국의 문화유산을 계승해서 동서남북으로 갈리는 지역주의가 뿌리를 내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서로 만나고 부딪쳐서 분단되는 것이 아니라 융화되고 하나가 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정치적 군사적 힘의 균형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 밑바닥에는 문화의 결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통일신라는 한반도의 문화를 하나로 융화시키고 고려, 조선왕조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중국이라는 큰 나라, 대륙에는 여러나라가 공존하기도 하고 병합되기도 하고 분열하고 서로 정복하며 흥망성쇄를 거듭했으나 오늘날 하나로 조화된 나라를 이룩하고 있다면 국경과 벽을 허무는 문화의 힘에 의한 것이다.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는 지역문화의 전통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결집력으로 작용해서 폐쇄된 지역이 아니라 넓은 지역으로 한반도 전체로, 아시아로, 세계로 펼쳐나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 정 옥 연출가·예술원회원

문화카페/지역축제의 나아갈 방향

축제의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풍요로움을 나타내서인지 축제가 유난히 많다. 일년 내내 축제라는 이름을 붙인 각양각색의 행사가 전국에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축제는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에서 유래되어 액운을 멀리하고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고자 하는 신앙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축제를 좋아하고 축제를 즐기는가?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일상의 일탈에서 오는 자유와 환희, 비일상성의 특별한 경험을 갖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생존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인 행동이 아닌 자발적 참여에 의해 축제 상황에서 펼쳐지는 놀이가 즐겁고 창의적인 체험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인간의 유희적 본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축제를 만들고 즐긴다. 그러기에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축제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축제는 오락성이 강조되어 지역의 역사성이나 개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관 또는 축제 개최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기획된 비슷한 프로그램의 놀이문화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주민이 원하거나 그들 삶에 접목되어 있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주체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아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자발성이 빠진 행사성 이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일본의 오카야마 모모타로축제에 참여하면서 축제의 모습이나 축제의 방향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의 여느 축제처럼 모모타로축제도 오카야마의 지역, 문화, 역사에 뿌리를 둔 시민참가형의 축제였다. 축제 기간 내내 오카야마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넘치는 에너지와 흥겨움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의식주를 그대로 축제에서 보여주었고, 그들의 의상이며, 음식이며, 공간이 문화상품화 되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부분 또한 간과하기 어려웠다. 결국 축제의 소재가 문화상품이 되고 그것이 지역경제와 연결되어 문화산업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단순히 3일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주민과 지역과 외부 관광객이 긴밀하게 네트워크망을 가지면서 즐기고 참여하고 도시를 알리는 살아움직이는 문화유기체인 셈이었다. 더군다나 전통을 현대로 계승시키고 발전시키는 세련성도 무시하지 못할 점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축제의 성격이나 내용에 대해 충분히 공유되었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축제를 기다리고 축제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축제는 현대 축제의 의미인 지역의 일체성, 문화의 계승 및 보전, 문화상품 및 관광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 축제였다. 이제 우리의 축제도 각 지자체마다 앞 다투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개성과 역사성을 고찰하여 지역우위의 축제를 기획하는 지혜와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역주민이나 지역의 향토성이 유리되거나 배제되어 있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의 개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저절로 흥겨워지고 그 삶 속에 녹아나는 축제, 기다려지고 나서서 이끌어가는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를 채우고 고유의 색을 입히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박두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예술의 힘, 예술의 공공성

‘예술에서 공공성이 가능한가?’는 사실 늘 나한테 던진 질문이다. 미술대학을 나와 작품을 팔아 세상을 산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미술선생으로 취직을 했을 때, 대학 때부터 품고 있던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문이 불신과 불안감으로 확대됐다. 미술가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대학에서 배운 바도 없었지만 박수근이나 이중섭 같은 신화화 된 화가들처럼 그냥 가난과 싸우면서 창작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도저히 자신도 안 섰다. 그래서 나와 내가 만드는 작품들이 사회로부터 독립(?)당할까 늘 불안해했다. 60년대 70년대의 전시장에는 늘 미술인들끼리만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자축하고 몰려다녔으며 그리고 나선 으레 술에 떡이 되어 자기의 밀실로 흩어지는 것이 미술동네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기껏해야 그 전시회의 주인공인 화가의 친지들과 가족들만 생일잔치에 오듯이 참석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사회로부터 완전 고립이었고 관객들로부터 완전한 소통두절이었다.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는 화가 자신도 해독하지 못할 난해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작가나 관객들은 작품내용에 대한 대화는 일종의 금기였다. 이러한 전시장 풍경에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 운운은 일종의 사치였다. 그런데 세월은 많이 흘러 미술 전시장에 미술인들만 북적거리는 옛날식 풍경을 미술동네에서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게 되었다. 인사동과 그 밖의 대형 전시장들에서 일반 관객들의 발걸음은 미술인들이 한가하게 서성대도록 가만 놔두지 않을 지경이다. 어쨌든 외형적으로는 관객과의 소통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시장과 그 밖의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촉빈도수는 엄청나게 증가한 편이다. 예술은 상상력으로 포장한 ‘허구’임에 틀림없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허구’가 우리의 진짜 삶에, 우리의 세상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친다. 세상을 뒤엎기 까지 하는 것이다. 요즈음 정부에서 운영하던 관 체제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 예술인들이 주도하는 위원회 체제로 바뀌었다. 이름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다. 나도 그 위원회의 11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위원회가 초기의 위원회의 비전과 목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예술이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합의한 것이 있다. 합의한 첫 문장이 바로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다. 이 문장은 예술가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예술의 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 이제는 예술이 세상을 변혁할 수 있다는 신념이 예술인들과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예술이 아무리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진공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적어도 살아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움직이고 움직여야 한다. 그것은 사회 속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윙크를 보내는가 하면 충돌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회에 점잖게 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참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입하기도 한다. 어쨌든 작가가 상상력을 빚어 만들어 낸 작품은 사회와 소통하기를 바라고 소통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바로 예술의 공공성이 생긴다. 공공성은 나눔의 미학이다. 삶의 지혜를 나누는 기술이다. 예술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예술가들이 아무리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그의 작품을 빚어 놓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소통이 단절되었을 때는 그것이 자기 혼자 보는 거울에 불과할 뿐이다. 요즈음 공공성 자체를 목표로 하는 예술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예술은 관객이 완성 한다’는 말도 예술의 공공성과 관련하여 새삼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김 정 헌 문화연대 공동대표·화가

문화카페/얼굴과 表情

표정이 없는 얼굴은 이미 얼굴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 죽은 사람의 얼굴까지도 모든 사람의 얼굴은 표정을 지니고 있고 이 표정이 있음으로써 모든 사람의 얼굴은 매력이 있고 때로는 아름다울 수 있고 때로는 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인구는 5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50억이 넘는 모든 인간이 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만이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허구한 인간이 살아왔는데 그 모든 인간이 다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수십억, 수백억의 인간은 서로 닮은 경우가 있을지라도 엄격히 따지고 관찰할 때 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이 하느님 또는 누군가의 창조물이라면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즉 획일적이 아니고 모두가 다르다는 점에서 창조물 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수십억, 수백억의 다른 얼굴이 다 다른 표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얼굴의 표정이 가지는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흔히 얼굴하면 아름다운 얼굴, 추한 얼굴,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을 연상한다. 그러나 잘생기고 못생긴 얼굴의 기준, 이를테면 미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체 그런 기준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주관적인 기준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객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중국의 서안을 다녀왔는데 현종의 별궁 마당에 있는 양귀비의 석상 앞에서 남녀노소의 반응은 달랐다. 젊은이들의 반응은 풍만할지는 몰라도 둥근코 뚱뚱한 얼굴과 몸매에 ‘절세의 미인’ ‘경국의 미인’이라는 형용이 맞지않다고 수근거렸고, 어떤 촌로는 과연 절세의 미인이라고 황홀한 표정이었다. 결국 양귀비를 또는 클레오파트라를 절세의 미인으로 만든 것은 황제 현종과 라시자와 안토니오가 매료되었기 때문이고, 현종이 양귀비에게 사로잡힌 것은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얼굴을 통로로한 양귀비의 내면세계의 발로라 할 수 있는 표정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은 아름답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얼굴은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고 반대로 이그러지고 추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얼굴에는 그 사람의 역사가 새겨진다고도 말했다. 눈이 크다든가 적다든가, 코가 높다든가 얕다든가, 입이 크다든가 적다든가, 모양이 어떻다든가 하는 외형적 기준에 의해서 얼굴의 품위와 아름다움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흘러간 시간의 역사와 내면 세계의 발로인 표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정은 원래의 저마다 다른 외형적 얼굴에 무한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 무한한 다양성을 우리는 수용하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야 한다. /김정옥 얼굴박물관 관장·예술원 회원

문화카페/우리 가까이에 문화가 있다

문화란 무엇인가? 최근 우리 사회는 ‘문화’의 개념에 대한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적 문제해결을 넘어선 사회에서 ‘문화’는 일종의 수식어가 되어 어떠한 단어 뒤에 붙어도 그 쓰임이 그럴 듯 한 것이 그 이유일 듯 하다. ‘문화’라는 단어가 주변 곳곳에 산재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화’자체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문화는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다”라고 그의 저서인 ‘원시문화’에서 밝힌 바 있다. 그가 정의한 문화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고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즉 어디에서 무슨 공연, 전람회 등의 거창한 ‘예술’ 행사만을 총칭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든지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련의 행위가 모두 문화에 포함되는 것이다. 문화는 음악, 미술 등 특정한 ‘예술’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을 영역으로 한다는 것이다. 삶의 스트레스를 풀거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에너지 충전을 위하여 등산 또는 여행을 떠나는 그 모든 것들을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의복과 같아서 가끔은 화려하고 격식에 맞는 옷도 필요하지만 대부분 생활속에서 입는 편안한 옷이 더욱 필요한 것처럼, 바쁜 현대인으로 하여금 일상 속에서 우아한 외출을 종용하는 공연이나 전람회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일상 속에서 쉽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듯 문화는 결코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저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고 자연스럽게 심신이 머물 수 있는 곳에서 문화를 찾아보면 된다. 그럼에도 아직 문화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을 위해 부천문화재단은 다양한 ‘광장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월 넷째주 토요일에 쉬는 학생들을 위한 ‘차없는 거리’ 행사는 부천시청앞 차없는 거리에서 청소년들의 분출하는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규격화되지 않은 장소이다. 그저 와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문화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다양한 동아리들의 왕성한 활동도 돋보인다. 여성, 청소년 등 사회의 주변인으로 분류되는 계층의 적극적인 동아리 활동은 삶의 건강성과 인생의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동아리 활동은 개개인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일이며, 건강한 가족문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부천문화재단은 이제 모든 시민이 ‘문화’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광장문화’로 한발 내딛고자 한다. 복사골문화센터 로비를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간으로 개방하여 언제든 찾아와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날 수 있도록 ‘시민속으로’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개인이 좋아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서 즐길 수 있는 씨앗을 보급하고 전파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것이 바로 ‘생활문화’의 표상이기도 하다. 더 이상 문화를 멀리서 바라보지 말자. 이제부터 나도 ‘문화’속에 살고 있으며 ‘문화인’임을 당당하게 외쳐보자. /박 두 례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두밀리 이야기

우리나라는 70% 이상이 산으로 덮인 그야말로 산악 국가다. 우리나라 면적은 미국의 40 몇 분의 1이지만 주름진 산하를 다림질로 쫙 펴서 그 표면적을 재면 크기가 6분지 1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 산하는 산이 많고 골짜기가 많은 주름진 나라다. 우리 조상들은 이 수 많은 골짜기 마다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며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수많은 골짜기 마다 독특한 삶을 살아 왔으니 그 만큼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지녀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부국론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천혜의 문화자원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 문화자원의 다양하고 풍요로움을 잘 살려내질 못했다. 이조의 유교적인 봉건체제가 이 문화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활달함을 훼손해 왔으며 그 뒤로 일제의 수탈과 억압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삶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왔다. 해방 이후에도 좌우 이념대립과 6·25 전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밑에서 이래저래 우리의 삶이, 우리의 문화가 억압을 받거나 훼손 당해왔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전통적인 삶의 방법과 지혜와 기술들이 억압당하고 파괴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에게도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리는 골짜기가 하나 있다. 바로 가평 두밀리다. 경춘국도에서 가평읍 5㎞전에 왼쪽으로 휘어져 한 6㎞ 남짓 들어가면 대금산과 수리재, 불기산이 오붓하게 둘러싼 막다른 산촌 동네 두밀리가 나온다. 국도에서부터 한 서 너 굽이를 돌아 들어가면서 보여 지는 경관이 하도 좋아 소설가 이윤기가 마치 강기도(강원도와 경기도를 합해서 부른 말) 같다고 한 그 두밀리다. 또 10년 전 쯤 두밀리 분교 폐교 반대를 위한 주민들의 싸움으로 유명해진 그 두밀리다. 그러나 요즘 그 두밀리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삼 년 전 쯤 어떤 주택업자가 두밀리 들어가는 입구의 한 봉우리를 완전히 까뭉개고 거기다가 전원주택 단지를 만들었는데 이 일이 신호탄이라도 되듯이 그 후로 여기저기 두밀리의 경관을 망치는 상업적 펜숀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난데없이 두밀리로 해서 대금산을 뚫고 현리까지 도로가 건설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도로계획을 추진하는 경기도에서는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이미 공청회도 끝낸 모양이다. 주말과 방학 동안을 주로 이용하는 나 같은 반쪽짜리 주민들에게는 공청회가 통보도 되지 않았다. 전언에 의하면 주민들의 대부분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외통지에 서울로 가는 길도 하나 더 생기고 따라서 땅값도 오르리라는 욕구와 기대감 때문인지 공청회 당시 한 두 사람 외에는 주민들이 의견을 발표하지 않는 것으로 묵시적 찬성을 하였다고 한다. 도로가 생김으로서 마을이 두 쪽으로 갈리고 터널에서 쏟아져 내릴 매연과 자동차 굉음이 이 마을을 어떻게 파괴할지는 보지 않고도 상상이 가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름다운 골짜기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한 마을을 파괴할지도 모를 이러한 도로 건설과 한마을의 경관을 무참히 파괴한 전원주택사업, 돈벌이만을 위한 무국적의 펜숀건축물들은 하나하나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이전에 지역주민들의 활발한 의견들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소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지역주민들이, 지역주민들의, 지역주민들을 위한 자발적인 의사소통만이 한 마을의 문화적 권리와 그들의 삶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문화카페/요동벌의 고구려와 큰 울음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만하구나’ 요동벌을 달리는 동안 박지원의 말이 내내 울려왔다. 당시 그에게는 조선의 산하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비좁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광활한 벌판을 맞닥뜨리자 이런 일성이 터져 나왔으리라. 과연 끝없이 이어지는 벌판의 지평선은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했다. 전날 밤 장보고의 옛 해상로를 상상하며 망망대해 위에서 그려본 호쾌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고구려의 옛 땅에서 교차할 만감에 대비해 가슴에 얹어둔 성돌 하나가 함부로 들뜨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고구려 역사도 모자라 발해의 역사까지 강탈하는 중국의 벌건 눈빛에 온 나라가 들끓은 게 엊그제건만, 그 비분강개는 어느새 숙은 듯하지 않은가. 장군총과 광개토왕릉비, 오녀산성, 국내성, 백암성 등을 보는 동안 우리는 씁쓸한 마음을 자주 추스려야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갇힌 고구려 유적을 꿋꿋이 읽어내기 위해서는 호석(護石·장군총의 외벽을 받치고 있는 12개의 돌) 같은 마음의 기둥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녀산성에서는 해발 820m의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고구려의 정기와 기개를 품었다. 마침 비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고구려 전기의 수도였던 그 주변의 웅혼한 기상을 각자의 가슴속에 심었다. 그리고 다시 백암성에 올라 고구려 산성의 위용에 감탄하면서 ‘빼앗긴 들’에 두고 온 우리의 역사를 깊이깊이 담았다. 이러한 고구려의 정신과 축성술 그리고 미학이 화성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고구려 성에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얼과 미감을 가장 아름답게 집약한 성이 바로 우리의 화성인 것이다. 역사의 뿌리와 정신의 힘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화성의 성벽이며 치 등을 비다듬어 보았다. 그리고 화성을 그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내세우기 전에 그것의 가치 있는 계승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더불어 생각했다. 고구려의 영광과 그 궤적의 답사는 쓰라린 속울음을 되씹는 길이었다. 연암이 말한 ‘울음’에는 약소민족의 설움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행간에서 아픈 소회를 읽지 않을 수 없다. 하여 다시 ‘요동에도 또 하나의 평양’이 있었다고 한 연암의 말을 떠올리며, 저 넓은 요동이 우리 땅이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이 꺼내보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허망한 바람이나 감상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국제적 역학관계를 냉정하게 내다보며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고구려를 오늘 여기의 삶 속에 지속적으로 되살리는 일이 필요하다. 동북공정의 충격 속에서 고민했던 여러 방안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그 중에도 문화콘텐츠의 개발은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을 요한다. 나치 만행의 고발에는 아우슈비츠 같은 상징적 장소도 효과적이지만,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 한 편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가 전 지구적 감염력을 확보한 지 오랜 지금도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핍진하게 그린 영화가 별로 없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영화뿐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 문화 전반에 걸친 고구려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숙고해야 한다. 고구려, 그 ‘빼앗긴 들’에서 깊이 삼킨 속울음을 우린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큰 울음’은 곧 ‘큰 웃음’이니, 우리 모두가 크게 웃을 그날을 위해 진정 ‘큰 울음’은 남겨둘 것이다. ‘울음터’ 안팎에서의 착잡한 마음을 그렇게 일으키며 보니, 동행한 학생들 눈빛이 더 뜨겁게 다가왔다. /정 수 자 시인

문화카페/우리를 기쁘게 하는 축제들

8월의 경기도는 그야말로 축제의 바다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평화축전의 평화앙상블과 월드뮤직콘서트, 수원 화성연극제의 프랑스의 대형 야외극 맥베드, 세계야외공연축제의 바람의 아들 등 일련의 작품들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들이기에 기대가 크다. 유례가 없을 만큼 경기도 전역에서 한꺼번에 좋은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어 관람 스케줄을 잘 조정하면 한여름 무더위쯤을 털어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축제 과잉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경기도의 축제 프로그램은 도민은 물론 공연관계자와 서울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 같다. 축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에 이번 경기도 축제들은 성공을 예감케 한다. 시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성공적 축제의 전형이라고 할만한 일본의 작은 도시 시바타축제를 참관한 적이 있다. 시바타축제는 시민대표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시민 스스로 예산을 만들고 운영함으로써 시민 참여도가 대단히 높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축제의 소요예산은 전 시민이 가구당 1만원 정도를 거두어 충당하는데, 수금률은 95%에 이르고 시의 지원예산은 25%에 불과하다. 축제 전야제는 불꽃놀이로 시작하는데, 축포를 터뜨릴 때마다 손자의 생일 축하 등 각종 명분으로 5만원씩 받고 그들의 이름과 사연을 멘트로 소개하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시내 중심가의 상점은 거의 빠짐없이 축제 포스터나 현수막을 내걸고, 특별석 관람권을 1만원에 파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리면서 시민 참여를 유도한다. 특히 직장인들이 중심이 되는 퍼레이드는 그 가족들이 관람하고, 어린이들이 중심이 되는 퍼레이드는 부모가 관람하는 등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축제라는 점에서 축제의 본질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특히 시청, 우체국 등 기관과 기업, 각 동별로 100여명씩, 20여 팀이 참여하는 퍼레이드는 시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다. ‘보여주는 축제’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전형으로서, 출연자가 관중보다 많은 아주 특별한 퍼레이드였다. 올해로 네번째 치른 의정부음악극축제는 국내외의 유수한 20여 단체를 초청하여 5만여명의 관객을 모으고 중앙과 지역의 언론에서도 관심을 베풀어 이제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축제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축제를 기획하고 조직하고 운영한 사람으로서 아쉬움 또한 적지 않다. 그것은 축제의 주인공이어야 할 의정부 시민들이 야외공연과 어린이극을 제외하고는 본격적인 무대에 대한 관심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극장문화를 접하기 시작한지 불과 4년 남짓이기에, 문화감수성 훈련의 절대시간이 부족하다고 자위할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유혹하지 못한 주최자의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관객조사 결과를 보면 그 이유가 첫째는 전문가와 매니아들을 위한 레퍼토리와 일반 시민들이 요구하는 재미를 충족시키는 프로그램에 대한 안배가 부족한 것이고, 둘째로는 학교, 기관, 단체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밀착 마케팅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우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본격적 야외극과 찾아가는 거리 퍼포먼스 등을 통해 축제 분위기를 띄울 필요가 있다. 극장공연 역시 학생이나 시민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레퍼토리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각 기관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티켓판촉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참가작의 무대 완성도를 고집하여 의정부축제에 초청받는 자체를 참가단체가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8월 경기도 전역에서 펼쳐지는 축제 프로그램을 보면서 좀더 치열한 반성을 통한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구 자 흥 의정부예술의전당관장

문화카페/한강을 살아있는 강으로

한강은 남한강·북한강이 양수리 부근에서 서로 합류하여 팔당을 지나 용산의 남쪽을 흘러가다 파주를 지나온 임진강과 교하에서 합류한다. 쉼없이 흘러 가다가 개성지역을 지나온 예성강(禮成江)과 만나 최종적으로 강화만을 거쳐 황해로 들어간다. 자락이 넓어 정치적으로 내륙을 통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경제적으로 물류체계를 원활하게 만들어 경제권을 형성시킨다. 거기다가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이 있고, 특히 남쪽으로는 예성강·임진강·한강이 하계망을 구성하면서 서해 중부로 흘러 들어가 경기만을 구성한다. 따라서 한강 하류를 장악하면 하계망과 내륙수로를 통해 한강 유역·임진강 유역·예성강 유역·옹진반도·장연군의 장산곶 등의 내륙까지도 통합시킬 수 있다. 또한 한강하구는 경기만을 통해 해양으로 진출하는 출구이며 동시에 바다에서 들어오는 입구이다. 그래서 먼 선사시대부터 요동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열도까지 이어지는 남북 연근해항로의 중간기점이고, 동시에 한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동서 횡단항로와 마주치는 해양교통의 십자로이다. 그래서 숱한 사람들과 존재들의 헤아릴 길 없는 사연들이 물방울 방울로 모인 삶의 터요 역사의 터이다. 고대에는 삼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벌였다. 광개토대왕은 396년도에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공격하면서 수군선단을 거느리고 한강수로를 직공하기도 하였다. 결국 신라가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673년에는 임진강의 호로하(瓠瀘河·연천지역)와 한강의 왕봉하(王逢河·행주 유역)에서 신라가 당군과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왕건도 한강하구에서 성장한 강력한 수군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후백제를 제압하면서 통일을 이룩하였다.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은 이른바 한강가에 세워진 河港도시이다. 전국의 세곡이 조운선을 통하여 한강에 모였고, 도성내의 일반 생활품도 대부분 선박으로 한강을 통하여 공급되었다. 한편 근대에는 조선이 세계열강에 강제적으로 개항 당하는 과정에서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는 강화도를 거쳐 2척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한강의 난지도 앞을 지나 건너편의 염창항까지 진입하였다. 조선의 반격으로 양화진에서 한강 하류 쪽으로 퇴각하였다. 이렇게 활발하게 우리역사의 중심부에 있던 한강은 20세기 중반에 냉전 구도가 정착되면서 하류가 단단하게 얼어버렸다. 정전협정의 제1조 제5항에 따르면 “한강 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강 기슭)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해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형식적으로는 통행이 가능하지만 현실은 어떠한 선박이나 사람도 통항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강 하구를 둘러싼 환경 등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남북의 맹목적인 군사적 대치와 긴장이 부분적으로 해소되면서 법적근거가 희박한 한강하류 통항금지는 머지않아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 1998년에 한강하구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뗏목을 여러 척 만들어 하류 항해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 이번 27일에 한강하류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강하류에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한다. 남북의 분단구조와 정치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둔 아쉬움은 있지만 한강을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살려서 사람들과 물건들이 그리고 문화가 흘러가는 터가 돼야 한다. 한강하구를 통해서 세계로 나갈 수 있고, 모든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곳에 평화가 깃들면 동아지중해도 평화로워지고, 이곳이 열려 있으면 동아지중해의 전 지역이 열린다. 일종의 평화지역(PEACE ZONE)이다. /윤 명 철 한국해양문화연구소장

문화카페/공연장, 이제는 콘텐츠다

지방자치단체가 실시된 이후 여기저기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문예회관이 들어서고 있다. 현재까지 130여개의 문예회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와 별도로 2011년까지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적어도 1개 이상의 전문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문예회관 건설의 난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온 나라에 공연예술문화공간이 건립되고 있는 중이다. 문화 공간 확충사업은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근간으로서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 서울의 경우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시민회관을 제외하면 공공성을 띤 국·공립극장과 소극장 몇 개가 문화공간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문화 인프라가 확충됐다. 지방에 있는 문예회관들은 거의 그 당시에 지어진 문화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문화공간의 숫자가 늘어나고 덩치만 커졌을 뿐 그 안을 채울 만한 정신적인 역량과 프로그램이 한 없이 빈약하여 공허한 공간으로 전락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문예회관을 비롯한 많은 공연장들은 지역의 특성이나 정서를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인 사업과 창의적인 콘텐츠의 부재, 그리고 보수적인 관료주의 운영으로 문화공간으로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 몇몇 공연장들이 선진적인 운영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지만 대다수의 문화공간은 아직도 껍데기만 만들어 놓은 채, 전문 인력의 수용과 프로그램 개선을 통하여 그 속을 채우지 못하고 과거 문예회관이 꾸던 단꿈에 빠져 있다. 이제는 이러한 문화공간의 난맥상을 해결해야 하며 공연장을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이 명실상부한 주민을 위한 문화 복지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새로운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공연장을 변화시킬 주체는 역시 사람이지만 그 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콘텐츠이다. 관객들은 공연장의 외관이 아닌 공연장에 올려지는 공연물과 문화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즐기기 위해 찾아온다. 따라서 관객들에게 유익하고 또 그들을 즐겁게 할 내용물이 창의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콘텐츠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고 또 유지가 되었을 때, 이른바 공연장의 브랜드가 생긴다. 브랜드는 공연장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각 공연장이 수용하는 관객의 정서와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며 또한 공연장 건물 자체의 예술적인 가치 그리고 슬로건과 심벌마크와 같은 홍보적인 수단을 포함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프로그램인데 공익성과 수익성 그리고 교육성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또한 여타 공연장과 차별되는 개성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처럼 개성화된 프로그램은 종국에는 다른 공연장과 공유하여 연계성을 높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공연장 전반의 동반상승 효과를 창출하게 된다. 이는 공연문화예술 발전의 초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공연장, 이제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이 종 덕 성남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카페/한류

21세기는 어떤 면에서 보면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문화, 특히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는 국가발전 및 문화정책과 맞물려 국가간, 지역간의 갈등이나 대결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화의 침탈과 방어는 그동안 서구제국주의와 비서구권과의 싸움으로 점철되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면이 다분하게 있지만. 그런데 난데없이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유행문화, 즉 한류현상이라고 부르는 문화적인 트랜드가 동쪽 아시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5월 22일 이영애가 홍콩에서 팬사인회를 개최했을때 백화점 안에 2만명이 쇄도하고 길거리에 20만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대장금의 인기 때문이다. 배용준의 겨울연가에 이은 한류드라마의 성공이다. 완전하게 시장경제가 성숙하지 못했던 1997년의 중국에서 다소 가부장적인 요소가 있는 ‘사랑이 뭐길래’라는 TV 드라마가 히트치면서 약간 놀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어갔었다. 사춘기부터 왕유 이소룡 임청아 주윤발을 거쳐 이연걸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무협영화에 몰입돼서 돈과 혼을 쏟아부어가며 자라난 우리세대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대중문화의 많은 것들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의 문화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그것이 가져오는 경제적인 효과는 일반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2004년도에 580만 명이 한국에 입국했는데, 전년도에 대비해서 28%가 증가한 것이다. 일부국가에서는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대만은 한국드라마에 관세를 20% 부과하겠다고 한다. 중국도 한국 드라마의 가치와 수준에 대해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한류열풍이 짧게는 2~3년이고 길어봐야 5년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류를 오로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마치 자신들만의 업적인양 의기양양해서도 안 된다. 우리문화의 우수성과 역사의 전통, 한국을 경제강국으로 만든 전세대의 비전과 노력, 그리고 숱한 지식인들의 연구와 교육을 먹이로 삼아 탄생하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류는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애일 뿐이다. 잘 성장시켜 튼튼한 몸과 건실한 정신을 지니고,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적합하게 키우려면 여간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한류의 탄생과 성장배경을 역사 철학 경제 정치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찾고, 지속성을 지닌 채 효율적이게끔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문화의 특성을 파악하고 대중문화의 속성을 이해해서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한류가 아시아적 가치의 공유와 서구문화의 아시아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이 있다면 아시아적 정체성을 찾고 모색하는 계기와 그것을 토대로 서구문화에 일방적으로 침탈당해온 아시아의 문화를 방어하고 나아가서 21세기 지구문화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동아시아문명의 향방과 모델을 설정하는 역할까지도 담당해야 한다. 이처럼 한류는 대중문화담당자들만의 것을 넘어 이 시대 한국문화, 한국인 나아가 동아시아인 모두와 직접 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그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기도가 한류우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표피적인 한류문화가 아닌 진정한 한국문화, 동아시아 문화, 아시아문화가 형성되는 기회가 터를 제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문화가 모처럼 자의식을 지닌 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는 너무나 아깝다. 아울러 이제는 대중문화인들도 사회의 리더십이라는 것을 사회와 본인들이 절실하게 자각해야 할 시대가 왔다. /윤 명 철 해양문화연구소장

문화카페/초보는 행복하다

십 년 동안 장롱 속에 고이 고이 모셔둔 녹색살인면허증을 꺼내어 집을 나섰다. 가능하다면 끝내 하지 않고 싶던 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 하지만 지금 발등에 떨어져 지글지글 타고 있는 소용과 필요의 불 때문에 더 이상 피할 도리가 없는 운전 연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운전면허증 소지자만 2천만 명이 넘는 현실에 고리타분한 느림보라 흉봐도 어쩔 수 없다. 제트기를 타고 쫓아가도 모자랄 시대에 쇳덩어리 자동차 하나 운전하지 못하여 쩔쩔 매는 내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한심하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어떻게든 운전을 하지 않고 버텨보려고 억지를 부려왔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따금 하는 외출이라 해봤자 대개가 술자리에 참석할 일이니 자동차는 오히려 애물일 거라고, 살벌한 전장과도 같은 도심의 거리에 나까지 체증을 보탤 것 있겠냐고, 그도 모자라 지은 지 20년이 넘는 아파트에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이며 여섯 명이 달리면 6등, 다섯 명이 달리면 5등을 하는 둔한 운동신경까지 모든 이유가 총동원되었다. 핸들을 얼마나 꽉 움켜잡았는지 키보드를 치는 손이 후들거린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기에 분주했던 다리는 맥이 빠져 느른하다. 신호등이며 남의 차선이며 시시때때로 끼어드는 오토바이와 보행자들을 신경 쓰느라 잔뜩 긴장했던 몸에 열기와 오한이 번갈아 든다. 그나마 속도를 내지 못하고 비척대는 연수생들의 모습이 짜증나기보다는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강사가 고맙다. 몇 해 전 나는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연수를 받겠노라 나섰다가 멀쩡히 주차해 있던 남의 차를 들이받고 사고 상황보다 남편의 호통에 질려 다시는 운전 따윈 시도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던 적이 있다. 운전 연수 받다가 이혼했다는 풍문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두 시간여를 길에서 헤매다 돌아와 보니, 역시나 나의 공포를 키운 가장 큰 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낯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무섭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책임을 미루고 나의 내부로 도피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둔하고 무심하고 주의력이 없고 산만하여 그런 일 따위엔 적합지 않다고 치부해 버린다. 하기 싫다는 고백을 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운전만의 문제인가?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책 중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제목이 있다. 변화경영 전문가로 불리는 저자는 대량실업시대에 살아남을 길은 자기혁명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변하라!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라고 외쳤다. 물론 ‘살아남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이유를 떠나서도 익숙한 상황, 익숙한 방식, 익숙한 나태와 관성으로부터 탈출해야 할 까닭은 충분하다. 익숙한 삶은 편안하다. 그러나 반드시 지루하다. 권태 속에 불안이, 불평불만이, 타인을 향한 증오가 싹튼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배워야 할 일들이 숱하게 많아서 행복하다. 초보자가 되어 벌벌 떨며 내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동안, 나는 저절로 겸허와 겸양을 배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시작한다. 당장 내일 강습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지만, 나는 스스로를 토닥이며 격려한다. 시간이, 그리고 너 자신이 너를 도울 것이다. /김 별 아 소설가

문화카페/축제에서 만난 사람들

국내외의 특색 있는 공연들을 한 곳에서 펼쳐 보이는 축제마당은 즐거움이 넘쳐흐른다.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예술가들은 청신한 자극을 받아 자기계발의 계기로 삼을 수 있고, 시민들은 극장문화를 친숙하게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축제의 진정한 즐거움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의 문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도 있어 축제는 좋은 것이다. 이제 음악극축제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국내외 15개 단체의 공연을 진행하느라 스텝들은 거의 그로기 상태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축제 참가자들의 다양한 삶의 표정을 엿보는 즐거움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후츠반극단은 수입을 전 단원이 균등하게 나누는 극단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순진무구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 주인공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 부부였지만, 얼마 전 여배우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협의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공연이 끝나면 지하철역사 시장에서 딸의 선물을 함께 고르기도 하지만, 호텔에 돌아와서는 각기 다른 방으로 헤어지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기욤은 아직도 속으로는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한 상태이다. 통역을 맡은 자원봉사자는 역전 포장마차에서 새벽까지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이 하루의 마무리 일과였다. 아무리 쿨한 서양의 젊은이라 해도 이별의 아픔을 다스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축제의 마지막 작품인 와유는 인도네시아어로 은총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 이름 앞에 와유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애정과 존경의 최상급 표현이라고 한다. 와유는 최근 10여년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다문화교류 작품이다. 와유는 현대음악의 거장 리게티의 곡을 벨기에가 자랑하는 장 미셸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하선해씨가 인도네시아 무용수를 데리고 안무한 세계 초연작이다. 독일 프로듀서, 말레이시아 조명디자이너, 영국 무대감독 등 그야말로 세계인들이 함께 모여 마무리 연습에 몰두하고 있어 우리 공연사에 기록될만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다. 그러나 작품을 위해 집을 담보하여 제작비를 마련한 하선해씨의 투철한 예술혼이 세계의 예술가들을 감동시킨 것처럼, 우리 역시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완성도는 어느 공연보다도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술과 재정의 밀월관계는 언제쯤 가능해질 것인가. 여행을 하면서 모두들 느끼는 일이지만 사회주의국가 사람들은 쉽게 친해진다. 소박한 태도와 상대방을 신뢰하는 표정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체코 국립마리오넷극단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프라하여행의 필수 코스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 공연단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프라하극장 객석의 30%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에서의 공연에 호기심도 많았고 기대도 많았다.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의 공연에 이어 내년에는 모 방송국의 초청으로 3주 정도의 공연을 제의받고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인형조종술이 정교한데다 자녀와 함께 클래식을 즐기는 가족단위의 관객들로 극장은 붐볐고, 아시아무대에의 성공적인 데뷔로 공연자들 역시 만족해하였다. 축제 기획자에게 작은 보람을 안겨준 따뜻한 공연이었다. 축제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그러나 연극을 통해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를 높이고 우의를 다지려는 깨끗한 영혼과 순수한 열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결같다. / 구 자 흥 의정부 예술의 전당 관장

문화카페/뮤지컬 시장, 근본을 기억하자!

요즘 지킬 엔 하이드 앵콜 공연이 인기다. 스타 마케팅이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스타인 조승우가 캐스팅된 공연은 불과 일주일도 안 되어 매진되었고 더블캐스트로 지킬에 캐스팅된 배우의 경우도 역시 매진사례를 이루었다. 지킬 엔 하이드는 우리보다 먼저 공연한 일본에서만 해도 큰 호응 없이 조기 종용한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는 드라마적 구성과 귀에 친숙한 음악 작품의 정서 코드가 잘 맞았다고는 하겠지만 조승우라는 걸출한 스타를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기획자들 사이에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은 마케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거론치 못하겠지만 부적절한 스타 캐스팅으로 별 성과 없이 재정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오히려 작품을 그르친 공연들도 많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뮤지컬 마니아층들에게는 스타 캐스팅이나 대중성을 가진 배우의 출연은 거북스럽게 작용할 수도 있다. 뮤지컬은 많은 기간 훈련을 거친 뮤지컬 전문배우가 해야 제 맛이라는 논리다. 한 명의 아티스트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뮤지컬배우 역시 춤과 노래와 연기를 모두 해야 한다는 장르의 특성상 많은 시간 동안의 훈련과 배움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 지는 과정없이 단순히 스타라는 것을 이용한 마케팅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아직 스타마케팅에 대한 정확한 연구나 이렇다할 사례분석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분별하게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은 결국 실패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은 마케팅의 4P를 이야기 할 때 다른 부분들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Product)의 완성도라는 사실이다. 작품의 완성도는 관객이 가장 먼저 안다. 또한 인터넷 보급률 1위의 우리나라 관객이 가지고 있는 파장과 입소문은 실로 대단하다는 점은 작품이 먼저냐 스타를 통한 마케팅이 먼저냐에 자연스러운 결론을 내려줄 것이다. 기획자는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은 실력 있는 준비된 배우 또는 준비된 스타를 발굴하는 예리한 시각을 키워야지 단순 마케팅을 위한 스타 캐스팅에 예리할 필요는 없다. 뮤지컬의 세계적인 추세라는 기존의 곡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만든 뮤지컬이 흥행을 거두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룹 아바(Abba)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 국내에는 70~80년대 히트 음악으로 엮어 만든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맘마미아라는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제작과정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런 치열한 과정 없이 세계적인 유행이고 기존의 곡들을 편집해서 만드는 것은 작곡하는 것 보다 쉬우니까 도전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접는 것이 낫다.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이렇게 하면 잘되니까 나도 해보자라는 생각이 유행을 만드는 것 같다. 어쩌면 흥행 뮤지컬인 ‘지킬 엔 하이드’가 나중에는 스타 캐스팅이라는 유행을 낳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유행처럼 되어버린 맘마미아류의 뮤지컬이 앞으로 판을 칠지 모르겠다. 장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요체는 흥행 이면에 감추어진 과정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기획·제작자들의 작품에 대한 치열한 자기 고민이 있을 때에만 우리나라 뮤지컬계가 제대로 된 날개를 펴게 될 것이다. /이 종 덕 성남아트센터 사장

문화칼럼/어가행렬

구리시에는 동구릉(東九陵)이 있다.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의 9능 17위의 왕과 왕비능이 있는 국내 최대의 왕릉군이다. 구리시는 이러한 동구릉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나아가 소중한 우리문화를 세계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하여 구리시를 세계속의 문화도시로 발전시키고자 ‘2005 구리동구릉문화제’를 개최한다. 동구릉문화제는 오는 14일 어가행렬 재현을 시작으로 ‘건원릉친향기신제’ ‘성년례 재현’ ‘시민백일장’ ‘전통무술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가 동구릉과 구리시 관내 일원에서 열린다. 어가행렬 재현은 행사당일 오전 11시 구리시체육관을 출발하여 돌다리 사거리를 거쳐 동구릉까지 약 3㎞에 이르고 행렬인원도 400여 명이 넘는다. 어가행렬에 참여하는 왕과 왕세자, 문무백관은 지난 4월 구리시민 가운데 왕의 위상과 풍모가 있는 사람을 공개모집하였으며, 왕과 왕세자는 구리시 홍보대사로 임명하여 시를 널리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서울 일부 자치구에서 이와 비슷한 어가행렬 재현 문화행사를 열지만, 국내최대의 왕릉군과 배릉(拜陵)의식의 근원이 되는 건원릉이 소재한 구리시가 재현하는 어가행렬이야말로 어가행렬의 원조라고 자부한다. 배릉의식의 근원인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능으로 1408년(태종8년)에 조영(造營)되었다 한다. 고려시대의 왕릉 중 가장 장려하고 완전하게 정비된 공민왕릉과 정릉(正陵:노국대장공주릉)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건원릉은 조선왕조 왕릉조영의 규범으로 정립되어 후대 왕릉의 표본이 되었다. 조선 초기 오례(五禮)를 규정한 예서(禮書)인 국조오례의는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賓禮)·군례(軍禮)·흉례(凶禮)등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국조오례의 길례(吉禮)편에 의하면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반드시 건원릉 이하 부왕과 모후의 산릉에 참배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배릉의식은 국가적 의례로서 뿐만 아니라 왕이 친히 거행한다는 점에서 그 의례적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또 국조오례의는 조선시대 기본법전인 경국대전과 동시에 편찬된 국가의 기본 예서(禮書)로서 문화적 가치와 비중이 매우 높다. 이번 구리시에서 재현하는 어가행렬은 거가(車駕)의 출궁(出宮)과 행례(行禮)로서 국조오례의 문헌의 철저한 고증에서 이루어진다. 혹자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는 없고 동양과 서양문화가 들어왔다고 하지만, 한 민족 한 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는 그 후손들이 얼마나 발굴 계승 발전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히 보존하여야 할 전통과 문화다. 역사와 전통, 문화, 가치관 등 소중한 것들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2005 구리동구릉문화제’의 어가행렬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관광자원으로 발굴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가정의 달 5월! 싱그러운 주말에, 가족과 함께 ‘2005 구리동구릉문화제’의 어가행렬을 참관하고 구리시의 자랑스런 명소인 동구릉을 찾는다면 가벼운 산책과 청량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1일 웰빙 투어코스’도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5월1일부터 동구릉 관람 시간도 종전 오전 9시에서 오전 6시로 3시간 앞당겨 개방하고 있다. 3시간 조기 개방에 따른 필요인원은 자원봉사자로 충당한다. 동구릉 ‘숲 지킴이’다. 문화재를 사랑하고 자연보호에 관심이 있는 인근주민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지난 4월 접수받아 선착순 마감하였으며, 내년에도 실시할 계획이다. 숲 지킴이로 선발되면 활동기간중 동구릉 무료입장과 문화재보호 자원봉사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시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많은 참여를 기대해 본다. /이 무 성 구리시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