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다시 위대해질 것이다”

가수 김범수는 2003년 겨울에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흘러나왔던 곡 ‘보고 싶다’의 주인공이다. 그 이전 ‘헬로 굿바이 헬로’라는 노래로 빌보드 세일즈 차트 51위에 올라 국내 최초로 빌보드 입성의 신기원을 이룩한 가수도 그다.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현재 컴백을 위한 앨범 작업에 한창이다. 그가 부재한 2년 동안 과연 우리 음악계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디지털시장으로 전환해 덩치는 커졌다지만 불법 다운로딩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으며 IT산업의 우울한 그늘이 된 음악계라서 당연히 좋은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의 지적은 훨씬 더 뜨끔했다. 한마디로 지금 음악계는 비겁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장을 타개하려는 노력으로 알짜 곡이 나오고 다양한 음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김범수는 디지털 싱글이라는 것도 어차피 앨범시장도 죽었고,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때우려는 것에 불과한 비겁한 접근이라고 주장했다. 가수들이 떼 지어 연기자로 변신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했다. 가수라고 연기를 하지말라는 법은 없지만 음악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몰려가는 일종의 도피라는 것이다.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음악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비록 지금은 어렵지만 음악이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음악이 다시 위대해질 때 연기로 전환한 가수들에게 그 경력은 굉장히 부끄러운 과거로 남을 것 같아요.” 김범수의 말은 많은 음악계 종사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음악계 사람들은 지금의 대중가요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언젠가는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음반이 팔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음악에 매진하는 가수와 제작자가 아직도 많은 것은 음악이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한쪽 가슴에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따라가느라 디지털 싱글 출시가 줄을 잇고 있지만 앨범 발표가 줄었느냐면 결코 그렇지 않다. 한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듀서는 과거 전성기 때보다 더 많은 앨범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반판매량이 갈수록 하락하는데도 앨범 출시가 끊이지 않는 것을 시대착오로 보는 시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이처럼 ‘구시대 방식’인 앨범을 고집하는 데는 허황된 대박의 꿈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계자들도 있다. 한심하고 미련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잘못 본 거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시대착오적 접근으로 풀이하는 것은 곤란하다. 거기에는 아직 숨 쉬고 있는 음악에 대한 본연의 애정이 존재한다. 가수 이승철은 말한다. “음반을 내봤자 안 팔린다는 걸 우리가 왜 모르겠어요? 아마 다들 바보짓이라고 할 겁니다. 그럼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시장이 안된다고 그만둡니까? 음악이 좋아서 이쪽에 온 거니까 당연히 앨범은 만들어야죠. 팔리든 안 팔리든 잘 만들어야죠. 디지털 싱글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는 음악은 중독성이 압도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음악계가 지켜야 할 기본은 좋은 음악,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음악을 만든다는 소박한 자세다. 이런 기본이 없는 게 음악시장이 악화되는 것보다 더 절망적이다. 음악이 다시 위대해지기 위한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문화로 국민통합을

문화예술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중요하다. 문화예술이 다양하게 표현·교류되면서 사회 안에서 문화간 이해를 높인다. 또한 순기능적으로 연계되어 사회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경험은 많았다. 이처럼 문화예술은 궁극적으로 ‘밝고 맑은 사회’를 일궈낸다. ‘문화의 힘’은 우리 사회에 ‘평화의 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비폭력적 태도와 인권존중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편견과 극단을 배제하는 사회문화를 일궈내고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본질적인 가치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공생·공진해야 바람직하다. 이를 이해관계 네트워크에 연결함으로써 국민통합을 염원하는 이해관계자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뿌리내려 구축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소중히 다뤄왔던 이러한 가치를 달성하기에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비용도 든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기본적인 권리 존중, 비폭력에 기반한 행동방식이 자연스럽게 체질화 되어야 한다. 이를 돕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협력으로 문화, 종교, 사회단체, 정치체제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토록 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기본원리적인 이야기지만 사회문화적인 접근을 들고 싶다. 첫째는 이해당사자간 상호이해를 위해 지속적으로 문화교육을 해야 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문화를 접할 기회를 늘리고, 관용의 미덕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해야 한다. 둘째는 우리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사회정의 없는 설득은 무의미하다. 셋째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개방성·과학적 태도,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 습관을 생활화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형식적·일시적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추구되도록 지속 개발하여 뒷받침하게 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이러한 몇 가지 전제를 갖춤으로써 문화기반의 평화와 국민통합을 달성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이 문제에 다가갈 수 있는가. 아무래도 문화교류와 생활문화정책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선 문화적 기본권 확보를 통한 문화사회 실현을 위해 지역·소득·성별 등의 차이를 이유로 접근성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문화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가치관과 표현의 자유를 통해 건강한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지속해야 한다. 또한 전문 문화예술인과 지역 문화 복지, 문화교육의 연계를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 사회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 종교계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많은 단체들이 높은 수준에서의 문화적 다양성, 관용, 협력, 연대, 대화와 타협에 대한 존중을 강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국민평화와 통합은 다원리적이며 다차원적인 프로젝트이므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치는 국정 최우선과제이다. 특히 미디어를 활용하여 평화와 통합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각종 추진 주체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평화의 문화’와 국민통합은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개방성에 크게 의존하며 바로 미디어가 그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냉소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미디어가 아니라 국민 삶의 질을 개선시키며 참여를 넓히는 공공 저널리즘을 보다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이흥재 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대한민국의 시계는 매우 빨리 움직인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이니 정확하게 29년 전인가 보다. 농과대학을 다니는 동아리 선배가 황홀하게 피어있는 모란꽃 화단을 보며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을 했다. “000 교수 수업을 듣는데 말야, 그러더라고. 앞으로 이십년만 있어 보라고. 모두들 화단에다가 화초 심지 않고 배추, 무, 상추, 그런 것을 심을 거라고.” 하도 실없는 소리만을 골라가면서 하는 선배라 나를 비롯한 1학년 여학생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야기는 적중했다. 그 선배 앞에서 까르르 웃던 나는,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1980년대 중반부터 아파트 베란다에다 상추를 심어 먹기 시작했고, 도시의 웬만한 단독주택의 화단에는 다 상추와 깻잎, 열무, 얼갈이배추 등이 심어져 있다. 그 선배의 말에 우리는 왜 까르르 웃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습다. 우리는 아마 배추와 무를 매우 우습게 보았던 모양이다. 그것은 농업이나 그를 통해 나오는 농산물의 중요성을 별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농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수가 매우 많았다. 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의 농업인구는 절반을 넘었고,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농업국가였다.(이 말은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실려 있던 말이다.) 우리는 농삿일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정도로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고, 그래서 농사를 우습게 보았다. 잘 익은 사과 한 알의 가격이, 인공향료와 인공색소를 섞어 만든 사과맛 음료보다 싼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농삿일은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하여, 사과맛 음료보다 사과 한 알의 값이 훨씬 비싼 시대가 되었다. 유기농이나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었고, 그 생산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자신의 화단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농약 채소를 가꾸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계는 하도 빨리 돌아서, 중년 이후에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다. 명색이 대중예술 평론가라는 나도,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현란한 광고를 이해하지 못하여 “저게 뭐를 팔겠다는 광고야?” 물어봐야 하는 것이 종종 있을 정도다. 나이가 채 오십이 안 되었는데도 이 정도이니, 60~70대들은 이 엄청난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버거울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대통령이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보면서 ‘우리 국민이 이렇게 민감하게 대응할 줄 몰랐다’라고 한 말을 진심이라고 믿는다. 아마 값싼 쇠고기의 수입에 웬만한 국민들은 만족할 것이며, 문제는 축산농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쇠고기 수입 이슈가 터질 무렵, 대통령의 행보는 주로 축산농가 쪽으로 맞추어져 있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아륀지’ 해프닝처럼, 시대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몰라서 빚어진 엄청난 결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시계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꽤 많은 모양이다. 여당의 모 의원은, 광우병보다 교통사고가 훨씬 더 사망률이 높은데 왜 그것에 대해서는 촛불집회를 하지 않느냐고 했단다. 1960년대만 해도 수해 같은 천재지변에 ‘인재(人災)’ 운운하며 정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란 없었지만, 이제는 태풍 피해에도 정부의 대비 부족이 도마 위에 오른다. 즉 쇠고기 문제가 단지 사망률 같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쪼그라든 인문사회과학의 시야를 확장해보려고 자연과학 책을 이것저것 뒤지다가 요즈음 들어 적색의 대안으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인 녹색 생명, 생태 관련 기초 용어에 새삼 눈이 간다. 그 재미있는 것 중에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있다. 바이러스는 자기를 증식하기만 하는 물질이고, 박테리아는 물질대사 능력을 가진 최초의 생명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음직하나, 지난 20세기를 물질에 갇혀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 무기물과 유기물 사이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타고 넘는 그 틈에 마음이 개운치 않다. 게다가 중딩이·고딩이의 촛불 세례에 자존심까지 넘겨 준 늑다리의 심술까지 은근히 발동한다. 사람이 나이 드는 징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볼 때 가장 특징적인 것은 먼저 의심이 많아진다는 것, 다음으로 단순 무식해진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전자는 바로 그 노파심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이른바 노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니, 노파심, 노망이라 바꿔 개념화하니 더욱 그럴 듯도 싶어진다. 오늘은 이 바이러스, 박테리아를 물고 늘어지면서 그 노파심과 노망을 한껏 발휘하여 정말 아주 늙어버린 것인지 자기점검을 해보기로 하자. 먼저 박테리아가 최초의 생명체이므로 그보다 훨씬 단순한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른 참고 자료들을 뒤적이다보니 역시 그 부분이 논쟁거리가 됨을 알겠다. 물질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만드는 생산 활동을 하지 않지만, 자기 유전자를 가지고 닮은꼴을 만들어가는 생식 행위를 하므로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논자는 이것이 스스로 증식할 수 없고 숙주인 박테리아를 통하여 증식하면서 숙주를 파괴하므로, 이른바 그 관계를 기생자와 숙주로 처리하고 있다. 또 다시 의심이 고개를 든다. 생식행위자는 기생자이고 생산 활동자는 숙주라고? 이건 너무 생명 현상 위주로만 해석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둘의 관계는 수평적인 쌍방 생식행위자, 이른바 암컷과 수컷, 음과 양의 관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비루스에서 왔는데, 그 뜻은 독이라 한다. 우연히도 철자로 보아 미를 의미하는 비너스에도 가깝다. 한편 박테리아는 에너지의 축적자인 배터리를 연상시킨다. 이 둘은 러므로 기생관계가 아니라 쌍방이 서로 필요로 하는 수평적 상생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생식은 희생을 동반한다. 상생의 원리는 이렇게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박테리아를 생산자로 규정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볼 때 오히려 그가 기생자, 수탈자이고, 반대로 자연이 생산자, 기여자가 된다. 자연과 생물의 관계야말로 수직적인 생산자와 기생자, 기여자와 수탈자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생산은 수탈을 동반한다. 이것이 기생의 원리이다. 노파심과 노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우주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이러한 기생과 상생의 원리로 다시 탄생한다. 그런 힘은 한 생명체의 일생에서 생식행위가 쇠잔해지고 생산 활동이 하강곡선을 그리는 시기에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기울이는 최선의 노력인 과학적 낙관주의에서 발현된 것이 아닌가 부질없이 헤아려 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국악

지난 5월18일 전남 광양에서 열린 국악대축제 ‘국악난장’은 세대와 관련해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광양제철소라는 든든한 후원에 힘입은 이 행사에는 국악 각 장르의 내로라하는 명인들이 나와 판소리, 경기민요, 가야금, 해금연주 그리고 근래 새 경향인 퓨전국악의 진수를 선사했다. 또한 하루 전 17일에 있었던 ‘대학국악제’는 국악계 미래의 주인공을 발굴한다는 취지에서 처음 마련되어 국악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대회 주최측은 ‘대학국악제’를 ‘대학가요제’에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연례행사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밝혔다.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은 젊은 국악과 학생들의 아기자기한 실험에도 놀랐고 ‘국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에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이날 축제는 국악 자체로도 재미있으며 동시에 다른 음악과 결합해 얼마든지 갖가지 소리풍경을 만들어낸다는 가능성을 새삼 확인해주었다. 다음날 국악난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자리였다. 관객들은 김영동 지휘의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는 물론,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 이춘희의 경기민요,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 해금의 스타 강은일의 연주에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공연을 참관한 국악 관계자들의 표정은 흐뭇했다. 우선은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예상 밖으로 많은 관객들이 찾아 열띤 호응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관객들의 세대분포였다. 기업의 문화후원에 따른 무료관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전남 드래곤즈 전용구장의 행사장에는 국악을 경험한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국악보다는 가요가 더 좋은 중·고교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으며 아빠의 무동을 탄 어린이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행사의 캐치프레이즈인 남녀노소의 가족행사로서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엄마의 설명을 차분히 듣는 아이도 있었지만 아직 국악의 맛을 모를 태반의 아이들은 당연히 자리에 앉아 있지를 않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공연을 관람했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국악인들의 설명은 달랐다. “저렇게 왔다 갔다 하니 국악을 듣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은연중에 국악의 향기가 아이의 몸에 전달돼요. 현장에 온 아이와 오지 않은 아이는 나중 커서 천양지차를 보이게 됩니다. 어릴 적에 한 번 들으면 어른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국악을 찾게 된다는 거죠.” 사실이 그랬다. 어렸을 적에 가요나 팝에 이끌린 지금의 40대와 50대들은 국악을 지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으로 여기는 세대들이다. TV에 방영되는 국악프로는 심야나 시청률이 낮은 시간에 배치되어 있고, 막상 보게 되더라도 왠지 고리타분하다. 그러나 이날, 단 한번 제대로 된 국악 프로를 본 적이 없다는 한 40대 관객은 “어릴 때는 그렇게 고루하게 들린 경기민요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인지 처음 알았다”고 감격에 젖은 소감을 밝혔다. 광양시민이 부러웠다. 서울과 경기 사람들이 국악에 관한 한 오히려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아이들을 동반할 마땅한 국악축제가 서울에는 별로 없다. 서울의 아이들은 거의 국악을 접하지 못한다. 광양 국악난장과 같은 국악한마당이 서울에서도 자주 열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국악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것 아닐까.

창조도시와 디지털 문화콘텐츠

흔히 우리는 지금 지식정보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산업시대의 노동력이나 자본처럼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암묵적 지식을 말한다. 감성 축적으로 이뤄진 암묵적 지식은 어느 순간에 아이디어로 툭툭 튀어나와 창조핵심의 산업화에서 길을 밝혀준다. 개인들이 이 같은 암묵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도시가 바로 창조도시이다. 국가단위에서는 창조국가, 기업단위에서는 창조기업으로 확대해서 볼 수도 있다. 창조도시에서는 시민들의 창조활동이 자유롭도록 보장하는 환경만들기가 제일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회경제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금 서울시가 내세우는 창의도시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창조도시와 같은 맥에 서있다. 창조도시는 창조적 도시나 창조적 도시경영과는 그 뜻이 사뭇 다른데 유의해야 한다. 창조도시는 산업화보다 한 수 위다. 문화사회적 고도화를 이룬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모습이다. 창조도시는 도시의 문화콘텐츠를 활용하여 문화예술활동과 산업화를 이루게 된다. 결국 창조도시에서는 문화콘텐츠의 발굴과 활용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도시의 격이 달라지게 된다. 결국 미래의 도시가 창조도시를 지향한다면 문화콘텐츠가 그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콘텐츠는 오늘날 디지털생태계 속에서 더욱 발전하면서 경쟁력이 커진다. 아날로그 시대가 아닌 디지털시대에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 생태계속에서 문화콘텐츠가 잘 작동되도록 생태계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이를 작동할 창의적 전문인력이 많이 배출되도록 육성정책을 펼치는 것도 당연하다. 단순한 반복으로 생겨나는 ‘숙련된 전문인력’이 아닌 지식정보시대의 ‘창의적 전문인력’을 말한다. 문화콘텐츠가 디지털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창조도시. 그를 위해서는 생산·유통·소비 각 측면에서 관련 요소들을 자극해야 한다. 도시에 숨겨져 있던 특색 있는 원천콘텐츠를 발굴하고 활용토록 한다. 이는 또한 IT기술에 융합하고, 표준화하여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문화콘텐츠 소비를 위한 다양한 시설이나 이용환경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단지 콘텐츠 때문이 아니더라도 디지털시대에는 당연히 요구되는 전제조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많은 도시들은 문화콘텐츠의 디지털화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음악, 무용, 공예, 연극 등 순수예술 각 장르를 활용하여 지역브랜드로 삼는 경우도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영상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을 내세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지역도 있다. 모바일콘텐츠, 교육콘텐츠 등에 집중하는 도시도 있다. 나름대로 명분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도시특성을 감안한 정책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 걱정이다. 몇 가지 점에서 신중해야 할 것이다. 지역별 문화콘텐츠가 특화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지방정치시대에 흔히 나타나는 과욕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시장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출혈경쟁이라면 공멸되지 않도록 사전조정이 필요하다. 지역소재 기업과 연계되지 않은 채 추진된다면 지역에 뿌리내리기 어렵고 생산비도 거둬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과 지역마케팅을 병행하도록 마케팅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어제 오늘에 나온 것이 아니다. 여전히 승자독식이나 하이리턴에 대한 부푼 꿈만으로 추진되고 있다면 곤란하다. 창조도시와 디지털콘텐츠의 관계는 반드시 공존·공생·공진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대규모화가 아닌 적정수준, 금융자본이 아닌 콘텐츠에서 답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흥재 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역시 영어가 결정적 문제는 아니다

한미 쇠고기협상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끌거리고 급기야 대통령의 사과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영어 오역 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이 동물성 사료의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해놓고 오히려 완화하는 방침을 세우고 발표했는데, 그 부분을 잘못 해석하여 우리 정부는 국민들에게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기준이 강화되었다고 잘못 발표를 한 것이다. 국민들은 국제통상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까짓 영어 번역도 제대로 못해서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만드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아마 이런 분노의 한편에는, 이 정부의 인수위 시절의 이른바 ‘어린쥐’ 사건, 즉 영어를 잘 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영어 이외 과목까지 영어몰입교육을 하자고 했다가 국민의 질타를 받고 뒤로 물러섰던 일들의 기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어 중요하다고 그토록 외치더니, 결국 해놓은 일이 영어 오역이냐?” 하는 비웃음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쇠고기협상에서의 오역 파동을 놓고, 그러니까 영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는 이 문제가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영어실력 말고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생각해 보자. 이 문제의 핵심은 사료 강화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강화하겠다는 약속만 믿고 미국측에 백지위임을 해버린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측의 문서를 잘못 번역하여 우리 국민에게 사료에 대한 조치가 강화될 것으로 알렸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영어 문장을 오역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런 오역이 발생한 것은, 당연히 미국측이 동물성 사료에 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예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단을 가지고 문장을 읽었으니 읽는 사람의 주관이 뒤섞여 오역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내 주변에는 가끔, 매 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던 사람이 갑자기 심각한 상태의 암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건강검진을 한 의사들이 엉터리라고 화를 냈지만, 나는 그 역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종류의 암을 검사하는 경우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것도,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는 좀 더 집중적으로 세심하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의 인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태도나 시각의 영향을 크게 받는 법이다. 이것은 꼭 실력이 없어서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이번 오역 파문은, 우리측 협상 담당자의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측과 팽팽하게 밀고 당기면서 정밀하게 따져보는 태도가 아니라 수입 확대의 명분을 만드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면, 영어 실력이 좋더라도 이런 오역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일을 할 때에 영어 실력은 그저 유용한 수단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태도와 시각이다.

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어선 안되는 이유

재미있는 우리 말 중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이 있다.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 터무니없는 말, 말이 안 되는 소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정도의 뜻으로 새길 수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씨 나락을 까먹어선 안 된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아는 체 해 보자. 우이 선생이 관계론의 교과서라고 부르는 주역을 해설하면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절망의 괘로서 ‘산지박(山地剝)’을 소개하고 있다. 세상이 온통 악으로 넘치고 단 한 개의 양효만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이마저도 언제 음효로 전락할 지 알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곧 이어, 그 절망은 곧 희망의 기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구(上九)의 효사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의미를 새긴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이다. 왕필은 주에서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로 읽는다. 씨 과실이 결코 먹히지 않듯이 씨 나락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누구에게도 먹힐 수 없으므로 우리 조상들은 실체가 없는 귀신을 핑계 대었을 법하다. 그렇게 터무니없게…. 한 발 더 나가보자. 씨 과실, 씨 나락, 씨 암탉에서 씨는 눈에 보이는 유형의 것의 근원이고,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의 상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무형과 유형은 빛의 양면인 파동과 입자를 이루어 천지를 가득 메우고 만물을 생성시켜 기르는 것이다. 어찌 서로 먹고 먹힐 수 있겠는가? 과학적으로 생각해봐도. 씨는 종자이다. 씨 나락, 씨 암탉은 곡물 종자, 가축(가금) 종자에 해당한다. 인류가 원시공동체로부터 문명을 일군 계급사회 최초의 생산수단이 바로 이것이었다. 바이블을 비롯한 고대의 역사 기록이 부의 기준으로 양, 소, 말 등의 가축을 적시하고 있다. 가축의 영어 표현인 캐틀(cattle)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수단인 자본(capital)의 어원이다. 우리가 껄쩍지근한 공기를 느낄 때 우스개로 ‘가축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그 음사인 ‘가족적인 분위기’라 할 때 가족의 영어 표현인 family의 라틴어 어원이 요새 유행하는 주택회사 상표인 familie이다. 그 뜻은 이중적인데, 가족이면서 동시에 노예였다. 가부장제 아래서는 여자는 새끼 치는 도구이고, 그 새끼인 자식은 이자(利子)이며, 그것을 축적하는 것이 재산이었다. 양치기 다윗은 그러므로 부의 생산수단인 양을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기르는 노동력을 제공하여 새끼를 치고 그것을 그 소유자에게 바치는 노예였던 셈이다. 이자는 이(利)는 파자하면 벼(禾)를 칼로 베는(刀) 것이고, 자(子)는 그 새끼이다. 따라서 곡물 종자의 새끼이다. 즉 고대에서의 지배적 생산수단인 곡물의 종자를 소유하지 못한 자가 그의 노동력을 제공하여 수확을 내고, 그 새끼를 이자의 형태로 바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잉여가치 형태이다. 씨 나락을 까먹는 것은 생명의 젖줄을 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수단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귀신은 참으로 편리한 존재다. 공자가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했던 말이 어쩌면 이해될 법도 하다. 인정하고 이해하되 동의하진 말라는 것일 터이다. 또 결국 귀신이 씨 나락 까먹는 소리만 늘어놓은 기분이다. 윤한택 기전문화연구원 전통문화실장

대학축제에 왜 10대 아이돌이?

대학가 봄 축제는 그간 TV에서나 보던 연예스타들을 직접 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다. 가수들의 무대 현장에서는 ‘실제로 보니 아주 예쁘다!’,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작다!’와 같은 학생들의 소감이 쏟아진다. 신기하기도 하고, 멀리 있는 것 같은 스타와의 거리가 왠지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대학가 축제기간에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은 오래전부터다. 30년 전인 1978년의 산울림, 1987년의 들국화, 1990년의 이승철, 1996년의 안치환 등 당대 학생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가수들은 대학축제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본다는 조금은 상식적인 상황이라 언론의 화제도 끌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윤도현밴드와 크라잉 넛이 축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축제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7년 무렵이다. 당시 한 유명대학의 총학생회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보고 싶은 연예인이 누구냐?’는 설문조사에서 뜻밖에 10대 아이돌 그룹인 에스이에스(SES)가 꼽힌 것이다. 에스이에스가 그 무렵 최고스타였기 때문에 얼핏 평범한 결과 같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대학이었다는데 집중되었다. 과거에 대학이 부르고 선호했던 대중가수와 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에 대학축제에 가수들이 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무나 올 수 있는 자리 또한 아니었다. 대학생들의 유서 깊은 지향, 뭔가 주류문화와 분리선을 치는 저항적이거나 비제도적인 메시지의 인물이라야 가능했다. 대학문화는 분명 ‘대항문화’였다. 에이이에스 사건은 이제 대학이 대항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진 것이다. 거기엔 대학축제의 연예인무대가 학생들의 ‘주체적 참여마당’ 아닌 TV시청과 다름없는 ‘수동적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와 실망이 자리했다. 10년이 흐른 요즘에는 대학문화는 대중문화가 완승을 거둔 양상이다. 올해 대학가 봄 축제의 핫 아이템은 단연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와 같은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을 우리 학교로 데려올 수 있느냐의 여부, 그 출연리스트가 학생들 간에 자기 학교의 위세를 재는 척도가 됐다. ‘왜 우리 학교에는 원더걸스가 오지 않느냐’는 학생들의 항의에 대학측이나 총학생회는 골치를 앓는다. 이 덕에 전통적 축제 단골인 민중가수와 포크가수 그리고 근래 진보를 대변하는 인디그룹들은 거의 사라졌다. 근래 대학생 다수를 지배하는 것은 과잉으로 치닫는 스타선호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이고 메시지고 뭐고 ‘내가 보고 싶고, 되고 싶은 유명스타’라야 마음이 끌린다. 거대담론 퇴각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학생들이 연예인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 부담이 등록금 인상으로 직결된다는 피부현실에도 눈감는 것은 안타깝다. 3, 4월을 수놓았던 각 대학 등록금 인상 투쟁이 무색하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가수들이 화려한 율동으로 대학축제 무대를 덮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씁쓸하다. 현실과 이미지 모든 측면에서 지나치다. 스타라는 이름 앞에 굴복해 연예기획사의 과도한 요구에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인기인들 중에서도 적합한 인물을 선별해 학생들이 주도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과 연결시키는 노력은 불가능한 걸까. 대학마저, 해도 너무한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정책고객 관리 서비스

정책이란 집행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만들어진 정책은 대상자인 정책고객에게 잘 전달되어야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정책고객 서비스(Policy Customer Relationship)라고 부른다. 지방자치의 정치적 성격때문에 이에 대한 중요성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민간에서 먼저 싹 텄다. 민간기업은 고객 관련 데이터를 이용해 가치 있는 고객을 파악하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기법을 다각도로 개발한다. 오늘날 고도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정부도 IT인프라를 기반으로 정부와 국민 간 쌍방향 의사소통으로 관계를 증진시키고 정부정책을 제대로 알려 국민의 알권리를 높인다. 좀 더 좁혀 e-메일을 활용에 초점을 맞춰보자. e-메일은 정책을 홍보하고, 여론을 조사하며 시민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는데 쓰인다. 정책홍보는 정부의 쟁점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정확한 정보를 관련 전문가 및 일반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로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여론을 옳게 형성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여론조사로 특정한 의견에 대해 전문가나 일반인의 의견을 수렴하며 참여를 보장하면서 여론을 파악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 관리이다. 이는 홍보나 여론조사 등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전달된 내용에 대한 반응을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고객만족도 및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일이다. e-메일로 홍보자료를 작성하는데는 e-메일이라는 특수한 성격을 잘 감안해야 한다. 스팸 메일의 홍수 속에서 끝까지 읽도록 하려면 심리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제목을 어떻게 뽑고 어떤 용어를 써야할까. 수신인의 이름이 들어가거나 짧고 명료한 문제 제기를 의문문 형태로 구성해보자. 기관 명의를 사용해 메일의 신뢰성과 관심을 유도한다. 글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아야 한다. 헤드라인은 핵심내용을 쉽고 간단하게 구성하고 짧게 끊어 쓰고 제목과 연계시켜야 한다. 중요한 정책이 꼭 포함되는 메시지로 만들어야 한다. 본문이 역시 중요한데 여기에 전략이 들어가야 한다. 본문은 제목이나 헤드라인과 반드시 연관돼야 한다. 핵심내용을 문단 첫머리에 요약해 제시한다. 의견수렴 창구를 하나로 일원화하며 필요 없으면 수신거부를 하도록 만들어 주고, 반드시 기관 연락처를 제시해줘야 한다. 내용 못지않게 디자인도 중요하다. 깨끗한 여백 처리나 공간으로 간결하게 처리하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읽기 쉬워야 한다. 모니터 화면의 크기를 고려, 일반적인 사이즈로 작성하고 e-메일 용량에 한계를 감안해 용량을 최소화한다. 다양한 메일 환경을 고려해 문자 및 일반적인 Html 태그로 작성한다. 정책고객에 대한 서비스 못지않게 유의해야 할 점이 사후관리이다. 정책고객의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 잘 관리해야 한다. 특히 정책 고객의 성향과 관심사항을 분석하고 개인별 적절한 서비스도 생각해야한다. 발송을 할 때도 스팸 처리되거나 반복하지 않아야 하며 적절한 시기에 개인별 맞춤자료를 발송해야 한다. 발송한 e-메일에 대한 수신거부 체크, 개봉률, 발송오류 현황 등도 분석해 활용해야 한다. 실제 정부 메일을 받는 고객들은 e-메일 피로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종 정책을 추진할 때 과도하고 불필요한 정보 제공을 지양하고 개인별로 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정보제공 뿐만 아니라 여론 수렴에 활용해 정책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 좀 더 나아가 이러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아직도 여성의 약진이 우려스러운가?

지난 15일 ‘2008년 BK21 영브레인’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추진해오던 ‘두뇌한국21’ 프로젝트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석·박사과정 학생 중 15명을 선정해 표창한 것이다. 그런데 이 15명의 젊은 인재 중 8명이 여성이었다. 이 시상식장에 모인 ‘높으신 남성 어르신들’이 이런 현상을 두고 우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여풍당당’이란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각 정당의 대변인 자리는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에 여성 대변인을 세워 주목을 받은 지 불과 10여년만에 이렇게 변했다. 초·중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의 지나친 증대로 오히려 남교사 쿼터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진 지는 오래이다. 올해 신임 판사의 여성 비율은 무려 70%에 이른다. 심지어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인 사관학교과 경찰대학에서조차 수석 졸업생들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여성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러한 현상이 우려할만한 일일까 싶다.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중 절반 정도를 여성이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예술계 등 여초(女超) 영역과 군인 등 남초(男超) 영역이 있다. 아마 지금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남초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구분은 얼마나 타당한가? 교사, 법조인, 공무원 등에서 여성 진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인다. 이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이 진출하기 힘든 영역이 많다. 분명 선망의 직업이긴 하지만, 남성들끼리의 네트워킹이 여전히 중요한 기업 경영 분야가 특히 그렇다. 시험을 통해 공채를 하면서, 필답고사 성적과 무관하게 남자 응시자에게 점수를 더 많이 줘 합격자의 성비를 조정하는 기업들은 매우 많다. 여성 응시자로선 매우 억울한 일이지만, 물증이 없으니 이의를 제기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로지 필답고사로만 승부를 가리는 영역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필답고사가 지나치게 단순한 선발방식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공정성만은 분명하게 가려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남녀를 공정하게 뽑아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의 길을 넓혀준다면, 이런 쏠림 현상은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영브레인’은 시험에 의해 선발된 게 아니다. 논문 편수와 논문의 질 등이 모두 고려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학계에서 여자 연구자를 좋아하겠는가. 교수 임용에서 남성이 유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도교수로부터 “난 여자 제자는 안 키운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박사과정 입학을 포기했던 여학생들도 여럿 보았다. 30년 전 필자의 친구는 학과 1등을 차지해 학자금 전액을 지급해주는 학외(學外)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됐는데, 막상 구비서류를 모두 갖춰 장학금을 주는 단체에 가보니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퇴짜를 맞은 적도 있다.(결국 그 장학금은 2등을 한 남학생에게 돌아갔다.) 세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보수적인 게 학계이다. 이런 학계에서 그 엄청난 장애를 뛰어 넘으며 여학생들이 ‘영브레인’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이를 우려하다니! 수상자 여학생들이 들었으면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게다가 특별히 육체적 강인함이나 사회적 교섭능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학문 영역에서 도대체 왜 여성의 약진이 우려스럽단 말인가. 이러한 시대착오적 우려야말로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어느 리얼리스트가 본 모더니즘

허구한 젊은 날 그가 본 것은 온통 처절한 삶의 현장뿐이었다. 휘발유로 온 몸을 태우며 평화시장 육교를 뛰어내리면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던 전태일이 그러했다. 태평로 거리의 최루탄과 물대포 등에 맞서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 가투대열이 그러했다.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을 외치던 신림동 거리의 김세진·이세호가 그러했다. 혈혈단신 북한을 전격 방문했던 문익환이 그러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건은 의심할 여지 없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마르크스 경제학과 비마르크스 경제학의 구분만 있을 뿐이었다. ‘창작과 비평’의 참여는 탐독의 대상이고, ‘문학과 지성’의 순수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개인의 입신을 위한 어떤 노력도 죄악이었고, 오직 고통 받는 민중과 식민지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몸 바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성으로 정금 같이 단련된 강령이 그의 유일한 깃발이었고. 노동계급과 식민지 민족의 진지이던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투쟁의 현장에서 동지들이 하나 둘 밥벌이를 위해, 권력을 향해 떠나가는 것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도 이제 자신의 젊은 날 신념이 흔들릴 수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386이 권력을 틀어지고 그들의 도덕성이 여지 없이 내려 앉을 때까지도, ‘문학과 지성’ 출신 시인이 진보적인 국립대 총장이 되는 사이에 ‘창작과 비평’ 출신 촉망받던 시인이 나이 오십을 넘어 겨우 상 하나 받는 것을 보면서도,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버티고 있었다. 해체니 텍스트니 중용이니 중도니 하는 것들을 기웃거리면서도 그 마지노선은 결코 허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누워 있는 런던의 테임즈 강변에는 공기업 민영화 추세에 따라 폐허가 된 제철소를 유수 재벌 기업이 리모델링해 만든 ‘테이트 모던’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선 ‘변기’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뒤상과 함께 먼 레이, 피카비아 등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예의 리얼리스트가 우연찮게 이곳을 살피면서 다음과 같은 해설에 주목한다. “대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라고 중얼거리면서. 이들의 키 워드는 단순성과 경제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 중에 최상의 가치로 삼는 자유를 잃지 않으려면 생생하고 순진하며 행복한 예술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카비아는 또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의 그림들은 사랑의 행위 들이다.” 한편 먼 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능한 가장 위대한 결과를 위한 가능한 가장 작은 노력이 그의 모토라고. 그런가 하면 뒤상은 저렇게 넌지시 말하며 결정적으로 그의 경계심을 풀어 버린다. “매 순간, 매 숨결은 지금 여기에서 새겨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그토록 버티던 근대 이성의 도달점이 여기라면 이제 물질도 파동도, 리얼도 모던도 결국은 자유, ‘스스로 말미암음’에서 만나고 마는 것일까? 그런 관점에서 서서 그는 ‘절로 무장해제시키는’ 뒤상에게 1등을, ‘경제의 참 원리를 선언하는’ 먼 레이에게 2등을, ‘연애를 해 본 자는 누구나 한번쯤 되뇔법한’ 피카비아에게 3등을 매기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리버럴이나 로맨티스트라고 이름 붙이는 게 과연 될 법한 이야기이기나 한 것일까? 윤한택 기전문화재연구원 전통문화실장

가수와 나이

얼마 전 한 여고생을 만났더니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또래가 스타가 되니까 좋긴 한데, 음반을 사는 쪽으로 마음은 가지 않아요.” 그래도 음반을 구입해 소장하려면 가수가 제 또래보다 나이가 좀 많은, 이를테면 조금 숙성해서 위로 바라보는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은 가수와 소비층의 연령대가 엇비슷한 게 사실이다. 대중가요를 소비하는 주체도 10대들이고, 실제 그들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 가수도 틴에이저들인 경우가 많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윗세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들보다 나이가 형뻘인 가수들을 좋아하고 음반을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1980년대 초반 여고생들이 “조용필 오빠!”를 연호하며 ‘오빠부대’란 신조어를 낳았을 때 1950년생 조용필은 서른이 넘어 있었다. 1984년경 여대생들한테도 인기를 누렸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발표할 시점에 심수봉 나이 또한 30대였다. 당시 팝에 열광했던 10~20대들도 그들보다 족히 열살 차이는 나는 선배 격 뮤지션의 음반을 사서 들었다. 1950년대 중후반생들이 열광했던 팝스타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은 각각 1947년과 1949년생이다. 최고의 록 밴드였던 레드 제플린 멤버들도 대부분 1940년대 중후반생들이다. 그때는 나이가 위인 대중스타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했던 것 같다. 자신보다 위 또래라야 경험폭도 넓고 더 오랜 기간 공력도 축적됐을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들이 선망했던 것은 빼어났든 감각적이었던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그들은 선배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열광했던 것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그럼 같은 또래의 음악을 듣는 요즘 세대는 뭔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또래가수들에게 감정이입하고 주목하는 것은 음악이라기보다 ‘그들의 인기’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나 “나도 얘 네들처럼 뜨고 싶다!” 등과 같은 느낌이랄까. 음악은 조금은 뒷전이다. “나도 저 가수처럼 음악을 잘해 가수가 돼야지!”하는 생각보다 음악은 작곡가든 제작자든 만들어줄 테고, 예쁘고 춤 잘 추기만 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먼저인 듯 보인다. 한류를 이끄는 한 유명 제작자는 “나는 음악이 아니라 스타에 투자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하긴 이 시대는 가수의 외모, 헤어스타일, 의상, 춤, 홍보와 마케팅, 인터뷰 등이 총체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한다. 또한 10대들이 “나도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자세를 갖는 것은 세대의 능동성과 관련해 바람직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수의 기본인 음악을 놓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래의 인기와 스타지향성으로 인해 음악의 감동은 내팽개쳐진 채 기획사의 상품만이 판치는 흐름은 파국을 예약하는 것이다. 최근 수요층보다 나이가 훨씬 위인 일련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유희열, 김동률, 정재형, 김광진 등의 앨범이 잘 팔린다고 한다. 음악에 승부를 거는 이들의 부상은 한줄기 희망의 빛을 제공하지만 여전히 대세는 아이돌 그룹과 가수들이다. 우리의 음악계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행여 인기가수와 팬들의 나이가 또래라는 점도 하나의 원인은 아닐까.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청소년 대중문화매체 이해교육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대중문화의 소비자이자 중요한 생산자다. 특히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런 마당에 청소년 문화교육을 어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그러나 성숙되어 가는 과정에 놓여있는 청소년들에게 문화교육을 가정·학교·사회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책임사회를 위해 오히려 자연스럽다. 먼저 학교교육은 체계적인 교육에는 적합하지만 개별·비판적인 대중문화 이해교육을 위해서는 어렵다. 교사들이 청소년 문화생활을 진지하게 다루고, 솔선수범으로 지도하고,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오늘날 대중문화 시대에 학생들을 대중문화로부터 의도적으로 격리시킬 수 없으며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러한 학교교육의 한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정교육이 중시된다. 부모가 맡는 문화교육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솔선수범적인 매체생활로 불건전한 매체에 오염되는 것을 막는데 모아진다. 안방 깊숙이 인터넷이 자리하고 있는 요즘 국제 내지 이질적인 문화 이해와 비판적 선택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끝으로 사회교육에서 보면 비판적 매체교육은 날로 증가하는 쌍방향 매체를 최대한 활용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매체를 비판적으로 선택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메타커뮤니케이션(Meta-Communication)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주위에서 접하는 다양한 매체들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청소년 대상의 사회교육은 청소년 생활환경을 문화적으로 조성하고, 청소년 시설을 확충해 청소년센터로 운영하며 청소년문화 운동을 널리 펼치는데 까지 신경써야 한다.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을 중점으로 살펴보자. 보편적으로 말하면 관심과 이해를 늘리는데 치중해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행동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지도해야 한다. 쉬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누구와 사귀고 있는 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소년들이 접하는 매체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에 관해 대화를 나눠야한다. 이같은 ‘생활’에 대한 배려가 진정한 의미의 ‘학업’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 이해증진은 한 사회의 공간과 연결돼 형성·공유·전승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하다. 대중문화가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과 사회구조적 조건을 안다면 대중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특정 장르의 특정 내용을 분별없이 수용하고 있다면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매체를 타고 흐르므로 비판적인 매체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중문화에 대한 학습은 문자매체를 통해 보다 더 풍부한 내용과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교사가 주도하는 일방성에서 탈피해 날로 증가하는 쌍방향 매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매체를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고 한 걸음 나아가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메타커뮤니케이션 교육이 시급하다. 다시 말하면, 매체를 잘 활용하도록 교육해 주위의 다양한 매체들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매체를 통해 대중문화를 1차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학교에서 비판적 매체이해(Media Literacy)를 곁들여 체계적으로 습득케 한다면 청소년 대중문화에 대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흥재 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한국연극 100년’? 제목달기에 신중을

올해가 ‘한국연극 100년’이란다. 한국연극협회를 중심으로 기념사업단이 꾸려졌고, 여러 가지 행사들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연극평론을 하고 연극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해를 맞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목을 읽는데 덜커덕 뭔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연극 100년’이라, 도대체 왜 하필 올해가 100년일까? 이 판단은 1908년 원각사에서 이인직이 ‘은세계’를 공연한 것을 기점으로 계산을 한 것이다. ‘은세계’는 이인직과 판소리 소리꾼들이 함께 만든 본격적인 창작창극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까지의 창극이 ‘춘향가’ 등 이미 존재하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면, 이 작품은 인물과 사건을 완전히 새로 창작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은세계’가 과연 ‘한국연극’의 시작인가 하는 점이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그 이전에는 ‘연극’이라 불릴 공연물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1960년대였다면 이런 판단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연극이란 것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일뿐더러, 제의(祭儀)로부터 독립된 형태의 연극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승되어 내려오는 가면극(봉산탈춤, 양주별산대, 고성오광대 등)과 인형극 ‘꼭두각시놀음’ 같은 것이 있고, 이는 1908년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를 ‘한국연극 100년’이라는 말로 기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구태여 올해를 기념하자고 하면 ‘한국 신연극 100년’ 혹은 ‘한국 근대극 100년’ 쯤으로 제목을 붙이는 것이 옳다. 물론 이 역시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신연극’이라는 표현은 ‘은세계’에서부터 처음 나타나니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 이 용어가 쓰이지 않으니 그것이 껄끄럽다. ‘근대극’이라는 표현도 그러하다. 조선 후기로 근대의 기점을 올려 잡으면, 근대의식이 두드러진 민속극들을 처리하는 문제가 골치 아파진다. 한 걸음 물러나 근대적 ‘의식’이 아닌 근대적인 새로운 ‘연극형태’의 출현에 초점을 맞춘다고 할 때에도, 이미 1907년 경부터 원각사에서 판소리를 개량해 창극으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었으니 그때부터 보아야 마땅하다. 이 창극이야말로 이전부터 전승된 ‘전통연희’가 아니라 분명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연극 100년’의 사업을 주도하는 사람들도, 전근대시대의 연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연극 100년’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근대연극 100년을 의미하는 것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왜 제목을 이렇게 부정확하게 붙였을까? 혹시 그저 머릿속으로는 한국연극의 유구한 전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마음과 몸이 그것을 잘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극인을 연극인으로 생각해오지 않았고 일본 신파극이나 서구 근대극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새로운 경향을 연극의 중심으로 인정해 온 터이니, 그저 ‘한국 근대극 100년’이나 ‘한국연극 100년’이나 그리 별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사소한 실수였다고 말하기는 좀 크고 심대한 실수인 셈이다. 그나마 올해의 기념사업의 첫 작품이, 남사당패의 이야기를 담은 극단 미추의 ‘남사당의 하늘’이라는 점이, 이러한 실수를 다소 무마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수 있다. 제목은 잘못 붙였을지언정, 그래도 우리에게 유구한 연극의 역사가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진정한 트로트를 기다린다

1990년대 말까지 방송국에는 가수와 앨범을 홍보하는 매니저들이 득시글거렸다. 한번이라도 자기 가수가 TV에 출연하고, 라디오에 노래가 나오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천년 들어서는 가수 매니저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TV에 가수가 얼굴을 비쳐도, 아무리 라디오에 노래가 많이 나와도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방송국 로비는 한산하다. 그래도 몇몇 매니저들이 보인다. 성인음악, 말하자면 트로트 앨범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젊은이 대상의 음악을 홍보하는 매니저들은 사라졌지만 트로트 매니저만은 나름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나마 트로트 음악의 시장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과거 젊은 가요들이 판칠 때 트로트 음악은 기를 펴지 못했다. 태진아, 송대관, 현철, 주현미 등 몇몇 기존 트로트 스타들만이 활발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장윤정의 ‘어머나’는 모든 것을 바꿨다. 우선 트로트 가수들이 젊어졌다. 신세대 트로트란 이름으로 장윤정, 박현빈, LPG 등 나이 어린 트로트 가수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심지어 틴에이저 걸들에게 압도적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들도 ‘로꾸거’라는 트로트 곡을 내놓았다. 트로트의 위세는 지난해 대선 때 절정에 달했다. 후보들의 유세장마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대중들을 상대로 표밭을 일구려는 대선 후보들 입장에선 캠페인이나 로고송 등으로 대중의 정서와 가장 밀착된 노래를 선호하게 돼 있다. 역사적으로 다수의 서민들과 함께 해온 장르인 트로트가 쓰임새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젊은 가요에 밀려 허덕였지만 트로트는 죽지 않는 음악임이 다시금 확인됐다. 이같은 추세를 놓칠 새라 원래는 젊은 가요를 만들다 근래 들어 트로트로 전향한 제작자들이 부지기수다. 이때문에 방송국에 트로트 매니저들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잦아진 것이다. 트로트 가수가 젊어지고, 전에는 트로트를 외면하던 청소년층으로부터도 호응받는 것은 반갑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신세대 트로트가 젊은이들의 감각과 요즘 들어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떠오른 재미에 힘입어 부상한 만큼, 여전히 기성세대는 소외돼 있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요즘 트로트가 트로트 특유의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불평을 토로한다. 지금의 트로트는 장조와 빠른 템포로 획일화돼 있다. 가슴 저미는 차분한 곡들이 거의 없다. 설령 있어도 홍보하는 노래는 죄다 빠른 노래들이다. 오히려 반대로 SG워너비나 VOS 등 젊은층 대상의 가수들이 애절한 노래를 부른다. 트로트가 자랑하는 심금을 울리는 비애의 정서를 젊은 가요 쪽에 뺏긴 형국이다. 신세대 트로트라고 하지만 가사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장윤정의 ‘어머나’ 때만해도 신선하고 재미가 있어 관심을 보였지만 갈수록 가사가 통속적으로 흐르자 최근 젊은층 팬들이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모처럼 돌아온 트로트시대를 살리기 위해선 음악적인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경제·사회적 고통에 시달리는 대중을 어루 만져주는 공감 가는 멜로디와 실한 노랫말의 트로트가 시급하다. ‘목포의 눈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30년’, ‘내 마음 별과 같이’ ‘비 내리는 영동교’ 같은 노래들이 왜 나오지 않는 건가. 대중의 마음을 감싸고 위로해주는 진정한 트로트를 듣고 싶다.

‘영상창조 도시’

영화가 생겨난 지 이미 110년, 텔레비전이 생겨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영화영상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영상은 이제 가장 강력한 문화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더구나 영상으로 표현하는 기술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곳곳에서 기술과 문화예술 융합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영상을 받아들이는 소비자 측면의 환경이 양적으로 급팽창하고 질적으로 더욱 쾌적해지고 있다. 영화영상을 주목하는 평론가들이나 전문가에 가까운 생비자들이 늘어나며 그들의 감각이나 시각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어린이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UCC는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 문화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영화영상 수요와 공급에 발맞춰 영화영상이 산업화되고 지역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영상산업이 다른 산업발전에 영향을 주는 줄줄이효과(window effect)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련업체들은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역들이 혹시 짝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그러나 최근 지방촬영이나 저예산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는 등 지역에도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 영화제, 영화촬영도 이미 지역에서 성공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검증을 마쳤다. 배급형태도 기존 배급시스템 외에도 전국에서 자주적으로 상영되는 영화가 많아졌다. 영화영상콘텐츠 취급을 둘러싼 장벽인 코스트는 이제 확실히 줄어들었다. 이 같은 영화영상문화의 변화는 지방도시의 문화정책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 하나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공공문화시설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지역단위 영상위원회는 시민과 영화의 다양한 만남을 이끌어낸다.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으로 이끌어내고 컬쳐노믹스의 전위대로 활동하며 예술진흥과 영화영상문화의 교차점을 만들어 낸다. 영화영상문화를 둘러싼 도시의 변화는 세계 곳곳에서 이미 열기가 넘치고 있다. 문화산업을 창조산업이라는 말로 바꿔 쓰고 있는 낸 영국의 경우에서 찾아보자. 창조도시모델에서는 도시의 잠재력을 높이는 요소로서 문화예술의 힘을 중시하고 있다. 영국은 1997년부터 문화정책으로서 창조산업 육성을 기치로 걸고 있는데 영화영상이 교육·정보·문화의 중요한 자원으로서 창조적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도시는 단순한 소비지로서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문화와 산업활동 또는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시가 이처럼 중요하므로 그같은 도시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각 도시 거주시민들이 쾌적하고 문화를 생활 속에서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를 통해 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커뮤니티 시네마와 영화적 자원을 적절히 연결시키는 정책이 빛을 내고 있다. 영화는 그 오락적 기능덕분에 산업으로 싹트고 있으나 우선 영화를 만나는 기회증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장소인 영화관이 주된 무대인데 신도시들은 대개 변두리에 멋진 대형 시네마콤플렉스를 늘리면서 도시 구도심에는 영화관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커뮤니티시네마라고 부를 때 영화제, 상영단체, 영화영상을 보급하는 공공시설이 중심이 된다. 이들은 다양한 영화영상작품 상영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풍성한 영상문화를 뿌리 내림으로서 지역주민들이 유연한 감상능력을 갖게 하고 창조력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로 도시가 자연스럽게 재생되면서 유지되고 활성화된다.

의사소통 능력은 말재주가 아니다

이제 곧 신입생들이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신입사원들도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신입사원들은, 영어는 잘하지만 국어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니 국어능력, 혹은 언어능력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아마 최근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그저 말재주가 없다거나 말이 유창하지 않는 정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말로 된 문서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현상은 요즘 젊은이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는 그저 세대차이가 나 이해를 잘 못하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상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신입사원들이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고 나중에 엉뚱한 일을 하거나, 혹은 상사가 잘 알아듣도록 신입사원이 제대로 말을 잘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현상이다. 이것이 국어교육 시간을 늘리고 말하기나 글쓰기 등을 가르치면 해결될 것인가? 학교에서 배울 것은 이미 20년 동안 징글징글하게 배웠다. 문제는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대방의 머리와 마음을 읽는 능력, 상황파악능력의 문제라고 보인다. 아주 쉽고 범박한 말로 표현하자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또는 ‘눈치가 없는 것’이다.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눈치와 말귀는 시험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면서 길러진다. 평소 다양한 상황을 경험해야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빨리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으며,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지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이 서른이 다 되도록 만나본 상황이란 매우 단순하다. 비교적 단순한 핵가족의 가정, 주입식 교육과 시험으로 일관하는 학교, 오로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해 보는 것 이상을 경험할 수 없었던 사회생활, 자치활동 같은 경험이 전혀 없이 오로지 친구 간의 농담이나 사랑의 밀어 이상으로는 깊어져 본 적이 없는 인간관계, 이러한 한정된 경험만으로는 직장생활에서 요구하는 ‘말귀’를 제대로 틔우기 힘들 것이다. 물론 문제가 요즘 젊은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중·장년들 역시 ‘말귀’ 못 알아듣는 ‘사오정’인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필자는 최근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의견이 나온 이후, 이에 대한 국민여론이 나빠지자 대통령직 인수위가 부랴부랴 내놓은 해명을 보고 이를 실감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해명의 말은 “강제모금이 절대 아닙니다”였고, 그것이 더욱 국민들을 기막히게 했다. 국민들은 ‘강제모금’이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제모금이란 오해 때문에 국민성금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을, 애국심이니 자발적 성의니 하는 것들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제를 예방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문제만 터지면 성금이나 자원봉사의 힘만 들먹였던 여태까지의 정부의 태만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강제모금’으로 오해하지 말라니. 이것은 정말 의사소통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 국민들의 사회의식 수준과 상황파악 능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은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최고의 권력이 최고의 미학인가

나는 요즈음 문화유산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주로 경기도 각 지역의 택지 개발이나 도로 건설 예정부지의 문화재 조사보고서를 쓰기도 하고, 또 그 중 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복원·정비·활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융건릉, 용주사와 연계되어 효 문화타운 소재의 하나로 되어 있는 만년제, 고대 동아시아의 강자 고구려의 경기도 내 군사유적인 보루, 북한산성 내의 조선시대 행궁 등이 그 대상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고마운 밥벌이 문화유산에 대해 진정으로 고마워하고 있는가. 나는 내심 이런 문제의식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내 전공이 경제학이었지만, 그냥 밥벌이에만 연연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기에 우리 역사도 공부했었다. 또한 기껏 유행가나 투쟁가 주변이나 맴돌며, ‘아름다운 우리나라’라고 쓴 붓글씨가 초등학교 뒷벽에 붙던 정도 실력으로 예술행정에 종사하였고, 또 그런 정도의 안목으로 우리 문화유산 조사·연구에 끼어들면서 꽤나 고민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에 대한 해답은 그리 신통치 않다. 근자의 숭례문 방화사건으로 문화유산이 또 다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온갖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자들도 더 바빠지고 있다. 그럴수록 문화유산과 밥의 관계에 대한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 가치, 그 미학의 문제이다. 무자년 새해 들자마자 내 전공인 고려사의 중심무대였던 개성의 문화유산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 길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답사 전문가도 동행하였다. 나는 평소에 그의 글을 접하면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을 관광안내원 수준으로부터 문화중개인을 거쳐 종군기자로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느껴오고 있었다. 이날 나는 운 좋게도 그의 이런 고민의 일단을 확인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다소 소홀하고 어지러운 문화유산 관리를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모았다.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그 전시 공간, 부대시설, 조명 등은 잠시 접어두자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관점인데, 이것이 전시 유물을 어지럽게 보이게 하는 주요한 이유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입만 열면 봉건통치배’라 부르는데, 바로 그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 문화유산이 가진 최고의 미학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최고의 권력이 최고의 미학일까.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도킨스는 아름다움은 효율성의 문제라고 명쾌하게 해석하였다. 벌레잡이통풀을 예로 들면서, 생명체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자기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그 개체의 특성을 규정하는 효율성이며, 이것만으로 그 생명체는 충분히 아릅답다고 한다. 그의 존립을 위해 벌레들을 유인해야 하니까. 이와 더불어 생명체는 자기의 합목적성을 갖는데, 이것이 자기의 정체성, 개성을 규정하며, 바로 이 개성 때문에 다른 무수한 종류들과 함께 어울려 보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유산도 그의 일생을 가지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면 어떨까. 효율성과 합목적성,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삼라만상이 서로 보편적으로 어울려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그러면서 그 종족을 재생산하는 그런. 윤한택 기전문화재연구원 전통문화실장

그래미상을 보고

워낙 음악이 인기가 없다보니 전통의 음악제전인 그래미상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뚝 떨어졌다. 언론도 전에는 그래미상 시상식이 열리면 특집과 분석 기사로 지면을 크게 할애했지만 지금은 단순한 수상 보도로 끝내버린다. 올해 그래미상은 지난 1959년 시상을 시작한지 꼭 50년이 된 뜻 깊은 자리였다. 공정함과 객관성 등으로 권위를 쌓은 이 역사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끝없는 시비와 뒷말 등으로 지상파 방송사 연말시상식이 사라진 국내 가요계는 할 말이 없다. 올해 그래미상은 50년이라는 햇수보다 또 한차례 그래미상의 무게감을 확인해준 부러운 시상결과를 보여 줬다. 올 그래미상의 주연은 에이미 와인하우스라는 이름의 영국 여가수였다. 그는 그래미상의 핵으로 일컬어지는 네 부문 가운데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곡’ 그리고 ‘최우수신인’ 등 세 부문을 휩쓸고도 모자라 다른 두 부문의 트로피도 수상, 총 5관왕의 기염을 토했다. 다관왕은 늘 있어왔다. 마이클 잭슨이나 산타나처럼 8관왕도 있었고 지난 2003년 시상식에서 노라 존스는 그래미의 핵 네 부문을 석권한 바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위업이 역사상 신기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상 결과가 놀라움을 주는 것은 먼저 그간 영국 가수들을 은연중 기피해온 그래미 주최측이 예상을 깨고 영국 여가수에게 상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행동거지가 방정하지 못해 단정한 사생활이나 인간승리 등에 초점을 두어온 보수적인 그래미상 시상관례에서 크게 벗어났다는데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공연 중 술에 취해 무대에서 쓰러진 적도 있는 알코올 중독자로 갱생센터에 보내져 현재 보호감찰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에 수상한 곡 ‘리햅(Rehab)’은 바로 자신이 알코올중독자라고 갱생센터(리햅)로 보내려는 주변의 명령에 가지 않는다고 버티는 실제 담을 노래로 옮긴 작품이다. 알코올 아닌 마약복용 전력도 있으며 공식석상에서 다른 아티스트를 비난하는 등 입도 거칠어 영국 타블로이드신문 뉴스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오른팔에는 긴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이런 불량스런 태도와 이미지를 그래미가 좋아할 턱이 없다. 음악 관계자들은 그래미의 전례를 들어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수상 가능성은 낮게 보았다.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언론은 이변, 파란, 반란 등의 표현들을 썼다. 그래미 주최측이 말썽꾸러기(?)에 트로피를 몰아준 이유는 단 하나, 음악의 예술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현대적인 힙합 사운드에다 저 옛날 60년대의 낭만적 소울 사운드를 섞어 하나의 새로운 성공공식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아왔다. 인기로 따지면 비욘세, 퍼기, 그웬 스테파니 등 그보다 위인 가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미는 그러나 자기 음악세계를 가진 아티스트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우린 과연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또한 그런 음악가를 대우해주는 음악계나 음악시장인지를 묻고 싶다. 스타만이 판치고 아티스트는 없는 한 음악계의 부활은 요원하다. 그래미상을 보면서 다시금 우리의 아티스트 부재를 절감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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