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인점이나 백화점에 가면 황당한 어투를 많이 접하게 된다. 전부 5만원이세요, 이 제품 디자인이 너무 예쁘시죠?, 이 상품 피부에 정말 좋으세요, 주문하신 햄버거 나오셨습니다, 화장실은 이쪽이십니다, 이 구두는 볼이 넓으셔서 발이 편하세요 이들은 모두 잘못된 경어법을 사용한 예로서 -시-를 빼고 전부 5만원이에요/입니다, 이 제품 디자인이 너무 예쁘죠?, 이 상품 피부에 정말 좋습니다 등과 같이 써야 한다.이 같은 경어법 오용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장의 주체(주어)를 높이는 주체경어법과 대화 상대방을 높이는 상대경어법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주체경어법은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에 -시-를 붙여 엄마는 밖에 나가셨어와 같이 표현함으로써, 문장의 주체인 엄마를 존대하는 것이다. 반면에 상대경어법은 -ㅂ니다나 -어요를 붙여 아이가 밖에 나갔습니다/나갔어요와 같이 표현함으로써, 주어인 아이(존대할 대상이 아님)가 아니라 대화상대를 높이는 것이다. 만일 대화상대도 나보다 위이고 주어도 나보다 위인 상황이라면 엄마는 밖에 나가셨습니다와 같이 주체경어법의 -시-와 상대경어법의 -ㅂ니다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주체상대경어법 혼동 사례 많아이처럼 -ㅂ니다나 -어요를 쓰면 이미 상대를 존대하는 것인데도, 고객인 상대방에게 최대한 존대를 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주어를 존대하는 -시-를 덧붙여 쓰는 잘못을 흔히 범한다. 이 같은 종업원의 경어 강박관념은, 상대를 최대한 존대하려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너무 예쁘다, 너무 감사 합니다에서처럼 매우로는 부족해 보여 그보다 더 강한 표현을 쓰려다 보니 오용을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반면에 우리말의 또 다른 경어법인 객체경어법은 위의 두 경어법과 달리 오히려 퇴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데 데리고 간다고 한다. 객체경어법은 문장에서 주체가 하는 행위가 미치는 대상을 대접하는 경어법으로, 보다, 주다, 말하다를 뵙다, 드리다, 여쭙다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선생님께 여쭈어라 대신 선생님께 물어라라고 함으로써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세계화시대 우리말 바로 잡아야뿐만 아니라 호칭에도 오용이 많다. 점원이 중년의 고객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는 우리말의 전형적 환유 메커니즘에 따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본래 친족을 가리키는 말인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가 비슷한 연령대의 타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확장되어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저씨와 아주머니라는 말이 이미 있는데,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와 여자를 굳이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호칭을 쓰는 것은 소비자를 보다 높이고 또 친근감 있게 대하려는 소위 감성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추정된다. 사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존칭어로는 좀 약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이를 대체할 호칭을 찾으려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2인칭 호칭으로 선생님과 사모님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마당에 아버님, 어머님 같은 듣기 민망스러운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런 식으로 인플레가 계속되다 보면 이거 필요 있으세요?를 이거 필요 계세요?라고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요즘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백만 명이 넘게 살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한류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습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정작 본토에서는 이상한 한국어가 쓰이고 있으니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박만규 아주대학교 불문학과 교수
오피니언
박만규
2011-06-29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