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중독’에 빠지는 건 어떨지?

얼마 전 강원랜드 도박중독센터의 전문위원을 만났다. 카지노 출입이 과도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 허용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도박중독에 빠져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국가에서 도박을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욕구에는 재물에 대한 욕구, 명예에 대한 욕구, 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게 도박에 대한 욕구다.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로 나온다. 사전적인 의미로 한정해 보면 중독은 결코 반가운 단어가 아니다. 논어의 선진편(先進篇)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운동 등 긍정적 의미 중독도 있어흔히 중독하면 도박중독, 게임중독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만, 긍정적인 의미의 중독도 있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하는 운동중독도 있다. 등산, 마라톤, 자전거, 골프, 스포츠 댄스 등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즐기는 정도를 넘어서 완전히 그 안에 푹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행복한 중독이다. 이와 못지않게 문화생활의 재미에 빠져 사는 사람들의 수도 않다.레저생활로 타는 자전거의 가격이 2천만 원에 이르는 해외 브랜드가 있다고 한다. 이 자전거는 2백대 한정으로 생산했는데 그중 150대를 우리나라 국민이 구입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운동 중독을 넘어 브랜드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핸드백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의 사회적 수준이나 취향을 쉽게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의 가격은 매우 한정 적이다. 해외에서 핸드백 같은 명품을 구입해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 중 제대로 세관에 신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슈퍼스타코리아 선발대회,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오페라 스타를 TV로 보면서 문자메시지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 TV는 그저 바라만보는 수동적인 형태의 문화향유 대상이었는데, 정보통신의 발달로 쌍방향 의견교환이 가능해졌다. TV를 시청하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들이 탈락하면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거나 심사과정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한 TV시청자가 아니다. 해당프로그램에 중독된 프로시청자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행복한 중독으로 삶의 질 높였으면70~80년대를 대표하는 세시봉 친구들이 TV에서 방송되면서 낙원상가의 기타 가격이 덩달아 올랐다고 한다. 이른바 후쿠송이라고 불리는 아이돌 음악에 싫증난 사람들이 아날로그 음색의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색소폰을 배우는 중년들도 최근 3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다. 중독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지만, 그 중독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라면 한번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삶의 질이 조금 더 높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문화중독에 한번 빠져 보는 것은 어떨지?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제2외국어는 배울 필요 없는가?

지난 10일 한국교육개발원의 2010 교육통계연보에 실린 전국 일반계 고교의 제 2외국어 교육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 2외국어를 배운 고교생은 전년도보다 12만여명(16.8%)이나 줄어든 59만6천44명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과목 분류 중 일반선택과 심화선택 구분을 없애는 교육과정 자율화 방안이 2009년 발표되면서 제 2외국어 대신 다른 과목의 심화선택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이처럼 제 2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영어화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영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슨 제 2외국어냐하고 제 2외국어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려운가 쉬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럼 제 2외국어가 어떤 점에서 필요할까?영어만 의존하면 경쟁력 떨어져첫째는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유용성이다. 요즘 웬만한 국제 교역은 영어만으로 다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때 영어는 1차적 관계만을 터주고 유지해 주는 수단일 뿐이어서 서로 외국어인 영어로 거래를 해봐야 가격과 수량 결정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영어보다는 그 나라 말을 써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영어에만 의존해서는 경쟁력을 상실하고 만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먼저 공략해야 한다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전 세계어를 다 배워야 되느냐?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하듯이 전 세계에서 영어 다음으로 통용되는 분야와 지역이 넓은 주요 언어를 배워야 한다. 특히 세계는 점점 블럭화해 가고 있다. 21세기는 지역 분권적인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견이다. EU, 독립국연합, 북미권, 남미권 등으로 말이다. 제 2외국어란 이 같은 지역권의 통용어로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정보취득력이다. 세계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으며 외국과의 접촉과 교류가 인터넷, 위성 TV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때 외국어 능력은 곧바로 정보 취득 능력이 된다. 또 선진국인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등으로의 유학은 계속될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제 2외국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이 왜 선진국일까? 유럽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2개국어나 3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정보 취득 능력이 생전 서툰 영어 밖에 모르는 우리의 정보 취득 능력과 비교가 되겠는가?세 번째는 문화적인 균형이다. 언어는 문화교류의 최첨단적 수단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문화를 배운다는 것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 교육만을 강조함으로써 영미의 문화를 편식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어차피 고립해서 살 수 없다면, 그리하여 외국과의 교류를 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면 제 2외국어 교육을 통해 문화 교류 창구를 다원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다양한 문화교류의 디딤돌 역할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을 어릴 때부터 세계시민인 동시에 주체적 한국인으로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타 문화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이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롭고 발전된 안목을 길러줘야 할 것이고, 제 2외국어 교육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와의 올바른 방식의 만남에 디딤돌 역할을 해줄 것이다.언어구사능력의 배양은 장기간의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나중에 필요하게 될 때 시작하면 늦는 것이다. 따라서 제 2외국어의 학습자가 더 이상 줄지 않도록, 그리고 학습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과 교수

연극제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예술축제에는 전략이 있을까?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체계적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이뤄가는 전 과정이 전략이다. 이 불가결한 전략이라는 요소 대신 추상적 구호와 환상이 국내 축제를 점령하고 있다. 발전을 위한 토대는 마련하지도 못한 채 축제의 수만 늘어가고 있다. 세계적이라는 구호를 걸어야 한다는 강박증만 남긴 채. 세계적인 연극제는 말 그대로 세계적이며, 몇 개 없다. 이들의 예산은 최소한 몇 백 억 이상, 거기에 치밀한 조직과 운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쉽게 떠올릴만한 예로 아비뇽축제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정도 규모의 투자를 60년 이상 해 왔다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 아닌가. 그래야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다. 우리와 비교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다. 짧은 기간 안에 세계적인 축제를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안정적으로 일하는 전문 인력 조직이 없다. 축제 때 임시 조직으로 운영하다가 축제가 끝나면 철새처럼 사라진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반짝 아이디어에만 매달리다 보니 철학은 없고 온통 구호와 무늬만 난무한다. 이것이 우리 축제의 현주소다.지역민들 사랑부터 받아야연극축제도 예산 문제나 열악한 연극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쉬운 길만 택한다. 이러다가 연극도 관객도 없이 그저 구호만 무성한 연극제로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생긴다. 축제의 차별성이나 독창성에 대한 강박증도 있다. 지역의 연극제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피상적이고 안일한 접근이다. 대도시가 아닌 이상, 연극문화 관련 기반이 얼마나 열악한데 연극적 차별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객도 없고 창작집단도 존재 자체가 쉽지 않다. 관련 인프라 하나 없이 1년에 한 번 연극제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연극문화가 생기고 문화도시가 될까? 이런 여건으로 남들보다 돋보이려는 노력을 한다는 자체가 외향적 성과 추구라는 허튼 미망에 빠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차별성, 독창성을 주장하기보다 연극이 지역민의 생활에 스며들어 확산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연극에 대한 환상 깨기가 필요하다. 연극을 만만하게 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연극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연극 한 편 안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연극이 좀 더 가치 있는 무엇을 찾거나 행복을 찾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구청이나 주민자치센터의 문화 프로그램에 연극 교실 하나 만드는데 큰 돈 들지 않는다.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이다. 쉽고 가벼운 시작으로 연극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 연극과 아무 상관없는 일상을 사는 시민들이 모처럼 연극제에서 마련한 연극 한 편에 예술성, 실험정신을 들먹이면 다시는 연극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연극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단계를 거치며 취향도 생긴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축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져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지자체연극계주민 비전 공유를단순히 1년에 한 번뿐인 행사 치르기라면 번듯한 조직도 필요 없다. 연극축제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상설조직이 필요하다. 축제는 사람이 대상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노동집약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연극제가 지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 축제로 성장하는 과정은 먼 길 가는 나그네의 여정과 닮았다. 지자체와 연극계, 그리고 지역민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면서 단계별로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연극제에 반드시 전략이 필요하다. 김동언 희대학교 아트기획학과 교수

문화예술 힘으로 구제역 아픔 극복

이제는 서서히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지만 이번 겨울은 매서운 한파와 구제역으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는 그야말로 암울한 겨울로 기억될 것 같다. 구제역으로 10개 광역지자체와 60여 도시민들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경제적 손실, 사회적 혼란, 환경오염, 정신적 충격 등 총체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농축산 경제는 휘청했고 식당, 관광업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물질적 손해뿐 아니었다. 집안 생계를 함께 꾸려나갔던 정든 소와의 이별을 맞는 농민들은 마치 가족과의 이별처럼 여겨져 정신적, 심적 고통이 대단히 컸으리라 사려된다. 가축의 생매장에 참여한 일부 지방공무원은 평생 잊지 못할 광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지경이었다. 경제적문화적으로 취약한 우리 지역사회는 2009년에 발생한 AI 조류독감에 이어 이번 구제역으로 더욱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건강성 회복위한 행사 활성화를구제역 발생기간 중, 전국적으로 정상적인 문화학술 행사는 불가능했다. 예정됐던 각종 회의가 취소되고 모처럼 기획됐던 수준 높은 문화예술 행사, 공연들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안동 문화예술의전당은 지난해 12월 모든 일정을 취소했고 개관 특별공연 조수미 콘서트도 취소됐다. 또, 전반적으로 박물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 수도 한파의 영향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도시와 달리 지역의 문화는 전통과 민속을 기반으로 하는 참여형 행사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번 구제역으로 농촌지역에서 입은 문화적 충격은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이번 구제역은 지난 겨울기간 동안 우리의 문화예술 시장을 마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구제역 발생 지자체 중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17개 시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거의 경기도 전 지역이 구제역 홍역을 치렀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했고, 사회문화적 손실도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기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 행사는 움츠릴 수밖에 없었고, 공무원과 시민들도 하루하루 구제역과의 전쟁 속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쏟을 수 없었다. 특히 문화예술, 관광을 강조하고 있는 경기도로서는 이번 구제역으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 문화적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영국도 지난 2000년 구제역으로 국가적 재난을 맞았지만 각종 문화예술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데 힘썼다. 영국예술위원회는 예술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문화적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적극 지원했고 문화예술인도 시민들에게 더욱 다가가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아울러 문화적으로 더 소외된 벽촌 마을을 대상으로 과감한 진흥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심적 고통 치료하는 문화예술최근, 경기도내 부천, 안성 등 일부 도시의 전통 지역축제 예산이 축소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상당히 위축돼 있다고 한다. 이는 잘못된 현상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무기력을 정열로 바꾸는 화학적 반응은 바로 문화의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힘들고 부족한 예산이지만 더욱 문화예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지자체와 시민들의 용기가 필요할 때다. 구제역의 쓰나미는 문화의 건강성과 강한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허권 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재난과 관광의 관계

지진 기록이 측정된 후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진도 9.0의 강진이 일본 도호쿠 지역을 강타했다. 평화롭던 작은 도시가 순식간에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원전 방사능 유출로 일본열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일본을 돕자는 도움의 손길이 전 세계 각지에서 쇄도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 지진참사가 세계 경제와 자국의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CNN은 재해위험 분석 기업 Eqecat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피해 총액이 과거 세계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피해액 중 최고치에 달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또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액은 주택 등의 손해 200억 달러(약 22조5천500억 원), 도로와 철도, 항만시설 등 인프라 손실액 400억 달러(약 45조1천300억 원)를 포함해 적어도 1천억 달러(약 112조8천3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일본인 관광객 감소로 타격우리 정부도 일본 지진 참사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부처별 대책회의를 갖고 분야별 영향 정도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분석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부품을 조달받는 반도체와 고철을 들여와 원료로 사용하는 제철산업은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겠지만, 가격 상승으로 극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인적교류를 바탕으로 하는 관광산업은 일본인 관광객 수 감소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 참사가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과 일본인의 방한에 일정기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여행업, 호텔, 면세점 관련 주식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2010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879만7천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이중 일본인 관광객은 302만3천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34.4%이다. 연평도 포격 이후 일본인 관광객의 방한이 잠시 주춤했지만, 최근 명동에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나, 2011년 1천만명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정부의 목표가 순탄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번 지진 참사로 일본인 관광객의 방한이 일정기간 주춤할 수밖에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미국에서 911 테러가 있은 후 뉴욕시를 찾은 관광객이 대폭 감소됐다. 그로 인해 뉴욕시의 여러 관련 산업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브로드웨이의 연기자들이 뉴욕을 찾아달라는 광고를 했다. 이 광고는 적극적으로 손님을 맞이하지 않아도 뉴욕을 찾는다는 기존의 오만한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동해에 잠수함이 침몰해서 강원도로 가는 모든 도로가 봉쇄된 후 속초시, 강릉시의 지역경제가 휘청거렸다. 그 전에는 관광객의 방문으로 도로가 혼잡하다며 관광객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사람들도 막상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으니까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인식했다.빠른 시일 내 정상화 되길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있다. 일본과 한국은 그만큼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일본 경제가 어려우면 우리 경제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광이라는 인적교류가 감소하면 중장기적으로 항공부문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관광산업은 문화접촉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 산업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 간을 연결해주는 관광산업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더불어 이번 참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줄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의 적극적인 구호참여가 많이 이뤄졌으면 싶다. 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마트’는 써도 좋은 말인가?

영희 엄마, 어디 가요?, 마트에 가요. 이처럼 마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너무나 자주 쓰는 말이어서 아무도 이 말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인지 생각해 보자.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일단 외래어, 즉 외국어에서 들어왔지만 이미 우리말화 된 말은 아니라는 얘기다.사전에도 없는 국적 불명의 단어그러면 마트(mart)는 아직 우리말화 되지 않은 외국어인가? 물론 영어사전에 나오는 영어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위의 대화에서처럼 독립적인 보통명사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즉 세계적인 기업인 월마트(Wal-mart)나 케이마트(K-mart)처럼 거의 전적으로 다른 고유명사를 만들 때 참여하는 어근으로 쓰인다. 월마트와 케이마트는 각각 창업자인 월튼(Sam Walton)과 크레스기(Sebastian S. Kresge)의 첫 음절과 첫 글자를 따고 뒤에 마트를 붙여 만든 상점명이다. 그러니까 마트는 우리말의 상회 같은 말이다. ○○상회라고 가게 이름을 지을 때만 쓸 뿐, 결코 오늘 오후에 상회에 가요라고는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런 형태의 할인판매점들을 도입할 때 이들 명칭을 모방하여 ○마트, ○○마트와 같이 지은 이후로 일반 대중들이 이런 범주의 상점들을 마트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요컨대 본래 영어에서는 우리가 지금 쓰듯이 마트에 간다라고는 쓰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통명사처럼 쓴다면 콩글리시가 된다. 내가 지금 콩글리시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와이셔츠나 호치키스 등과 같이 이미 우리말화 되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콩글리시들은 외래어의 지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전에도 안 올라 있는 마트는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니면서 국어도 아닌 국적 불명의 단어의 사용이 되는 것이다.새로운 대상이나 개념을 가리키는 어휘가 우리말에 없을 때는 외국어를 차용할 수 있다. 파인애플, 커피가 그렇다. 물론 이런 경우라도 전자우편처럼 우리말 체계에 순응시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 분명히 적당한 어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우월하고 멋있어 보이려는 욕구로 차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모국어의 부족한 어휘를 보충하려는 동기, 표현력을 더욱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더 유식하게 보이려는 욕구의 표현으로 바람직하지 않다.자국어로 순화하는 노력 필요해한 언어 내에 외국어로부터의 차용어를 허용하는 한계치는 언어학자 아제쥬에 의하면 어휘의 15% 정도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림원이나 캐나다 퀘벡주의 프랑스어 관리청은 이 허용한도를 넘는 차용어의 사용은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6년에 공공기관과 서비스 영역에서 외국어의 용어와 표현을 반드시 관보에 게재된 프랑스어 용어와 표현으로 대체할 것을 법령화 했다. 전문기술어와 신조어 문제를 협의, 조정하는 총리 직할의 전문용어 및 신조어 총괄위원회에서 이 법안과 관련된 조처를 취한다.나는 프랑스나 퀘벡처럼 법령으로 언어사용을 규제하는 태도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자국어 보호에 쏟는 열정과 차용 대신 자국어로 순화하려는 노력, 이를 통해 국민들이 순화된 표현을 손쉽게 제공받는 체계, 그리고 언론 등에서 앞장서서 이를 홍보하고 인도하는 문화는 몹시 부럽다. 사실 우리의 언론은 마트 같은 말을 이러한 고민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어쩌면 조장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제 국민들이 순화된 용어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언론이 이를 홍보하는 문화를 만들자. 마트는 할인점으로 순화해 써보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시민공동체연극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시위가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확산되고 있다. 오랜 독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다. 민주주의는 경제적 여유와 행복한 삶을 바라는 이들의 한결같은 선택이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조율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전 과정이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다.이제는 문화도 민주주의 시대다. 그리고 공동체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예술 장르가 연극이다. 집단정신의 산물인 연극은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관객과의 소통 또한 중요한 구성 요소다. 연극이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연극이 다루는 소재와 본질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새롭게 살펴보는 일이다. 작가나 연출자, 배우뿐만 아니라 관객과 함께 공동체 전체의 문제를 궁리해 보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된, 혹은 왜곡된 사람과 사회, 역사의 단면들을 짚어내면서 삶의 진정성을 일깨워 준다. 연극의 진정성은 시대와 문화의 차이, 역사의 시공을 넘어 유효한 의미로 남겨진다.주민들 참여로 만드는 연극수원시는 주민이 모두 주인이 되는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일에 연극도 힘을 보탤 수 있다. 주민이 만드는 공동체연극의 사례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 마을극장은 각종 동아리 지원과 교육활동을 펼치며 공연 기획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마을극장은 새롭게 소통하는 역동적인 마을 만들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의 작은 마을 오베라메르가우는 10년에 한 번씩 주민 2천500여명이 출연하는 연극 공연을 376년 동안이나 이어오고 있다. 5개월간 매일 무대에 오르는 이 연극을 전 세계에서 온 50만명이 관람한다. 100년 가까이 지속돼 온 스위스 인터라켄 시민연극도 훌륭한 사례다. 해마다 여름 무대에 올리는 연극 빌헬름 텔은 주민 200여명이 참가해서 만든다. 매년 관람객이 3만여명인데 그중 절반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경쟁력 있는 관광산업이 아닐 수 없다. 배우와 관객, 제작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시민과 연극 전문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연극공동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연극을 중심으로 활기 넘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연극마을 함께 살리는 공동작업수원화성국제연극제는 시민공동체연극의 확산을 위해 연극제 기간 중에 시민연극을 기획한다. 어린이 연극 워크숍을 실시하고, 시민배우와 함께 제작하는 시민연극교실, 실버극단, 주부극단, 청소년, 초등학교, 다문화 연극 등 시민들이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민자치센터까지 이런 활동을 넓히면 좋은 마을 만들기에 연극이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정책적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민연극교실, 주민배우활동 교육과 지원, 어린이 연극아카데미, 각종 연극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 연계, 주민연극 활동을 연극제에 연계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연극의 저변 확대와 관객 개발이라는 1차적 성과보다는, 시민들의 삶에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극은 사람들 간의 공동 작업이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배우나 극단에게도 활력소가 돼 연극문화 전반의 발전적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연극도 살리고 마을 만들기도 성공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정책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시민공동체연극이 필요한 시점이다.김동언 경희대 아트기획학과 교수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

다문화사회의 ‘공유유산’ 인식

최근 캄보디아와 태국은 11세기 힌두교 사원의 소유권을 놓고 대포, 박격포까지 동원한 국지전을 벌였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양측에서 발생했을 뿐 아니라 2008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프리히 비에르 힌두교사원의 일부가 파손됐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매우 높았다. 아세안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중재에 나섰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급기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나서서 양측에게 최대한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프리히 비에르 사원에 대한 양측의 소유권 논리는 달랐다. 캄보디아는 이 사원은 앙코르 와트 사원과 함께 캄보디아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이미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캄보디아 사원으로 인정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태국은 근 수세기 동안 이 사원은 실질적으로 태국문화권에 속했으며 이미 태국법에 의거 문화재로 지정돼 있었다고 반박했다.우리의 것으로 함께 인식해야이처럼 문화유산을 놓고 관계국들간에 대립한 사례들은 많다. 우리도 수 년 전, 중국과 뜨거운 논쟁을 벌였던 고구려 역사 해석과 강릉단오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걸작 등재와 관련된 갈등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 날, 식민 지배를 받았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까지 수 많은 과거의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지역에서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이 구축한 성곽, 요새, 성당과 수많은 각종 건축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혼재 양상은 전쟁과 무력지배를 통해서 뿐 아니라 평화시에도 다양한 문화접촉과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이렇듯, 역사의 흐름과정에서 이질적인 문화가 접목돼 만들어진 유무형의 유산을 파괴와 갈등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상생과 화합 그리고 문화 발전적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시된 개념이 바로 공동유산(shared heritage)이다.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함께 인식하고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글로벌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이 개념은 유형의 역사유적과 민족간 갈등에만 국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질적인 전통과 관습 등 무형적 가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고 한 국가내에서 종교적, 인종 갈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마애석불은 종교적 맹신에 의해, 구 유고의 보스니아에서의 문화재 파괴는 민족과 종교 갈등에 의한 반달리즘의 극치였다.이미 외국인 100만명을 넘어선 한국사회는 외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될수록 더욱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회 내 크고 작은 이질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서울의 왕십리, 동대문, 이태원 뿐 아니라 안산, 부천 등 일부 지역에선 한국 속의 또 다른 외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이미 한국 속의 또 다른 외국지금까지의 우리의 다문화 사회 정책은 서로 다른 피부, 국적, 종교, 문화를 가진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사회에 잘 정착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치중해 왔다. 정부, 지방단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많은 민간 NGO들이 참여한 결과, 비교적 짧은 기일내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무리없이 추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다문화정책의 기조는 여전히 외국인 동화정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외국인과 타문화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인식하는 제한적 수용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러한 제한적 인식을 넘어 그들의 유산도 우리와 동일한 공유유산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올 것이다. 허권 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우마이야 모스크의 눈물

관광정책 자문 관련 요르단에 갔다가 가기 힘든 시리아를 지난달 말에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시리아를 다녀와서 바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이 가슴에 들어와서 글을 쓸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쓰던 글을 지워버리게 했을까? 한 번에 다 쓰지 말고 그 느낌을 하나씩 쪼아서 마음인 느낌을 표현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써내려가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을 지워버렸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그 울림과 왠지 다른 느낌의 글이 손끝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였다.후세인 단두 앞 여인의 눈물하룻밤을 더 지내고 눈을 뜨자, 심상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마이야 모스크(The Umayyad Mosque)에 있는 후세인 단두(잘린 목)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여인의 모습이었다. 검정색 부크라 사이로 피어난 해맑은 얼굴, 세상에 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여인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영혼의 샘을 퍼올리는 그들을 보면서 셔터를 누르는 내가 한없이 세속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인, 그리고 또 다른 여인. 여인들의 눈에서 예외 없이 맑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히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 눈물을 유리병에 담았다고 한다. 세속적인 생각이지만 부크라를 입은 여인의 눈에서 흐르는 첫 번째 눈물만큼은 눈물을 담는 유리병에 받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시간을 넘어 공간을 넘어 흐르는 눈물. 이건 뭘까? 종교적인 신념? 무섭다면 무서운 일이지만 그보다는 순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이맘 후세인은 모하메드 다음의 선지자로 이슬람교 시아파를 추종한다. AD 680년 이라크 바그다드 카르빌라 전투에서 후세인은 온몸이 찢겨진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무덤이 카르빌라에 있다.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시아파는 이슬람교도의 10%를 차지하며 이라크, 이란이 시아파 교도로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라고 한다. 시아파의 최대 성일인 아슈라를 취재한 사진이 몇 년 전 보도된 적이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후세인의 아픔을 같이 한다며, 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거나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쳐서 온몸이 찢어진 모습이었다. 그 후세인의 목이 시리아 우마이야 모스크에 있다.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이 이슬람교 수니파는 후세인을 모하메드 다음의 선지자로 여기고 그를 추종하며 그의 아픔을 받아들인다. 그럼, 부크라 속 여인들의 눈물은 종교적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눈물? 후세인의 온몸이 찢어지면서 죽음을 맞이할 때의 그 통절한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의미의 눈물? 그럴지도 모른다. 통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소리 없이 맺히는 한 방울의 눈물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종교 넘어 순수한 영혼으로 기억시리아를 다녀와서 요르단에 있을 때 한국과 이란이 아시안 컵 축구대회 4강 진입을 다투는 일전을 치렀다. 연장 전반전 끝날 무렵 새로 투입된 윤빛가람 선수가 골을 넣자 TV 카메라는 이라크 응원단을 비추었다. 멍하니 눈물을 흘리는 사람,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사람, 그들이 있었다. 이건 뭘까? 간구하는 것이 되지 못했을 때의 애석함, 그런 눈물? 그런지도 모른다.설 연휴 중 TV에서 방영된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면,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라도 순수하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에 보관돼 있는 후세인의 단두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여인, 그 여인의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종교적인 갈등을 넘어, 순수한 영혼으로!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한국의 음식문화

설 연휴가 끝났다. 명절은 가족끼리 모이는 즐거움의 장이지만, 주부들에게는 명절 공포증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고생의 장이기도 하다. 그 중 뭐니 뭐니 해도 음식 해 올리는 고생이 으뜸이 아닌가 싶다.사실 우리의 음식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리 양념도 많고 다듬고 버무리고, 손이 많이 가는지, 주부들은 하루 세 끼 만들고 치우는 데 하루가 다 가버린다. 왜 이럴까? 나는 이것을 우리 음식이 먹는 사람 위주로 차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주부가 고기나 생선에다 양념을 얹어 오븐에 넣으면 요리가 끝나게 되어 있다. 요리가 다 익으면 오븐에서 꺼낸 다음 식탁에 내놓기만 하면 된다. 먹는 사람들은 각자 접시에 덜어서 칼과 포크로 잘라 먹는다.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고기나 야채 등 모든 재료를 먹기 좋게, 사람 입에 들어갈 크기로 다 잘라 놓아야 한다. 먹는 사람은 젓가락 들고 집어서, 아니면 숟가락으로 떠서 입 안에 넣는 일만 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칼과 포크 대신 젓가락과 숟가락을 이용하는 것이다.만들기 어렵고 먹기 편했던 한식우리는 보통 서양인들이 칼과 포크를 이용하고 동양인들이 수저를 이용하는 이유를 서양인의 주식이 고기이고 동양인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서양인들이 고기뿐 아니라 치즈나 심지어 야채샐러드까지도 칼로 썰어 포크로 찍어 먹는 모습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우리도 고기를 먹지만 먹는 사람이 편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수저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요리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성가신 작업이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한 음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주부들이 명절 때마다 부엌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또한 우리의 음식은 휴대의 간편성이 너무 없다. 해외여행을 가면, 한국인은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치 생각, 된장 생각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관광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원래 우리의 식사 패턴이 국이나 찌개 없이는 한 끼도 못 먹게 되어 있지 않은가? 마른 반찬과 비교적 역사가 짧은 김밥과 사발면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 음식 가운데 휴대가 가능한 것이 별로 없다. 한민족이 역사상 단 한 번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평화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내 생각엔 우리의 음식문화가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밥하고 국과 찌개를 끓여 먹으면서 언제 전쟁을 하고 남의 나라를 정복하러 다니겠는가?이제는 글로벌 한식 열풍지금까지 언급한 것만 보면, 우리의 음식문화는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요즘은 슈퍼에 가보면 뜨거운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재료나 완제품을 점점 더 많이 판다. 이는 만드는 사람의 수고를 크게 요구하는 한식의 문제점과 휴대불편성을 크게 개선해 주고 있다. 이제 먹는 사람의 맛과 편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한식의 장점만이 남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의 음식이 활개를 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크게 일어나고 있는 한식 한류도 여기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한국 요리는 알려지질 않아서 그렇지 일단 우리 음식을 맛본 외국인들은 그 맛과 다양함에 놀란다. 김치는 이미 어느 정도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고 얼마 전엔 식혜가 외국에 수출되어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는 상품화 기술과 정책이다. 김치와 식혜 등의 상품화에서 일본에게 한 때 선수를 빼앗긴 것에 우리는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새해에는 우리의 음식문화에 긍지를 가지고 이를 세계화해 나가는 일에 큰 힘을 기울이고 좋은 성과를 얻어내도록 해야 하겠다. 박만규 아주대학교 불문과 교수

내꿈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시인 마종기의 시집 제목이다. 꿈에서 냄새가 날까? 사전을 찾아보았다. 냄새는 첫째,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 구수한 냄새, 반찬 냄새 따위가 이것에 해당한다. 둘째,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 따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성질이나 낌새를 말한다. 사기꾼의 냄새가 난다거나 형사가 직감으로 범인의 냄새를 맡는다는 표현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단순히 코를 통해 감지되는 감각 이상의 것을 아우르는 표현이다.사람이 꾸는 꿈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우리의 꿈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2011년 희망찬 꿈을 다지며 시작한 새해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저마다 꿈을 이루려 마음을 다잡고 주위 사람들에게 덕담도 나누던 나날이다.꿈은 인류역사 발전 원동력꿈을 이루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인류 역사를 발전시키는 큰 힘이 되었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개봉 이후 34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관객들의 요청으로 12월 중순 재개봉한 이래 거의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가난하고 병든 현지인들을 위해 헌신적 삶을 살다가 4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에 관한 내용이다. 이태석 신부의 평생 꿈은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다고 한다. 이 신부의 꿈에서는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의 냄새가 짙게 묻어 나온다. 그 냄새는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인순이가 불러 인기를 모은 노래 거위의 꿈에서는 헛된 꿈이 독이 되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맞서서 싸우는 강인한 설중매(雪中梅)의 향기가 맡아진다.금메달 지상주의가 지배적인 스포츠 분야에서도 최근 아름다운 꿈 냄새가 감지되었다.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출중한 실력에 비해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던, 잊혀졌다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20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규혁의 이야기다. 지난 24일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열린 세계 스프린트 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통산 4번째 정상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한 그는 다시 2014년 소치 올림픽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의 꿈 냄새는 깊은 산 속에 핀 야생화 냄새 같다.우리를 서글프게 만들 때도 있어그러나 꿈이 현실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의미 있는 꿈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헛된 꿈들이 우리를 서글프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냄새가 좋지 않은 꿈들이 그렇다. 정부 각료로 임명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청문회에서는 썩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관료로, 정치가로, 혹은 학문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이들이 부동산 투기, 탈세, 병역 기피 등 각종 의혹의 당사자가 되는 장면. 야당의 정치공세로 더하는 세기를 빼고 봐도 매번 비슷하다. 입각 후 펼칠 정책적 포부와 국민을 위한 꿈들을 이야기하지만 왠지 그 분들의 꿈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상급식과 복지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줄다리기에서는 정조가 꾼 평등사회, 대동문화의 꿈에서 맡아지는 어머니의 아늑한 냄새가 아니라 그저 표 냄새만 진동한다. 얼마 전,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라고 한다. 방조제 위를 달리며 인간의 의지와 꿈이 이렇게 대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그 사실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졌다. 인간의 욕망이 과연 어디까지 닿을까. 새만금에 담긴 꿈이 개발 이익을 셈하는 돈 냄새로만 맡아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올 한 해를 마감할 때 내 꿈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새해 첫 달에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기획학과 교수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

마음 나눔의 문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시대의 지성들은 문화를 지극히 강조했다. 새 세기를 맞는 각오인 양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한결같이 21세기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 창조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문화와 정보는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는 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고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우리의 삶과 사회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체감 지수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근자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다, 집 없는 서민들의 전세대란이다, 장바구니 들기가 무섭다는 사회적 불안 요소도 한몫 거든 탓일는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문화라는 것이 함께 웃고 울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서서히 정착되는 것이라지만, 문화는 말로 이루는 게 아니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위로는 나라가 안정돼야 하고, 자연 재앙이 없어야 한다. 아래로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며, 여기에 통치자의 의지력이 수반돼야 한다. 문화는 3박자가 순조롭게 어울려야 이룰 수 있는 산물임에 틀림없다.뿐만 아니라 문화는 창의적 다양성을 토대로 한다. 창의적이지 못한 문화는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고, 세계에 우뚝 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위의 3박자를 바탕으로 탄탄한 상상력을 꽃피울 때만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아무 때나 섣불리 문화부흥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무형의 문화는 한번 손상되면 완전 재생이 어렵고, 꾸준히 가꾸지 않으면 한순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다. 반면에 잘 가꾸고 개발하면 인간은 정신적 물질적 풍요로움은 물론 삶은 윤택하고 천년세월을 한량없이 퍼낼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에너지같고, 세월을 지낼수록 값이 없는 보물 중의 보물로 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어려움 함께 나누는 마음가짐으로그런데 요사이 정치문화는 갈수록 험상궂게 변해가고, 사회문화는 갈등과 소통의 불협화음으로 경색되고, 전통문화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현대사회에 밀려 갈수록 힘없는 낙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제는 어렵다고 요소요소에서 아우성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방방곡곡에서 죽어가는 소도 울고 떠나보내는 주인도 울어 눈물범벅이 돼 버린 세상이다. 하루에도 수백 마리씩 죽어나가는 돼지닭오리 짐승들의 애절한 사연과 무정히 떠나보내야만 하는 가축 농가의 시름 속에 묻어나는 애원성을 어떻게 달래고 함께 보듬어야 하는지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위기와 어려움을 맞을 때마다 슬기롭게 이겨내는 처방전을 이 땅에 사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마음 단단히 바로 먹고, 똑바로 차린 정신력과 이웃집 슬픔을 자기집 슬픔으로 알고 어려울 때일수록 나눠야 하고 어려움에는 너와 나가 따로 없다는마음 나눔의 문화가 항상 마음자리의 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예나 지금이나 저마다 처한 자리에서 한결같이 마음 되잡는 방법론도 알고 있다. 곧, 지는 해와 달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잊지 않고, 오늘 나를 비춘 햇살을 더 따사롭고 소중하게 여기며, 내일 새로 떠오를 해와 달에 희망을 걸고 더 밝은 미래를 꿈꾸는 자긍심으로, 차분차분 준비하는 미래지향적 사고관이 마음자리 한가운데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불안한 현실 슬기롭게 극복해야우리는 지금은 구제역이란 전염병으로 시름하고 있는 가축 농가의 아픔과 슬픔을 위해 밝은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선조들의 마음 나눔의 처방전, 마음 되잡는 방법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 하겠다. 김세종 다산연구소 연구실장

도시의 매력은 조그만 광장의 부활에서

많은 도시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국가차원에서 뿐 아니라 지역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유럽은 일찍이 매년 몇몇 도시를 문화도시로 지정하는 사업을 추진해왔고 일단 문화도시로 지정된 도시는 일년 내내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를 개최하면서 도시의 대외 브랜드 가치와 경제성을 제고하는 한편, 여러 다양한 문화가 소통되고 결집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이러한 예는 유럽뿐 아니라 남미와 아랍지역에서도 발견된다.흔히들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대형 건조물을 세우거나 랜드 마크 조형물을 설치하곤 한다. 아주 매력적인 박물관, 미술관 등을 세우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도시속의 슬럼지역을 재정비하고 이 자리에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 조형물을 세우지만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사라진 도시의 문화와 전통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한 번 사라진 문화는 여간해서는 회복시키기 어렵다. 특히 역사문화도시에서는 심각한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아주 객관적이고 공정한 문화환경 평가에 기초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평가의 신빙성은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사라진 문화는 회복 어려워러시아의 생트 페테스부르크는 대표적인 문화도시로 도심의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도시는 최근, 개발과 보전이라는 극심한 대립의 홍역을 치룬 바 있다. 러시아 제1의 석유가스 회사와 협력하여 도심 근방에 대형 컨벤션 타워를 건설하는 계획을 가지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 찬성하는 지지파간의 열띤 설전이 있었다. 대형 랜드 마크는 천년을 이어온 역사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반대파의 주장에 맞서 개발지지자들은 문화는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도시는 미래와 창조를 지향해야 하며 새로운 문화의 건설은 문화도시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맞대응을 하고 있다.현재 한국은 외국관광객 1천만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을 찾는 대다수의 관광객들은 서울의 명동, 인사동 등과 함께 최근 한류로 널리 알려진 몇몇 장소를 찾는데 그치고 있다. 역사와 인간다운 모습이 서린 소도시와 도농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극히 적다. 물론 이에는 이들 도시들의 문화콘텐츠가 빈곤하고 숙박시설 등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찾고 싶은 거리, 매력적인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대형프로젝트를 선호하면서 도시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훼손하기 보다는 도심 내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공간, 광장들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방식이다. 매력적인 도시는 대형 사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광장을 인간미 넘치는 공간으로,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살아있는 공간에 의해 달성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매력적인 문화도시는 생기 넘치는 골목과 광장을 가지고 있다. 결코 외형적인 화려함으로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보다 아기자기한 신비함과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방문객들이 신비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 고차원적인 문화마케팅이며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첩경이다. 허권 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쇼핑코리아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 국민들의 해외여행은 매년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공항에는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을 환송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입국 며칠 전부터 친지들에게 선물할 물건을 구입하느라 전전긍긍했다. 필자 역시 첫 해외출장을 갔을 때, 별도의 가방까지 구입해서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경험이 있다. 요새는 우리나라가 쇼핑관광의 천국으로 변모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재벌이 루이비통 면세점을 인천공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 것이 회자되고 있다. 그동안 루이비통은 공항 면세점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금년 6 월에 루이비통이 한국 공항 면세점에 입점한다. 이는 고가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양질의 해외 관광객이 한국을 많이 찾는 쇼핑천국이 되고 있음을 의미 한다. 루이비통의 입점 조건은 여타의 해외브랜드보다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영업기간 보장과 500~600 ㎡ 매장 면적 등으로 다른 브랜드에 비해 파격적이라고 한다.관광 목적 중 쇼핑 비중 급증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관광목적지 활동 중 쇼핑이 수위를 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요즘 명동에는 일본인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인근 면세점에는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으로 넘치고, 명동과 남대문은 중저가 상품을 고르는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외국인 관광객이 안심하고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우수 쇼핑점 120곳을 선정하여 대한민국 대표 쇼핑브랜드인 1st(퍼스트) 인증서를 수여하면서 쇼핑코리아를 대외적으로 천명하였다.쇼핑은 음식과 더불어 관광지의 경험을 배가시켜주는 중요한 요소다.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상품을 구매하여 쇼핑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재방문 기회를 증대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외국인의 국내 유치는 중요하고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은 외화유출 억제라는 관점에서 억제하고 모른척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얼마 전 모 방송국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이 국내의 대표적인 관광회사의 해외여행 상품과 일본에서 판매한 해외 여행상품을 비교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판매한 관광 상품은 국내에서 판매한 상품보다 가격이 훨씬 비쌌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한 상품의 가격이 관광지에서 옵션투어를 하면서 구매한 상품까지 포함하면 일본 상품과 거의 비슷하거나 상회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판매한 상품을 이용한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관광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판매한 관광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복사한 후 돌려주지 않고, 옵션투어를 하느라 제대로 관광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내국인 저가여행상품 대책 마련우리나라가 쇼핑천국을 표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저가 여행 상품처럼 취급되고,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말처럼 관광보다는 쇼핑으로 끌려 다니고 있다. 기분 좋게 출발한 해외여행이 자신도 모르게 마이너스 상품을 보전하기 위한 볼모의 신분으로 전락되고 있다. 저가형 상품의 경우 출발 전에 상품원가가 마이너스로 책정된다. 이런 상품을 구매하면 적자보전을 위해 옵션투어를 할 수밖에 없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좋은 관광 상품은 본인이 다시 가고 싶어 하거나 돌아온 후에 다른 사람에게 그 상품을 추천한다. 관광경험이 쇼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쇼핑브랜드 1st(퍼스트)인증서 수여에 즈음하여 내국인의 저가 여행 상품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됐으면 한다. 한범수 (사)한국관광학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패러디의 원조, 서산대사

올 한해 패러디가 크게 유행했다. 이는 패러디가 인간의 모방 본능과 풍자 본능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대개 문학작품이나 TV 드라마, 영화, 광고 등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지만, 정치인의 한 마디 발언, 특히 실언이나 망언도 중요한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한 정치인의 보온병 포탄 발언과 최근의 자연산 발언은 그 대미를 장식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속담이나 격언도 심심찮게 패러디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속담이나 격언은 인간성과 인간의 삶에 대한 대중들의 경험에 기반한 진리이고, 그러므로 그것은 정치인의 실언과 달리 풍자의 대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속담들이 패러디가 되었을까?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은 고생 끝에 골병든다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다라고 패러디 됐다. 이들 속담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임을 말하고 있는데, 패러디 속담에서는 이것이 오늘의 현실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본래 속담이 갖고 있는 교훈적 메시지를 비관적 현실에 근거해 풍자하는 것들이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로, 혹은 심지어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로 패러디 된다. 속담은 아니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슬로건 중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것도 참 말이 쉽지 실천은 너무나 어려운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가 더 맞는 얘기인 듯 싶다.속담격언 패러디로 현실풍자속담은 삶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처럼 인간성이나 삶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풍자를 담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 났다 같은 속담은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드문 경우를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냉혹한 교육 현실은 더 이상 이 같은 상황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 속담은 강남에서 용 난다라고 패러디 되고 있다.한편 속담이 강조하는 가치를 다른 시각에서 부정하는 방식의 패러디도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잘 아는 일이라도 세심하게 주의를 하라는 말인데, 이를 돌다리도 두들겨보면 내 손만 아프다라고 풍자한다든지,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아는 길은 곧장 가라로 패러디한다. 이들은 모두 조심성을 강조하는 일련의 속담에 대해 효율성의 관점에서 이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불평등한 사회 비판정신 담아그런데 이 같은 속담이나 격언의 패러디를 단순히 현대인의 말의 유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으로 우리나라 속담 패러디의 원조(?)는 서산대사가 아닌가 싶다. 그는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옛 길을 따르지 말라고 패러디했다. 이를 통해 그는 남의 삶을 흉내 내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우리에게 서산대사가 있었다면 서양에는 로마 교황 알렉산더가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배움은 위험하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적은 배움은 위험하다, 즉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초래할 위험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속담 패러디는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모방본능과 풍자본능에 기인한 것으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이다. 아울러 속담 패러디는 그 시대의 비판정신을 담고 있다. 최근에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은 위에서도 보았듯이 대체적으로 빈부격차, 교육 불평등, 처세의 어려움 등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의 불평등성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주제의 패러디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하는데, 지나친 기대일까?

송년음악회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에는 올해와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1년마다 구분을 지어 놓고 가는 해를 마무리하며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연말연시,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하고 특별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러한 세밑, 신년 풍속도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힘들고 긴 인생 여정 중에 잠깐 숨을 고르며 쉴 수도 있고, 새로운 에너지를 보충하기도 하는 인생의 간이역과도 같은 역할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서 전 세계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는 축제의 시기가 된 것도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섣달 그믐날 밤을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불렀고, 묵은 해를 마감하는 여러 가지 풍속이 있었다. 설날과 연이은 정월대보름은 연중 가장 큰 축제가 펼쳐지는 절기였다.음악계도 1년 중 이른 바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연말연시다. 송년음악회와 신년음악회로 대변되는 이 시기는, 그래서 모든 공연장들이 굵직한 공연단체와 출연진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각 공연단체들도 저마다 지명도 있는 공연장을 확보해서 흥행을 확실하게 보장받으려고 치열한 대관 경쟁을 치른다.해마다 되풀이되는 송년음악회의 단골 메뉴는 누가 뭐래도 헨델의 메시아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헨델의 메시아는 1742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의 초연 이래로 헨델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직접 지휘한 32회의 연주회 모두가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갇힌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였다고 한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며, 성경의 4대 복음서와 이사야서, 시편의 내용 중 예수의 탄생과 삶, 수난과 부활을 52개의 곡에 담았다. 모두 3부로 구성돼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주로 1부인 예언과 탄생 및 2부, 3부의 중심이 되는 합창곡 할렐루야와 아멘 이 연주되곤 한다.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걸작이다.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베토벤이 애송하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송시 기쁨에 부쳐(An die Freude)에 곡을 붙인 것인데, 초연 당시, 직접 지휘를 하고도 베토벤은 이미 귀가 멀어 열광하는 청중의 환호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독창자 중 한 명이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세우자 그제야 연주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기악곡으로만 작곡되던 교향곡에 성악을 포함시킨 최초의 작품인 합창은, 성악곡 사이에 삽입되던 간주곡의 성격을 갖던 바로크 시대 작품의 전통을 이은 작품인 동시에, 낭만주의 시대를 개척한 베토벤의 혁신적 성향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베토벤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뛰어 넘는 불굴의 의지뿐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갈구하는 절절한 외침이 담겨있어 한 해를 정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송년음악회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다.한반도는 지금 긴장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포사격과 불바다, 핵시설, 그리고 전쟁 등의 민감한 단어들이 우리의 귀를 날마다 자극하고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한참인 2010년,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한 억압과 고통, 전쟁의 공포가 현존하고 있다. 지금 인류가 겪는 모든 종류의 갈등과 고통을 넘어서서 형제의 우애를 나누며 사는 날이 오리라 믿는 것이 헛된 꿈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유난히도 헨델의 메시아와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이 연주되는 송년음악회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함께하는 창조문화

올해도 우리 시민들은 어김없이 다툼과 갈등을 목도하면서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현재 여야간 내년도 정부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4대강과 한미 FTA 문제로 극심한 몸싸움을 하고 있어 여야의 입장 차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시민들은 이러한 기싸움을 이해하기 힘들며 일부는 이러한 부정적 정치문화를 외면하면서 이를 대신할 참신하고 아름다운 싸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정치문화는 우리 시대 문화의 한 부분이다. 흔히들 문화를 예술품을 감상하거나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엄연히 정치적 행위 또한 시민문화의 일환이고 크게는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우리 문화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미래사회의 문화는 무엇을 근거해야 이러한 다툼을 그치고 화합과 상생이라는 긍정의 문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앞으로의 시대는 꿈과 감성을 파는 시대, 즉 꿈의 사회(Dream Society)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꿈과 감성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의력이 발현되어야 한다. 현재 많은 조직, 단체와 기업에서 창조, 창의성, 창의력이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유행을 하고 있다. 때마침 문화부와 교과부도 지난 7월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초중등 예술교육활성화 기본방안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각급 학교에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합의한 바 있다.창의력이란 무엇인가? 루돌프 플래쉬 교수는 창의력이란 늘상 해오던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깨달음.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라고 정의했으며, 테레사 아마빌 하버드대 교수는 창의성이란 새롭고 적절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창의력을 갖춘 인물이 블루오션을 발굴해내는 해결사로 등장하고 있다.그러나 창의성은 인성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창조를 위한 파괴도 한계가 있다. 파괴는 공동의 선을 지향할 때 의로운 것이다. 부다페스트 클럽을 창설한 어윈 라즐로는 세계붕괴의 기로에서 단순한 지식을 전수하는 기능에 만족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판단력, 창조력을 구비한 인재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도 이와 유사하게 21세기에 지녀야 할 능력으로서 언어, 기술능력, 자율적 행동능력과 함께 이질 집단과의 공동행동 능력이 구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우리의 교육문화정책도 창의와 배려의 조화를 통한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는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현대사회는 타자와의 대화가 중시되는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21세기 역사문화적 배경, 삶의 방식이 상이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과연 어떤 형태를 지향해야 하는가? 혼자만의 창조가 아닌 더불어 함께 하는 창조 즉, 공창형 방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립의 극복과 상호이해를 위해 서로 합의형성을 추구하고 지혜를 모아 해결책을 강구해가는 문화의 건설이 매우 필요하다. 특히 매년 갈등과 반목을 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보면 우리 문화의 정책방향은 공창형 문화를 위해 기본을 새롭게 하는 슬기와 결단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허 권유네스코평화센터 원장

숫자로 본 관광 ‘외국인 관광객 800만명’

흔히 관광을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한다. 굴뚝이 없지만 수출산업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정도가 높은 산업이라는 의미다. 이런 관광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묘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고 관광수입이 관광지출보다 많으면 효자 산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국인 관광객이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더 많이 나가면 관광 지출이 늘어나 국제수지를 악화시켜 문제 산업으로 부각된다.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입국하려던 외국인 수학여행단이 예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관광학회에서 내년에 계획하는 국제행사에도 외국인 참가자들이 주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1월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2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외국인 관광객 입국 800만명을 환영하는 행사가 개최됐다. 방한 관광객이 방문을 취소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뜻 깊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안쓰럽다.연평도 포격 이후 방한 취소 늘어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0만명을 처음 기록한 해는 1978년이다. 이후 매 10년을 전후하여 대략 2배씩 증가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200만명을 기록했고, 10년이 경과된 1998년 외국인 관광객 수는 400만명을 기록했다. 2002년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매년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이 세간의 관심을 끌다 2008년에 깨졌듯이, 10년을 주기로 2배씩 증가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 배증의 법칙도 2008년에 깨졌다.그러나 2000년 외국인 관광객 수가 500만명을 넘은 뒤 2005년 600만명 2010년 말이면 8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 수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에 1천2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빗나갔지만, 2012년에 1천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현재 속도라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20년에 외국인 관광객 2천만명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장기계획도 결코 장밋빛 청사진만은 아닐 수 있다.이 대목에서 관광객 수와 관광수입의 관계는 어떠한지 짚어보고자 한다. 2001년 6억8천670만명이던 세계 관광객 수는 2009년 8억7천970만명, 국제 관광수입은 2001년 4천640억불, 2009년 8천520억불을 기록했다. 지난 9년간의 국제관광객수에 관한 통계지표를 살펴보면 2001년 -0.4%, 2003년 -1.7%, 2009년 -4.3%로 3개년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뿐 플러스 성장추세를 보이고 있다.관광산업 살리기 온국민 힘 모으자국제 관광객 수 및 국제관광수입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해는 대체로 전 세계 경제가 어렵거나 국제 분쟁 및 사스와 같은 질병이 확산되어 여행에 대한 욕구가 억제된 해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세계경제의 침체로 2008년 9천420억불이던 국제관광수입액은 2009년 8천520억불로 -9.6% 감소되었다. 관광산업이 세계 경제 및 환경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은 21세기형 산업이며 평화산업이다. 태국의 정세가 혼미해지면서 관광객이 태국 방문을 주저했듯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으면 관광객들은 방문을 꺼려한다. 이번 연평도 포격이 우리 경제는 물론이고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관광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을 모았으면 한다. 2020년 외국인 관광객 2천만명 시대가 반드시 도래할 것을 기대하며!한범수 한국관광학회장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아는 것이 힘인데, 왜 모르는 것이 약일까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왜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는 것일까? 심지어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속담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라는 말이 있는 반면에, 바른 말 하는 사람 귀염 못 받는다라는 말도 있다. 돈이 제갈량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돈만 있으면 못난 사람도 제갈량과 같이 될 수 있듯이 돈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 혹은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다라며 돈이 인간에게 큰 불행을 안겨다주는 요인임을 지적하는 속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말이 옳은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는 우선 속담은 학자가 만든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대중이 만든 경험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입각한 것이다 보니 주관성을 담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상호 모순적인 속담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서로 모순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사실 표면구조만 그럴 뿐 그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다. 거짓말하고 뺨 맞는 것보다 낫다라는 속담은 정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라는 속담은 정직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역시 정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 반면에 바른 말 하는 사람 귀염 못 받는다라는 말은 정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상대가 불쾌할 수 있는 말은 직설적으로 하지 말고 완곡하게 하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나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다라는 속담은 돈이 제갈량이라는 속담에 담겨 있는, 인생에 있어 돈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인 것이다.그렇다면 속담은 왜 이렇게 일견 모순되는 듯한 표현을 쓰는가? 왜 속담은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가? 그것은 속담이 기본적으로 은유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속담이건 은유를 통해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이를 통해 설득력을 높인다. 또한 간결하고 운율적인 형태를 취함으로써 전달력을 강화한다. 이는 속담의 보편적인 구조다. 바로 이 때문에 처음 보는 외국의 속담도 바로 그것이 속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은유와 은율 구조로 인해 속담은 함축적이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되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아는 것이 병이다는 차라리 몰랐으면 실수하지 않았을 상황을 가리킨다. 인생의 많은 상황이 그러하다. 모르는 게 약이다는 어설픈 지식 습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어설프게 알 바에야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책을 읽지 말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은 독서의 무용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어설픈 독서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에서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따라서 모순 속담들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사실은 모순적이지 않다. 서로 충분히 양립가능하다. 그러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이에 맞는 속담을 인용하고 그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박 만 규아주대 불문과 교수

수몰지구 옛집 살리기

4대강 살리기 문제로 여전히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이 국가적 사업은 우리나라의 주요 하천인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에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만성적 홍수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면서 하천을 건강한 문화 생태공간으로 회복해 국민 삶의 질 향상,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업인데 왜 반대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계속해서 걷잡을 수 없게 논란이 계속되는 걸까. 4대강을 죽이자는 것도 아니고 살리자는데 어찌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그러나 반대하는 측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살리기 이면에 죽어가는 것을 간과하면서 성급하게 정치 논리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막대한 기대 효과도 있지만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제기와 오히려 하천 생계계 파괴와 환경문제, 인근 주민들에게 미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제기하는 것이다.한탄강 도롱이 집 이주 프로젝트한때는 거대한 수력발전소가 발전과 개발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전 국토에 막대한 숫자의 댐 건설로 인해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은 수몰되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고향도 잃어버리고 더욱이 과거의 아름다운 삶의 양식과 문화적 전통은 모조리 새 것으로 대체돼 바람직한 의미의 삶의 공동체는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만 새로운 장소에 해체복원됐을 뿐 일반 주민들의 가옥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댐 건설, 수몰, 보상, 집단 이주 등 일련의 절차가 진행됐지만 사라지는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주민들의 정서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정책적 관심과 배려가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개발에 대한 환상은 사업이 끝나고 나면 밝혀진다. 원주민들은 모두 소외되기 때문이다.원주민 정체성 살리는 뜻깊은 시도최근 경기도 북부에는 한탄강 댐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탄강 홍수 조절 댐 건설이 완공되면 수몰되는 포천시 관인면 중리 마을도 역시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발적 의지와 지역의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성사돼 가고 있다. 도롱이 집 이주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도롱이 집 이주 프로젝트는 새로운 것을 위하여 옛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그대로 살려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수몰지에 있는 50년 된 근대 가옥인 일명 도롱이 집 집단 이주지인 교동장독대 마을. 주민들이 한 평씩 기부한 마을 공동부지를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나서 해체복원, 마을 공동체 활동의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도롱이 집은 마을회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주민들의 생활 역사를 담은 각종 전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사전 단계로 수몰지역에 있는 빈 가옥을 교동마을문화기록관으로 개조해 이주 전까지 주민들의 각종 생활 자료를 비롯해 마을 경관, 역사 등의 소중한 자료를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으로 기록보존전시하게 된 것이다. 지난 17일 그 작업이 결실을 맺게 됐다. 2012년 앞으로 도롱이 집이 교동장독대 마을로의 해체복원작업이 마무리되면 이주민들의 역사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역의 새로운 삶의 공동체 거점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값진 교훈을 남겨주게 될 것이다. 과거 없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과연 미래는 무엇일까.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지역의 예술가 박이창식씨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들린다. 옛것은 보물이다!김동언 경희대 아트기획학과 교수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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