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에는 올해와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1년마다 구분을 지어 놓고 가는 해를 마무리하며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연말연시,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하고 특별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러한 세밑, 신년 풍속도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힘들고 긴 인생 여정 중에 잠깐 숨을 고르며 쉴 수도 있고, 새로운 에너지를 보충하기도 하는 인생의 간이역과도 같은 역할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서 전 세계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는 축제의 시기가 된 것도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섣달 그믐날 밤을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불렀고, 묵은 해를 마감하는 여러 가지 풍속이 있었다. 설날과 연이은 정월대보름은 연중 가장 큰 축제가 펼쳐지는 절기였다.음악계도 1년 중 이른 바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연말연시다. 송년음악회와 신년음악회로 대변되는 이 시기는, 그래서 모든 공연장들이 굵직한 공연단체와 출연진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각 공연단체들도 저마다 지명도 있는 공연장을 확보해서 흥행을 확실하게 보장받으려고 치열한 대관 경쟁을 치른다.해마다 되풀이되는 송년음악회의 단골 메뉴는 누가 뭐래도 헨델의 메시아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헨델의 메시아는 1742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의 초연 이래로 헨델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직접 지휘한 32회의 연주회 모두가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갇힌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였다고 한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며, 성경의 4대 복음서와 이사야서, 시편의 내용 중 예수의 탄생과 삶, 수난과 부활을 52개의 곡에 담았다. 모두 3부로 구성돼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주로 1부인 예언과 탄생 및 2부, 3부의 중심이 되는 합창곡 할렐루야와 아멘 이 연주되곤 한다.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걸작이다.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베토벤이 애송하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송시 기쁨에 부쳐(An die Freude)에 곡을 붙인 것인데, 초연 당시, 직접 지휘를 하고도 베토벤은 이미 귀가 멀어 열광하는 청중의 환호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독창자 중 한 명이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세우자 그제야 연주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기악곡으로만 작곡되던 교향곡에 성악을 포함시킨 최초의 작품인 합창은, 성악곡 사이에 삽입되던 간주곡의 성격을 갖던 바로크 시대 작품의 전통을 이은 작품인 동시에, 낭만주의 시대를 개척한 베토벤의 혁신적 성향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베토벤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뛰어 넘는 불굴의 의지뿐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갈구하는 절절한 외침이 담겨있어 한 해를 정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송년음악회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다.한반도는 지금 긴장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포사격과 불바다, 핵시설, 그리고 전쟁 등의 민감한 단어들이 우리의 귀를 날마다 자극하고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한참인 2010년,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한 억압과 고통, 전쟁의 공포가 현존하고 있다. 지금 인류가 겪는 모든 종류의 갈등과 고통을 넘어서서 형제의 우애를 나누며 사는 날이 오리라 믿는 것이 헛된 꿈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유난히도 헨델의 메시아와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이 연주되는 송년음악회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오피니언
김동언
2010-12-22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