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전래동화 콩쥐 팥쥐에 보면 계모인 팥쥐의 엄마가 콩쥐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 넣으라고 심술을 부린다. 불가능한 일을 시켰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나오스 왕의 딸 49명이 남편들을 살해한 죄로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형벌을 받는다. 물론 콩쥐는 두꺼비의 도움으로 계모의 심술을 일단락시키지만 다나오스 왕의 딸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벌을 아직도 받고 있다. 과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조금 오래되었지만 2001년에 개봉되었던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에도 보면 이 선문답(禪問答) 같은 과제가 나온다. 속세에서 사고치고 산사로 숨어든 건달 일당과 수행 중이었던 스님들이 엎치락뒤치락 기(氣) 싸움을 벌이는 중에 노(老)스님이 던졌던 과제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먼저 채우는 쪽이 일승(一勝)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온갖 기발한 생각을 동원하지만 밑 빠진 독을 채울 수 없었던 한순간 건달 중 하나가 그 독을 들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건달이 일승을 거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건달 두목(?)이 노스님에게 자기들을 감싸주는 이유가 뭔지를 묻는다. 자기들에게 착하게 살라든지, 남을 괴롭히지 말라든지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자기들을 감싸주는 것이냐고 따지듯 하자 그러는 너는 밑 빠진 독을 어떻게 물속에 던질 생각하고 던졌는지를 노스님이 물었을 때 건달은 그냥 항아리를 물에 던졌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때 노스님은 나도 밑 빠진 너희를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나도 모르는 문제를 풀어놓고선 뭘 모른다고 자꾸 물어봐?라고 하신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이 말은 밑이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듯이 노력이나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보람이 없는 일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래서 콩쥐에게는 계모의 심술로, 다나오스 왕의 딸들에게는 형벌로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과제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밑 빠진 독 같은 문제, 밑 빠진 독 같은 인생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에 던지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병이 되며 꽃을 꽂을 때는 꽃병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 신(神)을 담으면 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밑 빠진 독일지라도 그 마음에 담기만 하면 신의 마음으로 채워져 어떤 어려움과 갈등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고 하였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스스로 낮추신 그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갈등도 해결되고 미움도 해소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신의 마음을 품는 내 속에 던지기만 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겠다는 말이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나라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개인과 전체 모두가 적용되는 헌법의 수호를 받는다. 그런데 요즘 종교계 안에서 정치적인 논리와 정치활동을 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통하여 작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과연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관계가 정치적 관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이 사회는 정치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정치적인 관계를 나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질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스리는 자들은 자신들이 최고 상위에 있는 자들이 아님을 알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그 사람의 직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을 가르치며 또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높은 곳의 사람들을 향하여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가르친다. 이 말은 상호 사람의 존재를 존중하되 하는 역할에 대하여는 질서를 지키라는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기독교의 정치 목정에 대하여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 중에 한 이야기가 있다. 18세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노예무역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였다. 아메리카 대륙과 서인도제도의 대규모 농장산업이 발달하고 유럽의 식민지 확대정책 속에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서인도제도에 판매하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영국은 1771년 190척의 노예 무역선으로 연간 4만 7천 명을 운반했다고 기록할 정도로 노예를 사고파는 중심에 있었다. 동시에 기독교 정신에 따른 사회정의 실천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운동이 영국의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나타나면서, 인권의 문제와 노예무역에 대한 비판도 일어났다. 이 같은 시대배경 속에 노예무역 상인이었다가 성직자가 된 존 뉴턴은 젊은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무역 폐지에 앞장서도록 영향을 끼친다. 윌버포스는 1789년 첫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낸 이후 11번이나 법안 통과에 실패했지만 오랜 시간을 끈질기게 매달려 20여 년 만인 1807년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833년 영국의 모든 노예를 1년 내에 해방한다는 결정을 이끌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정치적 행위는 사람들을 돕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한다. 비인격적이고 비종교적이며 사람을 살해하는 언어를 함부로 말하는 종교적 정치형태는 금지되어야 한다. 종교인들의 정치참여가 금지되어 있지 않고 어느 부분은 사회참여가 필요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종교적 정치참여는 이미 종교의 틀을 넘어서 세상 정치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 보인다. 예수께서는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먹을 드는 자는 주먹으로 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미련한 놈(라가)이라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 경고하셨다. 우리 모든 인간은 나하고 생각이 달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귀한 존재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종교의 신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저주하는 언어로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수 없다. 답답하고 늦어 보여도 사랑하고 섬기며 눈물로 끌어 안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성경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 움직여야 하는 때가 아닐까 기도해 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 교장

[삶과 종교] 조직사회와 역할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의 역사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만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였고 신의 영역이라고 인식되었던 여러 부분까지도 그 이치를 구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조건으로 첫 번째는 조직사회의 구성과 운영을 합리적으로 이끈 지식과 지혜가 뒷받침되었던 이면이 존재하고 있다. 같은 부류가 협동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은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의 사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나, 우리들의 가까운 주변에서는 개미의 군집에서도 손쉽게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조직사회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주의 법칙에서 원초적으로 존재하였던 하나의 이치이다. 인간들이 동경하는 천상(天上) 세계의 천인(天人)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는 더욱 세련되고 발전된 형태를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교육의 기초를 담당하고 있는 유치원과 비슷한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아함경』에서는 아기의 부모가 존재하더라도 일정하게 성장하는 시기까지는 남녀노소가 공동으로 양육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천상의 세계에서도 계급에 따른 지위를 가지고 태어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역동적인 삶과는 차이가 있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들이 불합리하다고 인식하여 개선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어 오히려 우리가 가진 기회의 평등은 적어지는 형태를 지니게 되고, 신분이 고착화되는 사회조직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부처가 이 세상에서 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제자들이 국가의 존재하는 의미를 물었을 때에 부처님께서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의무이다.라고 명쾌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국가는 조직 가운데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에는 그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합의가 기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선택하는 존재이고 이것은 스스로 업과 조직의 업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국가의 권력은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지도자들에게 위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성왕의 조건의 가운데에는 군대와 신하를 언급하고 있다. 곧 전륜성왕도 군대와 정부가 없으면 통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논리를 현재의 한국에 적용한다면 어떠한 시각으로 생각하여야 하는가? 현재 이 나라의 정치권과 정부의 역할은 국민이 지도자들에게 위임한 권력을 합리적으로 집행하고 있는가? 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내 탓이오.라는 겸손한 생각과 행동을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기대하여 본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양국 간의 관계는 1966년 6월 22일의 한일 기본 조약으로 인한 관계 정상화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과거 한국 정부는 몇몇 굵직한 사건으로 인해 국교 단절의 비상 카드를 꺼낸 들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의 무역 규제가 한국에서는 보복으로 받아들여졌고, 화이트 리스트 배제로 인한 경제 침탈이 시작된 시점에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등 나름대로 국제법과 국내법에 필요한 초강경의 대응 조치를 취해 가고 있다. 사건 이후 국내의 대표적 지상파 방송에서 막바지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 속에서 현 사태를 주시하는 그들의 속내를 살펴보았는데, 수출 규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70% 이상 일본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입장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협정에서 약속한 청구권 포기를 어겨 더 이상 지금까지의 한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한국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명백한 보복성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안보상의 이유로 내려진 조치라고 하지만 그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 이와 함께 일본 내 여론은 현재 한국 정부가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고 중국 주도로 움직이는 데 대한 염려와 함께, 한국으로 수출된 것이 군사적으로 전용된다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규제가 아니라 무역 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특히 여기에 한 몫 더하는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일본 정치인들의 서슴지 않은 언행과 무례함은 143년 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에서 행했던 일본의 태도를 재현해 보는 것 같아 심히 불쾌할 정도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고 당론으로 각을 세울 문제도 아니다. 1591년 3월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왔던 조선의 동ㆍ서인 관료들의 각기 다른 보고는 이듬해 임진년부터 시작된 7년 왜란을 초래했고, 병자년 막바지인 1636년 12월 2일에 시작된 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조선은 주화론과 주전론자로 나뉘어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치를 당하며 전쟁발발 2개월이 되기도 전에 항복했던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의 문제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되고 국민의 힘이 하나 되어야 할 때이다. 국가가 비굴하면 국민이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국민을 움직이려고 여론을 호도해서도 안 되겠고, 국민을 이용하려고 정치를 내세워서도 안 되겠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관건이다. 7년의 임진왜란이 항복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백성의 의로운 자발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고, 2개월의 병자호란이 항복으로 끝난 것은 백성의 참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의 동의를 받아낼 수 없고, 자발적 참여를 요구할 수도 없겠지만 2016년 10월의 촛불혁명 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할 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구약성서에 한 사람이면 패하고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는데,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12)고 했다. 이 나라를 지탱하고 끌어가는 힘은 좌우의 이념이나 당론으로 움직이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다. 정치가 기술이고 견제라면 국민은 힘이다. 국가 대 국가의 대립에서 국민의 협력은 절대적인 국가의 힘이 된다. 이후 정세의 추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해 일본의 경제 침탈을 극복하는 저력을 보일 때이다. 강종권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기억과 화해

요즘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이성적이고 성숙된 모습으로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죠지 산타아나(1863-1952)는 그의 저서 이성의 생활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는 이들은 그 역사를 반복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E.H.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우리는 역사에서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항상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에서 생겨나며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에서 의미가 충만해진다.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성찰하며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 이후 겪은 우리 민족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 강제 징용자들의 피해,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친 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행해진 억압과 폭력에 대한 일본의 반성은 없다.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며, 정당한 피해 보상에 대한 요구를 무시한 채 비상식적인 경제보복으로 맞서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지난 2000년에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맞아 큰 기쁨을 의미하는 대희년을 지낸 적이 있다. 먼저 교회는 2000년 대희년 3월 12일을 용서의 날로 정하고 지난 역사에서 교회의 아들딸들이 행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교회가 인류에게 저지른 과오를 기억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회의 미사를 봉헌했다. 교회는 삼천년기를 준비하면서 참회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족하지만 쇄신과 변화의 몸살을 지금도 앓고 있다. 우리의 신앙은 고백한다. 과거의 죄악과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어둠에서 빛으로 더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와 국민이 지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반성과 피해 보상을 통해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길 기대한다. 유주성 천주교 수원교구 해외 선교 실장 신부

[삶과 종교] 책 속에서 만나는 비전의 힘

인생을 살면서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중에 제일은 바로 책이다. 나는 책에서 인생을 배우고 학문을 배우고 삶을 배워왔다.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고 길거리보다는 시원한 곳을 찾게 될 때가 되어서 평소에 존경하던 한 어른의 책을 손에 들었다. 그 책 감동 편에 나오는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짐승 가운데 인간의 눈을 제일 많이 닮은 것은 무엇일까요? 동물학자들은 그것을 사자라고 합니다. 힘이 센 백수의 왕이라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자는 들판에서 사는 짐승이라 언제나 먼 지평을 바라보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식동물들은 발 밑의 풀만을 보고 다니기에 시야가 좁고 호랑이는 숲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먼 곳을 볼 수 없지만 사자는 들판에서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인간이 두 발로 서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기에 인간이라고 작가 선생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지금, 여기의 발 밑이 아니라 먼 내일과 더 넓은 지평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진 꿈, 즉 비전(Vision)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을 잃으면 우리는 현실의 여기에만 머무르게 된다. 우리가 가야 하고 찾아야 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고 여기 너머 저기에 있을 테다. 가끔 종교를 향하여 쓴소리 하시는 분들 중에 종교는 배부른 자들의 사치라고 꼬집는 분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이 땅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인 신앙의 문제가 어찌 한 술의 밥과 한 조각의 떡과 견주겠는가? 그러므로 종교는 배부른 자들이 갖는 철학적 사치의 성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고통의 문제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직면했을 때 또는 배고픔의 절정에서 굶주림의 극에 달했을 때 그때에도 우리는 종교를 찾는다. 그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의 문제 속에도 종교는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주변의 자연을 돌아보면 그곳엔 창조주의 섭리와 이치와 인생의 길이 있다. 그리고 그 원리의 삶이 복음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눈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우리의 인생의 답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찾게 된다. 우리의 두 발은 지금 우리의 인생을 오늘을 밟고 있지만, 우리의 눈은 더 넓은 미래의 꿈의 지경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 꿈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이 꿈꾸는 길에 이 더운 날 책 한 권 옆에 끼고 그 책 속에서 우리 모두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목도되는 걸음들이 되시길 축원해 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 교장

[삶과 종교] 세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7월의 햇볕이 따가워지고 장마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 지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열기를 식혀주는 장맛비의 시원한 추억은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지구촌의 여러 지역에서 폭염에 시달리고 있어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기상이변은 아닐지라도 백 년 전의 우리 조상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현대와 같이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현실에서는 이성적인 사유보다는 감정적인 사고가 앞선 영향으로 하늘에 대한 원망과 인간 세상에 대한 자책이 공존하였을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도 하나의 유기체의 범주를 벗어나서 생명체의 기능을 갖추고 스스로 변화를 모색한다는 존재임을 인간은 오만하게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면서 큰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서 석가모니불의 관점에서 관찰하였을 때 유일하게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육도의 수직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간세상 위에 천상이라는 세계가 펼쳐져 있으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성불을 향해 있지 않은 사상적 특성으로 부처가 출현하기 어려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인간을 비롯한 중생들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하는 환경을 기세 간으로 구분하고, 중생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환경을 중생 세간으로 구분하며, 중생이 살아가는 몸을 오음세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중생들은 나라는 존재와 우리라는 공동체와 환경이라는 세간(世間)에서 삶을 수놓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물의 연결점과 같은 구조로 연결된 관계가 무한히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항상 인식되는 관념에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아도 모든 생명체는 대중을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중에 대한 배려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금강경에서 첫째로 경계하는 아상(我相)이다. 이러한 아상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아만(我慢)이 아닌 스스로 품격을 높이는 자존(自尊)으로 작용한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자신의 품격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품격을 존중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리이타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남을 자비롭게 사랑하는 존경심이 있음을 폭넓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기세 간에서 펼쳐지는 현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언론에서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낯선 표현은 아닌데 이해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부터 이웃이라는 관계가 무색하게 좋지 못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청산되지 못한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의 뒤안길에는 위정자들의 잘못이 우선적으로 부상하겠으나, 이와 같은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국민의 몫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과의 통상마찰이 심각하게 대립하게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 이면에는 기초적인 기술적인 투자에 소홀했던 우리의 과거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한국의 현재의 현실은 중생 세간에서 벌어지는 사유의 법칙, 즉 이 시대의 사상적인 조류가 세계의 흐름과는 대치되는 현상으로 진행됐던 것이다. 중생 세간은 한국에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고 대륙과 해양을 넘어서 인류가 존재하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까닭이다. 중생들은 이기적인 심성과 부처의 심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심성의 변화는 시대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며, 역사를 분석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공업(共業)을 다시 되풀이할 뿐이다. 중생이 부처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현실의 세간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지혜의 눈이 첫걸음인 것이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한여름, 아버지의 복숭아

지난 며칠 동안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 발령이 있을 만큼 몹시 더웠다. 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생각난다.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아버지 기일이 음력으로 7월 초, 양력으로는 8월 초 무더운 여름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사시며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가 한여름이면 복숭아를 먹으러 시골 고향마을에 오라고 전화하시곤 했던 기억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한여름이면 늘 복숭아를 먹으며 자랐다.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처음으로 복숭아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 집 가까이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다. 점차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따라 밭이 있으면 대개 복숭아나무를 심었고 복숭아를 재배하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야만 맛볼 수 있는 복숭아 맛을 경험했다. 완전히 익은 복숭아는 냉장고 밖에서 2~3일 정도 지나면 농익어 물러버린다. 그래서 유통을 위한 복숭아는 현지에서 먹기 좋게 잘 익기 전 이틀이나 사흘 정도 먼저 따서 가락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사먹는 복숭아는 하루 이틀 정도 덜 익은 것이다. 그러니 과수원의 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와는 맛에 차이가 생긴다. 복숭아 맛의 차이의 원인은 이 외에도 많다. 과수원의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복숭아를 기르는 분의 기술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가지치기와 접과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거름을 언제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복숭아나무가 병충해에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같은 사람이 기르는 같은 과수원의 같은 나무라고 해도 그 나무 수령에 따라서, 또 같은 나무라고 해도 복숭아가 달린 가지의 위치, 또 같은 하나의 가지에 몇 과의 복숭아가 달렸느냐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이것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 같다. 또 나와 같은 고향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런 미세한 차이를 얼마나 잘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복숭아 농사를 잘 짓는 편이셨던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아버지가 복숭아 농사를 가장 잘 지으셨던 것 같다. 나는 맛의 차이가 느껴져서 고향 복숭아가 아니면 거의 사먹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복숭아를 많이 먹고 자랐지만, 고향에 사는 동안에는 복숭아가 풍성했기 때문에 내가 복숭아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부천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고향에 가서 복숭아를 먹지 못하면, 나는 안달이 났다. 한여름 주말이면 복숭아를 먹어야 해서도 고향을 가야 했다. 집에서 먹을 복숭아가 떨어지면, 더더욱 안달이 났다. 아버지는 내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하는 걸 당연히 아셨을 것이다. 어느 해부터는 우리 과수원에서 가장 큰 복숭아를 따는 날이면 전화하셔서 복숭아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5㎏짜리 복숭아 한 상자에 10개 이하가 들어가는 크기 복숭아면 최상품이다. 그런 복숭아가 나무에서 농익어 완숙된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이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것과 같이 맛있는 복숭아 맛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건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맛이다. 그런 복숭아를 직접 맛보려면, 어느 과수원이든 그것을 따지 않고 따로 익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아버지는 그 복숭아를 놓아두시고 매해 나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따로 남겨놓은 완숙된 복숭아 맛을 볼 수 없다. 나는 요 며칠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일명「부모은중경」)을 읽으며, 부모님의 자애와 자식의 효를 생각했다. 곧 다가올 음력 7월 초에는 아버지 제사가 있고, 음력 7월15일은 우란제일(盂蘭祭日)이다. 한여름이면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아버지의 복숭아가 더 그립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삶과 종교] 대한문 유감

30년 전 구세군사관학교에 입교한 후 매주 목요일이면 대한문 앞에서 가로전도를 했었다. 브라스밴드와 탬버린 연주를 할 때면 바쁘지도 않은 걸음을 총총거리다가도 힐끔거리며 지나가던 행인들과 가끔은 한산한 광장의 한쪽에서 부끄러운 듯이 탁발하던 스님의 조용한 염불이 어우러지곤 했었다. 언제부턴가 그곳에는 온갖 시위대들이 우후죽순 진을 치고 있어서 한 번이라도 그 앞을 지날라치면 연간 불편하지가 않다. 지난봄 어느 토요일 오후 교우들과 함께 북악산을 등반한 후 창의문(彰義門)을 빠져나와 지하철 1호선을 타려고 서촌, 효자동, 신문로를 거쳐 정동 길을 걸어오다가 계획에 없던 덕수궁을 관람하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인 대한문의 작은 광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고, 심지어 대형 무대 차량까지 점거해 소란 피우는 통에 겨우 한 명 지날 수 있는 임시 통로를 이용하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대한문은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경운궁)의 정문이다. 을미년인 1895년 일본 낭인들에 의해 왕비를 시해당한 고종 임금은 4개월 후인 이듬해 2월 11일 비밀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여 파천(播遷)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1년을 지낸 1897년 2월 20일 정궁이었던 경복궁으로 환궁(還宮)하지 않고 러시아와 영국, 미국 등 강대국의 공사관들이 밀집해 있었던 가까운 경운궁으로 이궁(移宮)한 후인 그해 9월 17일 고종 임금의 황제 즉위식과 더불어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정궁이 됐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인화문(仁化門)이었지만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치고 궁의 정문으로 삼았으면 1907년 7월 일제의 횡포로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을 덕수궁이라고 부르게 됐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늑탈될 때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국의 정궁 정문이었던 대안문(대한문) 앞에는 많은 시위가 있었다. 이전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서 유림이 왕을 움직이기 위해 상소하며 시위했듯이 대한제국의 정궁 정문이었던 대안문(대한문)에서도 독립협회와 유림, 그리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열망하는 선각자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곳이 상소를 들을 수 있는 귀와 시위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던 정치적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제국의 중심지가 아니다. 백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덕수궁 대한문은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둘러보는 역사문화유산이 되어 더 이상 들을 귀도 없고 응답할 입도 없다. 정책을 요구하고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시청 앞이나 청와대 앞으로 가면 될 것을 왜 굳이 좁은 대한문 앞을 점거해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약성서 잠언에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 하느니라(잠 11:12)고 했다. 또한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고 했다. 시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지혜롭게 적절한 장소를 택해서 하라는 말이다. 역사문화유산의 장소인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남겨두라는 말이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를 생각하며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라는 독일 철학자의 논리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세상은 정, 반, 합의 역사로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그 변화는 익숙함을 지키려는 힘과 변화를 원하는 새로운 논리를 원하는 힘의 충돌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이 얼마나 서로 존중하며 합의해 나가는가에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 그들에게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등급이 매겨져 간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온 세상의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계획을 실행하실 때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종교지도자들과 유대군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체포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그의 단칼로 잘라버렸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를 지키기 위한 제자로서의 당연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려던 제자 베드로를 향하여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야단치시면서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치유하여 주신다. 옳은 일을 하기 원한다면 그 방법도 옳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분명하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회, 개인, 정치로부터 종교까지 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여론이 극심하게 양쪽으로 나뉘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삶의 원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다. 이 시대의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극단적인 돌을 던져 서로 공격함으로 이 나라가 선진국의 면모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기다려 주는 사회의 분위기가 우리를 선진국민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치의 여야가 어찌 싸우지 않고 발전해 갈 수 있으랴마는 나라의 국민과 국익을 위하여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한목소리를 낼 수도 있는 성숙한 대통령과 국회와 지도자들이 있을 때 그 나라의 운명은 만들어져 간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의 삶도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성숙함의 태도를 이 땅에 심어갈 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지나친 급진적인 말과 태도와 행동이 아닌 함께 모여 토론과 나눔과 대화가 살아나는 그런 성숙함의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즐겨볼 수 있는 그런 자신감과 여유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자 오늘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 모든 세상의 진리는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라시며 제자의 칼날을 야단치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상훈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삶과 종교] 공덕심과 이기심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알맞은 기념일을 제정해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공통된 목표를 이루고자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기념일은 역사적인 산물로서 그 시대의 가치관을 담고 있으며 후세에 가치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근거가 특정한 사상이나 선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한 국가를 넘어서 인류에게 많은 고통과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종교가 특정한 이념을 지향해 지금도 갈등을 유발하는 모습을 현재에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다. 또 특정한 지도자에 의한 선동정치에 의해 얼마나 많은 전쟁의 광풍에 여러 국가가 휘말려 들어갔던가? 세계대전을 겪고서 1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나 우리는 전쟁의 상흔을 가볍게 치부하고 민족의 분단과 대치 속에서도 과연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면서 갈등했는가를 냉철하게 사유하고 관조하는 자화상의 모습이 부족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많은 외침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국가의 독립과 가치관을 이어오면서 자긍심과 수준이 높은 문화를 이뤘으므로 우수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중국에는 50여 종족이 넘는 소수민족이 있고 그 가운데에서 대제국을 이룩하였던 청나라의 만주족은 현재 50만 명 정도가 남아있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옛 왕조와 같은 번성하는 국가를 건립함에는 많은 현실의 제약이 따를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부처님께서 제시하는 법문에서는 국왕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설하셨고,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하여 일반 국민은 권력을 국왕에게 임시로 위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를 다스리는 위정자와 국민은 서로 지배하고 지배를 당하는 계급적인 신분이 아닌 서로 하나의 배를 같이 탄 존재라는 의미이다. 배를 운용하는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게 하면서 중간에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서 발생하는 돌발적인 변수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선동적인 승객들의 행동에 휘말려서 배를 이끈다면 더 큰 고통을 자초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 영웅심을 부추기는 여러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어느 시대에서든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는 심리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이 존재한다는 현실은 인간사회가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또 다른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폭력에도 양면성이 존재하고 있어 국가에 의하여 위임받은 폭력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트려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도 발견된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조금 더 나아가면 침략전쟁을 미화하면서 다른 국가를 파괴한 경우를 영웅시하는 경향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극단적으로 인종청소라는 인간의 인성마저도 파괴하는 사례가 몇십 년 전까지도 발생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추악한 이면에는 집단의 이기심이라는 가면을 공덕심으로 포장해 대중들을 현혹시켰던 시대적인 패러다임이 우리의 내면에 숨어서 존재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간들은 누구나가 궁극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축생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의 대중을 향하는 공덕심으로 변화시키려는 마음의 자세와 현실적인 노력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웅을 찾고 영웅을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영웅이 없었던 우리들의 삶이 무미하고 건조하였던 것은 아니었잖는가? 누구나 이기적인 마음에서 안주하고자 생각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하는데,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가 먼저 스스로 참고 인내하며 노력하는 것은 공덕심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공덕심은 멀리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작은 배려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세영 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통도사를 통해 본 고대 한국인의 종교적 통찰과 지혜

양산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와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다. 불보(佛寶)는 통도사이고, 법보(法寶)는 해인사이고, 승보(僧寶)는 송광사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보아야 할 절 가운데 하나다. 통도사란 이름은 통만법(通萬法) 도중생(度衆生)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통도사의 이름을 현대적으로 풀어 해석하면, 한편으로는 온갖 진리를 두루 꿰뚫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 절을 처음 연 이가 원효(元曉, 617-686)보다 한 세대 위의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다. 자장은 636년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643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자장이 머물며 수행한 곳이 자장암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자장암이 통도사의 시작일 것이다. 통도사는 통도사 전각과 탑 그리고 암자 등 사찰 건축물과 탱화 등 불교적 유물 자체로도 그 의미가 크지만, 통도사를 감싸는 산과 들, 그리고 그곳을 만들고 지켜온 스님들의 수행과 신도들의 믿음이 어울려 지혜를 빚어내 비로소 온전한 통도사가 된다. 먼저, 통도사와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영축산 이야기를 하겠다. 통도사의 뒷산은 영축산으로 해발 1천m가 넘는 높은 바위산이다. 그런데 이 높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통도사를 둘러싸고 있다. 통도사의 뒷산인 영축산은 높은 바위산 모습의 강건함과 대나무 소쿠리같이 통도사를 넓게 둘러싼 모습의 넓은 포용력을 가진 온화함을 함께 갖추고 있다. 통도사 터는 바로 이런 영축산의 강건한 기와 유순한 기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통도사 터는 바로 한국불교 사찰의 종가라는 이름을 얻을 만한 기운을 지닌 터다. 다음으로, 통도사의 핵심인 금강계단을 이야기를 하겠다. 이 금강계단에서 계율을 받아야 스님의 도력이 비로소 생긴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금강계단이 용이 살던 늪지대였고, 이 늪을 흙으로 메우고 금강계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대웅전 앞의 둥그런 모습의 연못과, 영산전 앞의 작은 연못은 이 절을 지키는 신장이 된 용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늪에는 물의 신인 여덟 분의 용신들이 살았고, 이 용신들은 농경시대 전통신앙의 숭배대상이었다. 한국의 용은 유럽의 드래곤과는 다른 것이다. 유럽의 드래곤을 동아시아에서 용이라고 번역해서 한국의 용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전래되던 초기에는 외래종교인 불교의 고승은 전통신앙의 대상인 용신과 싸워서이기고 용신이 살던 늪에 절을 짓는다. 통도사에 전해지는 설화는 자장율사가 도술을 부려 아홉 마리의 용신이 살던 연못에서 여덟 마리 용을 쫓아내고 그곳에 절을 짓는데, 핵심이 금강계단인 것이다. 불교 전래 이전 신앙대상이었던 용신은 이제 부처로 대체되고, 마지막 남은 용신은 자장 율사에게 굴복하여 용신에서 멋진 용으로 변모하고 절을 지키는 신장으로 함께 숭배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락보전 후면에 그려진 반야용선(般若龍船) 그림 이야기를 하겠다. 이 그림은 고승에게 굴복한 용신은 이제 지혜의 용신으로서 배가 되어서 앞에는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인왕보살, 뒤에는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대원보살인 지장보살을, 그 가운데에는 많은 중생을 싣고 생사의 파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대 한국인들이 그들의 산천(山川) 안에서 자라나온 토속종교와 외래종교인 불교를 그들의 산천 안에서 이해ㆍ흡수ㆍ융합ㆍ창조해온 그들의 통찰과 지혜의 모습이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삶과 종교] 청출어람

5월 어느 날 저녁 어두워질 때쯤 보강을 마치고 나오는데 낯선 제복을 입은 청년이 복도에 서성거려 누군가 보려고 다가갔다. 육군 3사관학교에 입학했다던 후배 교수 사관의 아들이었다. 짧은 기간 함께 관사 생활할 때 고등학교 막 입학하여 자전거 타고 학교 다니던 것을 본 게 엊그제였었는데 각 잡힌 의젓한 모습을 보고 내심 놀라며 너 청출어람이라는 의미를 아니?라고 물었다. 쪽이라는 푸른 일년생 식물에서 천연의 푸른색 염료를 얻는 데 그 색깔이 원래 쪽의 푸른색보다 더 푸르다는 의미로 순자(荀子)의 권학(勸學)편 첫머리에 나오는 청취지어람이청어람(靑取之於藍而靑於藍)을 축약하고 변조한 고사성어이다. 스승보다 제자가 더 낫다는 말이지만 내 질문의 의도는 아버지보다 더 준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자로 남으면 스승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스승을 능가하지 못한 제자는 스승을 욕되게 한다는 말이다. 청출어람과 상통하는 이 말은 경성(警醒)하지 못하고 채신머리없이 나대기만 하는 현실에 내 던져 꽂는 비수이기도 하겠다. 자기만 옳다 하고, 자기만 최고라 여기며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는 모습이 못나기 이를 데 없다. 소신도 아닌 고집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억지는 식상하다 못해 속상하다. 남보다 덜 배운 것도 아니고 남보다 덜 가지지도 않는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갇힌 사람들처럼 막가 처신을 해대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수신(修身)의 배움과 제가(齊家)의 가르침을 준 스승과 어버이를 욕되게 하고 치국(治國)이 아니라 파국(破國)으로 치달으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고 하였다. 형제가 형제를 고발하는(고전 6:6-8) 지나친 자기중심적인 행동에 대한 절제를 요구하는 말이다. 지나침은 아니함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이다. 구약성서 잠언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고 하였다. 배운 대로 행하면 평강이 더해진다는 말씀이다. 스승과 어버이의 기대에 부응하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원한다면 우선 생각과 행동을 자숙(自肅)해야 하겠다. 강종권 구세군 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부활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길

전 세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죄와 죽음을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심을 경축하고, 우리 또한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악보다 더 큰 사랑,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을 살리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구원의 빛이 온 인류를 비추고 있음을 기념한다. 죄와 죽음이 단절과 분리를 의미한다면 특별히 이 시기는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되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된 시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활 사건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는 시간으로 보낸다. 우리를 통해서 다른 이가 생명을 살 수 있도록, 온 인류에게 구원의 빛이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이번 4월은 좀 더 의미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교구 사제들이 파견된 미국, 페루, 칠레 선교지를 20일 일정으로 방문하고 돌아왔다. 과거의 교회가 유럽과 미주 교회로부터 받는 교회였다면 이제는 나누는 교회가 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열악한 지역에 성당과 학교를 세우고, 우물을 파고, 병원을 짓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국에서 편안한 사목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물설고 낯선 이국 땅에서 사목하는 신부들의 열정과 기쁨, 그들만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방인을 마을 어귀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따스히 반겨주었던 가난하고 순박한 신자들의 모습, 5천500m 험한 산길을 차로 2시간 걸려 봉헌한 공소 미사, 우리에게 볼 수 없는 시장 한가운데를 행렬하며 봉헌했던 성지주일 미사!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한 체험이었다. 교구 신부들과 신자들의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참으로 소중한 존재요, 사랑안에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목 방문 기간 중 특별히 5천m 험한 산길을 2시간 걸려 도착한 아나니아스라는 공소가 인상적이었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는 낭떠러지로 굴러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이었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조그만 마을, 50여 명의 원주민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높은 빌딩과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이방인(?)은 먼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도시화와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도 전통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 가난하지만 잘 웃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동물조차도 사람들과 어울려 공동체를 이루는 듯한 길가의 양들과 강아지들, 신선한 공기와 형형색색의 야생화, 어두운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은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한 달 헌금을 모아도 우리 돈으로 3만 원도 채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애타게 한국인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험한 산길을 달려온 그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편리한 삶과 신앙을 살던 내게 그들이 간직한 믿음과 인심은 누구보다 부자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더 자극적이고, 더 편리하고, 빠른 것을 추구하지만 왠지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여유와 미소, 작고 소박한 것에 대한 감사, 익힌 감자와 까칠한 빵이지만 함께 나누어 먹는 인심, 어린 아이가 더 어린 동생을 돌보는데 보채거나 울지 않고 평화로이 뛰어노는 모습, 자연을 잘 보존하고 경외하는 그들의 마음을 잃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떠나보니 새삼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살면서도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지를.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었던 소중한 벗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랑이 참되기 위해서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비로소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마더 데레사 수녀님) 유주성 천주교 수원교구 해외 선교 실장 신부

[삶과 종교] 참회를 통한 화합

삼천대천세계의 성인이시고 인류에게 지혜의 등불을 밝히셨던 석가모니라는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날이 지나갔다. 이 성인의 가르침은 자비라는 개념으로 많이 인식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화합과 평등을 강조하셨던 인간세상을 유행하셨던 삶의 궤적에서 모든 중생들에게 대한 따스한 대비심도 느낄 수 있다. 여타의 종교행사와 같이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연례행사를 맞이하면서 새롭게 지난 시간을 성찰하여 과오를 뉘우치고 건설적인 미래를 많이 구상하게 된다. 어느 종교가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교리를 바탕으로 화합과 평등을 깨트리는 것을 환영하겠는가! 부처님께서 항상 설하시고 강조하셨던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청정한 마음인 불성을 유학자 맹자께서도 비슷한 관점에서 강조하고 있다. 인간다운 심리적인 기초를 이루는 성품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인(仁)과 사양지심(辭讓之心)의 예(禮)와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의(義)와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지(智)인 사단(四端)이 자리하고 있고, 가장 앞선 덕목으로 인자함을 손꼽고 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한국에서는 고등교육이 매우 발달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고, 나아가 이땅에 전해져왔던 전통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삼가하는 처신을 중요시 생각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살아오고 있다. 나보다는 우리가, 가족보다는 공동체를 앞세웠던 문화가 존중되었던 국가의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을 수용한 이 땅의 종교는 얼핏보면 믿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면에서는 치열한 자기성찰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이 움직이는 곳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라도 지금의 현실은 타협과 관용 및 화합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시대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알맞은 소유와 소비의 균형을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 특히 갈등이 부각되는 것은 물질적인 빈곤이 아닌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재물의 불공평한 분배에서 시작된 갈등이다. 높은 교육수준에 따른 지식의 고도화는 인격을 성찰하고 연마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고 다른 존재를 해치는 흉기로 사용되면 아니된다. 지식은 나의 개인적인 치부를 위한 수단이 아니고, 사회와 공공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화합을 물과 우유가 섞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인류의 문화사의 가운데 금기시되는 역사적 사실로 식인의 문화를 손꼽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금기시되는 이유는 인간이 지닌 선악의 중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동안 인류라는 한 종은 지구라는 삶의 무대에서 자연의 환경부터 사유체계인 무형의 문화까지도 많은 변화를 일으켜 왔고, 그 변화 속에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보내면서 다시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뒤돌아보고 참회를 통한 갈등과 분쟁보다는 타협과 화합하는 날이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상생하는 삶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경험을 갖을때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 나라의 여러 상황의 분위기로 그 나라 국민의 의식을 판단하게 하는데, 소위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외형적인 가장 큰 차이점은 차들이 달리고 사람들이 걷는 도로 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경우는 어떻게든 내가 먼저 앞서가야 하고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극도의 이기적 태도를 보인다. 도로 위에서 들리는 차량들의 크락션 소리들과 손가락질로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뱉는 추한 모습들을 보인다. 전혀 여유 없고 매너도 없어 보이는 나 중심의 행동들 속에서 그 속에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들을 보게된다. 그런 나라를 다닐 때라면 몸과 마음이 금방 지쳐온다. 그 나라의 좋은 것들도 다 가볍게 보이고 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라의 매력은 사라져버리고 다시 그곳을 찾고 싶은 마음도 메말라 버리게 된다. 그러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들어서면 많이 안정된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그들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나, 그 외부의 겉모습은 여유와 타인을 향한 배려가 깃든 모습을 보게 된다. 자국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 그 나라 사람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이 죄를 선택하던 태초의 범죄자의 모습 속에서 가장 추하게 나타난 죄의 열매는 비교의식 속에서의 이기주의였다.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린 것으로 몰아가는 추한 욕망의 독이 든 열매가 바로 죄였었다. 죄의 열매가 이기주의였다면 그 죄를 이긴 신앙의 열매는 이타주의이다. 죄는 미워하되 그 죄에 무너진 사람들은 사랑할 줄을 아는 따스한 배려와 나눔이 있을 때 믿음이라는 종교의 본질은 회복되어 간다. 언젠가 한 교수님의 강의 속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사람들은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하기에 죄에 대한 개념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의 죄에 대한 개념은 약속을 안 지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이 설명은 참 깊은 공감을 갖게 했다. 왜 우리는 한밤중에 다른 차량들이 없을 때면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게 될까? 아마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 사람들은 그것이 약속이기에 지키려는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모든 방면에 뛰어난 대한민국은 서양과 동양의 장점을 잘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상생할 줄 아는 민족, 평화롭게 개인의 삶을 살다가도 나라가 어려우면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켰던 스님들, 일제의 압박 속에서 용감하게 칼 대신 태극기를 들고 독립운동에 자신을 드렸던 기독교의 지도자 분들 모두가 상생을 알며 사람을 사랑했던 종교의 삶의 열매들이었으리 생각한다. 어느 날 뉴스 속에서 만난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보았다. 응급한 환자를 태우고 복잡한 도로 위에서 응급신호를 울리며 달리는 앰뷸런스에게 도로 위에 모든 차들은 갓길로 붙어 좁은 도로 위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었다. 그 장면은 현대판 모세의 홍해 기적 같았다.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 상생하는 삶을 선택할 때 우리는 매일 우리의 눈으로 기적을 보며 우리의 삶으로 기적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그 기적이 이 땅, 우리들의 삶 위에 그리고 대한민국 나라 위에 다시 세워져가는 기적의 부활을 소망하며 기도해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삶과 종교]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뜰에 핀 봄꽃을 보며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4)는 1974년부터 1984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분으로, 미술사학자이자 박물관 전문인이다. 선생의 유고 명저인 무량수전 배홀림 기둥에 기대서서(1994)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이다. 오늘 이분이 말년에 사시던 집에 들렀다. 4호선 한성대입구 전철역에서 5-600미터쯤 걸어 올라가다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 최순우 옛집이 그곳이다. 이 집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잠깐 이 동네 이야기를 하겠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나와 성북동쪽 길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더러 있고, 정겨운 옛 풍경들이 눈에 띈다. 이 동네는 오래된 한옥들이 아직 군데군데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색적인 풍경이다. 성북동은 조선시대에는 한성 바로 북쪽으로 군영이 있던 곳이이라 한다. 또 한양 양반들의 별장들이 더러 있던 곳이라 한다. 산과 계곡, 그리고 바위들이 많았던 곳으로 산세와 풍광이 좋으니, 풍수적으로도 좋은 곳인 모양이다. 지금은 주택들이 들어차 있어 바위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산길처럼 나있는 오래된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높은 축대들이 있는 곳이 있다.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축대에 삐져나온 바위들이 바위가 많았던 곳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동네는 서울에서 아파트들이 들어오지 않은 몇 안 되는 곳이 되어 오히려 이런 것들이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동네 골목이 아직 살아있는 곳이다. 골목 곳곳에는 작은 화분과 큰 화분들에 꽃들을 심고 가꾸거나 가지나 고추, 상추 등 채소를 키워먹는 모습이 정겹다. 이 집은 문화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아서 시민성금으로 보존되는 공간이다. 이 집은 1930년대에 건축된 한옥이다. 낮은 산구릉에 지은 집이라 대문이 약간 오르막인 평지길에서 높게 위치해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들어가는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당시 사랑채여서 손님들이 머물렀을 것 같은 방이 왼쪽에 있는데, 작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어 들어가 보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남들처럼 고대광실이나 넓은 후원은 아니지만 나는 내 나름으로 좁은 뜰에 가지가지 산나물들과 조촐한 들꽃들을 가꾸면서 호젓하고도 스산한 산거의 멋을 즐겼고 남의 기름진 뜰이 부러운 줄을 모르고 살아왔으니 나에게는 이 산나무들과 들꽃들이 지닌 미덕이 그리도 컸다고 할 만하다. 이 집 평면은 ㄱ자형 본체 건물과 ㄴ자형 사랑채 건물이 마주 보고 함께 있어 ㅁ자형을 이루는 집이다. 혜곡 선생이 머물며 그의 무량수전 배홀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을 법한 안채의 서재는 뒤뜰과 안채 마당, 대문이 보일 수 있도록 양쪽으로 문이 나 있는 방이다. 이 집을 잠깐 들러보기 보다는, 이 뒤뜰에 앉아서 두어 시간 이상 앉아서 책도 보고 나무도 보고 들꽃들도 보고 그저 앉아 있어보아야 그 멋을 느낄 것 같다. 도심 속에 있지만 산속에 있는 것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즐긴 산거의 멋과 산나무들과 산꽃들이 지닌 미덕을 느낄 수 있기는 어렵더라도, 더없이 훌륭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게 됐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

[삶과 종교] 임시정부 수립 100년

2019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자 지난 주 4월 11일은 그 100년을 시작했던 첫날이다. 3년 전인 2016년에 일어났던 촛불혁명의 가장 큰 키워드는 이게 나라냐?였었다. 2013년 여론조작 부정선거 의혹과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방기(放棄), 2016년에 드러난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왜곡한 역사로 교과서를 개작하려고 했던 파시즘적 발상이 한몫 더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아데이만토스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라를 수립할 때 유념할 것은 어느 한 집단이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행복한 나라란 소수의 사람들만 행복하게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온 나라를 행복하게 만드는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막강한 힘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민회(民會)나 법정, 극장 또는 기타 대중 집회에서 사람들 발언이나 행동을 비난하거나 칭찬하려고 늘 고함을 치거나 박수를 쳐 대는 선동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물론 플라톤이 꿈꾸었던 이상국가의 틀이기에 지나친 면이 있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국가론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국가(國家)란 나라이고 집이다. 나라를 형성하는 국민이 가족으로 꾸려나가는 집이다. 군사부일체를 외치며 어버이인 왕에게 절대 충성과 효도를 요구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으로서 성실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 정당한 목소리로 꾸려나가는 국가를 말한다. 100년 전 주권재민의 국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 정신 위에 세워졌었다. 그리고 빼앗긴 나라와 국민의 권리인 국권을 되찾기 위해 피 흘리며 몸부림 쳤었다, 해방 후에는 3.1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오랜 독재의 굴레로 유린되어질 때, 수많은 선각들이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아모스 5:24) 흐르는 주권재민의 국가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투쟁하고 희생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여 이 날을 길이 빛내자 삼일절 노래의 노랫말처럼 부끄럽지 않는 이 나라를 지키고 보전해야 할 책임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다. 선열의 피로 지켜진 희생이 헛되지 않게, 100년 후의 후손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더 나은 주권재민의 나라를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모두가 힘써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선동 정치에 휩쓸려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올바른 판단으로 자신의 정당한 주권을 발휘하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드러내야 하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여라

가톨릭 교회는 전례력으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다. 재의 수요일(3월 6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4월 18일)까지 지내게 된다. 사순 시기는 본래 40일이라는 뜻의 사순(四旬)에서 유래하는 데, 성경에서 40일은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재의 수요일에 신자들은 이마에 한 줌의 재를 얹으며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여라. 는 말씀을 들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 타오르는 불길처럼 정열을 바치고 살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선물한다. 그래서 사순시기가 회개와 보속, 단식과 금육 등으로 힘들 수도 있지만, 구원과 은총의 시기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날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죄의 근원인 칠죄종(七罪宗)을 극복하는 칠극(七克)의 삶을 사셨다. 칠극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謙克傲-겸극오),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仁克妬-인극투), 분노를 이기기 위한 인내(忍克怒-인극로), 인색을 이기기 위한 너그러움(捨克吝-사극린), 탐식을 이기기 위한 절식(淡克-담극도), 음란을 이기기 위한 금욕(貞克淫-정극음), 게으름을 이기기 위한 근면(勤克怠-근극태)이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신자들은 기도에 좀 더 매진하고 단식과 금육, 참회와 보속의 시간을 보낸다. 우리 선조들의 칠극의 삶은 무엇을 끊고 하지 않는 것에 정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사는 데 있다. 때론 우리에게 육체적인 문제가 생기면 반대로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겨 나가고,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면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겨 나가는 것이 유익이 될 때가 많이 있다. 우리가 행하는 단식과 금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식과 금육은 육체적 고행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품고 사는 집착과 탐욕을 비워내는 것이다. 단순히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탐욕으로 허기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로 채우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기억하고 나누는 데에 참된 정신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행하는 사순 시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의로운 일을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행하며, 칭찬을 받으려고 자선을 행하지 말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겸허히 행하며, 드러내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숨어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며, 단식을 할 때도 드러내지 말며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 보여라. (마태오 6, 1-18) 유주성 천주교 수원교구 해외 선교 실장 신부

[삶과 종교] 본질을 보는 눈

철학이란 인간이 세상에 창조되면서부터 시작된 사고(思考)의 열매로 생겼을 것이다. 철학은 종교를 만들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만들어 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 속에 우리는 종교인이 되고 그 종교는 여러 물주기가 되어 다양한 신앙을 만들어 냈다. 그 신앙은 분명히 인간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시작되었을 것인데 인구의 증가 때문일까? 아니면 문명의 발달 때문일까? 오늘의 종교적인 믿음은 본질을 떠나 비 본질을 더욱 붙드는 여러 모양의 도그마(dogma)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내용은 진정한 믿음에 관함이었다. 진정한 믿음은 종교적인 모양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성도(聖徒)라 불리는 사람들의 존재적 모습이었다. 참 신앙의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여 자신을 바라보고 애통함을 갖는 것이며 그 애통함 속에서 주님의 위로를 통하여 평안을 얻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그것이 믿음의 출발이며 참 행복함이고 종교가 아닌 신앙을 갖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 신앙의 본질은 사랑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사랑은 곧 소금과 빛으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열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소금은 녹는 것이다. 결코 자신의 자랑이나 화려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소리없이 녹아 지는 것이 소금이다. 빛은 자신을 태우는 힘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그 빛이 우리를 비추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며 세상과 다르게 존재하는 삶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이라는 단어를 존재케 하는 것이다. 화려한 교회의 네온사인과 주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화려한 목회자들의 삶의 모습과 오른손이 행한 착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색하게 만드는 성도들의 자기 자랑은 이미 거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잃어 버린 빛바랜 모습일 뿐이다. 개인국민소득 3만불이 넘었다고 외치는 이 나라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랑에 굶주리고 있고 인간성의 상실에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기다리는 목마름에 젖어 있다. 화려한 종교의 옷을 벗고 우리가 진실로 사람을 섬기며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 속에서 빛나는 참 보석이 바로 내 옆의 사람이었으며 주변의 사람들임을 보게 될 것이다. Understand. 맞다.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상대를 참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Under, 밑에 stand서서 그를 올려다볼 때 온전한 상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고 외쳤던 예수님 제자의 목소리에 우리가 다시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아름다운 우리의 한반도강산에 아름다운 꽃들이 세상을 밝게 비취는 4월의 문을 열면서 우리 함께 가슴을 들고 깊은 들숨의 여유와 날숨의 평안함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해 본다면 이미 내 안에 행복과 참 기쁨이 가득 채워져 있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을 이 좋은 날에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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