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는 전례력으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다. 재의 수요일(3월 6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4월 18일)까지 지내게 된다. 사순 시기는 본래 40일이라는 뜻의 사순(四旬)에서 유래하는 데, 성경에서 40일은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재의 수요일에 신자들은 이마에 한 줌의 재를 얹으며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여라. 는 말씀을 들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 타오르는 불길처럼 정열을 바치고 살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선물한다. 그래서 사순시기가 회개와 보속, 단식과 금육 등으로 힘들 수도 있지만, 구원과 은총의 시기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날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죄의 근원인 칠죄종(七罪宗)을 극복하는 칠극(七克)의 삶을 사셨다. 칠극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謙克傲-겸극오),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仁克妬-인극투), 분노를 이기기 위한 인내(忍克怒-인극로), 인색을 이기기 위한 너그러움(捨克吝-사극린), 탐식을 이기기 위한 절식(淡克-담극도), 음란을 이기기 위한 금욕(貞克淫-정극음), 게으름을 이기기 위한 근면(勤克怠-근극태)이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신자들은 기도에 좀 더 매진하고 단식과 금육, 참회와 보속의 시간을 보낸다. 우리 선조들의 칠극의 삶은 무엇을 끊고 하지 않는 것에 정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사는 데 있다. 때론 우리에게 육체적인 문제가 생기면 반대로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겨 나가고,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면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겨 나가는 것이 유익이 될 때가 많이 있다. 우리가 행하는 단식과 금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식과 금육은 육체적 고행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품고 사는 집착과 탐욕을 비워내는 것이다. 단순히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탐욕으로 허기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로 채우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기억하고 나누는 데에 참된 정신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행하는 사순 시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의로운 일을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행하며, 칭찬을 받으려고 자선을 행하지 말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겸허히 행하며, 드러내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숨어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며, 단식을 할 때도 드러내지 말며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 보여라. (마태오 6, 1-18) 유주성 천주교 수원교구 해외 선교 실장 신부
오피니언
유주성
2019-04-10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