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7가지 언어 라는 글에 실린 내용입니다. 2011년 12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연구 결과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두 마리의 쥐를 2주 동안 함께 생활하게 한 뒤에 한 마리는 우리 안에 가둬두고, 한 마리는 자유롭게 풀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잠금 장치를 걸어두었는데 안에서는 열 수 없고, 밖에서만 풀 수 있도록 해 놓았답니다. 그랬더니 자유롭게 풀어놓은 쥐가 우리에 갇힌 쥐를 꺼내주려고 사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유로운 쥐 옆으로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떨어뜨려 주었더니 실험한 쥐의 48%가 동료를 포기하고 먹이를 택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갇혔던 쥐를 풀어주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쥐를 가둬놓고 실험을 했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먹이가 떨어졌는데도 먹이를 택하는 쥐는 20%에 지나지 않았고, 80%가 먹이를 포기하고 동료를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공감능력! 우리 주변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동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엄청난 재물과 명예가 떨어졌을 때 무엇을 선택할까요? 어려움에 빠진 동료를 구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나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재물과 명예를 포기할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그 인생은 참 행복한 인생일 겁니다. 인간의 전두엽에는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거울뉴런이 설계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반응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퇴화하지 않는답니다. 만일 타인과 공감하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면 공감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공감하는 것도 훈련이고 습관입니다. 늘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고, 무엇 때문에 행복해 하는지 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내치신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그들 한명 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다 들어주시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주시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먹이시며,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처럼 공감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보면서 참 마음이 아픈 것이 있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우리들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반영하기 마련인데, 요즘 정치를 보면 누군가의 허물을 들춰내고 끝까지 물어 뜯고, 끌어내리고 하는 모습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누가 잘 되는 꼴을 못 봅니다. 이상적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해 줄 수 있는 정치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가 이 사회와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바꿀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치 이야기는 잘 안하려고 하는데 요즘은 그런 기대를 자꾸만 하게 됩니다. 요즘 경기도 불황이고 젊은이들이 직업을 갖고 결혼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현실입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열흘 넘게 요로결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진통제도 맞아보고, 물 먹고 운동도 해 보았지만 돌이 나오지를 않아서 병원에서 돌 깨는 시술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돌이 나오지 않아 고생하다가 오늘 아침에야 돌이 나왔습니다. 아마 혼자라면 견디지 못했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내내 옆에 붙어서 밥을 해주고 함께 해주는 아내가 있어 힘이 났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공감해 주고, 공감 받으며 현실보다 큰 행복을 맛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병삼 분당 만나교회 주임목사
오피니언
김병삼
2012-09-18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