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서로를 존중하는 21세기 효의 철학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몸과 마음이 고난하고 아프다. 이 시대의 보편적 시대가치와 가정과 사회의 근간인 효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렇다. 부처님께서는 범망경에 불자는 자비심으로 방생업을 행하라. 일체의 남자는 나의 아버지였고, 일체의 여자는 나의 어머니였다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부모였다고 하시는 것이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다가 길가의 뼈 무덤에 절을 하신다. 과거 전생에 나의 부모 형제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학문과 가르침도 이렇게 거룩하고 진리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은 달리 어디에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효는 일방적 아닌 상호 호혜적 가치 용주사는 정조대왕께서 부모은중경을 간행해 전국에 보급한 효의 사찰이다. 그리하여 특히 효와 연관성이 깊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다. 신라시대에는 효경이 유학의 제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효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중시되어 왔으며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는 더욱 더 새로운 가치로 되살아나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만큼 지금의 시대는 혼란과 몰가치에 처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에는 효의 가치에 대한 대단히 큰 오류가 있었다. 인간 내면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으로써의 효의 가치를 이어온 것이 아니라 여러 이유에서 군신관계에 있어 일방적 충성으로 변질된 면이 많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과의 효는 군신간의 충(忠)의 한 방편적 의미로 되었으며 군신간의 충(忠)을 실현시키기 위한 의도로써 가정 내에서의 부자의 효를 강조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본래 이 효(孝)의 가치는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지혜의 가치이며 상호적이고 호혜적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생활철학이다. 효는 일방적이지 않으며 보편적, 쌍방적 상호호혜적 가치인 것이다. 유학의 중요가르침인 예기의 예문편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무엇이 사람의 의로움인가? 아버지가 자애로울 때 자식은 효성스럽게 되고, 형이 착할 때 동생은 형을 따르고, 남편이 의로울 때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게 되고, 어른이 은혜를 베풀 때 어린 사람은 순종하게 되고, 임금이 인仁할 때 신하는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열 가지의 상호 쌍방적 관계를 일컬어 사람의 의로움이라고 한다. 불교에서의 효의 의미는 본래 큰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 주는 것이다.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모두 행복한 해탈세계로 인도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출가 수행자들도 표면적으로는 일시적으로 부모를 떠나 불효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의 공덕세계로 인도해 주는 큰 효(大孝)를 행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한 분인 목련존자가 수행의 공덕으로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해 드린 것도 하나의 큰 효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자비연꽃 향기 가득한 세상되길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리를 구하여 수행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이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자기의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 이 땅의 보살들은 온갖 어려움과 고난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시는 대자비의 관세음보살님께 이렇게 합장하고 발원한다. 억울한 백성이 없는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꿈이 어려 있는 이 땅에 큰 자비와 지혜를 베푸시어 기본이 바로서고 공정하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 사는 바로 이 세상이 아름다운 자비연꽃의 향기로 가득하게 하소서. 나누고 함께하면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불퇴전의 노력으로 정진해 나갈 것을 서원합니다. 이번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낱낱이 살피시어 모두 다 해탈의 생명, 공덕의 생명이 되도록 이끌어주소서! 인해 스님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가족

돌발사고의 위급한 상황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2001년 9.11테러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문자에 남긴 사연들은 한결같이 가족들을 찾는 내용들이다. 19살 딸이 비행기에서 엄마. 지금 비행기가 납치당해서 엄마의 얼굴을 앞으로 볼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어. 엄마 사랑해라고 남겼고, 34살 된 남자는 여보. 지금 위급상황이오, 비행기테러로 당신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세상 어떤 어려움도 지켜내려는 부모 내 인생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소. 앞으로 당신과 아이들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할 것이오. 사랑하오라고 문자를 남기고 떠나갔다. 2003년 대구 지하철이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던 학생들이 한결같이 엄마, 미안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을 남겼다. 이번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어린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쓴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엄마 내가 말 못 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라는 내용이었다. 캄캄한 바닷속, 문자도 터지지 않는 차오르는 물속에서 두렵게 떠는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목 놓아 부르며 찾았을까? 그건 물어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모두가 가족들을 찾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아빠.... 내가 미안해, 엄마.... 투정부려 미안해, 오빠.... 사랑해, 잘못한 거 용서해 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억울하고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간 어린 생명들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전한 내일을 준비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죽어가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찾으며 울부짖고, 살아서 죽어간 자식들을 위해 오열하는 것이 부모요, 가족들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먼저 만나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나를 뱃속에 열 달 동안 품어주시고 온갖 정성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시고 내가 세상에 적응하도록 먹이시고 입히시고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며 길러주신 이런 어머니와 나를 감싸 주시며 세상에 어떤 어려움에서도 지켜내시려고 두 손을 불끈 쥐며 싸움터로 나가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히 나를 바라보시며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는 가정의 울타리요, 지킴이시다. 이런 부모님 밑에 하나, 둘, 셋 자녀들이 태어나서 형제(兄弟)가 생기고, 자매(姉妹)가와 남매(男妹)가 생긴다. 이러한 자식들은 부모들의 희망이며 삶의 가치이고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자식들은 성장하고 부모는 늙고 병들며 새로운 생명으로 손주가 태어난다. 이러한 희망의 탄생은 또한 인간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고 죽음을 통해 또 다른 탄생의 문이 열린다. 꽃이 피고 지듯이,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태어나면 죽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죽음이라는 이별은 탄생이라는 만남보다 힘들고 어렵다. 가정은 인간 실존의 원초적 공동체 이렇게 가정은 생(生)ㆍ로(老)ㆍ병(病)ㆍ사(死)가 존재하며 이별과 만남의 장(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은 기쁨이 존재하고 슬픔이 함께하는 인간 실존의 양식이 배여 있는 원초적 공동체이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가족이며 나를 위해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가족인 것이다. 가족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공기 같은 존재이며 가족은 아파야 존재를 깨닫는 상처 같은 존재이다. 부활절을 지내면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 어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린 생명들의 내일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을 위해 사랑으로 배려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른답게 책임을 다합시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삶과 종교] 남의 자녀들이 웃어야 내 자녀도 웃는다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비록 이 시구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영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지만, 여기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라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웃을 수 없는 사회는 다름 아닌 생지옥이다. 그런데 필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안산시는 이미 20여 일이나 그런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생떼같은 자녀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절망감이 이 지역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잠시 웃는 것만으로도 중죄인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오죽했으면 이곳 주민들의 집단우울증을 돌보기 위해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까지 가동되고 있겠는가? 이곳의 주민들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포함된 이 주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위험요인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현재 정치권과 행정 및 치안 실무자들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재난 관련 법규와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재난대책을 총괄할 기관도 신설하고, 위험요인이 있는 현장마다 실전 같은 재난대비훈련도 하고, 각종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관료와 기업인들을 색출해내기 위하여 대대적인 수사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들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가 있을까? 과연 이 비극이 이 나라에 재난 관련 법규가 없고, 매뉴얼이 없고, 기관이 없고, 훈련이 없고, 현장에는 탐관오리와 악덕 기업주들만 넘쳐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히 아니오이다. 이 땅에 국가적인 재난이 멈추지 않는 것은 관련 법규와 매뉴얼은 있어도 지켜지지 않고, 해당 기관은 무책임하거나 무능하고, 각종 훈련은 형식적이고, 관청과 기업들은 권력자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제의 핵심은 기관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인물은 바로 남의 자녀를 내 자녀처럼 아끼는 사람이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의 앞에서 한 여성은 오열하며 이렇게 외쳤다. 대통령 자식이잖아요. 저희 자식이고 내 새끼기도 하지만 대통령 자식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사회의 재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재난발생의 확률과 피해는 최소화시킬 수가 있다. 남의 자녀도 내 자식처럼 생각해야 생각해보라. 자기 자녀를 위해서라면 극심한 굶주림과 헐벗음도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기본정서가 아닌가?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먹는 음식에 일부러 불량재료를 넣거나 비위생적으로 조리하겠는가? 어느 부모가 길을 건너고 있는 자신의 자녀를 향하여 차를 난폭하게 몰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탈 배에 그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화물을 과적하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데 자기만 살겠다며 현장을 뛰쳐나오겠는가? 만일 이번 세월호 속에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자녀들이 동승했었더라면, 아마도 이 사건의 결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은 당시의 이기적인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의 이웃을 너희의 가축을 아끼는 만큼만이라도 아껴보라는 취지의 비판을 하셨다(마태복음 12:11-12). 그렇다. 우리가 남의 자녀들을 자신의 애완동물을 아끼는 만큼이라도 아낀다면, 우리의 자녀들 모두가 함께 웃는 행복한 사회가 펼쳐질 것이다. 기억하라. 남의 자녀들이 웃어야 내 자녀도 웃는다.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삶과 종교]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용주사 교양대학에서는 매월 인문학 기행을 떠난다. 2014년 첫 기행은 금강과 신동엽을 주제로 부여 신동엽문학관, 공주 공산성 그리고 금강유적지를 다녀왔다. 신동엽 시인(1930~1969)은 백제문화의 산실에서 태어난 민족시인으로, 한국 현대시사(現代詩史)에 의미있게 기록돼 있다. 신동엽은 백제 문화에 대한 경험적 체득을 통해 동양철학적 사유를 지녔고 특히 동학사상을 사유의 근본 축으로 삼았다. 그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52인 시집」, 1967),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시집 「금강」 제 9장, 1967)라는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들어 있다. 신동엽과 백제문화 인문학 기행 껍데기는 가라 /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 (중략) 그리고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중략) 불교에서는 중생업으로 나타나는 일체의 현상은 실다운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의 주인공은 진여불성이라는 참마음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무상한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래의 실상 주인공을 찾고 그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참 주인공을 찾는 것을 구도 수행이라고 한다.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잘못되고 부조화한 현상을 극복하고 모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본래의 행복한 마음, 본래의 행복한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고 신동엽의 시를 불교적 관점에서 심도있게 해석해 일행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신동엽 마음속에 있는 시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외침을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신동엽문학관을 나와 공주의 공산성을 둘러보고 산성의 가장 높은 건물인 광복루에서 동행한 불자들과 함께 우리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 그리고 21세기의 새로운 상호존중과 조화의 문화르네상스를 기원하고 발원하였다. 성을 둘러보며 백제문화의 특장점을 알려주고 같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백제문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ㆍ검이불루 화이불치는 것이다. 이 말은 본래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온조왕 15년(기원전 4)조에,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고 한 것이 면면이 백제 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신동엽은 대서사시 금강(1967)을 발표했다. 금강 집필을 위해 동학의 유적지인 호남을 여러 번 답사하고 설악산과 속리산 등을 찾아가 유적을 추적했다. 그의 금강은 과거의 동학혁명의 이야기를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쓰면서 우리 민족의 조화로운 평화공동체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묶여진 새로운 역사의 청사진을 그리고자 했다. 병고 중에서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온몸으로 처절하게 민족서사시를 집필해 그것을 우리에게 내어 놓았다. 우리 민족, 평화공동체 미래 제시 우리 열린 인문학 기행단은 신동엽과 동학과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그 마음으로 공산성으로 다가오는 대 금강의 물줄기의 기운을 받으며 만세 삼창을 했다. 백제문화의 무한 계승을 위해, 남북통일과 한민족의 무한 발전을 위해, 21세기의 동양 삼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 일행은 마지막 일정으로 우금치 고개에 있는 동학 혁명군 위령탑을 어렵게 찾아 참배했다. 숙연한 분위기로 귀한 향을 피우고 분향하는데 하늘에선 상생의 뜻이 깃든 봄비가 참으로 처연하게 내리고 있었다. 인해 스님 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고해성사(告解聖事)

가톨릭의 용어 중에 고해성사란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단어로서 가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고해성사 하는 심정이라든가 함부로 비밀을 드러내지 못하게 고해의 비밀이라는 입단속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해성사라는 말은 결코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단어이다. 원래 고해성사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방식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사(聖事)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징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생활에 깊숙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신앙의 바탕, 희망의 출발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인간이 세상 안에 살면서 여러 가지 유혹과 교만 속에서 죄를 지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다시 죄악의 나락으로 빠져들 때,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다시 돌아가는 회개의 길이 고해성사인 것이다. 이러한 참된 신앙의 길로 나아가도록 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자주 볼 것을 권고 하고 있다.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다섯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성찰(省察)이다. 성찰은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살피고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를 판단하는 척도(尺度)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앞에 놓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일일이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통회(痛悔)이다. 알아낸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는 회개의 마음이다. 세 번째는 정개(定改)로서 다시는 똑같은 죄에 빠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내적인 준비가 되면 고해소(告解所)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데 보통 고해를 들어주는 사제와 신자사이가 음성만 들을 수 있도록 칸막이로 막혀 있는데 상담을 위해서는 열려진 고해소도 있고 신자석이 개방되어 있는 고해소도 있다. 이렇게 고해소를 찾아 하는 것이 네 번째 단계인 고백(告白)이다. 자신의 입을 통해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인간인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죄의 고백은 사제가 듣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고백으로 사제는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을 선포해 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고백이 끝나면 훈계(訓戒)와 보속(補贖)을 받게 된다.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갚음으로 기도와 희생을 보속으로 받는다.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보속을 이행하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고해성사는 신앙의 바탕이요, 또 다른 희망의 출발인 것이다. 얼마 전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참회예절을 집전하시려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입장하다 열릴 고해소에서 일반 사제에게 죄인임을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받으셨다. 부족한 인간은 언제나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에 늘 고해성사로 새롭게 살아가도록 당신 스스로 정화의 삶을 모범으로 사제들도 고해성사를 자주 받을 것을 행동으로 가르친 것이다. 교회법에서는 가톨릭 신자는 적어도 일 년에 한번은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부활절과 성탄절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죄를 뉘우치고 성찰, 부활의 삶되길 지금이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이다. 사순절(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40일)은 인간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하느님 앞에 교만하게 살아왔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고해성사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도록 자선과 기도와 단식으로 부활을 준비한다. 죽었던 대지를 녹이며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의 향연과 함께 맞이하는 한국의 부활을 늘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듯이 거짓과 조작이 난무한 이시대가 고해성사를 청하듯, 자신을 성찰하고 죄를 뉘우치며 새로운 부활의 삶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삶과 종교] ‘합법의 위선’을 걷어내자

지난 한 주 동안 황제 노역이라는 신조어가 주요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일반적으로 황제라는 단어와 결합된 복합어들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반면, 이 새로운 낱말은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용어가 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황제 노역 사건의 시작은 특별하지 않았다. 한 막강한 재력가가 저지른 흔한(?) 조세포탈 및 횡령사건이었으며, 재판과정은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 검찰은 1심에서 징역형과 1천억 원이 넘는 벌금형을 구형하면서도, 벌금형에 대해서는 선고유예, 즉 일단 좀 봐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징역형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벌금형에 대해서는 검찰의 요구 금액을 절반으로 깎은 508억 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더 이상 항소도 상고도 하지 않았다. 합법 가장한 이기심과 위선의 유혹 이후 2심 재판부는 징역형과 집행유예의 기간을 더 줄이고, 벌금은 또 다시 절반인 254억 원으로 깎아, 결국 검찰이 원래 구형했던 벌금의 4분의 1로 만들었다. 게다가 2심 재판부는 해당 재력가에게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형에 처하도록 한다는 깜짝 선물도 안겨주었다. 마침내 대법원은 2011년에 이 판결을 그대로 수용해 확정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장본인은 이것마저도 거부한 채 해외로 도피해버렸고, 이 사건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조용히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전 그가 돌연 귀국해 50여 일의 노역으로 벌금 전액을 정말 때우려고 하자 여론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검찰은 벌금을 환수하기 하기 위하여 팔을 걷어붙였고, 지법원장으로 갓 승진한 당시의 2심 재판장은 사임하였으며, 사법부는 대법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법부가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개혁의 기치를 들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사법부가 법률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검찰은 물론,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재판관들은 법률에 근거하여 합법적으로 재판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답은 뜻밖에도 이 사건의 2심 재판장이 지법원장에 취임하며 발표한 연설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는 지난 2월의 취임사에서 국민의 법감정에 부응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관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사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며, 그 밑바닥에는 법률이 구체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위선적인 문자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역시 합법을 가장한 이기심과 위선의 유혹을 받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형편과 감정은 무시한 채, 자신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합법적으로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 예로, 대중교통의 일반석에 앉았다고 해서 바로 앞의 노약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것은 합법적이지만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진실한 사랑ㆍ배려있어야 행복한 사회 그래서 기독교 초기의 지도자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전서 10:23-24)라고 권면했고, 야고보 선생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서 4:17)라고 가르쳤다. 이제 우리 모두 합법의 위선을 걷어내고, 서로를 향하여 진실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가져보자. 이것이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다.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삶과 종교]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우주자연은 무한히 조화롭다. 하늘과 땅 사이의 세상도 그렇고 태양계도, 끝없이 광대한 우주세계도 그렇다. 불교에서는 일체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일체의 현상은 모두 그 마음의 그림자라고 한다. 조선 제일의 개혁 군주인 정조대왕의 개혁정책도 결국 모두 그 마음에서 나왔고 또한 그 마음의 그림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따로이 특별히 치우친 마음이 없다. 백성의 마음을 바로 성인의 마음으로 삼는다. 지도자의 좌우명 통해 정책ㆍ업적나와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훌륭한 좌우명을 지니고 있다. 정조대왕도 역시 노자의 도덕경 49편(聖人편)에 나오는 이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거처하는 3칸 방의 한쪽 편에 항상 이 좌우명을 써놓고 그 뜻을 다짐했다. 벽지를 새로 바르면 그 자리에 다시 좌우명을 써놓아서 그 부분이 항상 검게 비쳤다고 한다. 백성의 행복을 위한 좌우명을 실천하기 위해 대동사회론을 기본 철학적 바탕으로 삼았다. 신분과 경제적인 차별을 넘어서서 조화롭고 행복한 크게 하나 되는 세상을 이루자는 철학적 개념이다. 정조대왕은 자신의 내면속에 다음과 같은 주제로 스스로의 삶과 정치의 좌표로 삼았다. 우선은 입지(立志)이고, 둘째는 이치를 배우고 밝히는 일이고, 그 다음은 학문과 역사를 공경함이고, 하늘의 뜻을 본받고, 올바른 말을 수용하는 자세이다. 또한 학교를 일으켜 백성을 일깨우는 것이고, 인재를 잘 기용하며,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조의 마음에서 서얼허통을 이루고 노비제도를 혁파하며 불쌍하고 버려진 어린아이들을 국가가 보호해주고 책임지도록 하는 자휼전칙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의 실학사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개념이 있는데 바로 이 손상익하(損上益下)의 정신이다.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손해는 윗사람들이 보고 이익은 아랫사람들이 누리게 하자는 것인데, 이 개념은 주역에 나오는 내용이다. 손상익하 민열무강(損上益下 民說無疆), 위를 덜어내어 아래에 보태우면 백성들이 끝없이 기뻐한다. 이 말은 바람이 거세면 우레가 되고, 우레가 치면 바람이 세게 부는 것처럼 서로 도우면 유익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 불교에서는, 약사여래불께서 상주하시는 세계를 유리광세계(瑠璃光世界)라고 한다. 이 세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 밝게 빛나는 완전한 행복의 세계이다. 이 유리광세계를 괴로움이 많은 이 사바세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수행을 예토성불(穢土成佛)의 수행이라고 한다. 정토성불(淨土成佛)은 깨끗한 부처님 세상에 나서 성불을 이루는 것이고, 예토성불은 어리석음과 괴로움이 많은 세계에서 부처님의 행복세계를 이룸을 말한다. 우선 마음세계에서부터 예토성불을 이루면 곧이어 그 모습이 현실로 한 가지씩 나타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번 우리 사회에 다가온 6월 지자체 선거에 임하는 모든 정치인들은 각자 스스로 모든 국민들의 행복, 모든 경기도민들의 행복을 위해 훌륭한 좌우명을 지니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발전속도 맞게 정치도 더 성숙되길 동양 성현들의 깊은 가르침을 내면으로부터 깊이 받아들이고 존중하여 스스로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했던 정조대왕이 있었기에 서얼 출신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의 검서관들과 백동수 등이 이론과 실제, 그리고 문과 무를 두루 갖춰 우리 민족사에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지도자의 좌우명과 큰 결단에서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한 정책과 업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정조대왕이 참으로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 속도에 맞게 우리의 정치도 더욱 더 성숙되고 발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해 스님ㆍ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가톨릭 교회의 시성과 시복

가톨릭교회에서는 탁월한 덕행이나 순교로 신자들에게 신앙의 귀감이 되는 이들을,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성인(聖人)으로 선포(諡聖)하며 공경한다. 성인으로 공경하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순교자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로, 한국 천주교회는 1984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정하상 바오로, 그리고 동료 순교자 101위(位)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둘째는 증거자이다. 곧 덕행의 뛰어난 모범을 통해 참 그리스도 신앙의 증인이 된 분들을 말한다. 지난 2003년에 복자품에 오른 마더 데레사 수녀(1910~1997)와 2011년 복자품을 받은 요한 바오로2세 교황(1920-2005)이 이에 해당 되는 분들이다. 하느님의 종이 성인으로 되기 위해선 따라서 성인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순교자의 경우는 순교 사실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증거자의 경우에는 그 삶이 참으로 덕행의 모범이 된다는 증거가 필요하고 증거를 검토하고 확인하는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공경 받는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해서는 모범적으로 살았던 어떤 신앙인에 대해 순교했다거나 덕행에 뛰어난 모범을 보였다는 평판이 널리 퍼지면 보통 그 사람이 순교한 곳 또는 사망한 곳의 교구장이 시성 절차를 시작하며 시성을 추진할 적임자(청구인)를 선정해서 후보자(하느님의 종이라고 부른다)가 정말로 덕행이 뛰어난지 순교했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을 조사하게 한다. 청구인은 사실이 아니거나 말이나 행적에서 신앙과 윤리에 어긋나는 점이 없는지 등을 자세하게 조사해 교구장에게 청원하고 교구장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간의 과정과 하느님의 종에 대한 약전(略傳) 등을 작성해 교황청 시성성으로 보내게 된다. 교황청에서 시성 절차를 계속 진행해도 좋다는 장애 없음이라는 답신을 받으면, 교구장은 이제 자료나 증인들의 증언이 확실한지 대해 조사를 하고 하느님의 종의 전구를 통해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여 관련 자료를 교황청에 보내게 된다. 교황은 관계 추기경들의 의견을 들어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하느님의 종을 복자(福者) 품에 올리기로 결정하는데 복자는 성인으로 선포되기 이전에 그 하느님의 종이 하느님 영광에 들어가 참으로 복된 이라고 교회가 공식으로 선포한 분들을 말한다. 하느님의 종이 성인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자로 선포되는 시복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종이 복자로 선포되려면 증거자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그 증거자의 전구로 인한 기적이 두 가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교황이 관면할 수 있기에 최소한 한 가지의 기적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순교자의 경우는 그 기적이 모두 관면되기도 하는데 103위 한국 순교성인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적 심사 관면 청원을 받아들여 시성한 것이다. 한국에 가톨릭교회는 이승훈 베드로가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1784년 이후 거의 100년 동안을 모진 박해와 싸워야만 했다. 신해교난(1791년),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를 거치면서 2만명 이상의 이름 없는 순교자들 생겨났다. 복자로 선포되는 시복과정이 필수 한국순교성인 103위중 1925년에 시복된 79위는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와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순교한 분들이고, 1968년에 복자 위에 오른 24위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들이다. 지난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103명의 순교복자들이 여의도 광장에서 성대하게 시성되었고 순교자들의 거룩한 피로 이룩된 한국교회를 세계교회에 찬란히 빛나게 해 주셨다. 이런 영광을 입은 한국천주교회가 30년만에 순교자들 중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명이 다시 복자품에 오르는 기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삶과 종교] 인생을 제대로 즐겨보라

공자는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서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말씀했으니, 이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이다. (지식/기술만 가진) 전문가는 마니아(mania)/애호가보다 못하고, 마니아/애호가는 (행복한) 낭만주의자보다 못하다라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현대 지식사회 속에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학력 인플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반인들의 학력이 높아졌고,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정착될 정도로 배움의 기간도 길어졌으며, 분야를 초월한 (무한) 스펙 쌓기에 초등학생들까지 뛰어들고 있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또한 첨단 IT기술의 발달로 지식의 평준화/보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들조차 간판급 교수들의 강의 동영상과 수업자료들을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전문가들의 삶 속에는 피로, 고통, 불만, 분노, 좌절이 가득해진다. 그 결과 그들은 변태적인 일탈을 꿈꾸는 범죄 시한폭탄이 되거나 생명력을 잃고 어슬렁대는 좀비(zombie) 같은 존재들이 되고 만다. 마니아, 애호가들은 자신의 관심분야 또는 대상에게 자발적, 적극적으로 몰입하며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 자신의 관심분야 또는 대상을 지킬 수만 있다면, 아무리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도 기꺼이 감내한다. 결국 관심분야 또는 대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그들의 삶을 전진시키는 핵심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자칫 과도한 경쟁이나 불합리한 다툼을 촉발하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반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낭만주의자의 삶 속에는 기쁨과 만족, 감사와 행복이 가득하다. 자신의 처지가 주변 사람들보다 특별히 유리하거나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빈틈들을 통해 새어 드는 참 생명의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보여주었다. 돈과 권력에 중독된 스포츠계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행복감보다는 깊은 상처와 분노를 심기 일쑤였다. 게다가 금메달 강박증에 시달리던 대한민국 대표선수단은 국내외의 복잡한 사정까지 더해져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에 대하여, 많은 일본 언론들은 그녀가 마음대로 은퇴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본빙상연맹과 그녀 가족의 주요한 밥줄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사다 마오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녀의 처지는 소위 염전노예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결국 올림픽은 영혼 없는 전문 체육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즐기는 선수들도 많이 보았다. 대표적인 예로 태국의 스키 대표선수로 등장한 세계적인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Vanessa-Mae)는 출전한 경기에서 꼴찌를 하고서도 마냥 즐거워했고, 김연아 선수 역시 석연찮은 은메달 앞에서도 활짝 웃는 여왕의 고상한 기품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를 관전하던 전 세계의 수많은 시청자들과 언론들은 흥분한 마니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낭만주의 삶속엔 기쁨과 행복 가득 그들에게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의 축제 한마당이 아닌, 선혈이 낭자한 전쟁터에 불과했다.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식탁 위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놓고도 뜨겁게 감격하며 행복을 맛볼 수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도서 3:13). 과연 당신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가?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삶과 종교] 시대의 원로에 대한 존중

올해는 갑오년 말띠의 해이다. 우리 민족도 한때 말을 타고 중원까지 활동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 시대, 우리 민족의 중흥을 마음에 그리며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는 한 가지를 꺼내 보려한다. 우선 맹자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한다. 개혁 사상가인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려 하고 하자(BC312년) 당대 유명한 인물인 손우곤이 맹자에게 말한다. 한 지식인이 명예와 업적을 중시한다는 것은 백성을 구제하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예와 업적을 가벼이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한 몸이라도 세속에 더렵혀지지 않도록 지키기 위함입니다. 맹자께서는 제나라의 삼경(三卿)을 맡은 한 분으로서 그 명예와 업적이 위로는 군주를 보좌하는 데에 미쳐야 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에 미쳐야 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제나라를 떠나려고 하십니다. 정치인들 명예ㆍ권리 욕심 버리고 당신은 항상 인(仁)을 부르짖고 계십니다. 그런데 인자(仁者)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까? 당대 큰 학파의 수장이며 맹자보다 윗세대의 인물인 손우곤이 제나라의 제선왕(齊宣王)과의 불화로 제나라를 떠나려 하는 맹자에게 한말이다. 이에 맹자가 이렇게 답한다. 인자(仁者)라 할지라도 실제로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때에 따라 다른 방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군자는 단지 이 인(仁)을 지향할 뿐입니다. 어찌 꼭 같은 길을 가야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려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맹자는 진실로 제나라를 인의(仁義)의 나라로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애증(愛憎)의 갈등이 맹자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본인의 뜻과 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진정 맹자는 어찌 해야 할 것인가? 동양사상사에 있어 위대한 영웅들의 삶의 한 단면이다. 사실 공자도 사랑하는 노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에 놓였었다. 맹자도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제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 안과 마음 밖의 현실이 조화롭지 않을 때, 또 그 시대가 우리의 마음과 다르게 흘러갈 때 우리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적 상황은 국민의 마음과 하나 되지 못해 국민의 마음이 외롭고 답답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마치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 국민의 마음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꾸 떠나려 하고 있다. 이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깊이 존중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정조대왕께서 모든 백성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 지난한 노력을 기울이셨듯이 우리 경기도에서 정치의 뜻을 펼치고 싶은 모든 정치인들은 이 시대에 맞게, 진정으로 국민을 자기 자신과 똑같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기를 바란다. 제선왕이 맹자를 진심을 다해 존중하였다면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부민강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결국 제나라를 떠난다. 그 이후 제나라는 어찌 되었을까? 국민 존중해야 마음 얻을 수 있어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세계는 인연법을 따르게 되어 있다. 이 인연의 도리는 자연스럽고 연기적이어서 억지가 없다고 하겠다. 국민을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정치인은 곧바로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신임을 얻게 되는 이치이다. 자신의 명예와 권리에 대한 욕심으로 정치에 임하지 말고 스스로와 똑 같이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그 존중의 마음을 일으켜야 훌륭한 정치인이 되고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6월 지자체 선거에서는 정조대왕의 위민정신을 계승하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서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한 경기도가 되기를 합장하고 기원한다. 인해 스님ㆍ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가톨릭 교계제도와 추기경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천주교회는 세 번째 추기경이 탄생하게 되었다. 고(故) 김수환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 추기경이 탄생함에 따라 많은 국민들이 가톨릭 교계제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톨릭의 교계제도는 주교, 사제, 부제의 3성직 제도로 되어 있다. 이 성직제도는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제직을 통해 이행되는 교도권의 한 수단이요 방법이다. 이 교도권을 통해 신앙이나 복음 선포의 오류를 막고, 유권적 해석을 일원화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이루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3성직 교계제도인 것이다. 대주교 중 명예직인 추기경 서임 여기에서 언급하는 사제란, 제사를 바치는 제사장을 일컫는 말로서 신부는 보편제사장이고 주교는 대제사장이며 부제는 제사장도우미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성직제도에 의해 선출된 교황은 교회의 모든 직분에 우선하는 수위권을 갖게 되는데, 이 수위권은 하느님께서 으뜸사도인 베드로에게 직접 주신 권한을 승계받는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된 교황의 수위권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한이 된다. 그러나 교황의 수위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어 이행하는 권한이지 하느님 말씀 앞이나 위에 있는 권한이 결코 아니다. 주교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도단(주교단)의 구성원이며, 그리스도로부터 천상천하의 권한을 직접 위임받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주교 임명권을 비롯한 교회의 통치권을 위임하여 수행케 함으로써 사도 계승을 이어가게 한다. 이러한 주교들안에 관구를 대표하는 대주교가 있으며 보통 대주교 중에 명예직에 해당되는 추기경이 서임된다. 추기경(Cardinal)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정점에 있는 교황 최고 고문이자 교황 다음가는 고위 성직자로서 교황의 자유 결정에 따라 임명되며, 교황 선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추기경이라는 말은 문의 경첩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교회의 중추 구실을 하는 직책이라는 의미로서 교황청의 각 성성, 관청의 장관 등 요직을 맡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00여 명의 추기경이 있는데 그 중에 교황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은 100명 정도이다. 추기경의 소임에 연령제한이 있어, 80세 이상이 된 추기경들은 교황의 선거 및 피선거권이 소멸되고 교황이 선종하면 사후 15일 내에 전 세계 추기경들이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교황 선출회의(Conclave)를 열고 교황을 선출하게 된다. 교황의 선출권 이외에 추기경들은 상시에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의 여러 부서의 장관 혹은 위원으로 활동하고 바티칸에 상주하지 않는 추기경들도 부정기적으로 교황에 의해 소집되는 회의에 참석하여 전체 교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교황의 자문에 응해야 한다. 또 모든 추기경들은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가지게 된다. 가톨릭교회에서 몬시뇰은 어원상 나의 주인이란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monsignore)에서 유래한 말로 주교품은 받지 않았으나 덕망 있는 성직자에게 교황이 내리는 칭호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의 35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상향조정 하였다. 교황으로부터 임명받은 주교(교구장)는 적절한 교육과 수양을 거쳐 자격을 갖춘 부제에게 성품성사를 통하여 사제직을 부여하고 자신의 사목행위를 돕는 협력자로서 한국에서는 보통 3년에서 5년의 임기로 파견을 한다. 부제서품을 통하여 부제직을 받은 사람은 사제수업을 계속하게 하거나 또는 사회에 나와 부제로서의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교황 다음의 고위 성직자ㆍ최고 고문 우리나라에는 평신도 부제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럽국가들에는 상당수 있고 그들은 외지의 어려운 지역등에서 선교활동을 하거나 특수 분야에서 성직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는 추기경 2명을 포함한 주교 34명과 외국인 사제를 포함한 신부 4천754명, 그리고 145명의 부제로 이루어져 있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삶과 종교] 서로의 마음을 들어보자

어느 사회든 소위 주류(主流)와 비주류(非主流)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구조에 관련된 주류의 사전적인 뜻은 사상이나 학술 따위의 주된 경향이나 갈래, 조직이나 단체 따위의 내부에서 다수파를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다. 하지만 이 정의 속에는 뜻밖의 함정이 있다. 주류든 비주류든, 사실상 해당 사회나 사조(思潮)를 이끄는 리더들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그들의 추종자들이기 때문이다. 즉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는 원칙적으로 본질의 차이가 아니라 추종자들의 규모의 차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주류의 의견이나 사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비주류의 의견과 주장들은 주류의 리더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듣기에도 충격적이거나 민망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비주류의 목소리 자체도 낯설지만, 주류에 대해 선명한 각을 세우기 위하여 비주류 스스로가 당면문제를 다소 과장하거나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작년(2013)에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이다. 책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도 상당히 도발적이다. 의사가 병을 만들고 환자를 만든다.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빨리 죽는다. 암의 조기 발견은 행운이 아니다. 암 수술하면 사망률이 높아진다. 한 번의 CT 촬영으로도 발암 위험이 있다. 의사를 믿을수록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항암 치료가 시한부 인생을 만든다. 암은 건드리지 말고 방치하는 편이 낫다. 암 방치요법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암 검진은 안 받는 편이 낫다. 체중과 콜레스테롤을 함부로 줄이지 마라. 염분이 고혈압에 나쁘다는 것은 거짓이다. 내버려두면 낫는다고 생각하라 등이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의학상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과연 일반 대중들은 이 책의 극단적인 주장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병원검진을 거부하고, 특히 암 투병환자들은 당장 암 치료를 중단해야 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저자의 진심을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인 콘도 마코토(近藤誠) 역시 방사선 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학박사)이며, 자신의 분야에서 남다른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진심은 일부 병원들 및 의사들의 비양심적인 과잉진료 행위를 지적함과 동시에 환자들에게는 무작정 살려고 발버둥치기보다 웰다잉(well-dying)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고 권면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연사를 선택하면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죽음을 대비해 사전의료의향서를 써 놓자.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의 기존 의료체계에 대한 분노와 막말공격 속에는 의료인들과 환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걱정과 사랑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솔로몬이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의 왕좌에 등극한 이후, 즉 주류의 최고 리더가 되었을 때, 그가 하나님께 구했던 능력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듣는 마음(열왕기상 3:9)이었다. 하나님의 그의 소원을 매우 기뻐하셨다. 현재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주류와 비주류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충돌의 상당수는 상대방의 진심을 읽기보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유치한 다툼이다. 현재 우리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이렇게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우리사회의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들으며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삶과 종교] 108배 수행, 그 무한존중의 철학

효찰대본산 용주사에는 정조대왕의 꿈과 얼이 깃들어 있다. 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린 세자시절부터 밤새워 공부를 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백성을 위하는 뜻을 긴요하게 다짐하고 다짐했다. 사중지공(私中之公)이라!. 처음에는 개인적인 사사로운 인연과 마음에서 비롯됐지만 결국은 모든 백성들의 행복을 위한 공공의 이익과 발전을 이루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공중지사(共中之私)라!. 말로는 공공의 이익을 말하지만 사실과 내용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이익에 치중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조대왕의 효 실천이 그 사중지공(私中之公)의 일이라 하겠다. 아버지와 어머님을 위한 아들로서의 효가 모든 백성의 행복을 위한 효와 위민정책으로 발전하고 승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겸손함ㆍ단정함의 훌륭한 덕망 갖추며 정조께서 부모은중경 간행을 통한 효행의 보급을 위해 창건한 용주사에서는 매일 새벽 예불과 참선정진 후 법당에 모여 대중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108배를 올린다. 절은 불교 종교수행법의 한 부분이면서 우리 생활 문화 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엎드린 채 머리를 숙여 상대방에게 공경의 마음을 보이는 겸허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108배의 절은 몸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또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한다. 이 108배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운동요법으로써도 탁월한 운동효과가 분석되고 있다. 그 효과를 몇 가지 들어보면 첫째, 머리와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손발을 따뜻하게 한다. 둘째, 반복되는 절 운동을 통해 호흡을 순화시켜준다. 셋째, 전신운동으로서 군살을 없애고 몸을 탄탄하게 해준다. 넷째, 오장육부를 자극해 내분비의 균형을 이루게 한다. 다섯째, 온몸의 경락을 자극해 기와 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여섯째, 굳어 있는 뼈마디를 풀어주고 강화해 준다. 일곱째, 혈액순환을 돕고 전신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준다. 절을 하는 동안에는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을 낮춰 몸 속에 깃들어 있는 평온함을 얻게 된다. 또 인체 상부의 화기를 내리고 손발과 하체를 따뜻하게 하는 효과도 입증돼 있다. 몸의 좌우균형을 이루며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가 있고 학생들의 불안해소와 정신집중에도 아주 좋다. 수승화강을 이루며 복식호흡이 되어 진다. 그리하여 절은 모든 요가를 합쳐 놓은 축소판이라 하는 것이다. 절 수행은 우주생명의 자연 순환 운동인 것이다. 절은 좋은 유산소운동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고 경건해 진다. 스스로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이 되고 간절히 기도하는 상태가 된다. 미움과 원망을 넘어서서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존중의 마음이 된다. 불자들은 삼보에 귀의와 예경, 업장의 참회와 모든 인연공덕에의 감사 그리고 성불을 향한 발원과 회향의 의미로 108배를 부처님 전에 올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는 108배를 정성을 다해 올릴 때 엔돌핀보다 4천배나 더 강한 다이돌핀(Dydorphin)이라는 호르몬을 선물로 받는다. 그리하여 우리 몸의 병이 쾌차되는 가피도 받게 된다.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면 몸의 안팎이 조화를 이루는 것에 더해 겸손함과 단정함의 훌륭한 덕망을 갖추며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는 부드러운 자애와 무량한 공덕심을 이루게 된다. 부드러운 자애와 공덕심 이루게 돼 개인적으로 매일매일 수행정진의 발원 속에서 한 번의 절을 만 번의 절(1배만배)로 뜻 깊게 여기며 불성찬탄의 절을 올린다. 일체 우주의 모든 생명이 그 근본성품으로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 생명임을 무한히 찬탄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이 새벽의 108배가 무한의 존중의 절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모든 생명들이 무한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 큰 감사와 존중 속에서 다함께 행복하기를 발원하고 또 발원한다. 인해 스님ㆍ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2014년 안녕하세요?

올해는 갑오(甲午)년 청말띠 해라고 한다. 말(馬)이라고 하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오르듯, 말은 행동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성격이 온순해서 사람과 의사소통이 원활 할 정도로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그래서 말띠 해에 태어나면 사회성이 좋고, 현실에 잘 적응하며,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진취적인 모습이 지나치게 되면 개인주의나, 독단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장점을 최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상대방과 조화를 이루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조금 더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튼 말띠해를 맞이하는 우리나라가 모두가 행복하고 안녕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좀 더 배려하고 상대방과 조화 이뤄 가톨릭교회에서는 매년 1월1일을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기념하는데 1968년부터 교황 바오로 6세는 온 세상에 가난과 전쟁이 없는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하며 기도한다. 2014년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제애, 평화의 바탕이며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담화를 발표, 전 세계 모든 민족이 참다운 형제애를 발견하고 경험하고 선포하고 증언할 것을 당부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6-27)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봉사는 평화를 이룩하는 형제애의 혼이라고 강조하며 필요조건으로서의 이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존재하는 형제임을 강조하였다. 평화를 위해 걷는 길이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피곤하며, 두렵고 귀찮아 습관과 타성이 이끄는 쉬운 길로 옮겨 가려는 유혹도 있겠지만 점점 이기주의로 가득한 현실에서 아파하는 형제와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성모님께서 먼저 아드님이 세상에 가져오신 평화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셨고 우리가 그 길을 걷도록 도우시기에, 우리는 평화의 소망을 간직한 채 이 땅 곳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평화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한 해라고 해서 일 년씩, 일 년씩 2010년, 2011년, 2012년...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한 달이라고 해서 1월, 2월, 3월, 4월...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또 한 주라고 해서 첫째 주, 둘째 주, 셋째, 넷째... 하고 주간이 나누어져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하루라고 해서 1일, 2일, 3일, 4일, 5일... 이렇게 나누어져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일 년이란 시간의 나뉨이 없고, 한 달과 하루의 시간이 나누어 지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에게 새로움이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해가 뜨고 지는 낮과 밤이 있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늘 같은 모습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이 31일, 32일, 33일..., 365일, 366일, 367일... 이렇게 이어지는 숫자처럼, 아무 생각 없이 구태의연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모두가 안녕할 수 있기를 하지만 하루가 지나 새로운 태양빛이 떠오르는 새날을 맞이하고, 새로운 달을 맞이하며,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새로운 계획과 희망을 가지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고,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어제는 안녕하지 못했어도 내일은 안녕하기를 기원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져본다.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안녕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삶과 종교] 혁신의 기초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지난 1월 2일, 미국의 타임지는 5년 내에 사라질 5가지 기술제품을 소개했는데, DVD/블루레이(Blu-ray) 플레이어, 차량용 네비게이션, 전화모뎀 인터넷, 저가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차량열쇠 등이었다. 이들이 사라지는 핵심원인은 바로 초고속 무선인터넷과 스마트폰이다. 즉 DVD/블루레이 플레이어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차량용 네비게이션은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으로, 저속 전화모뎀은 초고속 인터넷 장비로, 저가 카메라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차량열쇠는 스마트키나 스마트폰 앱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 및 장비가 과거의 기술 및 장비를 대체하는 현상은 현대과학기술 문명의 보편적인 특징이며, 그 교체주기도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실제로 작년의 미국 음반시장은 CD가 57.2%, 디지털 음원 및 앨범이 40.6%, 레코드가 2%, 카세트 및 DVD가 0.2%를 차지했는데, 특히 CD의 작년 매출은 전년대비 14.5%나 하락했다. 진정한 혁신은 새 것만을 찾기보단 그리고 디지털 음원과 음반의 매출도 작년에 사상최초로 하락했는데(-5.7%),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아이튠즈 라디오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의 첨단 IT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과 장비를 선점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 한 예로, 현재 전 세계의 선두 자동차제조 기업들은 착용가능한(wearable) 컴퓨팅 장비(스마트워치)와 자동차를 통합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그 연구결과가 7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 가전쇼(CES)2014에서 소개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는 예도 있다. 한 예로, CD와 DVD마저 음반시장에서 밀려나는 마당에 최근 LP 관련사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국내의 LP 턴테이블 제조업체는 대당 1천200만원이나 하는 고급 턴테이블을 2005년부터 5년 동안 22대나 판매했고, 이 업체가 작년에 보급형으로 출시한 LP용 컴포넌트도 주문이 밀려 공급을 제때 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작년 한 해 온갖 TV드라마들이 발표된 가운데, 단연 돋보인 드라마는 응답하라 1994였다. 소위 지상파 방송국의 드라마도 아닌 케이블 TV의 드라마가 평균 시청률 11.9%, 최고 시청률 14.3%(본방송, AGB닐슨 미디어 리서치)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는데, 전통적인 드라마 제작진이 아닌 예능 제작진이 투입되면서 20년 전으로 돌아간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생생한 과거의 향수를 전달한 것이 성공요인 중에 하나로 꼽혔다. 덕분에 이 드라마의 배우들은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고, 주연배우였던 고아라씨는 2003년에 발표된 청소년 성장드라마 반올림의 이옥림 이미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진정한 혁신의 소재는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것만이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재구성한 것에서도 발견된다. 즉 장기적으로 성장, 발전하려면, 새로운 것만을 찾아 헤매기보다, 오히려 창고에 처박혀 두터운 먼지가 쌓인 골동품들을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을 강조했고, 예수님도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라고 가르쳤다. 과거를 새롭게 재구성한 것에서 발견 2014년 새해에는 새로운 것만을 찾아 헤매기보다, 자신이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기대했던 열매를 거두지 못했던 분야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떠할까?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삶과 종교] 지는 달을 끌어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은?

지리산 초입에는 인월이라는 고장이 있다. 남원 운봉 쪽에서 함양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왜 인월이라는 고장 이름이 붙여졌는지 그 일화를 잠깐 소개해 본다. 고려 말 국운이 크게 쇠퇴하고 국론은 분열돼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침범해오다가 결국은 남원까지 군대를 끌고와 진을 치고 백성들을 크게 괴롭혔다. 아지발도라는 왜장이 군사 수만을 끌고 와 진을 치고 있었다. 고려 이성계 장군은 나라를 침입한 왜군을 물리치라는 왕의 어명을 받고 남원으로 오게 됐다. 이성계는 친구이자 부하장수였던 여진족 출신의 이지란과 함께 내려왔다. 진정한 종교화합상호존중 가치 실현 황산대첩에서 활 두 발로 왜장을 쓰러뜨리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남은 왜적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하늘에 뜬 달이 지려고 하고 있었다. 승기를 잡고 있었고 조금만 더 싸우면 대승을 거둘 수 있는 터에 매우 안타깝게도 달이 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왜구들이 또 다시 침공해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간절히 원을 세우고 뜻을 다지고 있는데 구름 속에 감추어지려 하던 달이 다시 나타나 결국 왜적을 크게 물리쳤다고 한다. 지명은 이 일화을 바탕으로 끌인(引), 달월(月)을 써서 인월(引月)이라고 부르게 됐다. 가끔 달이 밝게 떠오르면 나에게 지는 달을 끌어올려 붙잡아 두고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하는 사유에 잠기곤 한다.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본 성품을 밝게 깨달아 보는 것이고, 이 땅에 진정한 종교화합과 상호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양을 두루 갖춘 훌륭한 21세기의 정조대왕의 후예을 육성하는 일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갔을 때 심신이 피폐하여 상당한 곤경에 처했었다. 그 때 해남 대흥사의 대강백이요, 백련사 주지로 있던 혜장선사가 큰 도움을 준다. 차를 보내주고 사람을 보내 끼니를 해결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두 분은 사상적 교유와 나라 걱정에 서로 소중한 교분을 맺는다. 다산에게서 주역의 이치를 배우고 혜장선사에게서 불법의 가르침을 배운 것이다. 백련사 뒷산을 오가며 나라 걱정과 백성의 행복을 위해 두 분은 아름다운 교유를 이루었다. 불교의 스님과 유학자가 서로 배우고 도와주고, 녹차를 같이하며 아름다운 사상과 문화의 교유를 이루었던 것이다. 극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주었으며 고난한 백성들의 삶을 함께 가슴 아파했던 두 분이었다. 그리고서 불교와 유학을 배우고 토론하는 학문적 친구이기도 하였다. 혜장선사가 먼저 열반에 들자 다산은 크게 슬퍼하며 인생에 몇 안 되는 벗을 잃은 슬픔에 잠기어 시를 지어 바친다. 다산과 혜장선사의 통섭의 철학과 사상적 상호존중의 단면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본인도 채수일 한신대학교 총장과 함께 이 땅의 종교화합과 상호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문화 복지 르네상스를 이루기 위해 뜨거운 가슴을 서로 나누며 정조대왕의 사상과 뜻을 계승하고 이어나가고자 한다. 달이 환히 떠오를 때마다 합장하고 발원하느니, 우리의 본성은 저렇게 밝고 원만합니다. 무한의 진리공덕 생명입니다. 21세기 정조대왕의 후예 육성하는 일 그리고 멸하거나 따로이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저 보름달처럼 해탈열반의 가피와 광명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두루 비추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 모두 중생업에서 깨어나십시오. 몸은 쉬어도 그 보리심은 잠들지 마십시오. 부처님의 무량공덕의 뜻이 저 보름달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바로 보시고 큰 지혜를 얻으십시오! 인해 스님ㆍ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사제(司祭-Sacerdos)란 누구인가

가톨릭교회의 사제란 겸손과 독신, 그리고 순명으로 교회에 봉헌된 성직자로서 모범된 생활로 양(信者)들을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목자를 말한다. 영적인 아버지라는 의미로 신부(神父-Fathe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신부는 왕직, 사제직, 예언직을 수행하며 세상 안에 살고 있으나 세상을 닮지 않는 시대의 징표를 분별하고 신자들을 천상구원으로 이끌 사명이 주어져 있다. 이러한 사명을 지닌 사제는 거룩한 직분을 수행하는 성직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며 성사를 집전하고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역사적 책임을 갖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사제직무교령>에 보면,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요, 전례의 주관자이며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이익을 찾지 않고 많은 사람의 구원에 유익한 것을 찾으며 사목활동을 더욱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항상 정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교회에 봉헌된 성직자로 목자를 말함 또한 교회법(285조~287조)에 성직자는 국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을 맡을 수 없고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재산 관리인이나 상행위를 할 수 없고 금전 거래나 재산 보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회 안에 살면서도 사회에 속한 사람이 아니므로 시민과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지키면서 초연한 자세를 갖춰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로이 사회를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바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성직자는 제단 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헌되고 축성된 사제로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세상에 속한 어떤 권세에도 굴복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시대의 징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톨릭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신심과 평판이 좋은 가정에서 성장하여 본당 주임신부와 관할 교구장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신학교를 입학하여 전원 공동생활을 하며 성덕(聖德)과 지덕(智德)을 닦으며 일반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학부 4학년을 졸업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원 3년 전문 과정을 마치고 부제서품을 받고 1년 뒤 교구 사제들의 안수를 받으며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사제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순명과 독신을 서약하며 발령을 받고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보통 한 사제의 임기는 3~5년 정도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파견된 사제는 하느님의 백성인 신자들의 영신적 아버지로서 세상 속에서 길 잃은 어린 양들을 돌보는 외로운 인생 길에 위로자이며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선포를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이고 현대 세계 안에 하느님의 나라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가 실현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사제는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물질적 탐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품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경비만을 조달받는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가족에 얽매이지 않으며 세상을 향해 목숨을 내놓은 그리스도를 따라 불의에 항거하며 올바른 정의 구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사제직을 수행한다. 구원 요할땐 정치도 윤리적 판단가능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의 76항, 곧 교회는 어떠한 정치 체제와도 결부되거나 얽매이지 않지만,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듯이 세상을 향해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사제는 앞장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복음 1014)고 말씀하신 착한 목자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한 용기 있는 사제들의 윤리적 음성에 양들이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삶과 종교] 관(棺) 옆에서 딴청 피울 여유가 없다

지난 2010년 이래, 린드너(Lindner)라는 한 폴란드 관(棺) 제작회사의 마케팅이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왜냐하면 린드너가 자사의 관들을 홍보하기 위해 관들에 선정적인 포즈로 밀착한 미녀들의 사진을 자사의 달력에 실어 매년 배포해왔기 때문이다. 즉 관만 없다면 사실상 성인화보 달력과 다를 바가 없는 도발적인 달력을 매년 제작, 배포해온 것이다. 이에 폴란드의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보수층은 린드너가 인간의 죽음을 모욕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린드너는 이 마케팅 덕분에 매달 1만1천개의 관을 생산하는, 폴란드 최대의 관 제작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국가ㆍ민생문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따라서 린드너는 우리는 이 달력을 통해 폴란드 여성과 우리 회사가 만든 관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관은 사람들이 마지막에 영원한 잠자리에 드는 하나의 가구일 뿐이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일축하고, 올해에도 매우 선정적인 5만 원짜리 화보달력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비록 린드너의 마케팅이 창의적이고 기발할 뿐만 아니라 실제 효과도 크다는 점에서, 즉 상업적인 가치기준에서 볼 때 린드너의 마케팅은 칭찬할 만하지만, 모든 인류가 숙연하게 마주해야 할 인간의 죽음이라는 비통함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점에서는(종교인인 내 입장에서는) 린드너의 마케팅 방식을 수용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정치권의 최근 모습과 린드너의 발칙한 성인화보 달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외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가?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열강들이 노골적으로 벌이고 있는 외교군사적 힘겨루기에서 자칫 희생양이 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해묵은 민족감정과 일본의 뻔뻔한 도발행위를 잘 알면서도,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외교군사문제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일본의 편을 들고 있다. 이 와중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국빈으로 환대했던 중국은 느닷없이 대한민국의 영해 위에 자신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해버렸다. 이에 대해 미국은 자국과 우방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중국에 대한 강력한 무력시위를 벌였다. 마침내 우리나라의 군은 비판적인 국내여론과 미국, 중국, 일본의 눈치를 살피며 허둥지둥하고 있으며,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 무모한 힘겨루기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사태 때문에 고사(枯死) 직전인 수산업, 갈수록 악화되는 주거와 일자리 문제로 절망에 빠진 서민들, 판박이로 반복되는 내부비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공공기관들과 대기업들 등등, 현재 온전한 사회주체가 사실상 없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공공부채를 비롯하여 당장 해결해야 할 국가 및 민생 문제들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마디로 현재 대한민국은 관 속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치권의 끝 모를 다툼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가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다. 이미 검찰도 만신창이가 되었고, 급기야 종교계를 포함한 사회 각계각층들이 내분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권 끝모를 다툼 국가 에너지 고갈 성경 속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도 딴청만 피우는 지도자들 때문에 망하고 말았다. 유다가 가까스로 재건된 후에도, 지도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득실만 따졌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조차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마가복음 13:2) 완전히 패망하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너무 늦기 전에 여의도가 국민들의 피눈물을 살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삶과 종교]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이름 ‘한신대학교용주사’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고 있다. 그러니 마음은 안으로 안으로 향해지고 그리운 이름이 마음 안에 가득하다. 바로 한신대학교와 용주사의 인연이다. 한신대학교와 용주사는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께서 서얼 출신 중에서 뛰어난 인재를 발굴해 규장각의 초계문신으로 삼았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박제가였다. 그 박제가의 학풍을 이어 받은 제자들로부터 한신대학교의 최초 설립하신 분들이 교육을 받았다. 노석 김대현, 만우 송창근, 장공 김재준, 늦봄 문익환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바로 그 분들이다. 한신대학교가 서울에서 이전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다가 결국은 용주사 건너편 독산성 자락에 자리 잡게 되었다.용주사ㆍ한신대, 정조대왕과 깊은 인연이것은 결국 정조대왕과의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정조대왕은 당시 열린 마음으로 서학을 받아 들였고 억울한 백성이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연구와 정책을 개발하고 펼쳤다. 금난전권의 폐지, 규장각과 학문장려, 탕평정치와 특권철폐, 백성을 위한 위민정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독산성 앞자락에는 공자의 사당인 궐리사도 있다. 용주사는 정조대왕께서 효심의 본찰로 창건했으니, 궐리사와 한신대학교, 그리고 용주사는 정조대왕과 깊은 사상적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한신대학교는 현대 한국사에서 민주가치를 실현하는데 훌륭하고 앞선 역할을 해왔다. 또한 용주사는 전통적 효행가치를 새롭게 시대에 맞게 정립해 나가고 많은 계층의 국민들에게 정조대왕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 활동을 해왔다. 또한 한신대학교와 함께 이웃종교로서 종교화합운동을 비롯해 융ㆍ건릉 금양지구 보존운동, 청소년을 위한 효 인문학 캠프, 정조 콘텐츠 문화상 제정 등 다양한 정조대왕의 계승운동을 함께 해오고 있다.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한신대학교와 용주사에 훌륭한 안목을 지닌 분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 시대의 많은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고 있으며 정조대왕의 훌륭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한신대학교 졸업식에는 용주사에서 방문해 인성을 갖춘 훌륭한 인재들이 되도록 축하해 드리며 부처님오신날에는 학교에서 용주사에 오셔서 자비의 광명을 함께 하고 있다. 기이하게도 독산성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궐리사, 뒤편에는 용주사 그리고 동쪽 한켠에는 한신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정조대왕의 사상적 융합정신으로 용주사와 궐리사가 새롭게 창건됐는데 200년이 지난 뒤에는 기독교장로회의 한신대학교가 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종교평화와 상호존중, 융합의 가치를 실현하는 역사적 가치와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 올해에는 처음으로 경기도 교육청과 함께 21세기 정조후예상을 제정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정조대왕의 뛰어난 사상과 리더십을 생각해 보고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남·녀 각 1명씩 총 6명에게 정조 후예상을 주는 것이다. 효행이 뛰어나거나 창의력과 리더십이 훌륭한 학생들에게 미래의 리더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경기도에서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상으로 발전되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정조대왕의 뜻을 이어가고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하는 큰 계기가 되어지기를 기원해 본다.종교적 상호존중ㆍ융합가치 실현 모범이러한 모든 정조대왕의 계승운동을 하기 위해 한신대학교와 용주사가 중심이 되어 여러 단체들과 함께 정조대왕 문화진흥원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융건릉 유적보존 및 효행실천, 정조대왕의 사상과 철학의 계승운동을 통해 우리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진흥원이 큰 기여를 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한신대학교와 용주사는 이웃종교와 정조대왕의 인연으로 우리 한국과 세계에 가장 훌륭한 상호존중과 융합정신을 실현하는 모범에 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인해 스님ㆍ용주사 문화특보

[삶과 종교] 결혼준비-혼수품(婚需品)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신부들이 결혼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것을 혼수품이라고 한다. 크게는 신혼집 준비부터 시작해 예물과 예단 그리고 신혼 여행지에서 함께 입을 커플 티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이러한 외적인 준비보다 정작 서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나누고 행복한 혼인생활을 위하여 희생하고 배려해야 하는 정신적 준비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외적으로 필요한 혼수 장만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자칫 혼수준비로 문제가 생기면 결혼생활 내내 고부갈등으로 이어지며 친정과의 서운함으로 힘든 결혼생활이 되기도 하기에 결혼준비란 대부분이 외적인 혼수준비라고 할 수 있다. 지방마다 준비하는 혼수품들이 다르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정성과 사랑으로 지나침이 없는 절제력이 있는 혼수 준비여야 한다. 혼전임신, 소중한 생명 혼수품으로 격하 그런데 요즘 결혼하는 연예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한 가지 더 다른 혼수품목을 준비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결혼 전 임신이다. 속칭 사회에서는 속도위반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근래에 많은 연예인들이 결혼 전에 임신한 사실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 윤리적인 죄의식은 사라지고, 마치 큰일을 성취한 것인 양 떠들면서 세상에 오는 소중한 생명을 혼수품의 한 종류로 격하시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아무리 부끄러움을 모르는 요즘 세태(世態)들이라고 하지만, 공인(公人)이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반성은커녕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혼수품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연예인들의 작태(作態)에 회초리를 들고 싶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 전의 임신은 신부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결혼이 결정되기까지 그 생명은 마치 어머니의 태중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시간을 보내게 되며, 이것은 아이의 미래에 결코 바람직한 영향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하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주신 기본임무는 생명에 봉사하는 것, 곧 출산을 통해 하느님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책임 없는 순간적인 욕구로 그 의미가 상실 된다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상실하는 것이다. 책임 없는 성행위가 무분별하게 드러나는 이기주의적 현실에서 정작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성적인 가치관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부행위가 참으로 상호 존중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당하고 품위 있는 행위이다. 그러나 상호간의 일치와 준비도 없이 무책임하게 저질러진 행동으로 생명이 위협받고 위태로워진다면 단순히 생명뿐만이 아니라 그 가정의 미래에 대하여 불투명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부의 사랑은 단순히 부부행위를 통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 사랑을 바탕으로 부부행위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하여 부부 사랑이 점차 성숙되고 생명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는, 상호존중과 책임감 없이 성적 탐닉 속에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자칫 인간을 성적도구로만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올바른 성적 가치관 무언지 생각 책임이 없는 쾌락적이고 순간적 욕망만으로 생명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현실에서 연예인들은 공인으로서 더욱 책임 있는 행동으로 젊은이들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마치 시샘하듯 혼수품(혼전임신)을 준비하는 연예인들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윤리의식을 상실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성적 유희(遊戱)만으로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무책임한 행동과 방종(放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살까 몹시 저어하는 바이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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