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시대에 관서공자로 불렸던 양진이 태수 벼슬에 있었을 때, 금 열 근을 뇌물로 바친 자가 있었다. 이를 거절하자 한밤중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러십니까? 하면서 재삼 받기를 권하였다.
이에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자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니 그게 웬 말인가?라고 했다던 장본인이 양진인 것이다. 양진은 벼슬아치가 가져야 할 청렴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군인에게는 군인 정신이 중요하다. 이러한 군인 정신을 망각하면 위험도 무릅쓰고 별짓을 다하게 된다. 정치가에게는 애국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 애국을 망각하게 되면 별별 부정을 다 저지르고, 결국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된다. 종교인에게는 종교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종교 정신을 망각하면 구린내 나는 사리사욕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와 종교에 먹칠하게 된다. 대한 불교 조계종 행정 총책임자인 자승 스님이 상구보리(上求菩提, 위로 깨달음을 구함)만 있지, 하화중생(下化衆生, 아래로 중생을 교화함)은 없다.라고 말했다 한다. 이 또한 진정 종교가 가져야 정신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 시대는 진정한 정신의 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사업자는 사업자로서의 정신을 가지고, 기업과 속한 근로자들의 복지에 최선을 다해야 바른 기업과 사업자가 될 것이며, 근로자는 근로자로서 자신이 이 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정진해야 한다.
또한 교사는 교사로서의 정신을 가지고 사명적 자세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정신을 가지고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이 나라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요사이 기독교가 폄하되며, 그토록 모질게 매를 맞는 이유가 뭘까? 그 역시 정신의 부재이다. 기독교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정신의 부재가 독선과 이기에 빠지며 사회에 실망을 던져, 이 사회가 아우성치며 정신 차리라는 외침일 것이다. 옛날 어떤 검객이 집에다 칼을 놔둔 채 밖으로 나왔다가 강도를 만났다. 칼을 든 강도가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자, 검객은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소리쳤다. 강도는 웃으면서 잘 모르지만, 내게 귀중품을 바칠 사람으로 안다.고 조롱했다. 검객은 우리 집에 칼이 있다. 나는 검객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도는 칼도 없는 검객이 입만 살았구나.라면서 달려들어 검객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단다. 지금 나의 칼은 어디에 있는가? 집에 두고 큰 소리만 치는 검객과 같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빈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자. 칼이 없는 검객은 검술을 펼칠 수가 없다. 때문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조롱을 당하듯이, 이 사회가 정신을 잃고 살아가면 삶의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 너의 정신을 논하지 말자. 나의 정신을 생각하자. 나는 나의 가치에 맞는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 이길용 이천 새무리교회 목사
오피니언
이길용
2015-02-10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