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은 유별나게 호랑이 가죽을 좋아한다. 웬만큼 지체있는 집안에는 이것이 그 가문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한국과 만주·러시아 국경에 사는 ‘백두산 호랑이’를 최고로 쳤다. 1931년 일제하에서 제6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우가끼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가 온양 ‘신정관(神井館)’이라고 하는 호텔급 여관에서 지방순찰을 마치고 투숙을 할 때였다. 우가끼 총독이 아침에 일어나 정원을 산책하는데 갑자기 한 일본인이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그리고는 보자기를 총독앞에 내놓는 것이 아닌가. 총독이 당황하여 이유를 물으니 보자기 안의 호랑이 가죽을 꺼내며 “함경도에서 구한 것이니 받아 주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성환에 광산을 개발하려는데 총독부에서 자금 지원을 해달라고 청탁을 했다. 우가끼 총독은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져, 쾌히 그의 ‘호랑이 가죽’ 뇌물에 굴복하고 말았다. 일제 때 어느 충청도 갑부 역시 백두산 호랑이 가죽을 뇌물로 활용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을 판사로 만들기 위해 일본 총독 야마나시에게 호랑이 가죽을 뇌물성 선물로 주고 뜻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백두산 호랑이-그렇게 토템 신앙에서처럼 신성시되고 위엄을 갖춘 백두산 호랑이가 지금은 450마리 정도 러시아, 중국 등 연해주를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는데 계속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백두산 호랑이를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에 기증한 것은 2011년과 2015년. 한 마리는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 ‘두만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또 한 마리는 ‘금강이’라는 이름으로 대전의 오월드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그러다 이들은 지난주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세워진 국내 최대 호랑이 전시장에 방사를 하기 위해서다. 언론은 이를 두고 백두산 호랑이가 100년만에 백두대간에 돌아온 것이라고 크게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노릇한다’는 속담처럼 토끼만 설쳐대던 땅에 주인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그렇다. 호랑이는 있어야 한다. 포식동물이라는 맹수로서가 아니라 그와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어른, 권위주의가 아니라 말씀과 행실로 권위를 갖고 있는 원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익숙하게 해오던 것, 해야할 말을 양비론으로 피해가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것, 숲 아닌 나무만 보는 것, 그런 어른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국가 미래에 대하여 호랑이 눈에서 뿜어내는 불빛 같은 역할을 해줄 원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백두산 호랑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토끼만 보이는 것을 어쩌랴. 도대체 이 땅에 원로가 있기는 한가. 몇몇 교회에서는 ‘원로 목사’와 ‘담임 목사’와의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은퇴하는 원로목사가 데려온 후임목사로부터 등을 돌려 빚어지는 불화가 크다. 정치는 원로 정치인들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서로들 원로 대접을 않는다. 예술계, 체육계…. 모두가 편가르기로 원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병옥, 김준엽,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장준하…. 한 시대에 빛이 되어주었던 그 원로들이 그립다. 그래서 백두산 호랑이, 토끼들만 뛰노는 이 땅에 호랑이의 포효를 듣고 싶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오피니언
변평섭
2017-01-30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