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릴적 동네에서 큰 부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 담장으로 구렁이가 오르더니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이 모습에 당황하는 사람은 주인 할머니였다. 그동안 집안을 잘 살게 해 준 ‘업’(業) 이 나갔으니 큰 일 났다는 것이다.이런 일이 있고 나서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 그 부잣집은 점차 가세가 기울어졌다. 그리고 끝내 그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이렇듯 우리 민속(民俗)에는 집의 재물을 지켜 주는 수호신의 상징으로 뱀, 두꺼비, 돼지 같은 것을 위하는 풍습이 있었다.그것을 ‘업’이라고 말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과는 다르다. 때로는 동물들과는 달리 며느리나 머슴을 일컫기도 했다.그 며느리가 들어와 살림을 일으키고, 가운(家運)이 융성해 지면 ‘업’이 들어왔다고 했고, 머슴이 들어와 농삿일을 잘하면 그 집에 압 들어 왔네! 하고 덕담을 했다.‘딱정벌레(Beetle)’라는 별명을 가진 ‘폭스바겐(Volkswagen)’은 패전 후 독일 경제를 일으키는 ‘업’처럼 되었다. 1946년에는 월 1천대의 생산에 불과했던 ‘딱정벌레(Beetle)’폭스바겐은 1955년에는 미국에서만 1년에 100만대를 수출하는 것을 비롯 전 세계를 휩쓸었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독일 경제 부흥의 눈부신 견인차가 된 것이다.그리고 이 기적의 중심에는 루트비히 에르하르트(1897~1977)가 있었다. 그는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물 경제에 능통한 경제학자이자 경제장관과 총리를 역임하면서 ‘모두를 위한 번영(Wohlstand fuer Alle)를 외치며 독일 경제를 이끌었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당시 집권당이던 기독교민주당 당원이 아니었다는 사실, 심지어 그가 경제장관일 때 수상이던 아데나워가 기민당 입당을 권유했으나 끝내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정치 색깔의 옷을 입지 않고 오로지 독일 경제부흥이라는 목표에 올인했다는 이야기다. 정권의 1인자 자리에 까지 올라갔으나 그는 오직 경제가 전부였고 , 그의 신앙이었다. 말하자면 에르하르트는 독일의 ‘업’인 셈이다. 지금 일본도 ‘아베노믹스’라는 ‘업’을 톡톡히 맛보고 있는 것 같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작한 ‘아베’총리의 이름을 딴 ‘아베노믹스’가 발동을 걸었는데, 초저금리, 대폭적 규제완화가 그 중심이었다.한 동안 비판도 받았던 ‘아베노믹스’는 그러나 지금 20년 장기 침체를 극복하고, 기계공업, 철강, 화학산업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으며, 주식시장은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일본경제를 살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부러운 것은 완전고용이다. 오히려 사람을 채용하지 못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까지 손을 뻗치는 것이다. 실업자로 아우성 치는 우리로서는 꿈 같은 이야기다. 우리도 박근혜정부시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딴 ‘최경환 노믹스(또는 초이 노믹스)’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빚내서 집사라’는 말이 말해주듯 가계부채만 불렸고 부동산 가격만 상승시켰으며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는 접근도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그나마 ‘최경환노믹스’의 주인공은 지금 교도소에 가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왜 우리는 여·야 모두 정치 투사들은 넘쳐나는데 그 정치판에 경제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가? 왜 정치지도자에게만 마이크가 쥐어 지고 경제 지도자는 뒤에 서 있는가? 그렇게 해서 이 어려운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겠는가? 경제의 ‘업’이 없으면 앞으로 정치마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오피니언
변평섭
2018-07-17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