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 발자국이 찍힌 봄나물 물음표로 남아있는 고사리 밭두둑에 앉아있던 햇살 봄의 들녘과 가을바람 사계절이 양념에 버무려져 하얀 사기 접시에 담긴다 봄비는 접시 속으로 오고 나비는 접시에서 나온다 날아가는 불화살 구멍 숭숭 뚫린 깡통에 명중한다 부서져 떨어지는 까르르 아이들 웃음 쥐불놀이가 한창이다 신향순 시인 ‘미네르바’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수원시인협회•수원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회원
가만히 엎드려 네가 오는 소릴 듣네 음률 같은 발자국 소리, 봄바람 소리 꽃송이들을 살며시 만져보네 아, 노란 산수유꽃 움트는 풀빛 소리 내 가슴 적시네 원가람 시인 원광대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별이 내려왔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이수
분홍과 주홍색 사이에서 솜털 자란다 색은 행불행의 씨앗이라 하지만 행복의 색은 만남을 가져오기도 하고 포용의 색은 착한 자의 말 빌리자면 당신을 속이는 기만이기도 하고 친절이란 색은 항상 모험에 든다 협력이란 색의 말은 듣는 자에게 자기 뜻대로 전달될지 불안하단다 복숭아 꽃이 피니 선과 악, 지평의 경계 무너뜨린다 말마따나 혼자 있을 때 가끔 느끼는 황홀한 순간처럼 행복하단다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변해가는 복숭아 나무가 나를 반긴다 내가 평생을 두고 떠들어대도 텅빈 시간들이나 채우는 잡담을 끊임없이 반복할 따름인데 예술적 창조의 고독한 작업속에서 과수원 사유의 진행이 심층부 뚫고 복숭아색 방향만이 진실이라는 결과물 위하여 색은 점점 짙어진다 김어진(본명 김영진) 2017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옳지, 봄’. ‘항아리 속의 불씨’. ‘붉은 수염의 침대에서 자다’. ‘그러니까 너야’. 아라작품상,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막비시동인.
밝은 빛일수록 그림자는 짙다 허나, 결국 시작과 귀결은 우리네들이었다 12월 연말, 다음 해에 희망을 꿈꾸게 1월 맞이하며 다시금 다짐을 2월 또 다른 새해로 재정비해도 3월 새로운 학기, 출발의 선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주는 프리지아가 함박 만개해있다 노란 향연들, 추위를 뒤로하고 따스한 꽃햇살로 샤워하게 해준다 매달 그렇게 새로운 달들이 선사해주는 희망의 그림자들은 먼저 봄이 되었다. 장선아 시인 시집 ‘라디오 포옹’, ‘바람은 자유를 찾아’ 2016년 중앙대문학상, 2021년 경기시인상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처장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휘돌아 가는 길 모퉁이 나목들위로 보슬 보슬 내린다 추우면 추운대로 우리는 겨울을 견디며 걸어왔다 동지 지나 낮이 길어진 雨水 무렵 빗물 흠뻑 뿌리에 닿은 나무들의 수런거림, 새 봄 움트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성란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학’ 회원
거울 앞에 서면 내 엄마가 보이고 다시 보면 내 딸아이가 보인다. 팔순 노인과 사십대 젊은이가 숨바꼭질한다 엄마는 외할머니 닮았다고 딸아이가 말한다 너는 엄마 닮지 말라고 했지만 딸이 점점 나를 닮아간다 사진첩을 열어 본다. 내가 딸이고, 딸이 나인 듯 웃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엄마를 닮아 간다 내 안에 예쁜 딸 숨겨져 있어 젊은 기운 받아 다독여 본다. 엄마를 닮은 딸, 그래서 행복하다 강부신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에워싼 산비탈 감고 돌아 길을 내고 에둘러간 흔적마다 딛고 가는 발걸음들 산허리 뒤돌아 온들 숲속은 한 몸이다 등뼈 같은 길이라고 마음에 새기지만 저만치서 굽어보며 내려 본들 한 길인 것을 녹아드는 실개울소리 품속으로 찾아들고 접어든 샛길에서 실눈 뜨는 곁가지들 만나고 또 만남은 여전히 원점인데 더듬어 뒤돌아보는 아득했던 삶의 길이여 조병하 시인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살아 있음에 멈출 수 없는 세월 어김없이 오고 가는 사계절 누구와 약속이나 한 듯 발자취를 남긴다 비바람 맞으며 터지고 갈라지는 성장의 고통 한없이 어루만지는 삼백육십오일 햇살 동그랗게 동그랗게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숨 쉬는 생명 계절이 부르면 조용히 다가가 더 크게 더 크게 원을 그린다 김경점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회원
쉼 없이 흐르던 길 잠시 멈추고 한겨울 맑은 결정체되어 내 안을 들여다 본다 70여 년 흘러온 길 순리대로 거스르지 않고 왔는가 얼마나 맑고 고운 빛깔로 지나왔는가 물길 터주는 모든 주위에 감사했는가 이미 흘러간 시간들에 미련과 아쉬움 남기고 직립의 결정체로 머물며 이 겨울 더욱 더 마음 다진다 아, 따뜻한 봄이 되면 더 맑은 소리, 더 고운 빛깔되어 바다로 향하리라 심평자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하늘이 이중 삼중으로 막힌 음습한 땅속의 낭떠러지 육중한 기계의 소음과 천둥 같은 땅의 울음 1000미터 땅속의 공포 40도가 넘는 지열과 나와의 치열한 싸움 허기진 몸을 차디찬 쇠 동발에 기댄다 빵 조각에 묻어나는 검은 눈물 가난을 지우고 내일을 캐는 땅 속의 두더지 배고픔을 헤치는 굳은 의지가 시야를 가리는 희미한 전등아래 가물거린다 흩날리는 백발에 굵게 패인 주름 송도의 고층 건물과 어우러져 밤하늘에 애절하게 메아리친다 로투스 부루메 그뤼크아우흐. *로투스부루메(Lotus Blume): 연꽃 *그뤼크 아우흐(Glück auch): 행운의 인사 양재윤 시인 2023 홍재백일장 장원
우연히 건넨 영혼에 감사히 빼앗긴 마음 세월의 뒤안길에서 부족하다고 아쉬워할 때 그 님은 늘상 걷던 도시의 길을 벗어나 숨겨진 숲속 길로 안내했습니다 싱그러운 잎새들의 펄럭임 풍상을 겪은 굵은 나무들 새들의 속삭임, 생명들의 향기 영롱한 진실 챙겨주는 포근함 가끔은 크나큰 깨달음의 울림소리도 들립니다 이 숲을 사랑하며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송대용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바다는 쉬지 않고 잔물결을 이룬다 촛불은 좌우로 흔들거리며 빛을 밝히고 나무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끊임없이 흔들리는데 나는 크고 작은 문제로 고뇌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대여! 바다는 평정을 찾기 위해서란다 촛불은 중심을 잡기 위해서란다 나무는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키기 위해서란다 나는 올바른 곳을 향한 시험대 인간적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오늘도 곰곰이 생각하며 깨달아 가는 나의 삶이여 김경숙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마당 한쪽 작은 정원 귀퉁이에 울퉁 불퉁 모양 없는 큰 돌 하나 그대로 두기로 하고 꽃씨를 심고 나무도 심었다 벌과 나비 그리고 벌레들이 모여 들었다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는 푸르게 자랐다 벌과 나비와 벌레들이 오가면서 꽃과 나무를 돌보고 있었구나 새들이 이야기를 물고 날아와 돌 위에 앉았다 나도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다 정원이 활짝 피어났다 추명순 시인·시 낭송가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도로에 외톨이로 나 뒹구는 생의 발 널브러진 자동차 파편 번져버린 핏자국 좌초된 배 한 척 그만 뒤축이 다 닳았네 가장의 힘겨운 항해 무수히 흔들리다가 파도와 맛설 때도 만선을 또 보챘으리 먼 바다 등대 불빛에 외로움만 환해지고 술잔에 시름 풀다 늦어진 귀갓길에 낯선 길 더듬듯 비틀대는 별빛 하나 고단한 노 저어오던 그 배 한 척 멎었네 진순분 시인 한국시학상, 윤동주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수상.
첫눈이 추억처럼 내린다 잊고 있던 젊은 날 풋풋한 기억들 새록새록 꺼내주고 누군가 만날 것만 같은 설레임 눈 내리는 거리에서 서성대는 첫눈은 그리움이다 이성란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너무 붉어 두렵다 한순간에 터질까 봐 영롱하여 조심스럽다 아득한 첫사랑처럼 저토록 속까지 완벽하게 붉은 사랑 여름날 태양보다 더 뜨거운 가지 끝의 정염이여 허정예 시인 시집 ‘詩의 온도’ 2020년 경기시인상 수상. 제1회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
새파랗고 떫은 시절도 있었다 병아리 깃털처럼 노랗던 햇살에 기댄 봄 펄펄 끓는 용광로 뜨거웠던 여름날의 열기 홍시는 말랑하고 잎은 고운 결로 물들었다 모두 비어내어 긴 동면을 준비하는 등 굽은 감나무 곱게 물 들던 이파리들 미련 없이 흙으로 돌려 보낸다 감 잎 하나 주워 투명한 가을하늘에 비춰본다 그 동안 나는 어떤 빛깔의 이파리를 직조했을까 희미한 빛으로 짠 수북한 이파리들 초가지붕 위에 열린 하얀 박처럼 소박한 빗자루로 모두 비워내고 감 잎 닮은 고운 내 가을의 잎 차곡차곡 쌓으며 하무뭇한 하얀 겨울을 기다린다 황영이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너를 기다릴 만큼만 빛이 내리면 좋겠다 줄기 사이로 스며든 바람 얘기도 있으면 좋겠다 공중에 펼쳐진 캔버스 화이트 톤으로 그리움 그려 놓으면 낮달은 미리 마중 나오고 가을은 알알이 들어찼다 오늘은 누군가 창을 열고 바람을, 하늘을, 별을, 사람을 기다린다 최복순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푸르게 손짓하며 위로의 그늘 내어주던 나무들 사이사이 따사로운 햇살이 산들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다시 찾아 온 가을 저마다의 빛나는 색깔로 곱게 그리고 붉게 시나브로 스며든다 뜨거운 열정으로 여름을 건너온 가을의 시간속에서 西湖를 산책한다 흔들리는 갈대 호수 가마우지 기러기 위로 금빛노을이 내려앉는다 저 한 폭의 수채화 시로 그려낼 수 있다면 이 가을 정녕 외롭지 않으리 이성란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너는 안다 그리운 사람 바람 따라 떠난 것처럼 나도 그렇게 그리움 놓고 떠난다는 걸 한끝이 펴졌다 접히는 삶 잘려 나간 인연은 아픈 가위질일까 시간을 자르는 잔인한 결별 앞에 발부비는 억새 소리 가슴 시리다 조병하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