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쓰고있는 지금의 종이가 양지(洋紙)다. 개화기에 서양서 들어왔다. 그 때까지 일상적으로 쓰인 종이는 한지(韓紙)다. 한지와 양지는 제작 방법부터가 다르다. 한지는 물리적 방법으로 만드는 반면에 양지는 화학적 방법으로 만든다. 그러니깐 주로 펄프같은 식물섬유에 화공약품류 등 충전재를 혼입하여 초조기로 만들어 내는 게 양지다. 용도에 따라 인쇄용지, 필기용지, 포장용지, 잡종지 등으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한지 제작은 고유의 기법으로 좀 복잡하다. 닥나무 다발을 흐물흐물 하도록 삶아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속껍질만 가려내어 잿물에 서너시간 재차 삶는다. 이윽고 으깨어 짜낸 끈적 끈적한 닥풀뿌리를 고루 풀어 종이를 뜰 발에 걸르면 건조해지는 게 한지다. 한지도 역시 용도에 따라 호칭이 다르다. 창문에 바르면 창호지, 족보나 고서 등의 영인본으로 쓰이면 복사지, 사군자나 화조같은 글씨·그림에 쓰이면 화선지가 된다. 요즘 한지가 보기 귀할 정도로 생산이 줄어든 것은 창호문화가 사라져 수요가 거의 끊긴 탓이다. 창과 문을 일컬어 창호라고 하나 창호가 의미하는 문은 대문이 아닌 크고 작은 방문이다. 창호는 대개가 목재며 띠살창, 격자살창, 빗살창, 숫대살창, 완자창 등 다 헤아리자면 스무가지가 넘는다. 일반의 양가에선 비교적 단순한 띠살창을 많이 썼고 양반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완자창 같은 우아한 창호를 선호했다. 또 사대부 집의 방문은 여닫이와 미닫이로 된 이중구조였으나 보통사람들 민가는 그냥 여닫이 하나로 생활하였다. 바로 이 것이다. 문 한 둘의 차이는 기껏 창호지 한 두장의 차이다. 전래 가옥의 창문이나 방문은 이처럼 한지의 종이 한 두장으로 방 안과 방 밖의 경계를 삼았다. 그래도 한지는 보온과 통풍의 역할을 잘 해주었다. 한지는 물리적으로 처리돼 화학적으로 만들어 죽은 종이가 된 양지와는 달리 한지의 종이 자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창호지문화의 신비로움은 여전히 매력이다. 콘크리트 건물의 철대문에 나무방문으로 꽁꽁 요새화하고도 불안해 하는 이즈음의 주택구조에 비하면 창호지문화는 정말 허술하다. 하지만 한지 한 두장에 불과한 창호지문은 실로 엄청난 그나름의 역할을 다 했다. 예컨대 경세제민(經世濟民), 반정담론(反正談論) 등이 거론된 곳이 창호지 안이다. 운우지정(雲雨之情)도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나누었다. 창호지문화의 특성은 이처럼 개방형이다. 은밀함을 지키는 가운데 누수의 가능성을 선인들은 생활의 지혜로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현 주거문화의 특성은 폐쇄성이다. 철대문, 나무방문, 유리창문 할 것 없이 철저히 닫아건다. 창호지문과는 비교가 안되게 튼튼한 몇겹의 문으로 무장하고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세태가 그만큼 험악해진 탓이다. 이젠 다시 맛볼 수 없게 돼가는 창호지문화에 대한 향수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점점 폐쇄화하는 심성을 열기위해 창호지문화를 마음의 창문삼아 눈을 크게 떠보고자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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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3-04-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