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재난 대응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제19호 태풍 ‘솔릭’이 6년만에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기상예보로 전국은 긴장했다. 2010년 큰 피해를 준 태풍 ‘곤파스’와 비슷할 것이란 소식에 지자체마다 큰 피해에 대비했다. 인천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로 북상한다는 소식에 지자체별로 대책회의를 열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대책을 논의했고 강풍 발생에 대비한 시설물 점검, 취약지역 정비, 위험요소 점검 등과 같이 사전 대비 사항을 점검했다. 또한, 지자체 부서 간 태풍 대응 공조체계를 구축하는 등 유기적 조직을 구성해 대비했다. 재난관리책임기관인 적십자도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자 재해복구장비 점검, 재해구호물품 확보, 긴급복구에 도움을 줄 봉사조직 협조 등 비상대비체제를 갖췄다. 민관 재해 유관기관뿐만 아니라 교육청도 등·하굣길 학생 안전을 위해 일부 학교에선 휴교령을 내렸다. 24일 오전 3시를 기점으로 인천은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고 민관 재해 유관기관은 상시 모니터링을 하면서 만에 있을지 모를 피해에 신속히 대응하고자 예의주시했다. 지난 24일 오후 태풍이 동해로 빠져나가 소멸하면서 태풍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고 태풍 ‘솔릭’은 25일 새벽 해상에서 소멸했다. ‘솔릭’이 소멸한 것은 전남 목포 지역에 상륙한 지 약 28시간 만이었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갔다. 민관이 태풍에 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재난에 대처하는 의식이 상당히 성장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적다는 것을 들어 일부에선 과잉대비를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안타까운 말이다. 결과적으로 과잉대비가 맞다 할지라도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자연재해는 대형재난의 확장성을 내포하고 있고 그 피해는 생명과 직결되기에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는 ‘과잉대비’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재난을 대비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실시간 태풍위치, 피해 정도, 행동지침 등 재난정보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었고, 지역 협의체인 재난 네트워크 운영은 컨트롤타워가 모호해 유명무실했다. 게다가 일부에선 휴업, 휴교 등을 각 지역 재량에만 맡기다 보니 통일된 기준이 없어 시민들에게 혼란을 줬다. 재난 대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보고 정비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일본은 1961년 재해대책기본법을 제정해 재난별로 계획을 세워 국민이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중의 핵심은 정확한 정보공유에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모두 합심해 재난을 극복한다고 한다. 수많은 기상학자는 지구온난화 탓에 태풍·홍수·폭염·가뭄과 같은 기상이변이 더욱 빈번해질 거라 경고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 기후재앙 시대가 도래할 거라 말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재난대비를 소수인력으로 관 위주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재난은 소수인력으로 대응할 수 없다. 민관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대비해야 한다. 재난 대응 시스템을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좋은 글, 착한 말의 위선

톨스토이 ‘인생론’, 도스토예프스키와 로슈푸코의 ‘잠언록’, ‘채근담’ 등 좋은 글을 모아 놓은 책들이 많다. 또 동서양의 위대한 인물들이 한 말들을 모아 편집한 ‘명언집’ 같은 책들도 많다. 최근에는 ‘좋은 말 모음집’이라는 책도 나왔다. 읽다 보면 말은 다 맞는데 책을 덮으면 잘 기억나지 않고 지루하다. 영양 과잉이라 할까…. 사랑처럼 좋은 글, 착한 말도 가끔은 지겨워질 때가 있다. 사실 이런 책들에 나오는 내용은 실천하기 어렵다. ‘참고 기다려라’, ‘희망을 가져라’,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꿀 때 행복이 찾아온다’ 등 뻔한 소리가 대부분이다 보니 싫증 나는 게 당연하다. 위선적이고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활자 이탈’의 시대이니 그런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물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아무리 봐주려 해도 교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좋은 말은커녕 자기 멋대로 말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이 자기가 쓴 ‘거래의 기술’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열광하는 지지자들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 터무니없는 말을 남발하는데 이상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트럼프가 대신 해주고 있어서다. 인간은 성선설보다는 ‘성 왔다갔다설’에 더 가깝다. 우리는 ‘노력하면 성공한다’거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니 ‘정의는 승리한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말들이 별로 맞지 않는다. 역사 바로 세우기,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경제, 현인(賢人) 공론조사, 사람이 먼저다, 경제공동체 등 역대 정권은 좋은 말로 국민을 현혹시켰다. 구호 자체에 함몰돼 원래 의도는 제대로 발휘도 못 하고서 말이다. 최근 청와대 대변인이 리비아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에 대한 논평에서 ‘그가 타들어 가는 목마름을 몇 모금의 물로 축이는 모습을 봤다’는 어설픈 문학적 표현을 보면서 감동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좋은 글, 착한 말들의 남용은 인간들로 하여금 희망보다는 실망을, 현실보다는 허무한 상상의 구렁텅이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중국의 사상가 양주(楊朱)는 ‘내 몸의 털 하나를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호전(水滸傳)을 보면 송강을 비롯한 양산박 108명의 호걸이 정부의 학정에 대들다 마지막에 갑자기 정부와 타협해 벼슬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부터는 보기가 싫다. 착한 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좋은 글, 착한 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도 없고 세상사를 한칼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복잡하다. 차라리 솔직한 말과 글이 도움된다.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는 자신의 대머리를 보고 ‘머리카락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말도 이렇게 재밌게 말할 수 있는데 너무 정의감 있게 심각하게 연극 대사처럼 안 했으면 좋겠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정치인과 재난 대응 리더십

살인적인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정부는 폭염 대책 일환으로 날마다 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고 다른 재난과 마찬가지로 폭염 역시 새로운 재난의 유형”이라며 관련부처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다시 말해 태풍이나 장마,그리고 폭염과 같은 각종 재난에 체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그리스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허리케인,폭우,지진,해일 등 다양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이런 재해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재난에 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니코스 토스카스 그리스 공공질서장관은 9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산불 참사에 대한 미숙한 대응으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본에서도 지난달5일 서남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사망·실종자가180명을 넘어선 가운데 폭우 첫날 술판을 벌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적절치 못한 행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주를 타격, 수재민이 무려 50만 명에 육박했을 때“와우(Wow), 500년 만에 한 번 있을 홍수라고 한다!”라는 경솔한 트윗을 날리는가 하면 부인 멜라니아 여사 또한 수해 지역에‘킬힐’을 신고 나타나는 등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우리는 어떨까? 지난달2일 제7호 태풍‘쁘라삐룬’의 한반도 북상 소식이 예보된 날,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광역단체장들은 일제히 취임식을 취소했다.기자간담회나 간단한 선서 등으로 취임식을 대신하고 수해 대책 마련과 피해상황을 점검했다.잘한 결정이다. 초강력 태풍임에도 다행히 사상자와 피해복구 비용은최소한에 그쳤다. 그러나 3선에 성공한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5천만 원을 들여‘나홀로 취임식’을 거행, 논란을 자초했다. 인천으로 눈을 돌려보자. 호우경보·주의보가 발효된6월30일 허인환 동구청장을 시작으로 박남춘 인천시장, 도성훈 인천교육감 그리고 대부분 구청장 당선자들은 취임식을 전격 취소했다.반면 계양구,강화·옹진군은 예정대로 취임식을 강행했다.장정민 옹진군수는 서해5도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고심 끝에 취임식을 치렀다고 한다. 반면 박형우 계양구청장과 유천호 강화군수는 각각 구청 대강당과 문예회관에서 유관기관장,주민,공무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취임식을 마쳤다. 박 청장은 인천에서 유일한 3선 구청장이라는 명예와 태풍 속에서 민선7기 취임식을 가진 유일한 구청장이란 오명을 함께 썼다. 유 군수는4년 만에 군수로 돌아오면서 감동의 눈물을 보인 취임식이었지만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태풍이 올라오고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천시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취임식을 취소하는 마당에 일부 군·구의 취임 행사는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3전23승 불패신화,이순신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의정신이다.전쟁이든 재난이든중용에서 말하는 ‘성즉명(誠則明)’, 즉 곤란을 겪기 전에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종 재난 대비에 취약한 요즈음 정치인들에게 이순신의 리더십을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소년법 개정 논란… 엄벌과 교화의 딜레마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등 미성년자가 벌인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잔인한 범죄행각이 연이어 터지면서 10대 청소년범죄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 논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10대 가해자들이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분노와 함께 이를 가능케 하는 소년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엄벌주의’와 ‘교화 우선’이라는 찬반 양측의 대립이었다. 최근 관악산 집단 폭행사건은 일부 삐뚤어진 10대들이 소년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가해학생들은 피해여고생을 노래방과 관악산 등으로 끌고 다니며 집단 폭행에 성추행까지 저질렀다. 그로 말미암아 피해여고생은 온몸에 멍이 들었고, 소변통을 차고 다니며 식도에 호스를 껴서 걷지 못하는 등 매우 위중한 상태다. 하지만, 가해학생들은 “길어야 소년원 2년”이라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법에 따르면, 19세 미만이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러도 15년의 유기징역(특정강력범죄는 20년)으로 처벌된다. 또한, 10살 이상 14살 미만의 소년을 ‘촉법소년’으로 분류하고, 형사처벌 대신 사회봉사,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결국, 소년원 송치가 촉법소년에게 내려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분이지만, 이마저도 보호기간이 2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렇듯 10대들의 범죄행각은 날로 흉악해지는 반면 그에 상응한 형사처벌은 불가한 현실에서 최근 소년법을 폐지 또는 개정하여 소년범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의 형사책임연령을 12세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소년법을 폐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최근 법무부의 촉법소년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의 소년법 개정안이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낮춰 형사처벌의 대상을 넓히는 것만으로, 10대들의 범죄가 감소할지는 의문이다. 소년이 아직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년을 처벌하기보다는 교화하여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소년법 개정의 큰 틀이자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10대들은 어린 시절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하고 가정폭력 등에 노출되는 등 비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쳐 범죄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소년법 개정은 효과적인 교화 프로그램의 정립은 물론이고, 소년이 재범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법률뿐 아니라 교육·사회복지·의료서비스까지 모두 연계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사회적 대수술이 되어야 한다. 소년범죄를 엄벌주의로 다스리는 것은 소년전과자를 양성하는 악순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 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소년에게만 부담토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비겁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여름철 휴가, 안전계획도 함께 세워야

야외장소 물놀이사고를 줄이기 위해 매년 지자체마다 해수욕장과 산간, 계곡 등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안전교육 보급을 하고 있지만, 물놀이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다.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6년간 물에 빠지는 사고로 293명이 사망했다. 물놀이 사고의 44%는 여름철에 발생했으며 12세 이하 어린이 사고는 57%나 됐다. 어린이의 경우 익수사고 발생률이 55.8%로 성인 38%의 1.5배 수준에 달했다. 또한 사망사고 중 약 81%는 바다·강·연못 등 야외장소였고 수영장 등 실내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적었다. 실내장소는 안전관리계획을 세워 제한된 구역 내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위험지역 관리 등을 실시함으로써 물놀이 안전사고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야외장소의 경우 이용객의 느슨한 안전의식과 안전계획 미비, 부족한 현장 안전요원 등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야외 물놀이를 계획하고 갖고 있다면 몇 가지는 꼭 기억하고 떠났으면 좋겠다. 물놀이 사고유형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흔히 사람이 물에 빠지면 ‘도와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허우적거릴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물에 빠지면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물 위로 떠오른다. 그 상황이 너무나 조용하기에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물에 빠졌는지 아무도 모른다.특히 영유아 경우 물장난을 하다 찰나에 얼굴부터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녀가 수심이 깊은 물에 빠지면 급한 마음에 자녀를 구하러 물속으로 뛰어들어가곤 하지만 익수자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잡아당기는 본능이 있어 구조하러 들어간 사람마저 2차 사고를 당할 가능성 높아서 꼭 주변에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리고 구조를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물놀이 장소를 확인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행동수칙을 정해 물놀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물놀이 특성상, 휴가철을 맞아 놀러 간 장소는 대부분 낯선 곳이라 쉽게 대처하기 어렵고 악천후까지 겹치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디가 위험한 곳인지, 수심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꼭 확인한다. 가족 구성원간의 행동수칙을 정할때는 함께 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도록 간단하게 만든다. 가령 ‘사전에 물놀이 안전수칙을 꼭 지키고 안전요원 지시와 경고방송에 따르고 사고가 발생하면 바로 119에 신고한다’는 등의 행동수칙을 만들어 공유한다. 행동수칙이 있다면 사고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천106명 중 60%가 7월 말, 8월 초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응답했다. 벌써 마트에선 여름휴가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주말엔 고속도로에 차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휴가계획은 세워도 정작 자신과 가족을 지킬 안전계획을 세우는 일은 아직 생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즐거워야 할 여름휴가가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사전에 안전계획을 세우고 여름휴가 떠나자.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산산조각을 줍고 있는 자유한국당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란 시가 있다.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이 시를 보면 산산조각을 줍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떠오른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유한국당과 정의당이 거의 같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던 DJ의 말이 떠오른다. 1달 전 지방선거는 보수 유권자는 있으나 보수정당이 없는 선거였다. 참패 이후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한심을 넘어 절망 그 자체이다. 무릎 꿇는 사죄 퍼포먼스도 이제 약발이 다했다. 요즘 원내 정당으로 변신이니, 비대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해 전권을 주느니 하면서 부산을 떨지만 국민에게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진부하기 때문이다. 산산이 부서진 자유한국당이 살길은 산산조각을 태워 재로 만드는 길뿐이다. 국회 원구성이나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기대하느라 간을 보기 시작하면 진짜 끝이다. 상대방의 자살골을 노리는 축구팀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사건 이후 소위 보수는 “이제 진보좌파는 끝났다”고 자만했다. 세월호와 최순실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돌발적인 일이 아니었다. 무능, 위선, 욕심, 허세, 궤변, 안일, 구태 같은 말들이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단어였다. 처참할 정도로 무너진 이 나라의 보수 정당에게 희망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과거에 국민이 걱정했던 것은 일당독재였다. 균형을 맞춰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고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자유한국당은 희망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산산조각 줍지 말고 다 태우라고 했는데 계속 이 모양이다. 이번에 정치에서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한다. 다음번 총선 불출마라는 애매한 말로 넘어가다가는 진짜 끝장이다. 두 가지 길이 있다. 당을 해산하고 모두 무소속으로 남는 길. 다른 하나는 저승사자보다 더한 사람이 와서 당을 뼛속부터 다시 만드는 일. 당(黨)이라는 울타리 없이 힘들다는 것도 잘 안다. 한국당 의원들 개개인을 보면 버리기 아까운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쇼가 필요하다. 국민이 깜짝 놀랄 만큼 강력한 쇼 없이는 힘들다. 당을 해체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외부에서 영입한 비대위원장이 맘에 안 들면 분당 수순으로 갈 공산이 크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비박, 친박 난리치는데 비대위원장도 쉽지 않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현할 정치세력이다. 아무리 한국 정치가 후진적이라 해도 정치 또한 고도의 전문성과 노회함이 필요하다. 혹시 자유한국당 의원 중에 ‘시간이 지나면 국민이 잊고 용서해 주겠지’라고 잔머리 굴리면서 산산조각을 맞추려고 하다가는 진짜 끝장이다. 꼭 보수가 아니어도 나라가 균형 있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하늘에서 누가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는 차 뒤에 붙일게 아니라 자유한국당 의원들 이마에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지역 일꾼’ 목민관에게 바란다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지난 1일자로 민선 제7기 지방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지자체장, 지방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됐다. 인천은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국정지지도를 바탕으로 박남춘 인천시장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10곳 중 9곳, 시의원 37명 중 34명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 진보 성향의 도성훈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됐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6·13 지방선거 이후 처음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돌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문돌이’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 당선자들을 일컫는 말로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 덕분에 당선됐다”는 뜻에서 따왔다고 한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대거 당선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탄돌이’라고 불렀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과연 문 대통령이 참석하고 주재하는 공식 회의석상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그 적절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여권 일각에서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는 평화 블랙홀이라는 초대형 이슈 속에 후보 자질론은 모두 실종되고 야권은 맥없이 끌려다녔다. 이처럼 후보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지방정부가 단체장과 지방의회 모두 민주당 일색으로 재편되면서 앞으로 발생할 각종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지방의회를 특정 정당이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어 지방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민정수석이 악역을 맡아 달라”고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조국 민정수석은 “하반기에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상대로 감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방 비리를 중앙정부가 나서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지방분권이라는 지방자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인천으로 눈을 돌려보자. 과거 민선 5기 송영길 시장 비서실장이 재임 중 5억 원의 뇌물을 받고 구속, 실형을 선고받았고 민선 6기에는 자유한국당 소속 현역 시의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의원직을 상실했다. 교육감 역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나근형, 이청연 교육감 모두 비리로 재판을 받고 수감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권력은 집중되기 쉽고 집중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영국의 정치가 액튼(Acton)의 말처럼 지방정부 비리에는 여·야,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 특정 정당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진 민선 7기 시정부가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고 청렴한 지방정부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유권자인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상황으로 지자체장, 지방의원들의 기본 자질과 자정 능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0년 전인 1818년에 완성된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지방행정의 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 12부 중 제2부 율기(律己) 편에서 지방관리의 바른 몸가짐 칙궁(飭躬), 청렴한 마음 청심(淸心), 그리고 청탁을 물리치는 것을 뜻하는 병객(屛客) 등에 대해 잘 이야기하고 있다. 다산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목민관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옛 선현의 지혜가 담긴 ‘목민심서’, 이번에 취임한 당선자들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일독을 권한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끝이 보이지 않는 보수 교육감 후보들의 이기주의

6·13선거도 어김없이 예상대로 적중했다. 전국 17개 지역 교육감 선거에서 대구, 경북, 대전을 제외한 14개 지역에서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싹쓸이했다. 지난 2014년에도 17개지역중 4개 지역에서 보수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것과 비슷하게 철저히 보수진영은 괴멸됐다. 두말할 것 없이 진보진영은 단일화했고, 보수진영은 이기주의로 단일화에 실패한 결과이다. 인천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2014년에는 보수 3명 진보 1명이 출마한 결과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인 이청연 후보가 31%의 득표율로 교육감에 당선됐다. 나머지 보수 후보 3명의 득표율은 69%였다. 보수지지 유권자 69%가 31%에 진 것이다. 이번 6·13선거도 대동소이하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인 도성훈 후보가 43%로 당선됐고, 보수 2명의 합친 득표율은 56%였다. 이 역시 56%가 반대하는 43%가 당선된 것이다. 교육감은 사립학교 설립 인가권, 공·사립 학교의 지도 감독권과 장관과 공동으로 행사하는 포괄적 지도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교직원 임용권을 행사한다. 이같이 막강한 권한을 쥔 교육감이 정치적 편향으로 교권을 휘두른다면 이 나라 교육은 방향타 없이 배가 산으로 갈 것은 뻔한 일이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자신들의 과거 침략적 만행을 미화시키고 정당성을 부여해 1억 국민의 통일된 국가관을 형성해 두터운 애국심을 도출해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감 선거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직선제로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동시 치러진 시·도지사 득표율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유·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유권자 외 다른 유권자들에게 지금의 현행 교육감 선거제도는 교육감 출마자도 모르고 하는 투표다. 이 같은 깜깜이 선거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한국교원단체연합회는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헤친다며 헌법소원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 수장(首將)을 뽑는 선거가 과열 혼탁해지면서 교육정책은 무시된 채 교육이 정치 도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답은 나와 있다. 보수 교육감 후보들이 단일화하지 않으면, 백전백패(百戰百敗)다. 지난 20년간 이를 증명해 준다. 교육감 직선제 10년. 선거 때마다 보수후보 단일화를 위해 보수 인사들로 구성된 단일화 추진 단체가 생겨 각고의 노력을 해오고 있으나 진보진영은 단일화되고 있는 반면 보수진영은 단일화를 실현한 적이 없다. 이번 선거에도 ‘인천 교육을 위한 좋은 교육감 후보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종교·교육·문화예술·여성계를 비롯한 인천의 시민단체 등 각계인사 300여 명이 모여 보수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끝내 단일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교육감 정책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그만큼 교육감이 가지고 있는 권력은 막강하다. 세상사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당선인에게는 축하와 박수를, 낙선인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이 새롭게 떠오른다. 김민기 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인천시론] 자연재난에 민관이 합심해야 한다

어느덧 여름의 마지막 절기인, 큰 더위를 일컫는 대서(大暑)가 오고 있다. 날씨가 몹시 덥고 큰 장마가 지는 시기라 자연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실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재난을 대비하는 민관에 6월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7월23일 인천 원도심을 중심으로 물난리가 난 것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불과 1시간만에 기습 폭우로 남동구, 남구, 부평구 일대 주택과 상가가 물에 잠겼다. 반지하 주택과 상가 등 895채가 물에 잠겨 1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변 도로에서는 물이 제때 빠지지 않아 쓰레기통과 폐타이어가 떠다녔다. 순식간에 도로 기능은 마비됐다. 게다가 유례없는 폭염으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노인의 경우 청·장년보다 각별한 관리를 요하는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온열질환자 1천574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397명으로 25%나 차지했다. 또 지난해 폭염으로 숨진 11명 중 만 65세 이상이 절반을 넘었다. 이에 인천시는 지난 7일 올해 집중호우, 태풍 등 여름철 자연재난을 대비해 시·군·구, 유관기관 등 재난업무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8년 여름철 자연재난 합동 방재대책 회의’를 개최했다. 하수관로 정비와 침수우려 취약도로, 재난발생에 대비해 재해구호물자 확보 등으로 대비하고 ICT기반 재난현장의 피해상황과 상황실을 동시에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모바일 현장대응 시스템을 갖췄다고 한다. 또한 폭염대책에 대해서도 ‘2018 폭염 대응 종합대책’을 수립해 무더위 쉼터 688개소를 정비하고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재난도우미 5천192명을 배치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119 폭염 구급대를 별도로 운영하고 온열 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전문병원도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장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걸 우선순위로 두는 것 같다. 관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재난에 취약한 시민들을 언제든 돕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 자연재해 등 발생 시 재난피해를 최소화하고 시민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재난구호, 재건복구 활동 등을 맡고 있다. 그래서 각 시도 지역별 적십자사는 재난훈련을 통해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인천적십자사는 지난해 경험한 재난현장 상황과 복구, 지원에 대한 논의와 개선방안 등을 훈련에 반영해 풍수해, 폭염피해 등을 현장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관기관, 봉사원 등이 참여하는 ‘재난구호훈련’을 지난 15일에 실시했다. 또한 매년 폭염으로 고통받는 동구, 부평구 쪽방촌 등에 대한 긴급지원활동에 대한 현장경험을 공유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제 남은 재난대비는 현장상황을 정확히 판단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민관은 재난대응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조직해 합심해야 한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를 거울삼아 상호 협력해 첫째도 대비, 둘째도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절대 소홀해선 안 된다. 망우보뢰(亡牛補牢)라는 사자성어와 같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기 전에 언제나 준비해야 한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소고

“법관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이다.”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의 퇴임사 중 한 구절이다. 하지만 재임 기간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는 퇴임사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특별조사단이 찾아낸 문건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 ‘VIP(박근혜 전 대통령)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등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법부가 얼마나 권력의 눈치를 봤는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사법부는 사실상 상고법원 설치의 결정권을 지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협조를 얻기 위해, KTX 승무원 사건,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 약 20건의 재판에 대해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려 노력한 증거라며 제시하기도 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된 KTX 승무원들, 정리해고를 당한 쌍용차와 콜텍의 노동자들 모두 원심에서는 승소했으나, 대법원에 이르러서는 모두 패소했다. 긴급조치 9호에 대한 국가배상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며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에게는 지난 군부독재 시절 강압적인 권력에 의해 법원이 휘둘리고,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희생양을 만들어 낸 아픈 역사가 있다. 국민이 아닌 권력의 편에 선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옥살이를 한 사람들은 뒤늦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거나, 잃어버린 청춘이 돌아오지는 못한다. 하지만 작금의 재판거래 의혹은 사법부 스스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맞춤형 로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사법부 내부에서는 위와 같은 의혹에 대한 해결방안을 두고 수사의뢰를 하자는 입장과 사법권 침해가 우려되니 사법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중이다.하지만 위와 같은 사법부 내 논란을 지켜보면, ‘국민’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스스로를 성역으로 만들어 국민이 든 회초리를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수사기관이든 국회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아직도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푸는 열쇠를 사법부가 꼭 쥐고 국민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기를….” 어쩌면 국민이 그리고 사법거래의 대상이 된 판결의 당사자들이 원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 달라는 소박한 바램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바램이 산산이 무너진 지금, 사법부는 더 이상 스스로를 성역으로 만드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정치과잉시대의 소확행

눈만 뜨면 북미정상회담, 드루킹 댓글조작,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패악질, 네이버 뉴스 갑질장사 등으로 어지럽다. 원래 세상은 혼란하고 시끄럽다고는 하나 우리는 정도가 지나치다. 특히 정치과잉이다. 외국에 한 열흘 정도 나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보면 누구 구속, 몇 명 사망으로 도배돼 있다. 한국에 10여 년 살다 자기 나라로 돌아간 나의 일본인 지인은 심심한 일본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시끄럽고 거칠고 지저분하고 유도리(원어는 유토리: 여유라는 뜻이지만 약간의 융통성 내지 얼렁뚱땅) 있는 우리나라가 너무 그리웠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좋게 해석하면 역동적인 나라로 들린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전 세계에 유례없는 비약적인 압축성장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독립, 분단, 전쟁, 기근, 독재, 민주화를 거치며 우리 역사의 가장 자랑스런 시기를 보냈다. 아직도 이념, 양극화, 실업, 저출산, 고령화, 남북문제 등 여러 어려운 일이 있으나 잘 되리라 믿고 싶다. ‘역사책에서 행복했던 시절은 백지로 돼 있다’는 말이 있다. 없다는 뜻이다. 세종대왕 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재위 중 굶주림으로 없어진 가구가 2천567호나 됐으니 굶어 죽은 백성은 만 명도 넘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면서도 방법론에 있어서 너무 차이가 난다. 해방 직후 좌우 이념대립은 저리 가라다. 서로 나만 정의(正義)이고 선(善)이라고 하니 너무 피곤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말을 많이 하는 노자(老子)가 ‘무위지치(無爲之治)’란 말을 했다. 쉽게 말하면 최고의 정치는 지도자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지금에 맞춰 해석해 보면 지도자는 ‘내가 여기 있음을 알아 달라’고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도자는 사람을 발굴하고 일을 맡기고 평가해서 상벌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고 반대하는 사람과도 협치하고 포용해야 한다. 최근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유행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썼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하얀 면내의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소확행이고 나의 장모님은 성경을 또박또박 필사하는 게 소확행이고, 어머님은 점심을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이 소확행이다. 적정한 가격에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고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소확행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국가, 민족, 통일, 양극화 등 거창한 구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보면 다 부질없는 게 많다. 정치과잉에 매몰되면 개인의 행복은 이미 멀리 가버린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저마다 기적을 보여줄 것처럼 난리이나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국민의 작은 행복을 책임져 줄 사람이 그립다. 너무 설치지 않으면서.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여론조사와 대수의 법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갑작스런취소 선언으로 꺼진 듯했던 북미정상회담의 불씨가 불과 하루 만에 되살아나면서 북미 간 실무 대화가 재개됐다. 지난 2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극비리에 만나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는 등 파격과 반전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파장과 이해득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향배에 따라 지방선거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북미회담 취소 발표 이전에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지방선거에 ‘꼭 투표할 것’이라는 응답이 4년 전보다 8%p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70%대 초반으로 여전히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 역시 50%를 웃돌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이번 선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는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대승할 때보다 민주당 분위기가 더 좋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일까? 후보등록일인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조작된 가짜 여론조사가 언론을 통해 기승을 부릴 것”이라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의 여론조사가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인들의 선거 운동에 악용된다며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통계학 용어 중에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란 말이 있다. 혹자는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왜 자꾸 나한테 일어날까에 대한 설명으로해석하기도 하지만, 수학적 확률과경험적확률의 관계를 나타내는 정리(定理)로 통계의 가장 핵심적인 법칙이다. 즉 우연한 사건 내지 결과의 발생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반복되는 수가 많거나 표본 수가 크면 클수록 일정한 수준으로 수렴하게 되고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즘 이런 통계법칙을 적용하지않고충분히 크지 않은 표본에서 추출한 엉터리 통계와 어설픈 확률이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유권자의 판단을흐리게만들고 있다. 낮은 응답률, 유·무선 전화와 통계보정의 신뢰성문제, 응답자의 정치성향 비대칭성, 설문의 항목과 방식 등여론조사에 대한의심의 눈초리와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전 6일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유권자로 하여금 우세해 보이는 쪽을 지지하게 만드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불리한 편을 응원하고 투표하게 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 사표방지 심리, 침묵의 나선 효과 등 국민의 진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앞으로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까지 각종 여론조사가 실시된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를 외면하거나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맹신해서도 안 된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다.여론조사에 휘둘리지 않고정책과 인물을 꼼꼼히 살펴소중한 자신만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를기대해 본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법은 무엇인가? 법은 소수 법조인들이 향유하는 지적 산물이 아니다. 어쩌면 법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규범을 활자화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변하고 국민의 생각이 달라지면 그에 맞춰 법도 변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아동학대를 강력히 처벌하고 그중에서도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해 엄히 다스리는 것은,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속 상흔이 아이들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서적 학대는 성장과정 내내 아이를 괴롭히고, 그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했다. 최근 대법원은 만 2세의 아이들을 ‘찌끄레기’라고 불러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육교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해당 보육교사들이 생후 29개월 된 유아에게 “아휴 찌끄레기 것 먹는다” 혹은 “너는 찌끄레기”, “빨리 먹어라 찌끄레기들아”라고 말하는 등 모욕적인 표현을 한 점은 분명히 하지만 만 2세에 불과한 피해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잘 알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찌끄레기란 ‘찌꺼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사람에게 찌꺼기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모욕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영아는 찌끄레기라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정신건강의 위해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시대로라면, 잘 모르는 외국어로 욕설을 해도, 상대방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못 알아듣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이야기는 아이들을 인격체가 아닌 사람 형상의 무언가로 보는 것과 같다.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될 아이들에게 ‘찌끄레기’라는 막말을 일삼은 보육교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앞으로 보육현장에서 벌어질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이렇듯 현실과 법은 때때로 큰 괴리를 보인다. 단돈 2천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버스기사는 17년간 아무런 문제도 없이 성실히 근무해 왔음에도, 법원으로부터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아야 했다. 법원은 2천400원을 횡령한 게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라고 했다. 이에 반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한 대기업 총수는 36억원의 뇌물 혐의가 인정되었음에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일반인이라면 몇 천만원의 뇌물만 받아도 실형이 나오는 현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법이 아닌 사람의 문제다. 국민이 법에 대해 불신을 가진 것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시대를 사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이라면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는 법집행이야말로 진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찌끄레기’ 막말을 한 보육교사들은 분명 법적으로는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무죄를 선고받는 순간 대다수 평범한 국민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축하한다. 찌끄레기들아!”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그리운 고향, 그리운 가족

지난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날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과 종전 선언, 종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등 추진키로 하고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에서 밝힌 ‘H 경제벨트’로도 불리는 환서해권, 환동해권, DMZ를 가로지르는 접경지역 3대 경협으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환서해권은 교통, 물류, 산업 벨트로 인천과 직결된다. 실제 2000년대 초 인천-남포항 해상운송이 있었고 지리적으로 북과 가까운 인천이 남북경협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기에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역사회가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도 효과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더 시급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으로 인천지역만 하더라도 매년 200여 명 가까이 줄고 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엔 5천900명, 2015년엔 5천599명, 2016년엔 5천330명, 2017년엔 5천84명, 현재는 4천794명밖에 남지 않았다. 2005년 8천442명과 비교해볼 때 벌써 절반이 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적십자는 이산가족 상봉 외에도 매년 명절에 고령 이산가족을 선정해 위로방문을 하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고향의 기억과 가족과 헤어진 마지막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 애타는 분이 있는데 올해로 93세, 이병호 할아버지다. 지금도 자나깨나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헤어질 당시, 4살된 딸이 “아빠”하고 외치던 게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게 마지막 딸의 모습이었고 그게 마지막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65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간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리면 추첨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자가 선정되다보니 매번 상봉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까지 차례가 오겠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딸을 만나길 소망했다. 과거 300~400명씩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로는 피맺힌 응어리를 풀 수 없다. 한 매체를 통해 이산가족 생존자 80%가 금강산 외 다른 면회소가 필요하다고 조사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지금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있어야 한다. 피를 나눈 혈육간 만남엔 이념도 정치도 개입할 수 없고 인도주의만이 적용돼야 한다. 문화예술, 학술교류, 경제협력 등 중요한 사업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통한의 생이별을 더 이상 바라만 봐선 안 된다. 회담결과 공동발표 후 만찬이 생중계됐다. 이내 만찬장에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노래 가사 말처럼 이산가족에게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었고 냇가에 수양버들이 춤추는 동네였고 그 속에서 놀던 동네였다. 그리고 그 고향에 부모, 형제가 있다. 이들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남북관계 개선 이후 가져올 경제적 효과로 어느새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하루빨리 이산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법고(法苦)와 검경수사권 조정

석가모니는 인생의 네 가지 고통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들었다. 요즘은 4개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옥고(獄苦), 실직고(失職苦), 이혼고(離婚苦), 파산고(破産苦)다. 작년에 타계한 마광수 교수는 ‘운명’이란 저서에서 자신이 겪은 옥고(獄苦)에다 3년 동안의 재판까지를 포함해 법고(法苦)라는 새 단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법고(법으로 인한 고통)를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출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곳에 오지 마시오”라고 했다. 남들보단 훨씬 나은 환경에서 수감생활을 한 사람도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감옥까지는 아니어도 각종 고발 고소 사건으로 경찰과 검찰에 불려가 보면 돈과 시간에 따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법고를 겪지 않고 한평생 산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사실 국민은 별로 관심이 없다.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사종결권, 영장청구권 등 어려운 말을 해봐야 짜증만 난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시대의 흐름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문제는 그 대안이 경찰이라는데 있다. 경찰이 표정관리, 입 조심할수록 국민은 불안하다.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적은 숫자의 검찰이 난리치는 게 많은 숫자의 경찰이 난리치는 것보다 낫다고 극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로 넘어갈 거라면 한번 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는 여론도 있다. 문제는 국민이 실험대상이 된다는데 있다. 사실 검·경도 할 말은 많다. 현실 권력에 대항해 제대로 수사한다는 것은 자리를 내놓기 전에는 어렵다. 전 FBI 코미 국장도 트럼프에 대들다 경질되지 않았던가. 결국 인사의 독립과 과잉수사의 금지 등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가능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에 초점을 맞춰야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순 권한 이동은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어차피 경찰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거라면 경찰권 비대화를 막는데 전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 준비가 과연 되어 있을까? 우리는 검찰이나 경찰에 사건이 연루되면 우선 그쪽에 아는 사람이나 소위 쎈(?) 변호사를 찾기 마련이다. 구속이라도 되면 몇천만 원은 기본이다. 돈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재판이 진행되면 비용과 시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토정비결에도 구설(口舌)이나 송사(訟事)를 조심하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기에 착하게 살라는 말이 나오는데 착하다고 법고(法苦)를 피한다는 법은 없다. 대학 병원장이 자기 병원에서 암수술을 받고 입원하면서 느낀 것을 책으로 냈다. 명색이 병원장인 나도 환자가 돼보니 병원행정이 이렇게 불합리하고 화가 나는데 일반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반성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 겪는 고통은 칼자루 쥔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이 돼 보면 많이 바뀌지 않을까. “정의(正義)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똑같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 실현된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어린이와 함께하는 안전한 나들이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어린이를 동반한 야외활동을 할 경우 주의해야 할 질환들은 ‘살인 진드기’로 유명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 쯔쯔가무시병, 그리고 유행성 출혈열이 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린 뒤 6∼14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이 3∼10일간 지속된다. 이때 혈소판과 백혈구 감소가 나타나며 구역·구토·설사 등 소화기 증상이 동반된다. 발생 지역은 우리나라 전역이지만 특히 경북·강원·제주에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경남과 경기 순이었다. 5∼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하는데 7∼9월 사이가 가장 위험한 시기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는 중국·일본·한국 3개국에서 발생이 보고됐고 2013년 이후 3년간 우리나라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의 사망률은 27∼47%로 매우 높았다. 쯔쯔가무시병은 균에 감염된 털진드기의 유충에 물린 뒤 1∼3주의 잠복기를 거쳐 급성으로 오한·발열·두통의 초기 증상으로 시작돼 기침, 구토, 근육통, 복통 등이 동반된 발진과 딱지가 생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생하며 특히 활순털진드기 분포 지역인 전남·경남·전북·충남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9∼12월중 벌초를 하면서 산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이후 2017년까지 연간 1만여 명이 넘는 발생 건수를 보이고 있다. 유행성 출혈열은 한타바이러스에 속하는 야외형의 한탄바이러스, 도시형의 서울바이러스, 2012년 발견된 제주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들쥐의 소변에 섞여 나온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퍼지면서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잠복기는 대개 2∼3주이며, 발열기, 저혈압기, 감뇨기, 이뇨기, 회복기의 5단계를 거친다. 감염된 사람의 13에서 증상이 나타나고 절반가량이 위중한 증상을 보이며 사망률이 7%에 이른다. 발생시기는 10∼12월에 많지만 5∼6월에도 건조하면 발생이 증가하며 들쥐뿐 아니라 도시 지역 집쥐나 실험실용 쥐에 의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가능하면 풀밭에 앉거나 눕지 말아야 하며, 특히 잔디가 곱다고 맨발로 다니는 것은 금물이다. 아파트 단지 등에서도 풀밭이나 잔디에 이불을 널어 말리지 않아야 하며, 야외에서 돌아온 뒤에는 반드시 옷을 털고, 가능하면 세탁하는 것이 좋다. 특히 풀밭에서 어린이들이 용변을 보지 않도록 하고 등산로를 벗어난 산길을 피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걸을 때엔 길의 중앙으로 걷도록 한다. 또한 피부 노출을 줄일 수 있도록 소매는 여미고 바지는 양말 안으로 집어넣어 옷을 입히거나 다리를 완전히 덮는 신발을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벌레에 물리면 가려워 어린이들은 더 심하게 긁게 되는데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긁다보면 2차 세균감염이 발생하므로 손을 대지 말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좋다. 최근 어린이를 동반해 다양한 형태의 캠핑을 즐기는 가족이 늘고 있는데, 앞서 설명한 장소들과 유사한 조건의 장소에 다녀온 후 약 1주일 정도가 지나 고열을 동반한 다양한 증상이 발생한 경우 가까운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인천시론] 궤도 정치

댓글 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연일 시끄럽다. 파워블로거이자 경제적공진화모임 대표인 김모씨, 필명 드루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들이 네이버 뉴스 기사 댓글 등 인터넷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경수 의원이 관여됐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지난 대선 때에도 부정한 여론 조작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날로 커지고 있다.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된 ‘드루킹’ 김모씨는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느릅나무’라는 유령 출판사를 설립하고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온라인 활동을 벌였다. 이후 그 대가로 김경수의원 등 여권 인사들에게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대한 인사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반감을 품고 반정부 댓글 조작을 벌인 것이라고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권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여론 조작 가능성을 의심하고 이와 관련해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로 드루킹의 댓글 조작이 있었던 지난 1월 중순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비판’ 관련 기사에 1분만에 ‘공감’을 412건 폭증하게 하는 등 조회 수, 추천 수, 댓글 조작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10% 가까이 급락했다고 한다. 즉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댓글 조작 등을 통해 여론을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실제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심리학자들은 사소한 댓글이라도 읽는 순간 뇌에 자동으로 해당 정보가 사실로 입력되기 때문에 타당성이 매우 낮고 아무 근거가 없는 댓글도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전체 이용자의 0.9%에 불과한 사람이 댓글에 참여하고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댓글 조작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는 상대 후보를 쓰러뜨려야만 내가 산다. 그래서 선거를 흔히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병법가인 손무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손자병법’ 시계편(始計篇)에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란 말이 있다. ‘전쟁이란 궤도, 즉 속이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런 간계, 속임수가 지금 우리나라 선거, 정치판에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인터넷 세상 속에서 말이다.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다수 선량한 국민을 기만하고 여론을 호도한다. 그러나 궤도, 속임수를 써서 당장 눈앞의 선거 전쟁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편하기만 하다. 지난 제18대 대선에서는 국가정보원이 댓글 알바 또는 직원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급기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실형을 받고 구속됐다. 6·13 지방선거가 이제 50여 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기 또는 소속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일단 당선만 되고 보자는 식의 인기영합적 헛공약을 남발하는 거짓말쟁이 후보는 안 된다. 훌륭한 국가는 훌륭한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처럼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볼 때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일상 속 미투운동, 그 거대한 파도를 기대하며

올 한해 미투운동(#Me Too·나도 고발한다)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강력한 바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작금의 미투운동이 용두사미처럼 한순간 바람으로 그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미투운동은 끝없이 일렁이는 큰 파도가 되어야 한다. 이는 미투운동의 주요 대상이 소위 갑을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으로,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부조리한 권력관계가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일반적인 성폭력이 폭행이나 협박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 힘을 수단으로 함에 반해 미투운동에서 문제가 되는 성폭력은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그 수단으로 하기에, 피해자 스스로도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증거 역시 확보하기 어렵기에 처벌이 쉽지 않다. 결국, 피해자들의 용기 어린 미투가 없다면 세상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는 미투운동을 온전히 피해자와 피해자를 응원하는 국민만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다. 우선 일상 속 미투운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은 형법상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이다.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려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형법은 공공의 이익이 인정될 경우에는 이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고 있으나, 만약 미투운동의 상대방이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위와 같은 공공성이 인정될 여지는 적어진다.위 규정을 폐지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엄격한 조건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성립될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컨대 현행 형법은 신문·잡지·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비방의 목적’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토록 하여,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이를 일반인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적용한다면, 일상 속 미투운동 역시 더욱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비방의 목적’이 있을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되므로, 미투운동의 가면을 쓴 거짓된 폭로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성희롱을 사유로 해임된 대학교수를 복직시키라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며, “법원이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며 “성희롱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는 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할 것을 지적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가해자 중심적 문화·인식·구조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하였다. 결국 위와 같은 사법부의 판결은 미투운동의 거대한 물결에 응답하는 사법부의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한다)인 것이다. 이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법 개정으로 응답해야 할 때이다. 국회의 ‘위드유’는 언제쯤 선언될까 기다려본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의료복지 통합시스템이 필요하다

4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복지사각지대를 찾아 돕고자 하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갑작스런 질병, 실직, 이혼 등 경제적 위기에 놓인 가정을 통칭 ‘위기가정’이라 말하고 민관이 합심해 발굴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절대빈곤율은 유엔 기준 7%였지만 정부로부터 의료지원을 받는 의료급여자는 3%에 불과했다. 생활고로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 가기를 포기한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는 400만명이 넘었다. 특히 2017년 사회보장정보원의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따른 지원현황’을 보면 복지 고위험 대상자 신규 발굴자 중 22.1%만 지원을 받았다.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의료와 복지를 연계해 줄 전문인력과 통합시스템은 여전히 절실한 상황이다. 흔히 복지사각지대는 정부의 지원이 닿지 않는 것으로 본다. 반대로 얘기하면 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될 형편이었지만 갑작스런 사유로 인해 정부지원이 꼭 필요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의료문제에서 긴급한 복지개입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그간 적십자에서 지원하는 위기가정 긴급지원을 수년간 수행하면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들과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 대부분 지극히 평범했지만 갑작스런 질병으로 인해 생계위험으로 내몰린다는 점과 위기를 모면했을 땐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갖고 있다. 다양한 위기 가운데 의료는 특히 그렇다. 대개 가족구성원 중 누군가가 아플 때 가까운 친지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안면이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더는 도움을 구할 곳이 없을 땐 아픈 부모, 형제, 자식을 낫게 하려고 무리하게 신용대출을 받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다. 결국, 행정기관과 모금기관 개입시에는 밀린 병원비는 해결할 수 있어도 그간 쌓인 빚은 고스란히 남은 상태가 되곤 한다. 따라서 늦은 시점의 지원은 일시적 위험을 모면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정보를 가진 일선병원과 지원체계와 프로그램을 가진 수많은 NGO단체, 행정기관은 의료에 있어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간에서 모금하고 긴급지원 하면서 의료기관과 제대로 연계된 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의료기관 복지연계 담당자가 이 일을 전담해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현 시스템이 아닌 의료-복지가 하나로 연계된 통합복지시스템으로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사회망은 부재하다. 며칠 전 충북 증평에서 송파 세 모녀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마니였던 남편이 죽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배우자와 4살된 딸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 “혼자서 너무 힘들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을 적었다. 다시금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울리고 있다. 민관이 함께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프로그램을 현실에 적용하지만 여전히 근본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 사회적 아픔을 딛고 위기가정의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해 성숙한 시민사회로 한걸음 내닫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이제 ‘우리’를 다시 배울 때

한반도에서 일고 있는 ‘바람’은 태풍일까, 순풍일까? 광풍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월일지, 5월일지? 우리의 숨을 죽이게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꾸려지고,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과 태권도 시범단, 김영남과 김여정(특사) 폐막식 참가, 패럴림픽 북한팀 참가, 문재인 대통령 특사 북한 파견,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 확정,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그 와중에 시진핑과 김정은의 만남. 남측예술단 평양공연까지, 지금 계절은 분명 봄인데 봄바람이 아니라 태풍 급 회오리가 휩쓸고 있다. 전 국민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 엄중한 국면에 느닷없이 국민감정을 무참하게 만드는 노벨평화상 얘기가 튀어나와 우리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대한민국직능포럼이라는 ‘뚱딴지’가 ‘문재인 대통령 노벨평화상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첫 발기인 모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무수한 ’펀치’를 맞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 3자 공동수상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우리 국민이 이토록 유치한가? 이토록 치사했나? 교언영색의 아첨꾼들은 여전히 권력 주변을 맴돌고 있구나!? 자괴감이 일었다.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 대통령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성급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일렀건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건 무엇보다 국민의 여론이 뭉쳐야 앞으로 휘몰아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에 대처할 힘과 지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대화가 오갈 때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로 정권을 흔들고 사회(여론)를 사분오열 시켜 놓겠는가! 그 유언비어는 느슨한 국민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남북대화가 오가고 한반도 비핵화가 탁자에 오르면 저들의 강점인 능수능란한 선전선동은 정권과 국민 사이를, 정치권을, 더 나아가 한미 동맹을 파고들어 이간질 해댈 것이다. 여기 휩쓸리면 내부 혼란과 충돌로 무너질 수도 있다. 국민이 강해야 한다. 힘은 ‘주먹’의 크기와 세기에 있지 않고 바른 생각, 옳은 행동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나라는 자유를 위해 피흘려 싸우고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새마을운동, 수출장려, 중동 열사의 땅에서 땀 흘려 이룬 나라다. 종북은 물론 불의와 기회주의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나라로 이스라엘을 자주 거론한다. 그들이 강한 건 바로 그들의 공동체 정신에 있다. 유대인은 개인적인 역량도 크지만 그보다는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단결력과 서로 돕는 협동정신(헤세드 정신)이 강하다. 공동체에서는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땐 물질적 도움은 물론 정보와 지혜 나눔, 인맥 소개 등 말 그대로 성공할 때까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도와준다고 한다, 위기가 닥치면 그들은 더 단단해진다. 어떤 위기도 돌파해 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에 있겠지만 무수한 민족적 고난과 형극의 역사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우리는 기회주의자가 살아남음을 체득한 모양이다. 아첨꾼은 내부의 적이다. 송수남 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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