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영혼 있는 공무원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원작으로 만든 옛날영화가 있다. 영화 제목도 같은 ‘25시’인데 1967년도에 제작되고 안소니 퀸과 비르나 리지가 주연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희생된 부부의 얄궂은 운명을 다룬 명작이다. 마지막 장면에 안소니 퀸의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는데 나는 좀 다른 장면에 주시하게 됐다. 독일군에 끌려간 남편의 행방을 찾고자 공무원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비르나 리지가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그 공무원은 열심히 종이에 메모하면서 여자의 청원에 관심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림낙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원인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딴짓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오늘의 현실과 오버랩 됐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현대 사회학의 태두 막스 베버가 관료조직을 비판하면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이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없다. 베버가 주목한 건 관료의 신분보장과 전문성이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잘릴 걱정 없이 소신껏 일해야 국민이 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버의 바람일 뿐 우리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고위 공무원 스스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라고 말할 지경이니 대다수 공무원은 침묵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나라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FBI 코미 국장에게 충성을 요구했다고 하나 코미는 영혼을 팔지 않았다. 매우 드문 경우다. 대다수 고위 공무원들은 트럼프의 말에 영혼을 다 바쳐 충성하고 있다. 최근에 그만둔 고위 공무원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영혼이 있네 없네 고민하지 말고 드러나지 않게 알아서 기어라’고 조언한다. 정권을 7번이나 겪었으니 나름대로 사는 길을 알려준 것인데 어쩐지 씁쓸하다. 위법한 상관의 지시나 명령을 거부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지난 3월2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영혼 있는 공무원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공무원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면 명문대 간다’거나 ‘운동하면 살 빠진다’와 같은 뻔한 소리다.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과 장차관만 제대로 하면 공무원은 영혼백배 뛸 사람들이다. 박근혜 정권의 영혼 없는 드라마를 펼친 주역은 청와대와 장차관과 신분보장이 안 되는 1급 공무원들이었다. 소수 사람들만 정신 차리면 될 일을 전체 모든 공무원에게 확대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 김지하 시인은 나라를 좀먹는 ‘오적(五賊)’으로 장차관과 고급공무원을 지목했다. 선견지명이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실 국장급 이하 공무원들은 나라를 뒤흔들만한 비리나 부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돈만 받지 않으면 좌천 정도로 끝난다. 영혼 있는 공무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대상은 가까운 데 있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무위무불위와 정치

필자는 최근 노자가 던지는 33가지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7.8)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세계적인 도교 철학자 자오치광 교수가 미국 미네소타 칼턴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가 정리, 번역한 책이다. 67세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오치광 교수의 마지막 유작으로 미국, 일본과 중국에서 출판돼 화제를 불러온 책이다. 노장사상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도가철학을 말한다. 도가사상이라 하면 대개 무위자연을 떠올리게 되는데, 무위(無爲)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삶을 무위자연이라 한다. 해마다 세계 트렌드가 바뀌고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오치광의 이야기는 자칫 허무맹랑하다고 보일지 모른다. ‘무위무불위’의 영어식 표현은 ‘Do nothing & Do everything’이다. 즉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든 행하는 것’의 합성어인 셈이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무위는 무엇인가를 애써 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의 규칙에 순응하는 일종의 겸손인 반면 무불위는 자연스럽게 일이 일어나도록 좋은 습관을 들이는 과정으로 규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대중의 관심과 여론에 지나치게 민감해 설익은 정책을 추진하거나, 튀는 행동과 막말을 해서라도 주목받으려 하는 요즘 정치인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에 급급하거나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반대는커녕 눈치 보기 바쁘다. 요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일을 벌인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무언가를 기획하고 준비가 되면 일단 터뜨리고 본다. 언론을 통하든 개인 SNS를 통하든. 일부 정치인은 SNS 중독증에 걸린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모든 현안에 대하여 해법을 요구받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앞다투어 먼저 대안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반면 신중한 답변을 위해 즉답을 피하거나 고심하는 경우 정책적 역량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무능한 정치인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토론은 실종되고 ‘포퓰리즘이다,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판치는 세상이다. 최근 최저임금제 인상과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기 측의 주장만 일방통행할 뿐, 생산적 토론이 아쉽다.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렵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대로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생선을 굽듯이 나라를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너무 자주 뒤집으면 생선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하거나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졸속 정책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 모습을 그려보는 건 필자만의 바람일까?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잊지 말아야 할 우리 동포, 인천에 있다

어제·오늘·내일 눈을 뜨면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 그렇게 평범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신년이 밝으면 새해 계획을 세우고 나만의 시간에 스케치를 한다. 절주를 다짐해 보기도 하고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꿈을 꿔보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결같이 하나의 소원을 꿈꿔온 이들이 있다. ‘내일’이면 반드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손꼽아 기다린 이들. 보고 싶은 부모, 형제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잊혀져가는 고향의 모습. 그 모습이 누구보다 간절한 이들은 바로 사할린동포들이다. 사할린동포의 역사는 일제의 강제징용 등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이주시키면서 시작됐다. 불행 중 다행히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이들은 이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귀환 불허와 1952년 일방적인 국적 박탈조치로 인해 사할린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그렇게 남은 한국계 동포는 후손까지 포함해 약 4만3천여 명이나 됐다. 인도적 사안 해결을 위해 1989년 7월 한일 정부의 요청으로 양국 적십자사는 사할린동포의 영주귀국, 일시모국 방문, 귀국지역방문 등 사할린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동포에 대한 지원하는 ‘사할린 한인지원 공동사업체’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한인 동포 중 우리 조국으로 귀국해 남은 삶을 보내고자 하는 분들은 영주귀국 시켜 드리고 사할린 현지 한인 동포 1세, 2세 모국을 방문한 이들은 국내에 7박8일간 체재하며 우리 전통문화와 발전한 고국의 모습을 시찰함으로써 고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일시모국 방문사업도 하였고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들을 대상으로 1~3개월간 사할린 현지를 방문해 가족과 친지와 만남으로써 제2의 이산의 고통을 줄이는 등의 지원이 이뤄졌고 약 4천여 명이 고국에 정착했다. 사할린동포 1세대 가운데 질병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요양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인천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인천 연수구에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이다. 귀국 당시 받았던 금의환향은 잠시, 현재는 간헐적으로 후원하는 시민만이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간 적십자에서는 사할린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사회 기업과 단체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삼계탕을 대접해 드리는 행사도 열고 지역 내 학생들과 사할린어르신이 함께 할 수 있는 봉사활동프로그램을 만들어 미술치료라든가 말벗봉사 등을 했다. 특히 학생들이 적십자를 방문하게 되면 꼭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 대해 소개하고 어르신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꼭 기억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후원은 줄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루가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해방된 지 7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지사 회장

[인천시론] 통, 통, 통

이런 혹한의 겨울도 있었던가 싶다. 그러나 아무리 혹한이라도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니 이제 봄은 오겠지? 남북 관계와 국제(북미) 관계로 가면 이치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해진다. 날씨가 풀렸다고 봄인가 하다가 급변한 날씨에 감기에 걸려 고생하거나 자칫 동사하는 경우도 생긴다. 지금 남북 관계가 딱 이런 모양새다. 김정은의 신년사 한 줄로 촉발된 동계올림픽 해빙 무드는 ‘신접살림’을 차릴 기세다. 우리가 언제 으르렁거렸느냐는 듯이 선수단 참가, 단일팀 구성, 공연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에 공동입장까지, 거기에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다녀갔다. 바다로 하늘로 육로로 한국의 통로를 휘젓고 내려오더니 이번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목함지뢰 사건 등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까지 폐막식에 고위급 대표단으로 내려왔다. 이제 곧 4월이 온다. 한파도 지나가고 꽃들도 피어나는 4월은 완연한 봄이다. 한숨 돌렸다 싶겠지만 긴장을 늦추기엔 이르다. 3월과 4월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있다. 근현대사에서 4월은 우리에겐 잔인한 달이다. T.S 엘리엇(황무지)이 읊은 것보다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다가오는 4월은 북핵을 둘러싸고 팽팽했던 긴장이 모처럼 남북 대화의 모티브를 잡은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까지 끝나고 맞는 달이다. 잠시 멈췄던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충돌할 경우 우리 세대의 가장 참혹한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4월 위기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훈련을 연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한국이 군사훈련 연기를 제안하면 한미 동맹에 대해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코피작전은 없다. 무력이 사용되면 문명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게 미 의회의 기류란다. 미국은 대화는 한다지만 명분 쌓기 수단일 뿐 비핵화가 아니면 의미없다며 더 강력한 제재조치(해상)를 발표했다. 4월은 문재인 정부가 맞게 될 엄중한 시기가 될 것이다. 어느 칼럼에 통(通) 통(統) 통(痛)을 언급한 걸 봤다. 통(通)으로 통(統)을 이룬다는 이 정부의 모토가 북한과만 통(通)하다가 국민에게 통(痛)을 안기고 65년 동맹(미국)을 잃고 나라를 재앙에 빠뜨리는 통한(痛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였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물론 북미 간에도 대화가 시작될 조짐은 보인다. 남북은 1971년부터 지금까지 정치(256회) 군사(49회) 경제(132회) 인도(153회) 사회문화(57회) 분야에서 647회나 회담을 했다. 그러고도 우리는 다시 또 시작하는 선에 서 있다.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정으로 들끓었던 민심은, 김영철 폐막식 대표단 초청 수락으로 극에 이르렀다. 국민을 위한 정부(한국) 맞느냐는 거다. 소통을 내건 이 정권은 출범 때 ‘쇼통’만 하고 일방적으로 내달리고 있다. 왜 남북 관계 추진 과정을 수시로 국민들과 국회에 설명하고 의견을 구해 소통하지 않을까? 전 정권 탄핵의 꼬투리가 그거 아니었나! 꿍꿍이짓이 수상쩍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혹세무민 역술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혹세무민’이라는데 요즘 대표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역술(易術)이 아닌가 싶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한가지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 역술의 기원은 중국의 주역(周易)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과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역술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하여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여기서 역술의 종류와 관련된 내용을 나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심심풀이라고 보기에는 엉터리 역술가의 폐해가 생각보다 심각하기에 이 부분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대한민국 역술시장 규모는 3∼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재미 삼아 보는 오천 원짜리 점부터 재벌들이 보는 수천 만원에 달하는 고수급 점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자칭 고수가 전하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은 다음과 같다. 과거는 제법 맞추는데 앞날은 적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자 해득(解得) 능력이 없어 남이 번역한 책에만 의존하고, 제대로 된 스승에게 공부하지 않아 수준 이하다. 품성과 인격이 함량 미달이고 돈만 밝힌다. 자칭 고수가 30년 영업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세상은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인생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위에서 함께 굴러가는 존재이기에 사주팔자를 벗어나기 힘들단다. 그러나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결과는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인 유향(劉向)은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명의 이치는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반드시 밤이 온다는 것이다. 작년 대선 전 각 역술가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SNS에 현란한 설명과 함께 예언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갈수록 좋아진다고 예언한 역술가도 상당수였다. 틀린 역술가는 이 정도도 못 맞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영업을 접는 것이 도리다. ‘아니면 말고’ 식의 뻔뻔함, 심지어는 1년 전에 예언했다면서 엉터리 허위 증거자료를 내놓는 후안무치에 법적으로 사기죄가 안 되는지 관계당국에서는 검토해 봐야 한다. 강호의 고수는 돈 받고 남의 운명을 봐주는 역술인에게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이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몇 달 학원 다니고 나서 점상 차리는 세태만큼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점을 친 대목이 17회나 나온다. 오늘날 윷점을 말하는데 나무막대를 던져 괘를 만들어 길흉을 확인하는 것이다. 장군은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를 위해 점을 치지 않았다. 어머니, 아들과 아내의 안부, 전쟁의 승패, 후원자 류성룡이 아플 때 쳤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충무공의 애틋한 심사가 가슴을 친다. 그분도 우리처럼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아플 때 병원 가듯이 힘들 때 점을 치는 일을 나무랄 수 없다.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일부 점술가들이 문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서인부대, 지역 불균형 해소해야

무술년 벽두부터 ‘서인부대’란 신조어(新造語)가 회자되고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과 경제성장률 등 일부 경제지표를 보면 인천이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2대 도시가 될 것이라며 유정복 인천시장이 화두로 던진 말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계 일각에선 ‘서인부대’가 613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거나, 시민들의 삶의 질은 간과했다는 등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인천에 유리한 자료만 끄집어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러던 터에 몇몇 통계자료를 챙겨봤다. 지난해 6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2045 장래인구추계: 시도편’을 보면 2015년 대비 2045년에 서울과 부산, 대구 등 10개 시도 인구는 감소하지만, 인천을 비롯한 경기, 세종 등 7개 시도 인구는 증가한다.서울은 이미 인구 천만 명의 벽이 깨진 지 오래로 2017년 기준 986만 명에서 881만 명으로 줄어들고 부산 역시 현재 354만 명에서 298만 명으로 인구가 크게 감소한다고 한다. 반면 인천은 294만 명에서 314만 명으로 오히려 20만 명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인구 증가가 시민들의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와 직결되는 것일까? 인천시 군·구별로 자료를 살펴보면 녹록지 않은 상황이 감지된다. 지난 11일 인천시가 추계한 자료에 의하면 인천 전체 인구는 10.53% 증가하고 지역별 인구 순위도 대폭 조정된다. 서구, 남동구 순으로 7개 군·구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감소 추세인 동구와 부평구, 계양구의 인구는 2035년까지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대비 2035년에는 동구는 -10.58%, 부평구는 -9.50% 인구가 줄고 계양구는 무려 -13.43%나 인구가 급감한다. 반부패연대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인천시 8개 구의 재정자립도 추이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년 대비 2017년 재정자립도가 떨어진 지자체는 서구, 부평구, 계양구 세 곳에 불과했다. 지역별 인구 편차와 지역 간 불균형은 주거환경, 교육여건 등 주민 생활 여러 분야에서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으로 도시기능이 집중됨에 따라 교통, 주택, 환경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상대적 소외감을 증대시키고 시민 화합을 저해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인천시는 10개 군·구가 상생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방안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만 잘 나가는 절름발이 성장으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2대 도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613 지방선거가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독불장군, 근시안적 사고를 가지고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코앞에 닥친 상황만을 모면하려는 ‘마케팅 마이오피아(Marketing Myopia)’ 정치인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당선되길 기대해 본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건조한 겨울철 화재사고 철저히 예방해야

최근 한파가 몰아치면서 인천에서 부주의 등으로 인한 화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일반주택에서도 소화기와 경보형 화재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지난해 12월29일 인천소방본부가 아파트가 아닌 일반주택에 사는 초·중학생 2천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집에 소화기나 화재감지기가 설치됐다고 응답한 학생이 전체 43%에 불과했다. 가정마다 준비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가정환경에 준비하기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정용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불과 3만원이면 준비할 수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든가 저소득 취약계층의 경우 화재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를 사놓는 게 부담스럽다. 2018년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보게 되면 1인 가구 50만1천원, 2인가구 85만4천원, 3인가구 110만원 정도다. 가령 기초생활수급 비를 받는 홀몸어르신이 한달에 20만원 정도 소득이 있다고 가정하면 소득을 제외한 기초생활수급비 30만원을 받게 되고, 월세공과금난방비를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건 불과 몇만원밖에 안 된다. 여기엔 식비가 빠진 계산이다. 게다가 정부지원에서 빠지는 복지사각지대의 경우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적십자에서는 적십자회비를 통해 각종 재난에 대비하고 유독 관심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재난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벌인 사업이 소화기 보급사업이다. 그간 적십자에서는 화재가 발생하면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보내고 심리적 지지활동을 한다. 그래서 화재현장을 자세히 볼 기회가 많다. 전소가 되는 집이 있는 반면 반소 혹은 일부 그을림으로 그치는 집이 있는데 초기에 화재 진압을 할 수 있었는지, 화재에 취약한 주거환경인지 현장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깨진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로 덧대는 집도 있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스티로폼을 깔아 막는 집이 있었다. 하나같이 생계가 어렵고 기운 없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초기 화재제압의 중요성을 알고 지난해 동절기가 도래하기 전 10월에 인천 관내 취약계층 953세대를 가가호호 방문하여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소화기를 설치하고 사용방법을 안내해 드렸다. 화재 발생 시 조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살림살이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다. 특히 취약계층일수록 화재가 나면 어디 의지할 곳도 없어 중요한 사업이라 생각된다. 지난해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원룸 밀집지역에서는 아직도 불법 주정차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소방용수 5m 이내 접근금지는 무시되고 있다. 가정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소화전이나 소화기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적다. 이제부터라도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과 안전의식 고취와 더불어 화재에 취약한 가정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지사 회장

[인천시론] 평창 평화올림픽?

민족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평화올림픽이라고? 북한이 참가하면 평화올림픽이고 불참하면 분쟁(갈등) 올림픽인가. 선수단이나 몇 명 보내면 될 일을 고위급 대표단, 응원단, 예술단에 태권도 시범단, 참관단, 기자단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그동안의 경직됐던 남북관계가 다 풀린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일촉즉발의 북핵 문제를 남북 간 대화로 풀어보겠다던 터라 돌파구다 싶어 너무 서두른다. 냉정함을 잃은 들뜬 모습이 우리 국민의 눈에도 훤히 보인다. 이 정권에게는 김정은의 신년사가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남북대화, 북핵 해결까지 주마등처럼 스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둘러서야 하나. 어딘가 서툴러 보인다. 우리는 저들에게 언제나 숨긴 망치에 뒤통수를 맞아 왔지 않는가. 이번엔 망치도 보인다. 올림픽을 자신들 정치 선전장화 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을 늦춰 보려는 술수를 부리고 있다. 저들은 어떻게 세계 각국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피땀 어린 경쟁 끝에 어렵사리 따낸 출전권을 손도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가. 동계스포츠 경쟁력이 약한 국가들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와일드카드 제도를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게 IOC의 입장이기는 하다. 북한의 참가가 스포츠를 통한 평화 실현이라는 올림픽 이념과 맞는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북한은 국제 질서에 분탕질을 한 불량 국가로 페널티 감이다. 올림픽 참가를 염원하는 진정성도 보이지 않는다. 남북대화의 목적은 남북한 간의 긴장완화, 평화정착, 교류협력 등을 통해서 민족적 화해를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정치·군사 문제를 해결하여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데 있다. 지난해 7월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남북한 군사당국 회담 및 이산가족 상봉 논의 등을 위한 적십자회담 추진에도 꿈쩍 않던 북한이 트럼프의 위협에 다급하긴 했나 보다. 올림픽을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 보려는 노력은 환영할 일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문재인 정부가 운전석에 앉기 위해 국제사회가 구축해 놓은 대북제재를 허무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앞으로 올림픽 문제를 넘어 이산가족 상봉이나 군사회담 등으로 논의를 넓혀갈 때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를 만날 것이다. 벌써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내용을 갖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저들이다. 지난번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저자세의 외교로 국민을 실망시켰음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대북문제에 우호적인 인사와 정책들로 인해 많은 국민이 이 정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남북 대화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막바지 단계와 겹치는 결정적 시기에, 그리고 우리의 동맹인 미국이 ‘3개월 시한’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미 백악관은 최대 압박 전략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했다. 과거의 실수라는 표현은 북한의 의도를 오판한 유화책으로, 경비 대주고 선전 마당 펼쳐 주고 핵개발 시간 벌어줘 온 실패의 경험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담이 이 정권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성문 앞 수레바퀴 자국

지금은 행정안전부로 이름이 바뀐 과거 내무부에서 근무할 때 얘기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구포 열차 추돌사고가 육해공에서 한꺼번에 발생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당시 내무부차관은 인위재난을 담당하던 나에게 재난단계별 행동요령과 사고방지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사무관이었던 나는 생판 처음 듣는 지시에 당황했다. 하지만, 성경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믿고 동료들과 상의한 끝에 문서 창고를 뒤져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견했다.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분이 과장 시절 손으로 쓴 보고서였다. 20년도 넘은 보고서였는데 내용이 훌륭해 제목을 ‘후진국형 인재 대응방안’으로 그럴싸하게 바꾸어 올렸더니 칭찬이 자자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후진국형 사고는 반복됐고 그것도 갈수록 대형으로 진행됐다. 2017년, 다시 25년 세월이 흘렀다. 불행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대책은 보고서에 다 있었지만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흥도 낚싯배 추돌사고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에 대통령 보고는 신속했으나 구조대 늑장출동이나 현장 대응은 미흡했다. 제천화재도 부실대응으로 너무나 안타까운 참사였다. 죽고 사는 게 완전히 운수소관인 세상이 됐다. 일련의 대형사고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런 사고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각자도생(各自圖生)만이 살길이라는 서글픈 현실이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후회도 없다. 사람 사는 곳에 사고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머리를 잘 쓰면 많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현장대응을 잘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고를 유형별로 정리해 실전 대응훈련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이런 뻔한 말을 무시해 뻔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실전대비 훈련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사고가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을 상정하고 진지함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을지연습을 한다. 거기에 보면 전쟁이 발발하면 주민들을 피난, 소개(疏開)해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나는 파주에 사는데 자유로, 통일로 다 막혀 꼼짝도 못하고 그냥 사는 집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북한 미사일이 많지도 않을 텐데 파주에 쏠리는 없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국가에서 부르면 총을 쥐든지 물건을 나르든지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락은 어디서 어떻게 받지? 별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맹자에 보면 ‘성문 앞 수레바퀴 자국이 어떻게 말 두 마리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라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수레가 좁은 성문 앞을 똑같은 자국을 따라 지나다녀 깊게 파인 것이다. 원래는 사물의 원인을 잘못 유추해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는 비유인데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잘못된 일을 반복하며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늘 하던 일이라고 여겨 만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편한 것만 찾아 매사를 임시변통으로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병폐다. 언제쯤 사고발생→위로 및 긴급대책→관계자 처벌→망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새해부턴 이런 후진국형 사고의 종식(終熄)을 보아야 할 때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공유지의 비극과 지자체 이기주의

지난 12월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원 플래닛 서밋(One Planet Summit)’ 정상회담이 열렸다. 프랑스 정부와 유엔, 세계은행이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2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행사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데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모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파리기후협약이 미국에 불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2017년 6월 협약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파리기후협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2015년 12월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중국을 포함하여 195개국이 서명한 국제 협약이다. 규제가 약하다며 반발하던 니카라과에 이어 6년 넘게 내전에 시달리던 시리아마저 최근 파리기후협약에 동참키로 하면서 전 세계에서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는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이 유일하다. 트럼프의 협약 탈퇴는 다른 국가들의 탈퇴로 이어질까 우려를 낳고 있으며 국가별 자국 이기주의로 인해 지구라는 공공자원을 통제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학 용어 중에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란 말이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자원은 사람들의 남용으로 쉽게 고갈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미국 생물학자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이 1968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이론은 개인의 사리사욕 극대화가 공동체나 사회 전체를 파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최근 인천지역에서 발생한 일이다. 지난 11월 인천시가 도로 건설 사업비 전액(국비 50% 제외)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면서 그동안 인천시와 김포시가 사업비를 두고 줄곧 논란을 빚어왔던 원당-태리 간 광역도로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당초 원당-태리 간 광역도로 사업은 총사업비 560억 원으로 국비 50%, 김포시 35%, 경기도가 15%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검단 2지구 지구지정이 취소되면서 김포시 감정동과 풍무동 간 도로가 취소됐고, 김포 한강신도시 주민들이 이 도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김포시는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거부했다. 그 결과 10년 넘게 도로 건설 사업이 중단되었고 그동안 사업비는 1천150억 원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지자체 이기주의 때문에 사업비 증가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됨은 물론 인천·김포시민을 비롯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 도로를 13년 동안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자체 간 비용 분담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과 논란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공원, 도로, 교육 등 공공재 내지 공유자원을 이용하는 문제라 하더라도 강제적인 규제가 없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율적 합의가 어려운 실정이다. 공유지 황폐화를 막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공공기관 또는 국가 관리를 해법,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자체 이기주의로 인한 국민의 불편과 국가적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투명해질수록 나눔이 커집니다

“투명해질수록 나눔이 커집니다.” 지역경제가 얼어붙은지 오래되다 보니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나누고 배려하는 사회가 마치 꿈꾸는 이상향인 것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 요즘 사회적 분위기다. 그래서 어려운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고 전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우리 가슴속에 잔뜩 움츠리고 있던 마음에는 깊은 감동이 서리곤 한다. 불우아동 돕기 기부금 128억원을 유용한 ‘새희망씨앗’ 사건, 희귀병 딸을 위해 사용해야 할 기부금 12억을 가로챈 ‘이영학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기부 포비아(공포증)’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없는 돈에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기부를 해왔던 분들도 그렇고, 이 사건을 지켜본 시민들도 그렇다. 마음속에 나눔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자랐다.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선의로 하는 봉사와 기부가 퇴색될까 걱정된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인천지역 기부 참여율은 해마다 감소세다. 지난 2011년 36.4%에서 2013년 34.6% 2015년 29.9%, 올해 26.7%까지 떨어졌다. 가뜩이나 닫힌 마음이 더 닫힌 듯하다.기부가 갖는 사회적 기능은 수혜자에게 도움이 되는 1차적 기능 외에도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재화가 재분배되는 과정을 통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등의 시너지효과를 가져온다. 기부추이가 감소세다보니 기부 투명성을 높여 신중해진 기부자에게 자칫 왜곡될 수 있는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너도 나도 노력하고 있다. 금년에도 예년과 같이 지난 12월1일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전국민이 참여하는 적십자회비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인천에서 십시일반 모인 적십자회비는 인천시민을 위해 각종 재난구호활동,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위기가정 긴급지원활동,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심폐소생술 보급 교육 등에 사용한다. 특히 올해 7월엔 유례없는 기습폭우가 내려 수해피해를 받은 시민이 많았다. 적십자에선 긴급재난대책본부를 꾸려 복구활동이 종료될 때까지 구호물품 전달, 가재도구 정리 및 세탁활동, 재난심리지원 활동을 펼쳤다. 당연히 인천시민들이 모아준 기부금이기에 시민들을 위해 사용했다. 여느 기관(단체)보다 대한적십자사는 높은 기부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기부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회계 기준을 채택해 재무투명성을 높이고 국정감사와 회계법인 감사를 통해 매년 사업과 회계를 투명하게 검증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영투명성과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주요 경영정보를 공시하고 혹시 모를 부적절한 기부금사용을 예방하기 위해 클린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말 많은 모금기관(단체)이 있다. 이들 모두 소외된 이웃을 돕고 나누고 배려하는 문화가 지역에 견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기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부 투명성에 의구심이 커진 지금, 인천만이라도 모금기관이 함께 해 한목소리로 시민들의 기부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으면 좋겠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지사 회장

[인천시론] 중국은 좋은 이웃 아닌 거래대상일 뿐

환자가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정이 먼저일까요? 사랑이 먼저일까요?”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은 심장이 소중합니까? 폐가 더 소중합니까?” 한중 교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중국과 한국 지도를 거꾸로 보며 두 나라의 관계를 화제 삼던 일이 있었다. 거꾸로 보면 중국은 살찐 닭의 몸통이고 한국(남북한)은 부리(주둥이)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중국을 국빈방문 한다. 한중 관계가 사드 배치를 두고 곡절을 겪은 후인데다 미북이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황이고 그로 인해 미중 관계마저 시계 제로, 남북 관계 역시 얼어붙어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로서는 어느 때보다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이 정부는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라는 ‘심장과 폐’를 놓고 선택을 강요받는 것 같은 입장이다. 두 나라 사이에서 압박을 받는다고 생각했을 때 참 난감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난감해해서는 안 된다. 난감해야 할 일이 아니다. 왜 우정이 먼저일까요? 사랑이 먼저일까요?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은 굳건한 한미 동맹 위에서 한중, 한일 그리고 국제관계를 성립시켜 오지 않았는가. 생존을 위해 사드배치를 했는데 그걸 경제보복으로 앙갚음하는 25년 지기에게 나약한 모습으로 줏대 없이 흔들리고 ‘3불’같은 외교를 펼치니 ‘실제적인 행동을 취할(言必信, 行必果) 것을 요구(희망)하고 운영체계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1제한’을 추가하는 압박을 가해 오고 있지 않은가. 사랑이건 우정이건, 심장이든 폐이든 그건 ‘우리 것’이다. 중국의 안보? 우리의 생사는? 이스라엘을 보자. 막강한 대적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은 평화를 구걸하지 않는다. 힘을 키워 맞대응, 맞상대함으로써 평화를 유지시키고 있지 않은가! 아일랜드를 보자. 막강한 잉글랜드에 오랜 시간 수모를 당해 왔지만 이를 뛰어넘어 그들보다 더 부를 구가하고 있지 않나? 약육강식의 국제무대에서, 특히 덩치 크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중국을 이웃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학습(벤치마킹) 해 볼만하다고 여겨진다. 중국은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걸 경제보복을 당하면서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는가! 문 대통령의 국빈방문,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눈앞의 작은 이익에 몰입되어 국민 자존에 상처받는 일이 벌어질까 우려스럽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22일 만났을 때도 “일정 기간 중한 양국 관계가 곡절을 겪었다”면서 “얼마 전 양국은 공동 언론 발표문을 통해 사드 문제의 단계적 처리에 대해 얼마간(一些) 합의를 달성했다”고 말해 여전히 우리의 요구를 시원히 풀지 않은 채 여지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을 도와 우리와 총칼을 맞대고 싸웠던 나라다. 우리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이웃이지만 이 대명천지에도 동등한 국가로, 서로 도우려는 이웃이 아니라 대국의 길을 완성한 후 우리 위에 군림하려는 믿을 수 없는 이웃이다. 지난 4월 시진핑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한반도는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는 거 아닌가! 이 정부가 거기에 어떤 반응(불쾌한)을 보였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는 지난번 칼럼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려다 샌드위치 외교가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중국 없이도 살아왔고 살아갈 수 있다. 당당해야 한다. 중국은 우리의 거래 대상일 뿐이다. 경제 단절(보복)? 우리만 손해일까? 국교단절은 어떨까? 그런 배짱으로 중국을 다룰 필요가 있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자수성가 스타일과 4차 산업혁명

이인재 TV 골프 채널을 보다 보면 아마추어 고교동창 대항전을 볼 수 있다. 4명이 한팀이 돼 학교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싸운다. 대부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인데 전부 싱글인 아마 실력자들이다. 내가 이 프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프로골퍼와는 달리 체형도 외모도 별로인 사람들이 골프를 잘 치는 까닭이고 다른 하나는 괴상한 폼으로 치는데도 볼이 반듯이 날아가는 불가사의한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채를 공중에서 도리깨질하면서 내려오는 사람, 치기 전 엉덩이를 두 번 흔드는 사람, 스윙 후에 앞으로 튀어나가는 사람, 친 다음 비명을 지르는 사람 등 먹고 있던 음식을 토하게 할 만큼 웃기게 한다. 웃음을 넘어 짠한 마음까지 들게 하는 이런 골프 스타일을 어떤 사람은 ‘자수성가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그런 폼으로 싱글까지 가기에는 주변의 웃음에도 굴하지 않는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를 대표하는 실력이면 그 지역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골퍼이고 나름 아마챔피언의 경력도 있을 것이다. ‘자수성가 스타일’도 인간인지라 프로골퍼의 멋진 폼을 왜 갖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체형과 리듬에 맞는 스타일을 창조한 것이다. 폼도 좋고 거리도 멀리 반드시 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세상에 물 좋고 정자(亭子) 좋은 곳이 없듯이 어려운 일이다. 골프 뿐 아니라 모든 게 마찬가지다. 모든 나무가 리기다소나무처럼 쭉쭉 곧게 자라기만 할 수는 없다. 뒤틀어진 반송(盤松)도 있고 군락으로 구성된 이팝나무도 있기 마련이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산업혁명을 말한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다양성의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인디언 다코타 족 ‘레너드 펠티에’의 이야기에 보면 “우리가 당신들의 특성을 인정하듯이 당신들도 우리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자는 말이다. 고립된 섬에 있는 덩치 큰 생물은 작아지고 작은 생물은 반대로 커지면서 평균화된다는 ‘섬의 규칙’이란 고생물학 용어가 있다. 다양한 사이즈가 불가능해진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300년 이상 계속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과 인터넷기업 구글, 페이스북 직원이 26만 여명이 늘고 시가총액이 2천200조원에 달하고 있다. 우리가 IT 강국인 줄 알았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빼면 속된 말로 속 빈 강정 신세다. 미국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정부의 규제철폐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업혁신 전략을 통해 새로운 산업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혁신을 내세우지만 왜 제대로 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면 될 일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어려운 것인지 속 시원히 밝혔으면 좋겠다. 비록 폼은 엉성하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습득한 자수성가 스타일 폼을 비웃지 말고 인간은 다양성의 집합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자.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이건 항복외교 아닌가

이건 조공외교도 아니고, 항복외교 아닌가. 한·중 사드합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표명한 △사드 추가배치 검토하지 않는다.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3불 입장’은 중국의 입김에 나라기둥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미 행정부와 군부 핵심에서도 우회적인 우려의 메시지가 나왔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현지시간) “나는 한국이 그 3가지 영역에서 주권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도 “사드배치를 통해 방어태세를 강화함으로써 김정은이 (한국)남부지역을 함부로 위협하지 못하게 했다”며 앞으로 기존 수도권 방어체계에 방어자산과 능력을 추가해 수도권 주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3불 입장’은 정책일까, 전략일까? 정책이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겠다는 것이고 전략이라면 시간을 갖고 중국을 달래보겠다는 얕은 꾀일 수 있다. 중국은 당장 외교적 약속이라며 이행 여부를 지켜보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고 미국은 주권 포기는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에둘러 섭섭함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균형외교는 자칫 ‘샌드위치’ 외교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사드배치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2015년)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하며 ‘실용적 균형외교’를 주장하다 북한의 도발로 미국과 사드배치에 합의했고, 중국은 갑작스러운 한국의 입장 변화에 신뢰를 내세우며 원인인 북핵 문제엔 입을 다문 채 치졸한 경제보복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의 절차 문제를 내세워 사드배치를 보류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을 저버렸다”며 미국으로부터도 따가운 질책과 의심을 샀다.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틈타 사드의 임시배치를 결정했다. 균형외교가 아니라 샌드위치 외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어느 칼럼에서는 이건 조공외교도 아니고 아예 다 내어 준 항복외교라고 질타했다. 북핵의 안보위기를 생존권과 자존권을 걸고 해결하고자 한 것인데 턱도 없는 이유로 치졸한 경제 보복을 당하고도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하고 이렇게까지 머리를 조아려야 하느냐고 흥분했다. 사드배치를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야당 시절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들이 지금 여당 의원들이다. 이런 엄청난 합의를 국회 논의는 입에 올리지도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이 협상을 잘 된 것이라고 자찬하고 있단다. 역사는 이를 굴종이라고 기록하지 않을까. 나는 지난번 이 칼럼에서 중국 없이도 살아왔고 살아갈 수 있다, 당당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큰 덩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나가겠다는 복안인 모양인데, 미국에 사정하고 중국에 손 비비는 초라한 모습으로 보인다. 경제 보복(?)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의 경제 속국인가. 설득하고 안 되면 손 털면 된다. ‘이게 나라냐?’며 나라다운 나라여야 한다고 목이 아프게 외쳐온 게 이 정권 아닌가. 당당해야 한다. 그것이 더 경제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반미 친미 시위로 혼란스러운 현 시국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 외교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모두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다. 중국의 입김에 흔들리다 보면 뿌리가 뽑힐 수 있다. 송수남 전 언론인

[인천시론] 나도 치매?

나이를 먹으면 여러 증상들이 생긴다. 자고 나면 개운치가 않고 오히려 찌뿌둥하다. 한의사인 동생에게 물었더니 당연한 거란다. 옛날 생각만 하고 감기 기운 있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먹으면 병원에 가기 십상이다. 법적 노인 65세가 아직도 먼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공통되는 슬픈 현상이 발생한다. 손에 쥔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음식물을 흘리거나 입 주위에 묻힌다. 어딘가에 자주 부딪혀 타박상을 입기도 한다. 이들 모두 뇌의 노화로 인한 결과인데 정말 무서운 것은 기억력 쇠퇴다. 얼굴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유독 이름만 혀끝에서 맴도는 ‘설단(舌端) 현상’과 이름과 얼굴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미당 서정주는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70세가 넘어 아침에 일어나면 세계의 산 이름 1천625개를 외웠다고 한다. 40분 정도 염불하듯 산 이름을 외우고 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했다. 나로서는 사람 이름 몰라 망신만 안 당해도 감지덕지다. 일본 치매 전문가 시라사와 타쿠지 박사는 치매 예방을 위해 이틀 전 일기를 쓰라고 권장한다. 다 아는 유머지만 볼일 보고 지퍼를 안 올리는 것은 건망증이고, 지퍼를 안 내리고 볼일 보는 것은 치매라는데 건망증이 꼭 치매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 의학계 중론이다. 문제는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 전국의 치매환자는 68만5천739명으로 노인 10명 중 1명꼴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165만1천340명으로 노인 10명 중 4명꼴이다. 고개만 돌려도 치매환자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치매의 라틴어 어원인 ‘디멘티아(dementia)’의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따라 쓴다. ‘디멘티아’란 말은 기억과 정신이 없어지는 병이라는 뜻이다. 노망이란 말이 불경스러워 치매라는 일본 한자를 빌려 썼는지는 몰라도 사실 치매도 ‘어리석다’란 뜻이니 ‘인지장애증’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일본도 이미 2004년부터 인지증(認知症)으로 부르고 있고, 대만에서는 실지증(失知症), 홍콩에선 뇌퇴화증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열병도 조현병(調絃病)이란 점잖은 말로 바꾸었듯이 일부러 어리석게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치매도 좋은 용어로 대체했으면 좋겠다. 일본은 이미 5년 전 ‘오렌지플랜’이란 치매대책을 수립해 범국가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병원이 아닌 재택치료와 함께 환자, 가족, 간병인, 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참여하는 ‘치매 네비게이터’라 불리는 환자 중심형 제도를 시행 중이다. 평균수명이 늘다 보니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 큰 복이다. 소동파는 시냇물이 서쪽으로 흐르듯이 다시 젊어질 수 있다고 했지만 희망사항일 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60년 이상 풍상을 겪었으니 이상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했다. 치매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다룰 의지를 표명한데 이어 해당부처에서 정책으로 옮긴다니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리라 본다. 다만 공무원 책상에 머무는 비현실적 처방보다는 중·경증 치매환자 가족들에게 꼭 자문을 구해 실질적이고 효과 있는 대책을 시행하길 바란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아버지와 딸, 그리고 정치인

올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북 구미에서 출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맞아 여러 곳에서 다양한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2012년 설립 당시 200억원이 넘는 국고와 서울시 부지를 지원받으며 논란 속에 개관한 서울 마포구 박정희 기념·도서관에서는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음악회’가 열린다. 사실상 ‘박정희 기념공원 사업’으로 불리며 추진 초기부터 논란이 된 서울 중구 동화동 역사문화공원 사업은 구의회의 반대 속에서도 구 자체 예산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우표’는 우정사업본부의 발행 취소 결정으로 무산됐고, 각종 기념사업을 함께 추진했던 경북 지역은 지자체간 시각차로 삐걱거리고 있다. 경북도는 새 정부 출범 후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있는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는 기념사업 강행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종범 전 수석의 보좌관이 쓴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상황’ 보고서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기념관을 새롭게 바꿀 방법을 강구하되 미르재단 등과 논의하라”고 수차례 지시했다고 한다. 구미시는 올해 11월, 혈세 200억원을 들여 박정희 역사자료관을 착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박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이던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건립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부녀(父女) 대통령이라는 새 역사를 썼지만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기보다는 딸로서 아버지의 치적, 기념화 사업에 너무 열중한 것은 아닐까. 그 말로(末路)도 좋지 않다. 인천지역 정치판으로 눈을 돌려보자. 지난 9월 인천 계양, 부평 일원 공항시설보호지구 해제를 둘러싸고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특정 업체와 특정 정치인의 입김에 따라 행정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모 시의원이 유정복 인천시장에게 해제를 건의했고 인천시가 도시계획위원회에 공항시설보호지구 폐지 안건을 상정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홍 의원의 부친이 전 시의원이었고 현재 서운산단을 추진하고 있는 (주)서운일반산업단지개발의 고위직이라며 특정 업체나 부친 회사를 위해 나선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법적으로 입주가 불가능한 폐기물 배출업체 7곳의 분양신청을 받고 감사원의 지적을 받게 되자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이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전국 최연소 광역의원 당선에, 대를 이어 부녀(父女) 시의원이란 기록을 세우는 등 장래가 촉망되는 의원이다. 아쉬운 점은 (주)서운일반산업단지개발에 수억원을 출자한 인천도시공사를 피감기관으로 하는 건설교통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이다. 즉 아버지가 있는 회사(SPC)를 관리·감독하는 인천도시공사, 그런 공사를 감시·견제하는 딸,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인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의 기념사업인지, 주민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것인지 그 내막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선현의 말씀처럼 불필요한 오해나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언행과 몸가짐이 아쉬운 대목이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밝고 건전한 내일을 위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듯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명절인 한가위가 건국 이래 최대 휴일로 기억된 채 흘러갔다. 1년 내내 추석을 간절히 기다려온 이는 아마도 농부일 것이다. 농부는 한여름 땀 흘려 농사를 짓고 9~10월 즈음이 되면 농사가 마무리돼 맘 놓고 편히 쉴 수 있기에 추석은 한 해의 마침표와도 같다. 그래서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도와준 이웃이 고마워 수확한 곡식을 나눠 먹는다. 아직 농촌은 여전히 서로서로 돕는 끈끈한 공동체의식이 살아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엔 지금처럼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적었다. 잘 아는 이웃집에 아이를 맡겨두고 일을 나갔고, 장을 보러 나갈 때는 문조차 잠그지 않고 나가곤 했다. 그 당시엔 옆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았고 이웃들 경조사도 함께 했다. 못된 짓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예의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하면 어른들 꾸중이 있었고 나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온 동네에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지금은 급격한 산업화를 거쳐 개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층간소음이라든지 주차문제라든지 이웃과 정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소리 높여 다투거나 법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고 삭막해졌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이웃간의 다툼을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욱 커 보인다. 경기불황은 좀처럼 끝나지 않아 먹고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졌다. 이웃과 함께 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경제수준에 따른 지역간 인구이동은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좋은 주거, 교육, 문화, 환경을 찾아 기존 도심을 벗어나 신도심으로 가고 빠져나간 구도심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공동체의 모습은 이전과 다르게 쉽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그동안 우리 적십자에서는 서로 믿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정동별로 봉사회를 구성해 동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위기가정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희망풍차’ 사업을 2012년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뿐만 아니라 ‘함께 걷자 인천 페스타’라든가 ‘G타워 희망오르기 대회’, ‘선한페스티벌’ 등 청소년들이 함께 나누는 장으로 나와 위기에 놓인 이웃을 도움으로써 공동체의식 함양을 위해 세대, 계층간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호는 한데 뭉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저마다 소리를 내다보니 공허한 외침이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인천 지역사회 최대의 화두는 초등생 살인사건이었다. 타락한 청소년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바로잡아줄 어른이 없는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아쉽기도 하다. 그 이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거치면서 처벌에 대한 제도적 접근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법률적 강화도 필요하고 사회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밝고 건전한 인성을 가진 청소년을 키우는 일이다. 이젠 함께 돌보고 함께 가꾸는 공동체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함께 나서야 할 때다. 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지회장

[인천시론]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누적된 폐단(a deep-rooted evil), 그릇된 것들의 쌓임, 즉 가부장제의 폐단이나 장애인 차별 등 사회제도나 어떤 개념 등에 쓰이는 단어가 ‘적폐(積弊)’의 일반적인 경우인데 이 정권 들어 ‘정치용어’로 자리 잡아가면서 피바람을 연상시킨다. ‘적폐청산’으로 행위를 동반하면서는 정치보복으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적폐(積弊)가 아니라 적폐(敵弊)인 모양이다. 어느 국회의원은 페이스북에 ‘적폐청산’이라 쓰고, ‘정치보복’이라 읽는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한 집단이 정권을 잡으면 나름의 통치 철학과 이념으로 나라를 더 정의롭고 부강하게, 국민들을 자유롭고 편리하게 해야 할 것이며, 하려고 할 것이다. 그 방편으로 전 정권들에서 저질러졌던 잘못들(적폐)을 깊이 들여다보고, 고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것이 ‘보복’으로 비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주인(국민)의 입장에서 안쓰럽다. 후보 시절 적폐청산을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각 부처에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과거사를 캐고 있고, 기관을 동원해 수사(야당 인사들에 대한)를 펼치는 중이다. 적폐는 청산돼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정의가 살아나고 국가 발전을 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 정권(박근혜)보다는 전전 정권(이명박)을 향해 겨눈 칼끝이 더 매서워 보인다. 이 정권이 과거 자신들의 적폐(바다 이야기 등)나 좌파정권 시절의 적폐는 덮어둔 채 이명박 정권을 겨냥한 건, 강압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갔다며 한풀이를 하려는 게 아닌가? 많은 국민들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더 치고 올라가 박정희 흔적까지 지우려고 한다. 정부의 개도국 지원 업무를 하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는 내년부터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공적개발원조’ 신규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기존의 26개 사업도 10개로 재편, 사업 명칭에서 아예 ‘새마을’을 삭제한다고 한다. ‘새마을’의 근면·자조·협동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고 우리의 자존심인데 전 정권 지우기를 한다고 이러는 모양이다. 이 정권의 적폐 청산은 미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건 적폐 청산이 아니라 한풀이요 정치보복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해서는 국정원 댓글, 문화 연예계 블랙리스트, 방산 비리, 4대강 사업 조사가 진행 중이고 자원 개발, 공영방송 장악, BBK 사건 수사도 다시 할 가능성이 있단다. 이 밖에 군 적폐청산 위원회(국방부), 광주 518 특별조사 위원회, 역사 교과서(교육부), 한일 위안부 합의(외교부)를 조사한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 연예인 블랙리스트를 조사 중이고 통일부는 개성공단 중단을 보고 있다고 한다. 적폐 청산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폐청산이라는 가면(방패)을 쓰고 정치보복, 한풀이 정치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보복은 보복을 부른다. 우리는 그런 일을 지겹게 봐 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걸핏하면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정부라고 내세운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보고대회, 외국에 나가서까지 ‘촛불혁명’을 자주 강조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는 1천350여만명, 전체 유권자 4천247만명의 32%에 불과하다. 그는 전체 국민(유권자)의 3분의 1도 안 되는 지지로 대통령이 된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수할 것에만 몰입하는, 권력 잡으면 보복부터 생각하는 ‘당신’들이 적폐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얼렁뚱땅 대한민국

일본 출장을 다녀온 딸은 나에게 노트나 펜, 약품 등을 선물한다. 써볼 때마다 품질도 품질이지만 포장재가 잘 분리되는 것에 감탄하면서 왜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못 만드나 한탄스럽다. 비단 물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게 문제다. 교량 위를 운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음새 부분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곳은 거의 없다. 새롭게 포장한 까만 도로가 몇 개월도 못 가 회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의 토목기술은 마술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쉽게 고칠 수 있는 일들인데 소관이 불분명한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안타깝다. 공무원교육원장으로 근무할 때 건물을 새로 짓게 됐다. 강의실 단상을 만드는데 작업자들이 단상 안의 작업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덮는 것을 보고 다시 뜯어 깨끗이 청소하라고 말하자 안 보이는 곳인데 유난 떤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말에 ‘시아게(仕上げ)’란 말이 있다. 마무리, 끝손질, 뒷마감이란 뜻인데 오늘날 세계 제일의 제조업 강국 일본을 만든 단어다. 사실 시아게는 눈에 띄지 않기에 인기가 없다. 하지만 시아게가 없이는 선진국의 마지막 관문을 넘기 힘들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사소하다는 논리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아닌지…. 언제부턴가 우리는 거대 담론에 휩싸여 정작 삶의 편의성에 손 놓고 있지 않았나 싶다. 우국열사는 많아도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자체장은 국회의원이나 대권을 향한 디딤돌 자리가 아니라, 공원의 농구 골대망이 찢어졌을 때 빨리 보수해야 하는 사람이다. 시장으로 있을 때 시민 한 사람이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인데 하루 일과에서 짜증나는 일들을 열거하며 국가가 할 일인지 지자체가 할 일인지 말해달라고 했다. 대강 기억나는 것은 잘못된 신호체계나 도로구조로 인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교통정체, 누더기 도로, 개념 없이 설치한 과속방지턱, 무단 투기 쓰레기, 그늘 없는 공원, 각종 소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작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제갈량은 승상으로 있으면서 곤장 몇 대 치는 일까지 관장했다고 한다. 밑에서 할 일까지 오지랖 넓게 개입한데 불만이 높자 “선주(유비)께서 나라를 간곡히 부탁하신 지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최고 지도자도 이런데 우리의 작은 삶을 책임진 당사자들의 세심하고 꼼꼼한 손길이 아쉽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대장부’니 ‘그릇이 크다’느니 하며 소위 큰일을 하는 사람은 좀스럽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희한한 문화가 있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질하는 것도 모르면서 천리(天理)를 이야기 한다”면서 공리공담을 경계했다. 외국에 갈 때면 도로 옆의 경계석을 유심히 보곤 한다. 경계석이 똑바르고 높낮이가 일정하며 이음매 부분이 깔끔할 경우 선진국이 틀림없다. 노약자를 위한 육교 엘리베이터 안이 지저분한 나라는 희망이 없다. 안 보이는 곳일수록 더 꼼꼼히 챙기는 세심함과 배려가 아쉽다. 맘만 먹으면 정말 잘할 수 있는 국민인데, 언제쯤 이런 일들이 사라져 ‘얼렁뚱땅 대한민국’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부천 상동 복합쇼핑몰, 해법은 없나

‘부천’이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조선총독부는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1914년 4월 부(府)와 군(郡)으로 지방제도를 개편하는 부제를 실시하면서 일본 조계 지역과 일부 면을 합해 인천부로 삼고, 나머지 지역과 부평군을 합해 부천군으로 개편했다. 신설된 부천군은 인천부의 일부와 부평군을 중심으로 강화군의 일부 섬과 영흥면의 섬들을 포함하였고 당시 부천군청은 인천 도호부가 위치한 문학면 관교리에 있었다. 1961년 7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공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대도시의 인구가 급격하게 팽창했다. 이에 따라 1973년 행정구역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수도권의 합리적인 개발과 인구 집중 억제를 위하여 수도권의 관할 구역 조정이 있었고 이때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됐다. 이처럼 과거 인천과 부천은 하나였고 서울과 인천의 중간에서 다리 노릇을 하는 고장이 바로 부천이다. 한때는 같은 지역, 같은 생활권에서 함께 했던 두 지자체가 부천 신세계 복합쇼핑몰 건립을 두고 이제는 극한적이고 감정적 대립으로 연일 충돌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인천시가 신세계 스타필드 청라점 건축허가를 내주자 부천시는 즉각 반발했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이중적 잣대라며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괴상한 행정’이라고 인천시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소설을 쓰고 있다’며 ‘궁지에 몰린 감정적 발언’이라고 김 시장의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동안 인천은 중소상인, 골목상권, 재래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부천 상동 복합쇼핑몰을 줄곧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보다 5배나 규모가 큰 신세계 복합쇼핑몰에 대한 건축허가를 청라에 내주면서 소위 ‘내로남불’ 아니냐며 그동안 쌓였던 부천시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김 시장의 주장이 감정적 발언으로 매도되는 것은 부천과 인천의 사안이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 부천의 경우 이제야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려는 단계이지만 인천의 경우 2011년 송영길 전 시장이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현재 행정절차가 70~80% 진행된 상태이다. 며칠 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지역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3월에는 현재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前 을지로위원장)이 부청시청사에 앞에서 “우리당 소속이 시장으로 있는 부천시가 대기업을 위한 행정을 펴고 있어 죄송하다”고 기자회견을 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이면 ‘독불장군 리더십’이 아니라 갈등을 봉합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이제 내년 지방선거가 10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역별 이해관계와 지자체 이기주의가 맞물려 인천과 부천 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첨예해질 것이다. 정작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지자체장 선거의 유불리로 몽리를 챙기는데 혈안이 될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천과 인천이 상생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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