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이라 함은, 반드시 새누리당과 대기업을 비판하는 사람만을,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 그리고 노동운동 경력자만을, 복지와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만을, 야당 당적을 두거나 이들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토대로, 자기 삶의 영역에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사회 시스템을 생각하고 또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 진보적이다. 이런 생각과 실천 없이, 백날 서민을 협동조합을 그리고 남북통일을 외쳐본들 보수적인 아니 수구적인 이에 지나지 않는다. 낡은 진보 또는 가짜 진보 청산.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가 내놓은 당 혁신안을 아무리 훑어봐도 진정 이 당에 필요한 이 문제에 관한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진보는 늘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인데 그러한 뜻의 진보에 형용사 낡은이 웬 말이냐며 되레 반박하는 이들이 많다. 즉, 이 당에 속한 사람들이 금번 혁신위의 안에 대체로 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진정으로 혁신하는데 있어 가장 절실한 과제는 낡은 진보 청산, 즉 진보 또는 개혁의 탈을 쓰고 보수의 흉내를 내는 이른바 가짜 들을 제대로 걸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486, 학생운동, 복지, 친노동, 남북관계 개선 등을 운운하며 있는 대로 진보적인 척 개혁적인 척 폼 잡다가 선거 때나 실제 행정 및 입법 과정에서는 수구 보수 진영보다 더 보수적이고 또 시장주의적인, 자기배반적인 인사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엔 너무 많다.
새로운 진보니 합리적 진보니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내놓는 이들의 공약에 녹아든 정책 또는 이념의 기조를 보면, 고속도로 증설이나 전시적 성격이 강한 인프라 건립을 위한 대규모 토건공사, 외국자본 및 외국기업 유치에서 지역경제의 동력을 찾는 이른바 외부의존형 지역개발, 영리병원 설립 및 골프장 유치 찬성 등, 사실 새누리당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낡고 보수적인 정책을 내놓는 가짜 진보가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수두룩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는 인사들이 당의 기득권과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고 게다가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어찌 진보적인 노선을 고수하는 야당이라 평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가짜가 판을 치는, 좀 점잖게 말하면 낡은 진보가 판을 치는 정당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진보란 단어에 낡은이라는 뜻의 형용사를 왜 못 붙이는가? 구미에서도 유연하지 못한 또 현실적이지 못한 좌파를 낡은 좌파(올드 레프트)로 규정해오고 있지 않는가? 그래도 경직적이라 비판을 받을 정도로 맑스주의 이념 하나에만 충실했던 이들을 아예 속과 겉이 다른 새정치민주연합의 저질 인사들, 즉 낡은 진보 또는 가짜들에 빗대어 언급하는 건 자신의 이념에 충실했던 그 우직한 올드 레프트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 행위이지만 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을 위해서는 당의 이념적 입장을 확고히 정립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정립된 당의 이념 노선을 제대로 체화하여 이에 정합적인 정책을 공급할 수 있는 인사만으로 당을 구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즉 새누리당과 분명히 대립되는 정책적 입장과 노선을 밝히고 이에 정합적이지 않은 정책 행보를 보이는 가짜 인사들을 모조리 퇴출시키는 것을 금번 혁신안의 핵심으로 제시했어야 했다. 솔직히 이들을 낡은 진보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 대한 과대평가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실 흉내만 낼 뿐 진보는커녕 보수에 속하는 그룹 아닌가. 부패 척결도 새로운 인재 영입도 당의 혁신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지만,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을 이념적으로 기만하는 이 낡은 진보들이 이 당에 득실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짜들의 당적을 새누리당으로 옮기게 하던지, 민정당을 다시 창당하게 하던지, 아니면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을 위한 첫걸음이지 않을까. 양준호 인천대학교 교수
오피니언
양준호
2015-09-30 19:44